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04화 (204/634)

204.

케인 맥센의 의도는 간단했다.

이 회사가 가장 빛났던 순간 중 하나인 태도 불량 시대의 각본 스타일을 쇼에 적용해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물론, 그때는 분명 WWF가 가장 빛났던 순간 중 하나임은 맞았다.

그 시절의 주인공이었던 락콜드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2001년의 9.11 테러.

에디 비테레로의 죽음.

브룩 레스너가 회사를 나가며 폭로했던 선수 처우에 대한 문제들.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오며 사람들은 점점 그 자극적인 스타일을 잔혹하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태도 불량 시대가 선수들이 가진 꿈과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응당 가질 수밖에 없는 꿈과 성공에 대한 열망을 교묘하게 이용당함으로써.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관객들은 분명 이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터였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쇼의 메인이벤트.

링 위에 오른 건 섬머 수플렉스 이후 줄곧 대립을 진행해오던 랜스 오튼과 레이 미스테리우스였다.

브랜드 대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좀처럼 묵은 감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대립했다.

그리고 서로를 비난하며 이번 링 서바이벌에 참가하게 될 사람은 자신이 될 거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감정이 격해지던 와중, 오튼이 레이를 조롱하며 외쳤다.

[레이! 넌 언제나 에디를 기리면서 하늘을 가리키고는 하지! 하지만 에디는 저기 있지 않아!]

“이런 제기랄.”

나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에디는 지옥에 있어!]

[Boooooooooooooooooo-!]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나는 욕할 마음도 들지 않는 걸 느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저 빌어먹을 개새끼.]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해설자가 오튼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오튼이 아니라 그 대사를 시킨 장본인, 케인 맥센에게 저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

나 역시도 그랬다.

‘선을 넘었군.’

직후, 레이가 오튼을 공격했다.

야유가 환호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낸 건 피로스의 승리일 뿐이었다.

바로 이 순간, 오튼과 회사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추락해버렸다.

이 쇼가 현실에 입각한 드라마였기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들은 죽은 사람, 그것도 모두가 기억하는 전설을 너무나도 가벼운 방식으로 사용했다.

물론 나 역시 이전에 친구였던 윌리의 죽음을 각본에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윌리의 죽음을 각본에 이용한 건, 러셀과 나의 이야기에 윌리 역시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소년을 언급하지 않는 건 그 기억을 훼손하는 짓이었다.

‘그래서 사용한 거였는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전생에도 WWF는 에디의 죽음을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지금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랙다운의 향후 방향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전생에는 단순히 바트 맥센이 저지른 막장 행각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케인이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사용한 묘수가 되었다.

……악수가 되겠지만 말이다.

에디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프로레슬러로서 고통을 잊기 위해 사용한 진통제와, 몸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스테로이드.

두 약물의 오남용이 몸을 망가뜨렸고, 이내 그의 심장을 멈추게 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에디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었음에도 그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슬픔을 넘어서 불쾌한 아픔마저 느꼈다.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대사를 직접 말한 오튼, 아직도 에디를 잊지 못하는 티파니나 레이, 차보 같은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상처를 받았겠지.’

나의 친구, 연인, 동료, 선배.

전생과 달리 내가 성장하면서 어느덧 깊은 관계를 맺게 된 이들.

때문에 더 좌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송이 끝나고 광고가 흘러나오는 TV를 가만히 보았다.

한껏 어두워진 방안.

랙다운으로 복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 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차례 가더니 이내 한껏 어두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티파니였다.

[……네, 신.]

딱히 더 물어보지 않아도 방송을 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대로 놔둬선 안 되겠는데.”

[당장 내일부터 비판 기사가 쏟아질 게 눈에 훤하네요. 그야말로 최악의 해결책을 강구했는데요.]

“지금 당장 복귀해야겠어.”

[가능할까요?]

“왜, 어려울 것 같아?”

[당신의 복귀를 바라는 선수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케인이 아집을 부리면 딱히 방법이 없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회사에 위기가 오고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쌓인다고 한들, 케인이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랙다운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쌓아올린 빌드를 터뜨릴 만한 무기가 필요했다.

단 한 사람.

지금 시점에서 내가 거래를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듯했다.

“티파니, 연락처 하나만 좀 구해줄 수 있어?”

[네. 누구죠?]

나는 한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거기에 티파니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확신했다.

이 남자라면 분명히 내가 하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방송이 나간 직후.

뉴스레터부터 시작해 관련 매체에서 혹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랙다운은 이대로 괜찮은가?’

‘드래프트 이후 숀 시나를 빼앗기면서 추락하고 있는 랙다운!’

‘TV-PG 등급으로 노선을 전환한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방송국으로부터 경고 예정?’

그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마치 그간 랙다운이 보여준 애매모호한 행보에 대해 불만이 쌓이다 폭발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내부에서 으쌰으쌰 하며 잘해보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후우.”

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수단과는 연봉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대로 된 대화가 힘들었고.

팀장들도 이번 각본으로 자신에게 불신을 가지기 시작한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억지를 부리려면 그만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만 하는 법이다.

분명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자극적인 각본이 오히려 최악의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대체 왜?’

케인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업계에서 오래 동떨어져 있던 그는 현재 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늦은 밤까지 대책을 강구해보았지만 떠오르는 방안은 없었다.

어두운 사무실의 분위기는 삭막했고, 실제로 숨이 턱 막혀왔다.

머리를 붙잡고 있던 케인은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바트 맥센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뭐가요?”

[나는 신, 그 개자식을 쇼에 출연시키지 말라고 했지, 쇼를 개판으로 만들라는 소리는 안 했다.]

“총괄 프로듀서 일은 해야죠.”

[누가 너보고 그러라고 했어!]

갑작스레 호통이 이어졌다.

[너는 그냥 그 자리에서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돼! 그 자식을 회사에 출근도 시키지 말라고!]

“아, 지금 그것 때문에 분위기 개판인 건 알고 하는 소리에요?”

케인은 어이가 없어 받아쳤다.

“지금 회사 안팎에서 다 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성화들인데, 그걸 어떻게 무시하고 운영을 해요?”

[걱정 말고 제발 시킨 일만 똑바로 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케인은 그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순간적으로 바트의 진의가 의심될 정도였다.

정말 그 말대로 밀어붙였다가 신으로 인해 랙다운 브랜드가 망하더라도 자신이 책임질 생각일까.

그때쯤 해서 갑자기 후계자 자리에서 팽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거래는 별개로 치고, 이 랙다운에서 성과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케인으로서는

“그럼 시나를 주십시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황당하다는 듯 대답하는 바트.

하지만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지금 랙다운 선수들만으로는 신의 공백을 채울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지금 팬들은 신이 왜 안 나오냐면서 성화라고요.”

[그냥 놔두라니까. 스타는 계속 나올 테고 1년쯤 지나면 그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야.]

“1년이나 제 사내 평판을 조지면서 기다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도 돼.]

“그럼 아버지가 직접 하셔도 아무 문제없는 거 아닙니까.”

[케인.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랙다운과 자기 아들 커리어를 제물로 삼아가면서까지 신 그 자식을 박살낼 이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넌 내 후계자야! 그 누가 너에게 반기를 든단 말이냐!]

“그야 선수들이죠!”

케인이 버럭 소리쳤다.

“다들 그 자식이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하우스 쇼 한 번 할 때마다 필요한 선수라고 해대는데!”

[그러니까 하우스 쇼에도 출장시키지 말라고 그때 말을……!]

“하우스 쇼 티켓 판매라도 안 올랐으면 전년에 비해서 실적이 세 배 이하로 떨어졌을걸요?”

[거기에서 뭐 느낀 거 없냐?]

“예?”

[뇌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라. 케인. 그 자식으로 인해서 하우스 쇼의 판매량이 전보다 더 올라간 이유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냐?]

“그야 물론…….”

[신이 좋은 선수라서? 아니야. 그 자식은 좋은 선수 따위가 아니야. 뭔가를 하고 있는 거다. 그래, 녀석이 또 뭔가를 꾸미고 있어.]

바트는 두려운 듯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이런 목소리는 처음이었던 케인은 당황해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캡틴 로건 때도.

그렉 하트 때도.

락콜드 때도.

절대 그가 아는 바트는 선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케인은 혼란에 빠져 침을 꿀꺽 삼켰고, 바트의 말이 이어졌다.

[그 자식은 지금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거다.]

“아이콘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케인은 곧, 아버지가 자신을 다시 불러들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자신은 방파제인 셈이었다.

신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잠시라도 막아내기 위한 임시방편.

그렇기에 더 이상 아버지의 말에 따라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지지 않을 거다.’

분명 바트는 자신이 신을 끌어안고 있으면 뒤에서 망설임 없이 칼로 찌를 법한 인간이었다.

“…….”

바로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이어지더니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끼익, 열렸다.

그 뒤에 서있는 남자를 본 케인은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바로 신이었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이따 전화 드릴게요.”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한 케인은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순간 분노가 들끓을 정도였다.

이 혼돈을 만들어낸 상대가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

“어떤 제안?”

“지금 랙다운이 꽤나 위험한 상태라고 들었거든요. 에디의 죽음을 조롱한 각본이 최악이라고.”

“그래서 뭐?”

“링 서바이벌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완전히 망할 것 같던데.”

“반반씩 가져가기로 했어.”

각본은 총 여덟 경기 중에 랙다운이 네 경기를 이기고 버닝콩이 네 경기를 이기도록 되어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납득할까요?”

“…….”

“다들 프로레슬링이 짜고 친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그 바깥의 싸움이 더 치열한 거 잘 아시잖습니까?”

신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JBL이 러셀을 이기는 게 맞는 그림일까요? 부커가 시나를 이길 수 있을까요? 그 정도로 랙다운 선수들 상태가 괜찮습니까?”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거야?!”

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맥센 가문 특유의 다혈질이었다.

하지만 신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어둠 속을 걸어 다가왔다.

책상 앞에 서서 마치 영혼을 파는 악마처럼 케인에게 속삭였다.

“나에게 협력해.”

“뭐……?”

“이제 링 서바이벌까지 3주 남았잖아. 그동안 내가 바트 맥센 몰래 당신을 프로듀스해줄게.”

“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케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랙다운 선수들에게도 말하지 않겠어. 이건 오직 당신과 나만이 아는 비즈니스가 될 거야.”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일종의 시식인 셈이지.”

“시식?”

“당신이 왜 바트 맥센의 명령을 따라 나를 배제했는지 알아?”

“그야 당연히…….”

“내 능력을 모르기 때문이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프로레슬링을 지금까지 ‘안 본’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

“…….”

케인은 깨달았다.

이것은 링 위의 세그먼트였다.

듣고 있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행동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야 당연하지. 당신이 회사를 나간 이유. 그건 절대로, 당신이 프로레슬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서잖아?”

“닥쳐…….”

정곡을 찔린 케인은 그렇게 희미한 저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당신에게 증명해왔어. 랙다운, 선수들, 관객들. 나에게는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그러니 알았으면 조용히 내 거래를 받아들이라고.”

“…….”

“다시는 에디 비테레로에 대해서 역겨운 헛소리를 쏟지 말고. 바트는 당신을 지켜줄 수 없으니까.”

신이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그의 진심이 순간 엿보였던 케인은 실실 웃으며 허세를 부렸다.

“오튼이 울더군.”

“…….”

“내 앞에서 엉엉 울면서 제발 그 말만큼은 하기 싫다고 했어. 죽은 사람을 모독하고 싶지 않다고.”

뻐억-!

신이 케인의 안면을 후려쳤다.

뒤로 밀쳐진 케인은 이어서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대신 신과 손을 잡는 건 정말로 말도…….

바로 그때였다.

정신을 확 차린 케인은 문 바깥에 거구의 사내가 한 사람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는 얼굴이었고, 그는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로건?”

“오랜만이군. 형제여.”

캡틴 로건.

미국의 아이콘.

WWF의 슈퍼스타.

황금시대의 수장.

프로레슬링 그 자체를 상징했던 거대한 사나이.

케인은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옆에 있던 신을 돌아보았다.

“설마 네가…….”

“말했지.”

그가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

“바트 맥센도 데려오지 못한 남자야. 하지만 나는 해냈지.”

“…….”

“어서 정해. 케인.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나와 함께 풀어내볼 건지. 아니면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끝까지 남아 결연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할지.”

신은 마치 자신에게 영혼을 팔라고 이야기하는 악마와도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다.

악마조차도 분명 신에게 영혼을 팔았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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