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07화 (207/634)

207.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관객들이 내 이름을 외치자 로건이 깜짝 놀라 그들을 돌아보았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SIN을 외치는 소리가 더 커졌다.

관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회사에 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황당해 웃고 말았다.

뭐, 아예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정도로 확실히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캡틴 로건은 분명히 친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자신들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원하고 있는 선수의 이름을 대기 마련이었다.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이고.

관객들의 챈트가 점점 커질수록 케인의 얼굴에 초조함이 감돌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런 환호가 마치 자신에게 보내지는 것처럼 듣고 있는 로건.

그리고 직원들조차 그런 챈트에 대해 반응을 해주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크게 경기장을 돌며 2만7천 명의 관객들을 비춰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보다 못한 케인 맥센이 마이크를 쥐었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빨리 마이크워크 빨리 진행하라고 해!”

링 아래쪽에서 대기하던 직원 하나가 로건을 향해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충분히 뜸을 들인 뒤에야 마이크워크를 계속 이어나갔다.

이후로 로건은 별달리 각본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케인은 그가 또 사고(?)를 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설마 노린 거냐?”

“……뭐가요?”

“이건, 하. 정말 놀라울 정도군.”

케인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

향후 이어질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드는 각본. 그것은 분명 랙다운이 잠시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되찾았다.

10년 만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랙다운으로 돌아온 캡틴 로건.

그를 중심으로 링 서바이벌까지 이어질 쇼는 분명 환상적이겠지.

다들 그걸 느꼈는지 각 팀장들이 케인 몰래 날 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 쇼란 건 이래야지.

* * *

[랙다운이 드디어 뭔가를 좀 해보려고 하는 느낌이 드는군.]

[그래, 지난주 했던 실수를 그래도 최선을 다해 봉합해줬어.]

[그 실수가 워낙 막장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기랄! 캡틴 로건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래, 완전히 분위기가 반전되었지.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팬들이 시나가 있는 버닝콩을 훨씬 더 기대하면서 봤을 텐데.]

[이제는 랙다운이 핫해졌어. 이 모든 게 캡틴 로건의 힘이야.]

[그리고 하나 더 있지.]

[누구?]

[바로 ‘친구’.]

[아~ 신?]

[확실히 밝혀진 건 아니지만.]

[에이, 근데 오늘 관객들이 챈트하는데 로건이 반응한 걸 보면 백 퍼센트 그게 맞지 않겠어?]

[그건 좀 기다려보자고. ……어쨌든, 내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캡틴 로건의 이번 복귀에 신이 크게 관여했다는 모양이야.]

[또 신이야?]

[그래, 또 신이지. 그 친구는 이제 사교계 쪽으로도 발을 붙이고 있으니까 로건을 만나 자연스럽게 회사와 연결을 시켜준 것 같아.]

[그렇다면 올드 팬들은 신에게 큰 빚을 지게 된 셈이로군. 캡틴 로건이 회사로 돌아오게 해줬잖아!]

[그래서 아마 로건이 말한 ‘친구’는 신일 가능성이 높을 거야.]

[그럼 신이 링 서바이벌에서 복귀하는 건가? 이거 기대되는데.]

뉴스레터의 기자들은 확실한 분석에 따른 예상을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내가 흘려준 것은, 로건의 복귀에 내가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는 정보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소스에다 오늘 쇼의 내용을 결합해 멋지게 다음 스토리를 예상해냈다.

뻔한 이야기였지만, 프로레슬링은 결국 이렇게 가는 게 맞았다.

완벽한 반전을 노리기보다도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이 중요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멋진 이야기.

말하자면 나는 현재 수많은 팬들의 염원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그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의 올바른 방향이겠지.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케인의 허락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이번에는 올바른 선택을 해주었으면 했다.

녀석은 경영자로서는 어딘가 좀 부족했지만, 반대로 인-링-퍼포머로서는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

그렇기에 만약 녀석이 고집을 꺾고 쇼의 흥행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함께 일할 수 있겠지.’

그때가 오기를 기대하며 나는 일단 오튼과 다시 팀을 맺었다.

그래. 또 다시 캠핑 버스로 놈과 여행을 하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크으! 좋구나! 좋아!”

버스가 다음 경기가 열리는 도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가운데, 샤워를 끝내고 나온 오튼은 팬티 하나만 달랑 입고 소파에 누웠다.

“역시 집이 최고야!”

“그렇게 그리웠냐?”

“죽는 줄 알았다! 인마! 캠핑 버스가 아닌 걸로 여행을 다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나랑 다니기 전에는 어땠는데?”

“레볼루션 멤버들이랑 같이 다녔지. 그때는 헌터와 닉한테 캠핑 버스가 좋은 게 있어서 말이야.”

“고생해본 적이 없단 말이군.”

“이번에 좀 했어.”

“뭐, 에디에 관해 말한 거?”

“……하고 싶지 않았는데.”

오튼이 옆으로 돌아누웠다.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건 정말 역겨운 일이야. 그것도 방송에서 그 말을 내뱉다니.”

“어쩔 수 없지. 잊어.”

“너무 쉽게 말하는데.”

“그럼 멕시코에 있는 비테레로 가문의 묘에 사과하러 가던가.”

“그래도 이미 뱉은 말이잖아.”

“그러니까 잊으라는 거야.”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둑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버스의 헤드라이트는 오직 눈앞의 풍경만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였고, 이제는 지난 일이잖아. 무시하고 나아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다.”

“……틀린 말은 아니네.”

“뭐, 물론. 나 같은 일류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지만.”

“얼씨구, 또 흉계가 나오셨네.”

오튼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뭐, 확실히 나와 있는 게 편한지 녀석은 더 이상 예전처럼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뭔데 그래?”

“간단해.”

그렇게 대답한 나는 전설적이었던 선수의 모습을 잠시 기억했다.

“우리는 이번 링 서바이벌에서 에디를 다시 한 번 기릴 거야.”

분명 멋진 순간이 될 터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이오와 주의 디모인 시에 도착한 나는 그대로 케인 맥센의 부름을 받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무슨 일일까.

‘다음 주 각본에 대해서 미리 좀 이야기를 해두고 싶은 거겠지.’

지난주에는 일이 급해서 대강 넘겼다가 내게 한 방 먹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미리 나의 존재를 발상하지 못한 것은 정말로 명백한 케인의 실수였다.

역시 이런 쪽으로는 영 감이 없단 평가를 들었던 친구다웠다.

그랬다.

대략 2020년 이후.

노쇠한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기 시작한 티파니는 영민한 감각을 보여주며 실권을 쥐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회사 내에서의 발언권은 바트가 더 높았지만.

티파니는 남편이었던 트리플H와 함께 2인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그때 케인은 티파니의 아래에서 랙다운을 관리하다가 그 일도 관두고 회사를 아예 떠났다.

소문에 의하면 바트가 물려준 돈을 까먹으면서 가족들과 방탕하게 지내는 한량이 되었다고 했지.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정도.

‘전생의 티파니는 완전히 바트 맥센의 버전 2가 되어버렸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케인도 내가 다르게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테이블 위에 뭔가가 적힌 A4 용지들이 널려있는 것이 보였다.

WWF 금요일 밤의 랙다운

10월 21일 – 최고 시청률 기록

방송 시작 0시 08분 후

1,300만 가구

10.2%

[기록을 달성하다.]

[전설의 귀환, 랙다운의 승부수.]

[캡틴 로건과의 전격 인터뷰!]

[향후 랙다운 방향 분석!]

[캡틴 로건, 선수 복귀?]

“정말이지 놀라운 결과야.”

반대편의 케인이 쓰게 웃었다.

그 눈에 적의는 없었다.

“10.2%. 천삼백만 가구. 못해도 이천만 명 이상이 그날 랙다운을 봤다는 거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치지.”

“그 정도는 나와야죠.”

10년 만의 귀환이다.

그리고 캡틴 로건은 단순히 프로레슬링 업계를 떠나 미국의 역사를 따졌을 때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 정도 남자가 묵은 과거를 청산하며 돌아왔는데 그 정도 결과는 나와줘야 마땅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죠.”

“그래……?”

“전설적인 선수를 다시 불러와서 시청률을 높이는 건 탁월한 마케팅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 선수가 쇼를 지배하게 둬선 안 돼요.”

실제로 WWF는 2010년대 후반 그런 식으로 시청률을 유지하려고 애쓰다 큰 질타를 받았다.

나이를 먹고 감도 떨어진 레전드들이 쇼에 출연하고 젊은 선수들을 빨아먹으면서 더 이상 슈퍼스타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이었다.

“버프 같은 거죠. 효과가 이어지는 동안에 저희는 랙다운에 고정 시청자층을 잡아둬야 합니다.”

“젊은 선수를 겟 오버 시켜 응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군.”

“그게 일반적인 방법이죠.”

하지만 지금껏 랙다운은 그것을 하지 못해 버닝콩에 계속 밀렸다.

“……너밖에 없겠군.”

“그래요?”

“시치미 떼지 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각본을 짜뒀으면서.”

“전 확인 받았어요.”

“캡틴 로건이 말하는 친구가 누군지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바보지.”

“정말 믿었어요?”

“아니, 사실 다른 레전드 선수를 한 명 더 데려올까 싶었는데.”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었지.

케인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이 각본을 받아들이실지 모르겠군.”

“……말인즉슨, 제가 로건에게 랙다운의 위기를 가르쳐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래. 거기에 링 서바이벌에 참가할 랙다운 측의 마지막 선수도 네가 되는 것이 옳아.”

그는 바트처럼 억지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아직까지 케인에게 이 업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 취향이 아닐지언정, 그는 그래도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바트는 그 융통성조차 잃어버리고 이제는 아집밖에 남지 않은 영감이었지만. 케인은 그 남자와는 달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과연 그런 각본을 허락하실까 모르겠군.”

“그건 걱정 마세요.”

“뭐?”

“사실 로건을 데려온 게 제가 한 일이라는 걸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더라고요.”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아니죠. 로건이 제 편인데.”

“그, 런가?”

“바트도 이번에 느꼈을걸요. 제가 출연을 막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선수란 사실을요.”

“뭐, 그건 그렇군.”

케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확실히 넌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형의 선수야. 아마 관객들도 그걸 느껴서 네가 나오기를 계속 원하고 있는 거겠지.”

“감사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좋아. 링 서바이벌까지 원하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라고.”

시원시원한 대답.

압도적인 결과에 어깨에서 힘이 빠졌는지, 케인은 의외로 순순히 나를 인정해주었다.

‘앞으로 편해지겠군.’

거기에 처리가 빨라지겠고.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내뱉었다.

“로우라이더를 쓰죠.”

“Lowrider?”

“예, 랙다운이 쇼에서 에디를 모독했으니, 그걸 바로 잡아야죠.”

“로우라이더로? 어떻게?”

“아마 레이에게 에디가 쓰던 로우라이더가 한 대 있을 겁니다.”

로우라이더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1950년대 타고 다니던 특유의 차량을 뜻하는 말이었다.

에디는 생전에 자신이 가진 화려한 로우라이더를 타고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자주 선보였다.

에디가 사망한 뒤, 레이도 몇 번인가 그를 기리기 위해 로우라이더를 타고 쇼에 등장했었지.

“이번 링 서바이벌에서 그 로우라이더 입장 씬을 재현해보죠.”

그것이 내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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