196.
오라버니Elder Brother.
티파니가 친오빠인 케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그 기묘한 호칭은 바로 동화책에서 따온 것이었다.
다섯 살 때 읽었던, 공주가 성에 침입한 도둑에게 첫눈에 반해 함께 모험을 떠나는 내용의 동화.
지금은 동화의 제목조차 잊어버렸지만 오라버니란 호칭만큼은 입에 남아 계속해서 사용했었다.
그나마도 성인이 된 뒤로는 거의 입에 담지 않아서 아마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괜찮았었겠지만.
돌아온 케인을 보자 티파니는 왠지 모르게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그때는 무의식중에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좀 달랐다.
케인은 티파니가 성인이 되기 전에 집안을 떠났다. 그 순간에 멈춘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오라버니만큼 좋은 말이 없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기 때문일까.
어렸을 적, 케인은 비즈니스로 바쁜 부모님 대신 여동생을 잘 돌봐주었다. 티파니 역시 그런 오빠를 항상 따랐다.
그렇기 때문에 말도 없이 떠났을 때는 꽤나 섭섭했었고, 최악의 타이밍에 돌아오자 불쾌감을 느꼈다.
자신들은 절대 화목한 가족이 될 수가 없다고 새삼 느꼈기 때문이었다.
랙다운 총괄 프로듀서.
케인 맥센.
분명 신을 상대하기 위해 아버지가 데려온 픽일 터였다. 당연히 기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방금까지는 말이다.
“뭐라고요?”
“신과 러셀이 좋았다고. 특히 신. 경기력이 아주 죽이던데.”
“어…….”
“그 녀석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없을 때 하는 게 어떻겠느냐.”
“하하, 티파니. 너 결혼 허락 받으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아니, 신이 고생을 하는 쪽인가.”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뭐가? 결혼? 아니면 신에 대한 칭찬? 어느 쪽이든 이 오빠는 진심으로 이야기한 거야. 티파니.”
“…….”
티파니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 일단 침착하자.
아직 케인이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는 당장 자신의 랙다운 총괄 프로듀서 직을 해임하겠지.
그러므로 잠깐 떠보면서 그 진심을 들어두는 편이 나을 듯했다.
“잘 봐주세요. 좋은 선수니까.”
“그러고 싶어도 말이야.”
“케인.”
“왜요. 아버지. 이런 부분은 확실히 해둬야 티파니가 나중에 상처를 덜 받지 않겠어요?”
부드럽게 웃으며 이야기한 케인 맥센이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 친구, 괜찮아. 멋진 재능을 지녔고. 자기 입장을 잘만 활용한다면 그럭저럭 유명세를 얻고 잘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입장……?”
“인종 있잖아. 그 친구가 계속해서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 거.”
“그렇지 않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세일즈 포인트…….”
“어라, 방금 말했네. 확실히 그 부분이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고.”
“……오라버니.”
“그 신선함이 미국인들에게 큰 자극이 되는 거겠지. 그렇게 대단한 동양인은 좀처럼 없으니까. 얼굴도 꽤나 반반한 편이고 말이지.”
케인은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잘될 수 있을 거야. 여기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라면, 한정된 자기 역할 내에서라면 말이야.”
“그쯤 하세요.”
“너희의 꿈은 아버지에게 대충 들었어. 티파니, 아직 어렸을 때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구나. 그 오라버니라는 표현도 그렇고.”
“…….”
“귀여워. 역시 내 여동생답게 변한 것 없이 그대로 있어주는구나.”
명백한 도발이었다.
뺨이 수치심에 확 붉어진 티파니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린 짓을 했구나,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케인과의 관계.
그건 멈춘 게 아니었다.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해야겠지.
“적당히 해. 케인.”
“흠.”
“어쩌려는 생각이야? 기왕 말할 거면 거기까지 이야기해주지?”
“글쎄. 넌 어쩔 생각인데?”
“적당히 시험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돈을 투자해서 사업을 하고 있어. 단지 그뿐이야.”
“그렇게 번 돈으로 이 회사를 사겠다는 망상을 하는 건 아니지?”
“그거야말로 망상이네.”
“근거가 있으면 그건 예언이라고 하지. 그리고 네가 하는 일에는 근거가 없으니 망상인 거고.”
“좋아. 하나씩 까보자고.”
티파니가 바트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저는 돈을 개같이 많이 번 다음에 당신에게서 주식을 사들여서 이 회사를 살 거예요.”
“개같이, 라니.”
“왜, 욕도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순수한 아가씨를 기대한 거야?”
“뭐, 계속해.”
피식 웃은 케인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당신을 대부의 영감처럼 시골로 보내버린 뒤에 토마토 농사나 지으며 살게 할 거예요.”
“야, 잘 말했네.”
케인이 박수를 쳤다.
이미 알고 있다면 털어놓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티파니는 눈썹을 찡그리며 케인을 돌아보았다.
“이제 그쪽도 말해.”
“뭐?”
“신에게 무슨 짓을 할 거야?”
“간단해.”
케인이 싱긋 웃어보였다.
“그 친구, 지금 러셀의 공격으로 무릎에 부상을 입은 상태잖아?”
“……대체 무슨 소리야?”
각본 상의 설정일 뿐인 무릎 부상을 실제인 양 말하는 케인의 말에 티파니는 눈썹을 찡그렸다.
“당분간 휴가를 좀 주려고.”
“케인, 장난치지 마.”
“정말 안타깝게도, 앞으로 내가 총괄하게 될 랙다운에서 신의 각본은 없을 예정이라서 말이야.”
“현재 계약하고 있는 최고의 선수에게 그런 짓을 하겠다고?”
“그러니까 이러는 거잖아.”
케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신 정도 레벨이면 쿵-퓨리 때도 그랬고 우리가 무슨 각본을 주더라도 좋은 반응을 얻어내겠지.”
“링 위에 올라가서 똥을 싸라고 해도 멋진 행동으로 포장할 선수야. 실제로 계약 조건에 자유로운 발언에 대한 보장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신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는 아예 쇼에 출연시키지 않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케인의 발언에 티파니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신을 쇼에 출연시키지 않겠다.
아주 극단적인 방법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살 터였다.
하지만 케인은 아버지와는 달리 그런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신의 성장을 막아낼 생각이었다.
회사의 총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외통수다.
눈앞의 상대가 갑작스레 총을 꺼내 겨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아쇠를 당길 것이고, 그걸 막아낼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남은 무기는 비참하게도, 도의적인 비난을 던지는 정도뿐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많이 졸렬해졌네, 케인. 사사로운 감정으로 좋은 선수를 망치려고 들다니.”
“아버지도 항상 하신 행동이잖아. 그리고 우리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지.”
누구를 스타로 만드느냐는 팬들의 반응이 아니라 결국 바트 맥센의 선택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절대로 밝힐 수 없는, 이 회사가 돌아가는 원리.
그뿐이랴.
혹사로 지쳐가는 선수들.
버티다 못한 그들이 회사를 나가 다른 단체로 갈 때마다 행해지는 졸렬하기 짝이 없는 보복.
회사의 모든 결정을 전문가가 아닌 그들의 의견을 수렴한 보스가 정하는 주먹구구식 시스템.
그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팬들.
그리고 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자신이 가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인간.
“그러니까 이 회사가……!”
“그쯤 해둬라.”
바로 그때, 바트가 흥분해 자리에서 일어난 티파니를 제지했다.
“케인, 상대에게 네 속내를 굳이 모두 말해줄 필요는 없다.”
“예, 아버지.”
“그리고 티파니.”
“…….”
“식사가 끝났으면 들어가보거라. 케인과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완전히 도발이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서있던 티파니는 이내 냅킨을 식탁에 집어던진 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오라버니’라는 말을 쓸 때가 끝났을 깨달았다.
유년기는 끝났다.
케인 맥센.
그는 이제 바트 맥센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자신들의 적이었다.
* * *
운동을 끝마치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부재중 전화 내역이 있었다.
‘제임스 관?’
한 달 만이었다.
이전까지도 헬 쏘우의 촬영 이후 출연료가 정산될 때마다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었는데.
이번 달 출연료와 관련해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또 내 경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헬 쏘우는 호러 장르에 충격을 가져온 수작으로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잘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수익을 정산해주며 내 통장에 없으면 섭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었다.
거기에 미국 전역에 내 이름을 알리는데도 꽤나 도움이 됐고.
한 일에 비하자면 아주 제대로 꿀을 빨고 있는 셈이라 이 일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제임스 관이 전화를 받았다.
[아, 신!]
“감독님, 잘 지내셨어요?”
[예! 경기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저야 DVD에 쓸 영상 때문에 요새 계속 편집 일을 하고 있죠.]
“고생하시네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번 9월 2일에 스케줄이 어떠세요?]
“글, 쎄요.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 이번에 상영관 다 내리면서 배우들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축하 파티라도 열까 싶어서요.]
“그거라면 당연히 참가해야죠. 어디서 하는데요?”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첫날의 시험(?)을 통과해선지 이후로는 다들 내게 호의적이었다.
사실 편의를 봐준 감이 있어서 나는 영화의 배우나 스탭들에게 나름대로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장소는 무려 뉴욕이에요!]
“예?”
조촐하다면서?
[헬 쏘우 2를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죠! 투자해주시는 자산가 분이 자기 호텔 파티장을 빌려주기로 하셨어요!]
제임스 관은 꽤나 신나 보였다.
하긴 그럴 터였다.
자기 작품이 대박을 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지.
피식 웃은 나는 이번 축하 파티에는 반드시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재미있겠는데.’
아마 투자자가 여는 파티라면 정말로 조촐하게 가지는 않을 테고.
나에게 관심이 있는 감독 같은 사람이 참가를 할 수도 있겠지.
다음 영화에 관해 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좋은 소식이었다.
제안은 계속 들어오지만 구미가 당기는 일은 없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주머니 속으로 넣으려던 찰나, 핸드폰에서 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뭐, 할 말이라도 남았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폴더 폰을 뺨으로 밀어내며 전화를 받았다.
“관?”
[저에요.]
티파니였다.
[잠깐 통화 괜찮아요?]
“어, 응. 무슨 일이야?”
일단 탈의실에서 계속 전화를 할 순 없겠다고 느낀 나는 짐을 챙겨 헬스장을 빠져나왔다.
티파니의 목소리는……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문제가 생겼어요.]
“말해봐.”
[당신이 랙다운에 이적하면 어떤 짓을 할 건지 케인이 말했어요.]
“그래? 뭔데?”
[아예 쇼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허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희 계획은 때가 올 때까지 당신이 계속 위상을 키워나가는 거였는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케인 맥센의 아이디어.
쇼에 날 내보내지 않는다.
그것은 바트가 절대로 할 리가 없다고 말했던 일 중 하나였다.
뭐, 갑자기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 날 죽인다던가 하는 것도 포함된다.
전부 티파니와 내가 농담 삼아 나눴던 이야기였다.
왜냐고?
날 쇼에 내보내지 않으면 그쪽에서도 감수할 게 많을 테니까.
일단 회사 내부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인종차별 관련해서 외부에 뉴스를 뿌려볼까요?]
바로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터부시되는 일이 바로 인종차별이었다.
바트가 갑자기 날 쇼에서 배제하고 노골적으로 홀대한다면 분명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터였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던 거지만.
그건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난 인종을 무기로 쓰고 싶지 않아. 티파니.”
그것은 내가 언젠가 고대하던 탑에 올랐을 때 내 발목을 옥죌 사슬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종의 덕을 봤다.
소수인종이었기에 오히려 기회를 받았고 관심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싫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분명 나올 수밖에 없는 말이긴 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
걱정스러운 듯 묻는 티파니.
거기에서 나는 쓰게 웃었다.
‘이렇게 나왔나.’
사실, 티파니와는 절대 할 리가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말해두자.
나는 그런 일까지도 모두 계산에 넣어두고 여러 가지를 계획했다.
그러므로 쇼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대한 플랜 정도는 이미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방출 요구를 해야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일종의 블러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