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이후, 10월 3주 차의 위클리 쇼 역시도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캡틴 로건이 GM으로 나서며 각 선수들에게 경기를 시키고 최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레이와 오튼도 일단 링 서바이벌이라는 브랜드 대전 이벤트를 앞두고 잠시 대립을 멈추기로 했고.
그렇게 경기들이 진행되며 랙다운에서는 링 서바이벌에 출전할 선수들을 선발해나가기 시작했다.
무난한 내용이었지만 지금 랙다운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선수들이 경기를 가지면서 링 서바이벌을 준비해나가는 과정만으로도 사람들은 기대할 터였다.
그런 내 예상대로 반응은 꾸준히 올라왔고, 팬들은 링 서바이벌을 준비하는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과연 링 서바이벌에 출전해 버닝콩의 선수들과 싸울 다섯 명의 멤버는 누가 될 것인가.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방영되는 위클리 쇼에나 그렇단 말이었고.
실제로는 모두 정해진 상태였다.
벨트가 없는 선수 중 랙다운에서 선수로서 위상이 높은 사나이들.
게이브 바티스타.
레이 미스테리우스.
크리스 젠코.
캐스켓-테이커.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
11월에 접어들어 날을 잡고, 경기장에 모인 우리는 링 서바이벌을 대비한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그날.
레이는 자신의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로우라이더’를 가져왔다.
“바로 이거야.”
“이야.”
“호오…….”
“멋진데?”
우리는 각자 한마디씩 했다.
경기장의 주차장.
주차된 로우라이더는 ‘라티노 히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에디를 나타내듯 크림슨 컬러였다.
불꽃의 마킹이 들어가고, 낮은 차체에 길쭉하고 네모난 오픈 카.
곡선이 가미된 현대식이 아니라 약간 이질적인 느낌. 하지만 그조차 매력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다섯 명이 탈 수 있을까요?”
“흐음.”
내 말에 테이커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펌핑도 해야 할 텐데 우리 무게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차를 얕보지 마시죠. 테이커. 에디가 자신의 영혼을 이 차에 남겨두고 갔으니까.”
자신만만하게 말한 레이는 이윽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고맙다. 신.”
“……별말씀을요.”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어, 레이는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운전해라.”
“예?”
“링 서바이벌 때, 아무래도 각자의 부피가 있으니까 그 편이 낫겠지.”
“아니, 이건 레이의 차잖아요.”
“하지만 젠코와 바티스타, 네가 뒷좌석에 타기는 힘들 텐데.”
테이커는 조수석이 확정이고.
그렇게 말한 레이는 미끈하게 빛나는 로우라이더를 돌아보았다.
“네가 운전을 하고 테이커가 조수석, 젠코와 나, 바티스타가 뒷좌석에 타는 정도가 낫지 싶은데.”
“그러면 차라리 저보다 덩치가 큰 바티스타가 운전을 하는 게.”
“그놈은 안 돼.”
테이커가 눈썹을 찡그렸다.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은 개자식에게 에디의 영혼이 담긴 차를 운전시킬 수는 없다.”
“으음…….”
나는 곤란한 기분을 느꼈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로, 바티스타는 영 백 스테이지 내에서의 태도가 나빠져 선배들로부터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부커에게 챔피언을 빼앗긴 것도 징계의 일환이었지.’
그나마 랙다운에서 메인 이벤터로서의 입지가 있어서 다들 크게 뭐라고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한숨을 내쉰 나는 레이가 내미는 차 키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좀 더 기뻐하라고. 에디가 나에게 맡기고 간 로우라이더니까.”
“그, 그래서 그렇단 거죠. 솔직히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라서.”
“푸하하하! 이 귀여운 녀석.”
바로 그때, 젠코가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주었다.
캐나다 출신의 프로레슬러.
178cm에 90kg, 프로레슬러로서는 평범한 체격이었지만 얄미운 악역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기술력도 좋은 테크니션이라 덩치가 작아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 누구도 무시하지 못했다.
“버닝콩에 있었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물건이란 말이야. 테이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글쎄.”
테이커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내 뺨을 귀여운 듯 툭툭 쳤다.
“잘 키워야지.”
“……제가 애완견입니까.”
“테스트나 해보자.”
무시를 당했다.
뒤로 돌아선 고참들은 로우라이더에 올라타기 전 잠시 차체에 손을 올리고 각기 기도를 올렸다.
제각기 에디를 기리고 행운을 빌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겠지.
“…….”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 역시도 에디에게 기도를 올렸다.
에디.
슈퍼 멋진 걸 보여줄게요.
그렇게 기도(?)를 마친 나는 선배들과 로우라이더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엔진이 힘차게 울음소리를 냈다. 순간 깜짝 놀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원래 이래요?”
“굉장하지?”
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엄청난 엔진이다.
로우라이더를 구성하는 3대 요소가 유압 장치와 화려한 도색, 그리고 미친 엔진이라고는 하지만.
밟으면 신나게 미끄러져 나갈 것 같은 엄청난 엔진음이었다.
문제는 도로가 아니라 경기장 안에서 로우라이더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기랄, 이거 나중에 운전 좀 해봐도 될까요? 감을 익혀놔야 사고를 안 칠 것 같은데.”
“그렇게 해. 일단 저기, 변속기 옆에 스틱 같은 거 보이지?”
“넵.”
“당겨봐.”
그 말대로 쑥 당기자.
“으헉?!”
차가 뛰어올랐다.
차량 바닥의 서스펜션이 움직이며 로우라이더가 춤을 추었다.
“크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테이커.
??? 이 양반, 웃을 줄도 아나?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보자 레이와 젠코도 제각기 신이 나서 로우라이더를 즐기기 시작했다.
“신! 음악 좀 틀어봐! 이것저것 좀 당겨보고 말이야!”
“예? 예?”
잠깐 당황한 나는 레이의 말대로 오디오를 틀고 스틱을 아무렇게나 조작해대기 시작했다.
신나는 남부 힙합이 나오며, 차는 완전히 말처럼 날뛰었다.
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차체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든 서스펜션이 이렇게 되었다고 했지.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조종하는 건 처음이라 나도 금방 신이 났다.
“좀 더 빠르게 갈까요?”
“좋아, 좋아! 눈치 보지 말고 신나게 로우라이딩 해보자고!”
레이의 허락에 나는 주변의 눈치 보지 않고 신나게 서스펜션을 튕겨대며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흥미로운 얼굴로 모여드는 모습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거라면 분명 링 서바이벌에서 버닝콩 팀의 기선을 제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 *
한편, 버닝콩의 락커룸에서도 나름대로 미팅이 진행되고 있었다.
링 서바이벌은 총 일곱 개의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일단 월드 챔피언과 유니버스 챔피언이 맞붙는 경기가 하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과 U.S. 챔피언이 붙는 경기가 하나.
양대 브랜드의 태그 팀 챔피언이 붙는 경기가 하나.
버닝콩의 여성 챔피언과 랙다운의 여성 선수 대표 간의 경기.
여성 선수들의 5:5 제거 매치.
남성 태그 팀의 5:5 제거 매치.
태그 팀이니만큼 각 브랜드에서 총 열 명씩, 스무 명의 선수가 경기 하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메인이벤트인 남성 선수들 간의 5:5 제거 매치.
경기 숫자는 좀 적은 편이었지만 출전하는 선수는 많아 대부분 긴 경기 시간을 보장 받았다.
개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이 바로 남성 5:5 제거 매치였다.
버닝콩 팀의 리더가 된 트리플H는 다른 멤버들을 앞에 두고 다시금 그 의의를 설명해주었다.
“그야 당연하지. 월드 챔피언과 유니버스 챔피언은 그래봤자 1:1 경기, 반대로 이 5:5 제거 매치에는 각 브랜드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선수 다섯 명이 투입되니까.”
바로 그때, 빅 죠가 손을 들고 무척 예의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223cm에 200kg이 넘는 거구로 항상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5:5 제거 매치의 버닝콩 측 선수로 선발되었다.
“저기요. 선생님.”
“……비아냥이라면 관둬.”
“아니, 실제로 헌터 네가 설명하는 투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야 당연하지. 난 언제나 5:5 제거 매치를 할 때면 그 중요성을 교육하는 담당이었으니까.”
“랙다운 때는 그런 거 없었는데.”
“테이커 선배는 항상 적당히 하고 돌아오자고 했어.”
“그건 테이커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카리스마를 내뿜는 WWF 최고의 괴물이라서 하는 소리고.”
헌터는 랙다운에서 이적해온 선수인 빅 죠와 거트 엔젤의 느긋한 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빅 죠는 그렇다 쳐도 실제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거트 엔젤까지 이렇게 나올 줄이야.
빅 죠와 달리 덩치가 작았음에도 애국자 기믹에 테크니션으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버닝콩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둘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 위험해.”
“뭐?”
“그놈이 있잖아.”
“신?”
“그래, 그놈은 분명히 뭔가 또 이상한 걸 준비해와서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 거란 말이지.”
“그렇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대충 하자.”
“그래, 나가서 맥주 마시고.”
“시끄러워!!”
헌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조용해지는 두 사람.
바로 그때,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카인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기믹 전환의 일환으로 가면을 벗게 된 그는 험상궂은 외모로 쇼에 출연한 어린아이를 울리기도 하며 맹활약하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성격이 너무나도 착해 그 이후 많이 힘들어했지만.
“……일단, 두 사람 다 기억을 좀 해둬야 하는 게 있는데.”
그는 장난만 치고 있는 거트와 빅 죠를 돌아보며 말했다.
“테이커는 자기와 경기를 할 때 상대방이 개판을 치면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반드시 갚아주는 사람이었지.”
“…….”
“…….”
“즉, 그때 너희가 대충 해도 되었던 건, 테이커와 몸을 부딪치며 경기하는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이 바른 자세를 취했다.
좀 상황이 나아지자 트리플H는 카인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경기는 아직 어느 팀이 이길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야.”
“하지만 매년 링 서바이벌이 그랬듯이 경기는 최대한 동률을 이루면서 끝내려고 들겠지?”
“그래, 그러니까 아마 우리는 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째서?”
“당연히 챔피언들은 우리가 이길 테니까 말이야.”
“아, 러셀하고 시나?”
현 유니버스 챔피언인 시나와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인 러셀은 링 서바이벌에서 상대 브랜드의 챔피언과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물론, 회사 측에서는 젊은 두 사람을 띄워주고자 승리하는 결말을 제시할 터였다.
아직 러셀은 몰라도, 시나는 이기는 게 99퍼센트는 확정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동률을 맞추려면 우리가 지는 그림이 맞겠지.”
하지만 헌터는 자신이 패배하는 각본은 언제나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였다.
“일단 바트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거기다 상대편에 신이 있다는 점이 어드밴티지 포인트가 되어서 우리가 이기는 각본이 나올 수도 있겠지.”
“아, 바트는 신을 싫어하죠.”
“그래.”
“그 점을 이용해서 이기려고 하다니 왠지 악당이 된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한 것은 네 사람 사이에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록 밴 댐이었다.
특유의 탄력과 꽁지머리로 유명한 그는 영화배우 ‘쟌 클로드 밴 댐’을 닮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링네임도 록 밴 댐.
성격에는 어딘가 직설적으로 내뱉는 부분이 있어 헌터는 애써 그 말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절호의 기회다. 브랜드 습격 각본에서 바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겠지.”
그렇게 되면 아마 버닝콩이 5:5 제거 매치에서 승리하는 각본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를 위한 아이디어를 내가 하나 짜왔는데 말이야.”
그는 다른 선수들의 앞에서 그 ‘아이디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선수들이 미팅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문 바깥에 서있던 남자는 어깨에 걸친 챔피언 벨트를 붙잡은 채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데뷔 후 이제 3년차.
WWF 유니버스 챔피언.
숀 시나였다.
‘다들 열심히 준비하는군.’
반대편에서는 또 태그 팀끼리 모여 각본이 짜이기도 전에 저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누구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이게 당연시되었다.
선수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저마다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를 짜서 각본팀과 계속해서 싸워댔다.
각자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게 프로레슬링의 경쟁이다.
그리고 현재 그 정상에 서있는 숀 시나는 그런 선수들의…… 아니, 조금 전 트리플H의 발언에 대해 하나 틀렸다는 생각을 했다.
‘바트를 위해서가 아니야.’
프로레슬러는 회장이 아니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만 했다.
‘아마 너라면 이 당연한 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겠지.’
시나는 랙다운에서 팬들을 위한 쇼를 준비하고 있을 한 남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래.
분명 그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팬들을 위한 각본을 생각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