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03화 (203/634)

203.

분위기가 좋지 않다.

현재 랙다운 선수들은 그러한 공기를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딱히 변한 건 없었다.

페이퍼뷰를 목표로 삼고 위클리 쇼와 하우스 쇼를 번갈아 소화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락커룸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선수들 모두가 그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자기 역할을 소화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을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쇼에 문제가 있진 않았다. 테이커나 레이, 바티스타 같은 선수는 분명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나오는 환호에 불과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반응이 현저하게 줄었다. 현재 랙다운의 어떤 대립도 미적지근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선수들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선수들의 열정이 식었다.

그렇다고 해서 각본진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패로 분투를 해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시청률은 계속 제자리걸음에 머천다이즈 판매량은 저희가 목표한 분기 실적의 반도 못 채웠죠.”

본사에서 경고가 날아왔다.

사업팀에서는 현재 랙다운의 상태가 위험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고를 올리라고 한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을 볼 낯이 없었다.

브랜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그러는 시늉이라도 보여줘야만 했다.

하지만 상석에 앉은 케인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핑계 댈 거 없어? 뭐 좋은 거 있잖아. 어디 티셔츠 공장에서 갑자기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던가.”

“그런 것도 통제할 수 없는 회사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지금보다는 낫겠지.”

그 앞에 모여 있는 것은 선수 대표 세 사람과 각 팀장들, 다시 말해 현장팀의 실권자들이었다.

테이커와 부커, 그리고 버닝콩에서 급히 온 크리스 젠코까지. 모두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방법은 단 한 가지였지만, 정작 케인은 그 외의 답을 요구했다.

테이커가 입을 열었다.

“선수가 필요해.”

“선수요?”

“그리고 지금 이 애매모호한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각본도.”

“시나라도 데려올까요?”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시청률 다시 올라갈 때까지만 쓰고 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빌린 기간 동안 시나와 오튼을 대립시켜서 오튼을 좀 띄워보는 건 어떨까요?”

“신과 러셀 하트가 대립했을 때처럼, 지금 시나와 맞붙는다고 해서 오튼의 위상이 올라가진 않아.”

그 판단은 정확했다.

시나는 현재 레전드 선수들과 싸우며 계속해서 승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와 오튼을 붙이는 건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그림이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지. 오튼의 캐릭터로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그게 뭔데요?”

“혁명가.”

“네? 체 게바라 같은 거요?”

“원래 우리 랙다운은 버닝콩과 달리 다양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경향이 강했지.”

“……그랬나요?”

“그래, 몇 년 전에는 한 팬-페이보릿이 멕시코 출신이라는 편견을 딛고 선역으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적도 있을 정도였지.”

“아, 에디 비테레로.”

“우리는 기회의 땅이다.”

어떤 선수도 자신만의 확실한 재능이 있으면 기회를 받을 수 있는 브랜드. 그렇기에 자연히 경기력이 좋다는 인식 역시도 생겼다.

실버백, 트리플H 같은 거구의 백인 레슬러들만 챔피언이 되는 버닝콩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이었다.

하지만 현재, 브랜드의 그러한 이미지는 퇴색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죠?”

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기회를 받아야 하는 선수에게 주자고? 대체 누가 있는데?”

그는 시치미를 뗐다.

모두가 이제는 케인이 신을 일부러 안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모두가 답을 내놓기를 꺼려했고, 테이커 역시도 한숨만 푹 내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부커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네?”

“현재 락커룸의 선수들은 사기가 크게 저하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왜죠?”

“연봉 문제 때문이죠.”

“…….”

“지금 위클리 쇼에 제대로 출연하지도 않는 선수가 천만 달러라는 연봉을 받고 있으니까요.”

“……신을 말하는 거군요.”

“회사의 선택이니 저희가 신경 쓸 바는 아니긴 하지만, 불만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다 같이 재계약해서 연봉이라도 올릴까요? 샐러리캡이 깜짝 놀라도록?”

케인이 눈썹을 찡그렸다.

“신, 신신신신신, 그리고 신. 그 이야기밖에 할 줄 모릅니까? 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입니까?!”

콰앙!

케인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아니, 지금 한창 영화 찍으면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는 선수를 억지로 불러오라는 말입니까?!”

“……그럴 선수가 아닙니다.”

부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케인은 끝까지 신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의 책임은 절대 없다면서 발뺌을 했다.

회의는 그렇게 딱히 좋은 방향을 모색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났다.

* * *

케인 역시도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현재 랙다운은 몇 가지 악재가 겹치며 TV 방송으로서 하락세를 겪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조금 전 신을 복귀시키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겠지.

이유는 이것저것 늘어놓았지만 결국 그들의 생각은 하나로 압축이 가능했다.

오직 신만이 지금 이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다.

케인도 납득은 했다.

드래프트 이후 사람들은 신선함을 바랐지만 지금의 랙다운에 그걸 채워줄 선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안 돼.’

케인은 오직 한 가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기 온 상태였다.

신을 위클리 쇼에서 빼 그 영향력과 위상을 낮추기 위해서다.

무척이나 심플한 임무였다.

대외적인 이유는 그 자신의 호오 때문이었지만 모두가 알 터였다.

이것은 회사의 후계자 자리를 건 바트 맥센의 공작이라고.

사실 그 제안을 받았을 때, 케인은 이게 대체 웬 떡이냐 싶었다.

반쯤 한량으로 지내던 자신이 유능한 여동생을 제치고 다시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꿈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이 회사만큼은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응했는데.’

일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복잡하게 꼬여버리고 말았다.

계산하지 못했던 건 하나.

신이라는 선수가 이미 지워낼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점이었다.

원래 계획은 간단했다.

신에게 솔직하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어르고 달래고, 요구하는 게 있으면 들어주고. 언젠가 돌아올 수 있을 거라면서 위로도 해주고.

그래서 그쪽이 요구하는 연봉에도 군말 없이 사인을 한 건데.

그것은 이제 선수들이 들고 일어서게 만드는 봉화가 되고 말았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쏜 총알이 튕겨져 날아와 몸에 맞은 상황. 케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 이 모든 게 녀석의 작전인가?’

눈치를 채는 게 늦었다.

아버지가 이전에 말했던, 그놈을 하우스 쇼에도 출연시키지 말라던 조언을 진지하게 들을 걸 그랬다.

하지만 사람이 적게 모이는 하우스 쇼만으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내버려뒀는데.

‘선수들을 공략한 거군.’

모두가 신을 원하게 되었다.

케인은 부커가 연봉에 대해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잠시 떠올렸다.

[돈을 들이지 않고 끝내는 방법이 있죠. 그 개자식이 쇼에서 한 달만 일하면 모두가 천만 달러는 싼값이라고 인정할 겁니다.]

그 눈은 진지했다.

이전에 신과 태그 팀을 해본 적이 있었던 부커는 그 실력에 대해서 무서울 정도로 알고 있었다.

즉.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분명 뭔가를 해야 할 때였다.

‘……시청률을 올리면 돼.’

그렇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더 이상 선수들도 신이 돌아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지.

거기에 연봉 문제는 적당히 재계약 때 잘해주겠다는 말로 구슬려 성난 민심을 달래고 말이다.

어둠에 잠긴 사무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케인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태도 불량 시대.

분명 그때와 같이 자극적인 각본을 선보인다면 다시금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신선함을 시도할 수 없다면 결국 회사가 가장 빛났던 시기를 다시 가져오는 수밖에 없겠지.’

케인은 확신에 차 생각했다.

* * *

10월 2주차의 랙다운.

쇼의 오프닝을 장식하게 된 선수는 현 U.S. 챔피언인 JBL이었다.

그 테마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ooooo-!]

나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쇼의 오프닝은 일반적으로 선역 메인 이벤터가 맡기 마련이었다.

‘왜 JBL이?’

그런 이질감을 느끼던 나는 이어지는 상황을 황당해 지켜보았다.

성조기 무늬가 들어간 비키니를 입은 쇼걸들이 입장로를 채웠다.

그리고 야유 속에서 등장한 JBL은 마이크를 쥐고 오늘은 환상적인 날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쇼걸들의 모습을 비췄고 이어서 환호하는 남성 관객들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카메라 바깥에서 황당해하는 관객들도 꽤 많을 터였다.

‘처음 시작할 때 시청률 등급이 웬일로 TV-14가 나오더라니.’

시나가 탑에 오를 때쯤 해서 이 회사는 노선을 PG로 바꾸었다.

전체 연령가였다.

하지만 랙다운은 오늘 방송에서 그보다 한 단계 위인 TV-14를 받았다. 그 나이 이하로는 시청 지도를 권장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이게 시청률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케인이 낸 답이란 건가.

‘대체 뭐하자는 거야?’

지금 링 서바이벌 빌드 업을 해나가도 모자랄 상황에 저런다고?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링 서바이벌은 두 브랜드가 격돌하는 4대 페이퍼뷰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각본은 ‘브랜드 대항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때만큼은 상대가 정해져 있는 챔피언들의 비중이 떨어지고 벨트가 없는 선수들이 활약했다.

5대5 제거 매치에 나갈 선수 선발에 관해서 서로 떠들어대고 대립하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 랙다운에서도 그런 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구식이었다.

거기에 자기 복제가 심했다.

예를 들자면 저거.

5대5 제거 매치에 참가하기 위해 상대를 습격하고 손가락을 해머로 찍어버리는 저 잔혹한 행동.

[끄하아아아아아아악-!!]

분명히 이전에 헌터가 쓴 거다.

쇼는 그런 식으로 태도 불량 시대의 감성을 가져와 진행되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으며 동시에 그 시절의 향수를 절묘하게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들은 좋아하겠지만, 2005년을 살아가는 팬들은 받아들이지 못할 터였다.

‘케인 맥센의 아이디어겠군.’

바트의 뇌가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그의 뇌는 90년대 태도 불량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므로 시청률을 더 확보하겠다는 심산으로 저런 식의 위클리 쇼를 기획한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구렸다.

그 시절에는 먹혔을지 몰라도 현재 2000년대 WWF가 가려고 하는 방향성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가 객석을 비추지 않는 걸 확인했다.

객석의 관객을 클로즈업해 비추는 효과는 무척 컸다. 시청자들도 자연히 그 감정에 동화되니까.

하지만 그걸 지금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관객이 없다는 뜻이었다.

다들 당황해서 지난주와 달리 링에 올라와 잔혹한 행동을 벌이기 시작하는 바티스타를 적응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자극과 문제는 쇼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생했다.

다음 주에 있을 레이 미스테리우스와 랜스 오튼의 싱글 경기를 위한 빌드 업 세그먼트에서였다.

5대5 제거 매치의 참가권을 두고 갖는 경기라 감정이 격렬한 상태에서 오튼은 자극적인 각본을 위해 마련된 대사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에디는 지옥에 있어!]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것.

그건 그야말로 랙다운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끝장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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