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10화 (210/634)

210.

그렇게 시작된 랙다운.

메인이벤트.

바티스타가 오튼을 꺾고 승리하면서 링 서바이벌 5:5 제거 매치의 마지막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랙다운 멤버는 테이커와 젠코, 레이와 바티스타, 마지막으로 하이든리히.

여기에서 하이든리히는 오늘 습격에서 큰 부상을 당해 빠지고 그 자리를 내가 채우는 식으로 각본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들 로프를 밟고 위로 올라가 포효하는 바티스타.

나는 고릴라 포지션에서 케인과 함께 쇼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치잉-!

[Time To Play The Game……!]

경기장 전체가 녹색으로 변하며 트리플H의 테마가 흘러나왔다.

[Yeeeeeeeeaaaaaaaaahhhhh!!]

관객들은 당연히 미친 듯한 환호성을 보내며 그를 환영해주었다.

트리플H와 바티스타.

두 사람의 라이벌리를 아직도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버닝콩의 로고가 들어간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헌터가 입장로를 걸어 나와 천천히 링에 올랐다.

그가 바티스타와 페이스 투 페이스를 해보이자 관객들은 그야말로 미칠 듯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잠시 서있던 헌터는 랙다운의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화면 내보냅니다!”

“버닝콩 팀 움직였습니다!”

영상팀장의 외침과 함께 대형 스크린으로 영상이 송출되었다.

동시에 방송국에 보내는 것도 백 스테이지 영상으로 바뀌었다.

랙다운 선수들을 습격하는 버닝콩 선수들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Uoooooooooooooooohhhh!!]

깜짝 놀란 관객들이 하나라도 된 것처럼 반응을 보냈다.

일단 자버나 로우 카더들이 싸우고, 그 사이로 나타난 카인이 버닝콩 팀에 합류해 공격을 시작했다.

백 스테이지를 초토화시키며 나아가는 버닝콩 소속의 선수들.

위클리 쇼가 끝나가던 찰나에 기습을 받은 랙다운 선수들은 대항하지 못하고 계속 쓰러져 나갔다.

그런 순간에도 테이커가 어떻게든 그들을 규합해 싸우려 했지만.

빅 죠가 쇠 파이프를 들고 기습을 한 탓에 금방 제압을 당했다.

[Booooooooooooooooooo-!]

[Waaaaaaaaaaaaaagghhhh!!]

환호와 야유가 섞여 엉망진창이었다.

랙다운을 습격한 버닝콩 선수들은 여기에서 분명한 악역이었지만, 그럼에도 멋진 드라마였다.

카인과 빅죠.

록 밴 댐.

거트 엔젤.

그렇게 네 사람을 중심으로 선수들은 랙다운을 장악해나갔다. 그것은 마치 마피아 영화에서 상대 조직을 없애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정리가 끝났다.

[이게 다냐?]

[뭐야. 쉽잖아.]

[별것도 아닌데.]

[아직 하나가 남았어.]

각자 한마디씩을 내뱉은 버닝콩의 중심 선수 네 명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다시 링 비춥니다!”

그리고 스크린은 링으로 돌아와 당황하고 있는 바티스타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잠시 서있던 그는 이어 트리플H와 싸울 자세를 취해 보였다.

[덤벼, 덤비라고!]

하지만 고개를 내저은 트리플H는 이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랙다운 경기장에 버닝콩의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조명이 붉은색으로 물들고.

우리는 정복되었다.

[Move To The Music! Play That F-cking Music!]

그렇게 나온 건 네 명의 선수들.

거기에 트리플H까지 포함해 링 서바이벌의 5:5 남자 제거 매치에 참가할 선수들이 링에 나왔다.

그들은 트리플H를 중심으로 바티스타를 짓밟기 시작했다.

[Booooooooooooooooo-!]

마찬가지로 야유와 환호가 마구 뒤섞여 반응은 장난이 아니었다.

랙다운이 이렇게 당하는가!

링 서바이벌을 위해 힘을 뭉쳤던 랙다운 선수들의 행동은 고작 헛수고에 불과했는가!

‘자충수라고 했지.’

그렇게 되었다.

힘을 과시하고 바티스타를 짓밟은 버닝콩 선수들의 행동은 탑독의 아니꼬운 짓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트리플H의 페디그리까지 이어졌고, 일어선 그들이 자신들이 승리할 것을 선언했다.

“화면 전환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화면이 바뀌며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캡틴 로건의 모습이 나왔다.

그는 초토화된 랙다운의 상황을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 자넨가?]

[Yeeeeeeeeeeeeeaaaahhhhh!]

찢어질 듯 이어지는 환호.

다른 모니터로 확인하자 링 위에 있던 버닝콩 선수들의 표정이 좀 굳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역시 이걸로 누가 확실히 주인공인지 느꼈을 터였다.

[문제가 생겼네. 와줘야겠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버닝콩의 습격.

자신들의 강한 면모를 과시하려던 그 노력은, 안타깝게도 결국 나를 띄워주기 위한 행위가 되고 말았다.

* * *

여론은 하나로 모였다.

팬들이 원하는 건 한 선수였다.

더 팍이나 락콜드 같은 아이콘이 아닌 이상, 이 흐름은 이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니면 역대급의 야유를 감내하더라도 팬들의 성원을 무시하던가.

하지만 그런 야유를 버틸 수 있는 선수는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거기에 그런 식으로 갔다가는 분명 회사도 갖은 욕을 다 먹겠지.

신에 대해 인종 차별적인 행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테고.

하지만 바트는 그런 건 사소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링 서바이벌 이후의 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조금 전 생각했던 두 사람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나오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먼저 락콜드.

[어. 영감.]

“……복귀할 생각 없냐?”

[고집 좀 그만 부려.]

“너는 두렵지도 않냐? 네가 만든 시대를 그놈이 먹어버릴 텐데?”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에 취해서 살 거요? 현실에나 충실합시다.]

“나는 그 빌어먹을 현실에 충실하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다!!”

바트는 분통을 터뜨렸다.

하여간 락콜드, 저놈은 현역 시절부터 줄곧 저딴 식으로 굴었다.

야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함께 일하기 힘든 놈이었다.

문제는 팍 역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그냥 밀어줘요. 바트. 보니까 현역 시절 나보다 낫던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물론, 내가 지금 현역이 아니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하하.]

“돌아와라. 팍. 몸값은 네가 원하는 만큼 맞춰줄 테니까. 제발.”

[……지금 그 친구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영화 쪽에 얼마나 많은데. 복 받은 줄 아세요.]

전화가 뚝 끊어졌다.

그로서 희망도 함께 끊어졌다.

어쩔 수 없이 모든 부작용을 감수하고 신을 막을 수밖에 없나?

하지만 그조차 답은 아니었다.

신이 로건과 협력하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버리기에 바트는 더 이상 회사에 아이콘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놈들은 암적인 존재였다.

자신을 밀어준 회사에 헌신하지 않고 프로레슬링을 통해 얻은 유명세를 자기 보신에나 이용하니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자신뿐. 신 역시 말은 그렇게 해도 반드시 회사를 떠날 터였다.

순간 그렇게 생각을 했던 바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회사를 떠나다’라니.

그건 정말 바라던 바였다.

그런 동양인 놈은 바트 맥센이 바라고 있는 영웅상이 아니었다.

화제성으로 반짝 떠오르고 있었지만 금방 질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은.

아니, 대체 언제부터.

자신은 이대로 두면 신이 반드시 아이콘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트 맥센은 한동안 멍한 채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순간 그 동양인 놈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이콘이라니.

동양인 아이콘이라니.

동양인이 한 시대를 상징하다니.

대체 무슨 시대를?

* * *

그렇게 위클리 쇼가 끝났다.

사람들은 예상한 대로 로건의 친구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며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랙다운 팀의 멤버들은 버닝콩을 습격하는 각본을 수행하기 위해 곧바로 이동해 그쪽 팀에 합류했다.

미리 촬영을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은 오랜만에 내가 버닝콩으로 돌아오자 격렬하게 환영해주었다.

시몬스를 필두로 버닝콩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고참들이 나와서 날 마구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야야, 인마! 신!”

“이 자식, 요새 쇼에 안 나오던데? 군기가 너무 빠진 거 아니냐?”

“어우, 그새 근육은 더 빠방해졌구만. 그동안 얼마나 잘 먹었으면 사람 몸이 이렇게 돼?”

“……아픕니다. 시몬스.”

“크하하! 그 ‘아픕니다. 시몬스.’도 정말 오랜만이군! 오늘 저녁은 이 시몬스와 함께 먹도록 하지!”

그렇게 실컷 괴롭힘을 받고 있자니 뒤쪽에서 나타난 랙다운 선배들이 시몬스의 손을 붙잡았다.

테이커였다.

“시몬스, 잘 지내셨습니까.”

“오, 테이커. 오랜만이다?”

“예, 저희 바트한테 다 같이 인사를 하러 갈까 하는데.”

“이놈은 놔두고 가라. 오랜만에 봤으니 좀 귀여워 해줘야지.”

“같이 가야죠. 이 자식이 있어야 각본을 설명하기가 편할 텐데요.”

……이상한 기분이다.

랙다운에서 파견된 선수들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으로, 5:5 제거 매치에 같이 나갈 사람들이었다.

버닝콩이 랙다운에 왔을 때보다는 훨씬 숫자가 적었지만, 우리는 나름 소수 정예로 온 것이었다.

거기다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테이커까지 있어 다들 랙다운처럼 텃세를 부리지는 못할 것 같았는데.

여기에서 각본과는 별개로 나를 트로피로 놔둔 상태에서 선배들 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와, 이거.

기분이 굉장히 별로군.

귀여움을 받는 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같은 남자가 질척하게 달라붙으면 어딘가 소름이 돋는 것이 바로 남자의 심리였다.

하지만 나는 프로.

그런 상황에서 적당히 선배들을 중재하며 일을 진행시켰다.

“시, 시몬스. 바트한테 인사 마치고 돌아올 테니까 나중에 다 같이 타코라도 먹으러 가죠.”

“그거면 되겠냐? 오랜만에 봤는데 스테이크는 썰어줘야지.”

“그것도 좋겠네요. 일단 다녀오겠슴다. 아, 버스에 오튼이 같이 왔는데 그놈이나 귀여워 해주세요.”

“오튼은 별로.”

“나도.”

“뭔가 너 같은 맛이 없어.”

……불쌍한 오튼.

아니, 이 경우에는 행운아인가.

“따라와라. 신.”

어색하게 웃고 있자니 테이커가 내 목에 팔을 휘감고 잡아당겼다.

거기에 질질 끌려간 나는 바트에게 대충 인사를 끝마치고 저녁의 위클리 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바트는 다행히도 딱히 방해할 마음은 없는지 우리의 말에 퉁명스레 알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거기다가 버닝콩 사람들은 나에 대한 걸 잊고 있지 않아서 인사를 갈 때마다 친근하게 굴었다.

특히나 버닝콩 쪽 음향팀장은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내 새로운 테마를 듣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건, 정말 대단한데요.”

“그렇죠? 저쪽 팀장님이 아주 솜씨가 대단하시더라고요.”

“허가는 다 떨어졌으니까 이거 트는 순간만이 기대되네요. 프로레슬링에서 음향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거 아시잖습니까.”

“그것만 기대하는 사람도 있죠.”

나는 씨익 웃었다.

프로레슬링의 입장 씬은 정말 공들여 연출하기 때문에 선수의 개성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레슬 임페리움 같은 큰 무대에서는 특별한 입장 씬을 표현하면서, 정말 그것만 보더라도 선수의 특별함이 느껴지게 만들 정도였다.

거기에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까지 더해지면 그 순간 그 선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내 테마는 이전보다 한 단계 진화해, 내 위상에 맞게 길들여졌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밤, 나는 복귀의 신호탄을 아주 거하게 쏘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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