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97화 (197/634)

197.

섬머 수플렉스가 끝나고 각 브랜드에서는 애프터 쇼를 방영했다.

챔피언들이 나와 세그먼트를 진행하며 그간의 대립을 끝냈다.

오프닝을 장식한 바티스타는 트리플H와 악수를 나누며 선의의 대립을 멋지게 마무리 지었고.

쇼의 중반부쯤 플레어를 대동한 채 나온 러셀은 수많은 관객들의 야유를 받으며 감상을 말했다.

[드디어 옳은 결과가 나왔군.]

[Boooooooooooooo-!]

사람들이 크게 야유를 보냈다.

당연했다.

녀석은 비겁한 방식으로 벨트를 따냈으니까.

그 말인즉슨 정당한 방법으로는 날 이길 수 없었단 거지.

그럼에도 승자는 승자.

그것이 현재 녀석이 자신만만한 이유였다. 플레어와 러셀은 자기들끼리 계속 자축을 이어나갔다.

악역이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 싶을 정도로 교과서적인 결말이다.

사람들에게서 잔뜩 미움을 받으며 대립을 이끌어나가고 어떻게든 지는 모습을 보고 싶게 만든다.

러셀은 지금 막 그런 수준의 악역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충분히 더 올라갈 수 있겠지.

내 잡 아닌 잡으로 말이다.

왜냐면 잡이라고 말하기에는 나도 멋지게 이미지를 챙겼거든.

아이 큇 매치에서 기절할 때까지 절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최초의 선수였으니까.

덕분에 챙긴 이미지로 랙다운에서도 당분간 선역으로 활동한다.

‘원래는 그런 계획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럴 때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케인 맥센은 앞으로 날 쇼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어줄 각본이 없기에.

하지만 그건 당연히 표면상의 이유일 뿐. 케인은 그로써 모두에게 말할 생각인 것이다.

나를 쓸 마음이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이쪽에서도 분명히 그에 맞춰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회사에 방출 요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바트 맥센이 이 회사를 업계의 압도적인 톱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다른 단체의 에이스 선수들에게 높은 연봉을 지불하고 사와 일단 회사에 모아두기 때문이었다.

경쟁을 통해 선순환을 거치고 업계를 함께 키워나간다는 개념은 바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어도 북미에서만큼은 유일한 메이저 단체로 남고 싶어 했다.

돈을 많이 주더라도 날 WWF 소속으로 놔두고 딱히 중용하지는 않는 선에서 은퇴까지 함께한다.

그것이 지금 바트가 내게 바라고 있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따라서 나는 그런 심리에 맞춰, 일단 방출 요청을 함으로서 그들이 ‘무언가’를 제시하게 만들었다.

바로 재계약.

아직 계약 기간은 1년 남았지만, 나는 회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한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연봉은 로우 카더에서 미드 카더 정도의 레벨로, 위상에 비하면 높게 받는 편은 아니었다.

확실히 해두자.

돈은 좋은 거다.

거기다 얼마 전에는 미래를 생각해 부모님 암 보험과 건강 검진까지 들어놔서 돈이 더 필요했다.

거기에 내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의 크기가 계속 커질수록 투자금 역시 더 필요할 테니 말이다.

일단 메인 이벤터 급의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잘 협상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로부터 얼마 뒤, WWF 본사의 사무실에서 한 남자와 만났다.

바로 케인 맥센이었다.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자 자리에는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야기하기에 거리낄 것이 없어져서 더 좋을 것 같았다.

“신이라고 합니다.”

“케인 맥센. 만나서 반가워.”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많이 뵙기도 했고요.”

“하하, 텔레비전에서?”

서글서글한 인상.

키도 나와 비슷한 정도로 꽤 컸고 계속 운동을 했는지 선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몸이 좋았다.

이따금씩 경기를 뛸 때마다 미친 범프를 보인 그에 대해 사람들이 별명을 붙이기를 케인 오’맥.

태도 불량 시대의 전설 중 하나와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다.

“일단 앉아. 점심은 먹었어?”

“아직입니다.”

“그럼 편하게 먹으면서 이야기할까? 맥로날드는 좋아해?”

“요새 시즌이라서.”

“언제나 시즌인 거겠지. 관리하기 힘들겠어.”

“이걸 해내야 프로인 거죠.”

“하하! 아버지가 당신을 좋게 평가한 이유를 알 것 같은데.”

“바트가 저를요?”

“그래, 아주 괴물 같은 놈이 들어왔다면서 혀를 내두르던데.”

그렇게 말한 케인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일단, 방출은 보류됐어. 그나저나 굳이 시끄럽게 만들지 않고 이야기해줘서 정말 고맙군.”

“저도 웬만한 상황은 조용히 넘기고 싶거든요. 말하자면 조율을 통해 넘기고 싶다는 말이죠.”

“각본하고는 영 딴판인데.”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또 정말로 방출이 되고 싶어 말한 게 아니었으니까. 이 일은 케인과 나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봉투를 연 나는 그 안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는 쓰게 웃었다.

백지 수표였다.

“여기 펜.”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요.”

“그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펜으로 백지 수표에 원하는 금액을 적었다.

999,999,999,999 US달러.

“……?”

“이렇게 주시죠.”

“농담, 이지?”

“아뇨, 진담인데.”

나는 씨익 웃으며 백지 수표를 품 안으로 가볍게 숨겼다. 그것을 본 케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한데, 그 정도 재산은 아마 우리 집에 없을 거야.”

“정말요? 제기랄, 무능한 집안.”

“…….”

케인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설마 내가 이런 식으로 유치하게 굴 거라고는 생각 못한 거겠지.

실제로 무슨 애들 농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백지 수표에 최대한의 금액을 적다니.

실제로 발행인이 그만한 재산이 없으면 그 백지 수표는 무효가 되고 수수료만 좀 물 뿐이었다.

숫자 몇 개 지우고 가서 바트 맥센의 재산을 모조리 빼낼까. 그렇게 되면 이 짓도 끝나는데.

뭐, 사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케인의 앞에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내 나름의 퍼포먼스였지만 말이다.

“가져가시죠.”

나는 다시 수표를 내밀었다.

“그리고 온건하게 대화를 나눠보죠. 저에게 재계약을 제안하실 심산이신가요?”

“……그, 그래.”

“그럼 계산을 해볼까요. 현재 연봉 1위인 선수가 누구죠?”

“테이커일 거야. 아마 천오백만 달러 정도는 받아가겠지.”

“테이커가 유난히 높은 건 아니고 아마 그 아래로 고참 메인 이벤터들은 그쯤 받지 않나요?”

“글, 쎄.”

“그걸 모르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일단 재무지표 쪽 관리하시는 분이라도 부를까요.”

“…………그렇게 하지.”

내게 한 방을 먹은 케인은 순간적으로 많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 후, 우리는 한창 일을 하고 있던 재무 쪽 팀장을 불렀다.

그는 사업팀의 브레인으로서 회사의 돈이 어떤 식으로 벌리고 쓰이는지를 알고 있는 전문가였다.

사실 이쪽은 나도 확실히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 재계약 조건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다.

우리는 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연봉에 관해서 상담을 했다.

그가 말했다.

“어, 일단 신 선수가 재작년과 올해의 활약에 비해 적은 연봉을 받는 건 사실입니다.”

“그 근거는?”

“그야 물론 선수 선호도 조사나 머천다이즈 판매량에 따른 거죠.”

케인의 물음에 술술 대답하는 팀장.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일단 신 선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아요. 거기에 유럽에서도 인기가 많고. 지금 동양에서는 최고의 영웅입니다.”

“……차이나?”

“차이나는 그쪽 정부랑 마찰 때문에 저희 사업이 들어가지 못하고요. 재팬과 코리아죠.”

“그쪽 판매량은 어떤데?”

“높은 편, 일걸요? 코리아는 아마 불법 티셔츠가 많긴 할 텐데, 재팬은 그래도 자기들 나름대로 내수 시장도 있으니까 잘 팔리죠.”

“두 나라에서 각자 이 친구를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겠군.”

“예, 그쪽 네티즌들이 도크도? 무슨 섬 문제로 싸울 때 거기에 더해서 신 선수가 서로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우기고는 했다는군요.”

“……전 미국인입니다.”

계통은 한국계기는 한데.

“어쨌든, 음. 그걸 근거로 판단해보자면. 어디 보자아…….”

팀장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테이커가 판매량이 이 정도에, 헌터가 이 정도고, 거기에 이미지 소모가 적은 것과 해외 쪽 마케팅에 필요한 인재라는 점을 합치면…… 대략 연봉을 4천만 달러로 맞추면 될 것 같네요.”

“……?”

“예?”

나도 당황했다.

“어라? 어.”

팀장도 계산을 해놓고는 자기 역시도 당황한 것 같았다.

“이상하네요. 이게 대강 연봉하고 각 수치들을 종합해서 더한 다음에 추산하는 건데. ……신 선수 연봉을 4천만을 줘야 한다고?”

“그거 수식 바꿔.”

“하,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요! ……지금 신 선수 연봉이 어떻게 되죠?”

“50만 달러입니다.”

“음, 적당히 평범한 정도네요. 보통 신인이나 자버들이 20만 달러고 로우가 50만, 미드가 200만, 하이가 500만, 그리고 메인 이벤터가 천만 이상은 챙겨가니까…….”

“그래서 뭐 어떻게 되는 거야?”

“다시 계산을 해봤더니 천만입니다. 적어도 메인 이벤터 급 연봉은 주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팀장의 판단은 나름 정확했다.

지금 그는 각 선수들의 연봉과 앞서 말한 상품성을 비율로 따져서 연봉을 추산해낸 것이었다.

거기에 나는 해외에서 먹힌다는 특수한 점을 더하지 않을 때 천만이라는 계산이 나온 거고 말이다.

“그렇다는데요.”

“후우…….”

“그런데 신 선수 연봉은 왜요?”

“잠깐 둘이 대화 좀 나누겠네.”

“예에…….”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려던 팀장이내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저기, 신 선수. 죄송한데 우리 딸이 팬이라고 해서 말이죠.”

“아, 옙.”

“그, 언제 가시나요? 딸이 전에 촬영한 화보 위에다가 좀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말이죠.”

“끄, 끝나고 찾아뵙죠.”

그제야 만족한 팀장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 역시도 좀 어처구니가 없어, 그리고 웃겨서 말이 안 나왔다.

케인의 얼굴은 방금 팀장의 말로 인해 완전히 굳어진 상태였다.

애써 웃어 보였지만 가끔씩 웃음이 무너지려는 게 티가 났다.

그 앞에서 나는 딱히 말하지 않고 ‘봤지?’라고 우쭐해하는 표정을 짓는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전문가들이 나를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번에 재계약을 한 시나의 연봉이 750만이라던데.”

“천만.”

“제기랄, 지금 현재 연봉에서 스무 배를 높여달라고? 미쳤군.”

“그 정도 돈은 줘야 휴가 때 크루즈 요트라도 좀 빌리지 않겠어? 어차피 회사 돈 많은 거 아는데 가치에 맞게 대우해주시죠.”

“만약 싫다면?”

“내년까지 회사에 있다가 TMA든 일본이든 가서 이 회사와 싸울 정도로 판을 키워와야겠지.”

“네가 그럴 수 있을까?”

“그게 싫어서 연봉 협상으로 날 묶어두려는 수작 아니었어?”

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 프로레슬링 업계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는 특이 케이스였다.

그러므로 나의 이적은 반대되는 단체에 큰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회사로서는 꽤나 불편해질 수가 있는 선택이었다.

“잘 생각해봐요. 케인. 내가 이 회사에서 조용히 그쪽 말에 따라주면서 챙겨주는 이득이 생각보다 적지는 않아.”

“고작 선수 하나가…….”

“러셀 하트, 랜스 오튼, 숀 시나. 적어도 이 세 명은 내가 타이르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걸.”

나는 모든 패를 사용했다.

천만 달러.

확실히 멋진 금액이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아마 다른 선수들도 금방 관심을 가지리라.

테이커는 그렇다 쳐도.

나보다 덜 받으면서도 경력이 긴 부커나 젠코, 록밴댐, 카인 같은 선수들은 분명히 불쾌해하겠지.

그런 연봉을 근거로 다시금 내가 쇼에 출연하게 공작을 펼친다.

그게 지금의 아이디어였다.

케인 맥센은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판 함정 속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그 조건이라면, 앞으로 조용히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겠어?”

“계약이 유효한 동안은.”

“……티파니에게서 들었지?”

“예, 저를 랙다운에 출연시킬 마음이 없으시다고요.”

“오래가는 건 아니야. 다만, 당신이 우리가 생각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것 같아서.”

“아 뭐, 그런 건 바트하고 많이 이야기했으니 좀 더 편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영화에 집중해주면 좋겠군.”

“안 그래도 이번에 헬 쏘우 이후로 차기작을 한번 찾아보려고 했던 중이라 저도 잘 됐네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은 나는 케인과 계속해서 재계약 이후의 활동에 대한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내가 TV쇼에만 출연하지 않기를 바랄 뿐, 그 이외의 비방용 하우스 쇼에는 나오길 원했다.

하우스 쇼 몇 개 뛰고 천만 달러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조건이다.

“아버지에겐 어떻게 말하지.”

“뭐, 천만 달러가 바트에게 큰돈도 아니고.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 어쨌든 섭섭해 하지 말고. 앞으로는 잘 부탁할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확정을 받은 나는 케인과 호쾌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TV쇼에 출연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천만 달러를 받아냈다.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케인이 그러라면 그래야지.

다른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과연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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