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06화 (206/634)

206.

그렇게 혼란(?)이 지나간 끝에.

나는 수많은 백여 명쯤 되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별건 아니고, 적당히 사기를 올려두는 한편 앞으로 각본의 방향성을 좀 이야기해두고 싶었다.

“일단 지난주 일로 인해 다들 좀 침울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랜만의 링.

비록 관객들의 숫자는 적은 편이었지만 나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왜냐면 역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바로 이곳이니까.

그래서 실제로 마이크워크를 하는 기분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돌아왔으니 걱정 마. 우리는 이제 버닝콩 그 멍청이들을 박살내고 팬심을 먹을 테니까.”

[Yeeeeeeaaaahhh!!]

관객들처럼 반응하는 사람들.

“오케이, 그래서 옆에 계시는 이 분을 일단 먼저 소개를 하자면. ……아, 그럴 필요는 없나?”

[Rogan! Rogan! Rogan! Rogan! Rogan! Rogan! Rogan! Rogan!]

아이콘에 대한 예우로 챈트마저 터져 나왔다. 로건을 돌아보자 머쓱한 듯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어때요?”

“정말, 오랜만이군.”

“링에서는 더 심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로건의 어깨를 잡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섭외하는 데 힘들었다고.”

이렇게 말함으로써 내가 로건을 끌어들였음을 확실히 이야기했다.

“로건이 회사로 돌아온 게 무척 오랜만이지. 그러니까 분명 관객들의 반응은 역대급일 거야.”

나는 아예 개의치 않고 이후의 플랜에 대해 곧바로 털어놓았다.

“일단 사업팀 쪽에 연락 넣어서 광고 거대하게 때리고, 신문사에도 연락해줘. 떠난 민심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 말이야.”

사람들은 지금 랙다운에 대해서 크게 실망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저지른 사고였고 어떻게든 수습하고 넘어가야만 했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껴서 보게 되면, 이제 오프닝에서 로건의 복귀 파티를 열면서 그걸 기념을 하는 거지.”

그때, 케인이 손을 들었다.

“뭘 기념한다는 거지?”

“……당연히 로건의 복귀요.”

황당해 대답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슬쩍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케인의 뺨이 붉어졌다.

“어쨌든, 이제 로건이 후배들의 잘못을 하나하나 잡아주면서 랙다운의 GM 역할을 하는 거야.”

GM, 제너럴 매니저.

쇼에 브랜드를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 나올 때 칭하는 말이었다.

이전까지는 헤이먼이었지만 그가 GCW로 이적한 뒤로는 딱히 GM 역할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JBL이 손을 들었다.

“무슨 잘못을 잡는다는 거지?”

“……비키니 입은 여자들 끌고 나와서 춤추고 노는 거요.”

“그게 뭐 이상한가? 오히려 남자답고 좋다고 느꼈는데.”

“뜬금없잖아요. 차라리 군악대를 부르는 게 아메리칸 히어로에 걸맞지 비키니 걸은 무슨 섹스 중독 히어로도 아니고.”

“그, 그렇군.”

나의 신랄한 비판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JBL.

나는 그렇게 각본 하나하나에 느끼는 분노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에디를 모욕한다고?! 아니, 하려면 가족 허락이라도 받던가! 비키한테 허락 맡았어요?!”

“으, 으음.”

“비키가 허락해도 차보가 윗선에서 그런다는데 자기 직장 상사한테 못하겠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 건 좀 배려를 하란 말이야!”

“…….”

“랜스도 그거 하기 싫다고 눈물 콧물 다 짜가면서 빌었다는데! 앞으로 커리어가 창창한 친구한테 그딴 쓰레기 역할이나 맡기고!”

“옳소!”

오튼이 소리쳤다.

“어쨌든, 이런 거 모두 바로 잡는다! 이번 주 쇼에서 오튼이 레이한테 사과하고……!”

“내가 왜!”

“아니, 그러면 ‘이게 사실 다 각본인데 케인이 잘못한 거예요.’라고 하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내가 노려보자 오튼이 시선을 피했다.

그 말이 지금 내가 지금 어떻게 일을 하고자 하는지를 말해주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다소 연출이 어그러지더라도 관객에게 솔직하게 잘못된 일이었다고 이야기로 전달해야만 했다.

바로 그때, 침묵하며 내 말을 듣고 있던 테이커가 손을 들었다.

“그걸 왜 로건이 하지?”

“……예?”

“네가 하는 건 어떠냐.”

“아니, 그건 아니죠.”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굳이 그 역할을 맡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는 ‘선배’가 아니잖아요.”

그 말에 납득한 테이커.

하지만 나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금까지 각본은 완전히 개판이 났단 말이지. 이게 누구의 잘못이냐 따지기보다도 그걸 바로 잡기 위한 캐릭터가 필요한 시점이야.”

그게 바로 로건이었다.

“캡틴 로건은 80년대 커리어 내내 위대한 선역 아이콘이었지.”

그러므로 GM 역할을 맡아서 랙다운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내 아이디어였다.

“일단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하자고. 바트에게 보고해서 로건과 계약하고. 최대한 빠르게 홍보 돌리고. 각본 짜서 이번 주 금요일에 위클리 쇼를 진행하는 걸로.”

나는 박수를 쳤다.

“자자, 움직이자고!”

그렇게 랙다운이라는 거함巨艦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캡틴은 나다.

* * *

저녁.

보고서를 받은 바트 맥센은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도는 걸 느꼈다.

“…….”

눈앞의 바닥이 순간 뒤엉켰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바트는 책상을 짚어 버티려다 힘이 빠져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쿵!

크게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모니터 화면에 떠올라 있는 보고서를 안색이 창백한 채 올려다보았다.

‘그 녀석이 돌아온다고?’

캡틴 로건.

회사 역사상 가장 빛났던 선수.

그리고 그 손으로 회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뒤 떠나간 원수.

마치 스테로이드 파동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바트는 곧바로 그 개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듣지 않아도 자연히 일이 그렇게 풀린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케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녀석들이 그 일을 진행했을 리도 만무했다.

그놈밖에 없었다.

이 일을 진행할 이유가 있고, 그럴 능력이 있는 건 오직 그 빌어먹을 개자식 이외에는 없었다.

[오랜만이군요, 회장님.]

“너 이 새끼……! 내 회사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로건 그 빌어먹을 자식을 다시 데려오겠다고?! 대체 내 회사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

“너는 그놈이 왜 그때 그런 증언을 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뭐?]

“너는 모르니까!!”

[몰라도 돼. 뭐 기껏해야 경쟁 단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그런 짓을 했단 거 아니겠어?]

“그걸……!”

[그리고 이적을 하기로 했는데 일이 잘 안 풀리면서 그대로 방송계에 눌러앉았다. 그거겠지.]

“넌, 대체 뭐냐?!”

[그냥 선수야. ……당신이 그냥 선수로 두지 않지만 말이야.]

“내가, 잘못했다는 거냐?”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좀 심했어. 날 출연시키지 않은 나머지 랙다운이 그 꼴이 되었잖아?]

“네가 꾸민 짓이잖냐!”

[웃긴 이야기를 하시네.]

“그 멍청이들이 널 원하기 때문에 이런 사달이 일어난 거야!”

[그게 내 잘못이라고?]

“그래, 그 개자식들이 원하는 건 절대 못 줘! 감사함도 모르고 불만이나 쏟아내는 놈들……!”

[하지만 공장에서 볼펜 하나 만들지 못하는 당신이 그런 사람들의 호응으로 억만장자가 되었지.]

바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신에 대한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왜!

왜 이런 놈이 나타나 자신이 만든 왕국을 짓밟고 부수고 있는가!

대체 어디서 이런 악마 같은 놈이 나타나 황금을 요구하는가!

“넌 해고야! 당장 모가지라고! 그러니까 내 회사에서 꺼져!!”

[어라, 그래도 되겠어?]

“당연하지! 내, 내가 네깟 놈 하나 두려워서 이럴 것 같나?!”

[목소리가 떨리는데.]

“개소리 집어치워!”

[그럼 나는 일단 캐나다의 TMA나 일본의 NJPW, 아니면 멕시코의 루차 오버그라운드나 미국 인디의 ROH로 가게 되겠군.]

“그딴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가서 네 왕국이나 만들고 놀아!”

[캡틴 로건도 데려갈까.]

“뭐……?”

[아니면 내 친구들은 어때.]

“그딴 쓰레기 회사에서 초일류 원하는 연봉을 맞춰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겐가?”

[그렇게 만들면 되지.]

“…….”

너무도 당당한 대답에 바트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투자를 받으면 되고. 어 디 돈 많은 중동 스포츠 부자 너드에게 투자를 받아서 한 천억 달러 정도 가지고 시작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20대의 애송이는 그걸 현실로 바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그걸…….”

[당신이 고집만 꺾는다면 내가 하게 될 일은 아니야. 선생님. 그건 일종의 회피가 될 테니까.]

낄낄거리며 웃는 신.

[로건하고 만나서는 잘 좀 해줘. 그래도 나름 당신이 타이탄 타워를 세울 수 있게 해준 남자잖아?]

“너 이 ㅆ……!”

전화가 뚝 끊어졌다.

뚜우우우우우-.

황당함과 분노로 바트 맥센은 한동안 자리에 굳어져 있었다.

* * *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처리해야 할 만큼 스케줄 역시 빠듯했다.

캡틴 로건의 계약부터 외부 홍보, 그리고 위클리 쇼의 준비까지.

나는 내내 케인과 옆에서 일을 처리했고, 녀석에게서 바트의 동향에 대해서 전해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바트는 내게 전화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얌전히 계약을 허락했다는 모양이다.

거기다 듣자 하니 로건과 재회했을 때 꽤나 화기애애했다고.

사실 바트가 내게 전화를 한 건 조금 예상 밖의 일이라 케인과의 일이 헝클어지나 싶었는데.

‘그렇게 나오겠단 거지.’

이쪽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어쨌든 참 대단한 영감이었다.

‘로건의 복귀’라는 일 하나로 내가 관여를 했단 것까지 추리…… 아니, ‘발상’해내다니 말이다.

그 동물적인 감각에 감탄해 일부러 맞상대를 해준 것이었지만.

‘운이 좋았지.’

어쨌든 일은 잘 풀렸고, 나는 계속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링 서바이벌까지 케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줘서 자격이 있는가를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현재 각본에 들어갈 흐름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가 대중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선택을 하는가.

만약 거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그는 바트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게 증명되는 셈이었다.

‘나와 협력할 수 있겠지.’

그런 요소를 슬그머니 각본에 심어둔 채 랙다운이 개최되었다.

추가 티켓 판매를 해서 모이게 된 관객의 수는 무려 2만7천 명.

이게 바로 아이콘의 힘이었다.

[금요일 밤의 랙다운! 지금 미니애폴리스에서 출발합니다!]

[Yeeeeeeaaaaaaahhhhhhh!!]

경기장이 떠나갈 것 같았다.

페이퍼뷰처럼 큰 경기장도 아니라 사람들은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관객석에 들어찬 상태였다.

그럼에 그들은 20년 만에 회사로 돌아오는 아이콘을 반기기 위해 자리에 모여 피켓을 들었다.

캡틴 로건의 위상을 간단히 표현해주는 한마디가 있었다.

그는 반드시.

그 누구와, 그 어떤 순간에 대립하더라도 압도적인 환호를 뽑아올 수 있는 최강의 선역이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로건의 테마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빰-빰-빰-빰-빰바바밤~!]

일렉 기타가 힘차게 연주되며 보컬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Real American.

그야말로 80년대를 상징하는 미국의 히어로를 위한 노래였다.

[Yeeeeeeeeaaaaaaaaaaaaaahhhhhhhhh!!]

귀가 찢어질 듯한 환호.

[나는야 진정한 미국인! 모든 이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유치한 가사도 잘 어울렸다.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건 로건밖에는 없었다.

나는 옳은 것을 위해 싸운다.

나는 진정한 미국인. 너의 삶을 위해 싸운다.

재미난 가사였다. 마치 슈퍼맨처럼 말이다.

아니, 실제로 캡틴 로건은 그 시절, 현실 세계에 등장한 슈퍼맨이었다.

링 위에 오른 그는 수많은 환호 속에서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캡스매니아는 아직 살아있나!]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캡스매니아.

캡틴스 매니아의 준말로 캡틴 로건의 팬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내가 한마디 해주지! 형제들이여! 나도 돌아와서 참 기쁘다네!]

[Yeeeeeaaaaaaaaaahhhhhh!!]

오늘 관객들의 평균 연령이 꽤 높다고 하던데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로건을, 함께 온 아이들은 바로 날 응원하게 되겠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렇게 수많은 선수들이 나와 로건의 복귀 축하 파티가 벌어졌다.

테이커까지 성조기를 들고 등장해, 이게 각본이 아닌 것처럼 연출하며 로건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캡틴 로건은 예정되었던 대로 모든 선수들을 앞에 두고 외쳤다.

[내가 돌아온 이유가 뭔지 알고 싶나, 형제들이여?!]

어마어마한 환호가 몰아쳤다.

[그건 바로, ‘내 친구’가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실수를 내게 말해주었기 때문이지!]

그 말을 들은 선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대와의 일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내분이나 벌이고 말이야! 난 그걸 막기 위해 왔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관객들이 동의를 했다.

대부분 지난주 랙다운을 보면서 크게 실망을 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게 바로 로건이 말한 ‘친구’의 존재였다.

오프닝 하나만으로도 쇼의 분위기가 180도 바뀐 것이 느껴졌다.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와중, 케인이 내게 슬쩍 속삭였다.

“……정말로 저 친구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두지 않은 것이겠지?”

“그럼요.”

나는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일단 그렇게 해두었다.

캡틴 로건에게 저 이야기를 전해 랙다운을 위기에서 구하려는 인물.

링 서바이벌의 랙다운 측 미스테리 멤버로 참가하는 그의 정체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뭐, 물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관객들은 다 아는 것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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