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09화 (209/634)

209.

링 서바이벌 직전의 위클리 쇼는 평소와는 좀 다르게 진행되었다.

브랜드 대전이라는 특이한 컨셉을 살리기 위해 상대 브랜드가 침공해오는 각본이 진행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링 서바이벌이 있는 마지막 주에 실행되었다.

일단 ‘월요일 밤의 버닝콩’에서는 랙다운이 버닝콩을 침공했고.

그리고 ‘금요일 밤의 랙다운’에서는 반대로 버닝콩이 침공해왔다.

그렇게 해서 일요일의 페이퍼뷰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각 침공은 기습처럼 연출되어 일반적으로는 침공자가 승리하는 게 특징이었는데.

매년 그런 식으로 침공을 주고받으면서도 또 매년 기습을 당한다는 것이 프로레슬링의 기묘한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가 침공을 하면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버닝콩과 협업을 하기 직전.

고참 선수들과 각 팀장들, 그리고 케인이 모인 상태에서 나는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테이커는 이해했다는 듯 피식 웃었고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지?”

“그래야만 우리가 기세를 잡은 상태에서 쇼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로건도 있고 하니까 그렇게 어려운 조건은 아닐 듯한데.”

“그럼 그 주 금요일에는?”

“습격 없이, 저희가 나름대로 링 서바이벌에 대한 결의를 다지면서 끝을 내는 걸로 하면 되잖아요?”

“그럼 버닝콩이 링 서바이벌 전주 금요일에 우리를 침공하고.”

“우리가 그다음 주 월요일에 버닝콩을 침공하고 나서, 금요일에 로건과 함께 결의를 다지고. 링 서바이벌을 맞이하는 거죠.”

“그럼 너는?”

케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좀 의아한 얼굴이었다.

하긴 그랬다.

이전까지 나에 관해서 죽어라 마크하려고 했던 녀석이 갑자기 태도가 싹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눈빛이 달라졌다.

더 이상 케인은 안 맞는 옷을 억지로 껴입지 않고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저 멋진 안건을 떠올리고 동료들과 함께 쇼를 구상해나간다.

바로 프로레슬링의 묘미이자, 케인 맥센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물었다.

“넌 언제 등장하는 것이 가장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반격을 할 때겠지.”

바로 그때, 테이커가 나를 대신해 답을 내놓았다. 거기에 케인이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저희가 습격을 받은 뒤, 버닝콩에 반격을 가할 때 말이죠?”

“그래, 이 개자식의 복귀를 알리는데 그때만큼 좋은 순간이 또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버닝콩이 저희를 습격했을 때 신이 돌아온다는 암시가 필요할 것 같네요.”

“로건이 전화를 거는 정도면 되겠지. 어쨌든, 버닝콩 측과의 협의가 먼저 이루어져야겠지만.”

“변주를 주자는 거죠.”

“나름 논리적인 이야기지만, 바트가 과연 그 말을 받아들일까?”

“안 된다고 하면 제가 전화해서 직접 이야기를 진행할게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후, 케인이 버닝콩 쪽에 연락을 취해 우리 의견을 이야기했고, 어렵지 않게 승낙을 받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바트는 처음에 노발대발하며 거절했지만, 나와 이야기하란 말이 나오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 * *

그렇게 일이 정해진 뒤, 각 브랜드의 각본팀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스토리를 짜기 시작했다.

먼저 습격할 버닝콩 측에서 각본을 보냈고 우리는 그걸 받아서 확인하고 우리 각본을 보냈다.

랙다운 각본 팀장에서 그 내용을 받아 읽어본 나는 어렵지 않게 한 가지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이거, 트리플H가 짠 거네요.”

“예?”

“딱 봐도 그렇잖아요?”

“흠, 그런가요? 팀 리더인 헌터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요.”

“하지만 자기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스타들을 배재해놨죠.”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카인 선수의 활약이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네요.”

“카인은 괴물 캐릭터라 빛이 나려면 혼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죠.”

다른 선수들과 함께 랙다운 락커룸을 습격하는 역할이 다였다.

베테랑인 카인이 이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그냥 사람이 너무 좋아서 원하는 대로 넘겨준 것 같았다.

‘이쯤 되면 호구지만.’

어쨌든 그런 식이었다.

거기다 묘하게 바트의 감성을 자극하는 식인 걸로 보아 그런 쪽으로도 노린 것처럼 느껴졌다.

힘을 과시하고.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그걸 극한까지 썼다는 느낌.

“대단하시네요. 신 선수. 이런 부분을 곧바로 파악할 줄이야.”

“오래 일을 해봤으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신 선수는 아직 경력으로 신인 급이라 오래 일한 거라고 보기에는 좀.”

“어, 그런가요?”

“……어쨌든, 저희는 어떤 식으로 각본을 짜서 보내면 될까요?”

“글쎄요. 지금 저희 상황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도록 할까요.”

“지금 랙다운은…… 큰 혼란에서 벗어나 뭉쳐졌단 느낌이죠.”

“예,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걸 연출하자는 거군요.”

“예, 버닝콩이 자신들을 강자로 연출하는 건 자충수입니다. 바트의 마음에는 들겠지만 팬들은 저희를 더 응원하고 싶어지겠죠.”

왜냐면 랙다운이 지금까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하나로 뭉쳐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더도그마 현상이군요.”

“예. 그러니까 사실 딱히 할 것도 없어요. 제가 랙다운을 하나로 묶을 마지막 선수로서 복귀를 한다는 것만 보여주면 되겠죠.”

“그렇게 따지자면 케인의 ‘그런 행동’이 지금까지의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되려나요?”

“예,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각본팀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버닝콩 팀에게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지만, 회사를 바꾸는 선수라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군요.”

“과찬이십니다.”

“아뇨, 로건의 복귀부터 해서 지금까지……. 이전의 안 좋던 분위기가 다 거짓말처럼 느껴지네요. 역시 회사에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칭찬에 나는 약간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웃었다.

팀장이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뭐죠?

“테마곡을 어레인지하죠.”

“예?”

갑작스러운 이야기.

지금의 테마도 그다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당신의 위상에 걸맞은 느낌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사실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저희 모두의 생각이죠.”

“저희 모두라면?”

“일단 아이디어는 음향팀장이 제시했어요. 좀 더 당신이 받는 이 열광적인 반응에 걸맞은 수준으로 테마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흐음…….”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내가 반응을 보이자 각본팀장은 경기장에 있던 음향팀장을 불러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테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말없이 밖으로 나오더니 노트북을 가지고 돌아왔다.

“어, 사실 아이디어가 있어서 샘플을 만들어보던 차였습니다.”

그는 노트북의 개인 자료에 있던 음악 파일을 하나 재생시켰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빠밤-빠밤-빠밤-빠밤-빠밤-!

북과 나팔이 연이으며 성스럽고 또한 불길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마치 요한묵시록에서 이야기하는 심판의 천사들이 강림할 것만 같은 분위기의 오프닝이었다.

나팔의 연주는 점차 강해졌고 이걸 경기장에서 들으면 분명 심장까지 닿을 거란 사실이 느껴졌다.

이후 시작되는 기타의 울림.

덥스텝의 기운은 사라지고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의 날카로운 연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가 나왔다.

멸망을 노래하는 천사들.

그들의 대합창이 이어졌다.

[Uh-Oh-Oh-Ooooooh-!]

“이건 기존에 쓰이던 음과 똑같습니다. 일단 샘플로 기존 음의 피치를 조정해가면서 여러 사람이 부른 것처럼 만들어봤습니다만.”

만약 이 노래가 쓰인다면 전문 성가대를 찾아서 제대로 녹음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컬을 넣을까 합니다.”

“보컬을?”

“가사는 이렇게 갈까 하는데.”

문서를 하나 여는 음향팀장.

그 내용을 확인했다.

변혁을 맞이하라.

기수가 강림한다.

깃발을 치켜든다.

질서를 목도하라.

“언제나 패러다임을 박살 내는 신 선수에 대해 표현해봤습니다. ……아직 작성하는 중이지만요.”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런, 가요?”

“예, 대신 가사를 라틴어로 쓰죠. 그러면 짧아도 괜찮겠지.”

또한 성가 같은 느낌도 주고.

“그러면 사람들이 따라서 부르기 힘들지 않을까요?”

“너무 짧으면 또 가사가 들어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가는 거죠.”

나는 각 가사의 옆에 ‘x3’을 적었다. 세 번 반복한다는 뜻이었다.

“짧은 걸 여러 번 반복하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따라 부를 겁니다.”

“확실히 그거라면.”

“쉽고 간단하고, 멋진데요.”

납득하는 두 사람.

그 앞에서 피식 웃은 나는 어레인지된 테마를 몇 번이고 들었다.

환상적인 노래였다.

“일단, 처음에 북하고 나팔이 연주되는 부분이 멋지네요.”

처음 이 노래를 듣기 시작했을 때 관객들은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분명 의아해하겠지.

들어본 적이 없는 테마니까.

하지만 뒤를 이은 합창대의 노래는 분명히 기존의 내 테마에서 좀 더 확장된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의아해하던 관객들이 이게 내 테마라는 사실을 안 순간 보낼 열광적인 반응이 말이다.

‘이거 완전.’

솔직히 예상 못한 사태였다.

각본팀장의 말마따나 케인 맥센의 출연금지가 나의 극적인 이적까지 연결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 귀환.

분명 이번 링 서바이벌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는 내가 될 것이다.

* * *

링 서바이벌 전주의 금요일.

그 전날부터 랙다운 팀에 합류한 버닝콩 선수들은 브랜드 전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를 느꼈다.

그게 행동으로 드러났다.

선수고 직원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가 버닝콩 선수들을 보고는 씨익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 의아해하던 트리플H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과 친한 오튼을 바깥으로 불러냈다.

다른 때면 몰라도 적어도 링 서바이벌에서만큼은 브랜드 간에 강한 라이벌 의식이 형성되었다.

그렇기에 편하게 이유를 물어볼 수 있는 건 후배이자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선수들이 편하게 대하고 있는 랜스 오튼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락커룸 한쪽을 차지한 버닝콩 선수들의 앞에 서서도 지지 않고 기세를 드러냈다.

“뭘 말해달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랙다운 쪽에서 각본 말고도 뭔가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있나 싶어서 말이야.”

“하하! 헌터! 그걸 랙다운 소속인 제가 왜 말해야 하죠?”

얼마 전까지 버닝콩 소속이었으면서 금방 소속감을 갈아치우는 그 태도가 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헌터는 일단 락커룸 문을 잠갔다.

철컥.

“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버닝콩 선수들이 오튼을 향해 다가섰다.

평소 생불生佛로 알려진 카인을 제외하고 평균 키 190cm의 거구들이 오튼을 둘러쌌다.

그 뒤에 서있던 트리플H는 마치 마피아 보스처럼 다시 물었다.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왜 이러세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근육질의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오튼은 안색이 금방 창백해졌다.

하지만 이것도, 버닝콩 선수들이 오튼을 편한 후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건방진 소리를 해대는 후배를 좀 놀리면서 오랜만에 친목을 다지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게 오튼이 거의 숨기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을 즈음이었다.

똑똑.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이어졌다.

“살려……! 우읍?!”

도움을 요청하려는 오튼의 입을 빅 죠가 틀어막았고, 헌터는 피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 뒤에는 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한 채 서있었다.

“풀어주세요.”

“뭐가?”

“오튼이요.”

“오랜만에 만나서 적당히 놀고 있는 거야. 그렇지, 오튼?”

“그런 것치고는 오튼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있는데요.”

“그럼 네가 대답해주겠나?”

“예?”

“뭘 꾸미고 있지?”

“꾸미다뇨.”

피식 웃은 신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복귀할 때부터 제 테마곡이 바뀔 거예요. 나머지는 드렸던 각본 그대로입니다.”

“과연 그런 걸로…….”

“그렇기 때문이지.”

대답과 함께 문 뒤에 서있던 캐스켓-테이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의 트리플H라도 그 앞에서는 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요새도 락커룸이 이러나?”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업계의 아이콘, 캡틴 로건이었다.

“우읏…….”

“적당히 해둬. 헌터. 오튼 그 어설픈 녀석은 그래도 우리 자식이니까.”

“놔주게. 죠.”

“예, 옙!”

로건의 말에 빅 죠가 손을 놓았고, 쪼르르 도망친 오튼이 신의 뒤에 슬쩍 숨었다.

대치 상황.

신은 그런 공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이야기했다.

“오늘 잘 해봐요.”

싱긋 웃는 그의 모습에 버닝콩 선수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분명 이놈이 이번 링 서바이벌에서 또 활약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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