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힘은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였다.
그렇게 힘을 살려 리프팅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유형의 선수를 ‘파워 하우스’라고 부르는데.
이런 파워 하우스 계통의 선수는 거의 대부분이 큰 인기를 끌었고, 회사에서도 크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힘을 과시하는 데 가장 좋은 행동이 바로 빅 죠와 같은 거구의 레슬러를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기를 뛰면서 지친 상태에서 상대를 번쩍 들어 내치는 것은 힘만 있어서는 불가능했다.
힘과 기술, 거기에 더해 체력까지 필요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바티스타는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진퉁 파워 하우스는 아니었다.
엄청난 근육질에 키도 커서 그렇게 보이기는 했으나, 나이가 많은 데다 체력까지도 떨어졌다.
그러므로 스스로는 자신만만하게 들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대신해 내가 나섰다.
‘어떻게 하면 들 수 있을까.’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든 채 링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빅 죠.
체중이 워낙 나가 들쭉날쭉할 때가 많았지만, 현재는 230kg 정도.
그의 전성기 체중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들어 올린다면 반드시 분위기를 끌어올 수 있을 터다.
바티스타가 실패를 한 만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빅 죠를 들어 올리는 액션을 취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물론 프로레슬링의 리프팅 동작은 상대가 함께 떠올라주는 만큼 일반 리프팅보다는 쉬웠다.
문제는 그렇게 들어 올린 상태에서 버티고 넘기는 것까지는 온전히 내 몫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허리힘이 중요했다.
만약 무리했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티파니에게 혼나겠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를 어쩐다.’
고민을 하며 그렇게 링을 돌고 있자니 분위기가 축 처진 걸 의식한 빅 죠가 액션을 취했다.
“뭐해! 빨리 덤비라고!”
눈치가 빠른 양반이다.
빅 죠는 완전히 악역 포지션을 취하면서 날 도발하고는 자기 팀원들과 함께 나를 비웃었다.
그런 상황에서 관객들은 조금 전의 사고와 더불어 이 상황 자체를 의아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들어야만 했다.
아주 뜸을 들여서.
희망이 사라지려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빅 죠를 들어야만 했다.
어떻게?
‘하나밖에 없지.’
스쿱 파워 슬램.
로프 반동 후 달려오는 상대를 잡고 들어 반대편으로 메치는 기술.
스피드와 유연성, 거기에 잡고 회전하는 동안 버티는 힘이 중요했다.
한마디로 일단 들기 시작했으면 무리라고 생각해도 다시 내려놓을 수단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좋아.”
각오를 끝마친 나는 천천히 우리 쪽 코너로 물러나 지시를 내렸다.
“젠코.”
“응?”
“제가 빅 죠를 바닥에 찍고 나오면 그 위로 라이언설트를 써줘요.”
“뭐? 가능하겠어?”
“해야죠. 슈퍼 멋질 텐데.”
싱긋 웃은 나는 뚜벅뚜벅 빅 죠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 역시도 자신의 코너에서 나와 나를 깔봤다.
서로의 키 차이를 인식시키듯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뭘로 할 거냐?”
“스쿱 파워 슬램이요.”
“……다쳐도 모른다. 꼬마.”
“맡겨만 주세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 나는 빅 죠의 뺨을 힘차게 후려갈겼다.
쫘악-!
[Uoooooooooooooohhhhh!]
깜짝 놀라는 관객들.
빅 죠 역시 순간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죠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넘기고자 했다.
하지만 빅 죠의 허리가 워낙 두꺼웠기 때문에 끌어안은 상태에서 손깍지를 끼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떻게든 살을 접어 당겨 깍지를 낀 나는 그대로 빅 죠를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깜짝 놀란 관객들이 그 광경을 찍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빅 죠를 들어 올리는 것.
이처럼, 그것은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힘이 빠진 척을 하며 뒤로 한 차례 물러났다.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심호흡을 하고 있자 가까이 다가온 빅 죠가 내 몸을 잡고 들어올렸다.
바디 슬램.
쿠웅!
몸이 매트 위에 떨어진 나는 허리를 감싸 안으며 옆으로 굴렀다.
다가온 빅 죠가 내 머리채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반격해.”
그 말을 들은 나는 빅 죠의 손을 쳐내고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Yeeeeeaaahhhh!!]
빠른 반격에 환호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기대하던 순간은 이게 아닐 것이다. 나는 경기장에 흐르는 기류를 느꼈다.
기대감.
내가 한 번은 실패했을지라도 빅 죠에게 크게 한 방을 먹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관객들의 열망.
‘두 번은 좀 길군.’
그렇게 판단한 나는 빅 죠를 몰아붙이고는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 간다.
눈빛으로 대답하는 빅 죠.
나는 로프에 엉덩이를 걸친 빅 죠의 팔을 잡고 힘차게 끌어당겼다.
“그하압-!”
나와 로프를 지지대로 삼아 빅 죠가 힘차게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온다.
온다.
돌이킬 수 없다.
200kg이 넘는 거구를 스쿱 자세로 들어 올려 반대로 돌아 그대로 안전하게 바닥에 내리쳐야만 했다.
실수 없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찰나의 순간,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복기하고 반대편 로프를 거쳐 달려오는 빅 죠를 잡아들었다.
오른손은 죠의 가랑이 사이에.
왼손은 죠의 왼쪽 어깨에.
죠 역시도 순간 내 어깨 너머로 양손을 뻗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나는 그대로 몸을 반대편으로 회전시키며 죠의 무게를 버텨냈다.
무릎과 허리가 비명을 질러댔다.
시간상으로는 0.2초 남짓. 하지만 그 충격에 몸이 버텨줄 것인가.
가능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앗!!”
나는 내장에서부터 끌어올린 기합을 내뱉으며 죠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투콰앙-!!
* * *
저걸 든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18세에 체중 140kg의 소년, 브랜든 펭이었다.
필리핀계 미국인.
비만으로 학창 시절 내내 왕따를 당하고 지냈던 그는 오늘 처음으로 용기를 내 비싼 티켓 값을 치르며 링 서바이벌을 보기 위해 왔다.
친구와 함께 그는 이 순간을 자신의 뇌리에 평생 기억하게 됐다.
그리고 이 순간, 링에서 가장 빛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는 다이어트를 할 결심을 했다.
맨 앞자리라 확실히 보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앗!!”
링 위의 신이 자신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한 빅 죠를 들어 메쳤다.
브랜든뿐만이 아니었다.
그 경기장에 온 16만 명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을 뇌리에 새겼다.
프로필 상으로 키 190cm에 체중 100kg의 신이 죠를 넘기는 순간.
투콰앙-!
이어진 호쾌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젠장, 믿고 있었다구! 신!!”
친구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브랜든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마구 환호를 지르며 날뛰었다.
경기장을 찾은 수십만 명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순간 확 달아오른 상태에서 갑자기 한 선수가 움직였다.
크리스 젠코.
하나로 묶은 금발을 흩날리며 링 안으로 난입한 그가 미들 로프를 밟고 힘차게 위로 날아올랐다.
그 몸이 뒤로 회전했다.
스프링보드 문설트……였지만 젠코가 쓸 때만큼은 ‘라이언설트’라는 이름의 피니시 기술이 되었다.
뒤로 정확히 270도 회전한 젠코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는 빅 죠를 향해서 떨어져 내렸다.
콰앙!
[Yeeeeeeeeeeeeaaaaaahhhh!!]
다시 한 번 멋진 순간을 보게 된 관객들이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라이언설트의 충격으로 죠가 순간적으로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다리고 있던 신이 내달려 그 안면에 무릎을 차 넣었다.
쩌억-!
브랜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신이 쓰러진 빅 죠를 잡고 커버에 들어갔다.
1, 2, 3……!
[Yeeeeeeeeeeeeeeaaaahhhh!!]
빅 죠의 탈락이 확정되는 순간 다시 한 번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큰 환호가 이어졌다.
“야야, 이거 분위기 좋은데?”
“랙다운이 이기는 거 아니야?!”
“당연히 이기겠지!! 신이 완전 멱살 잡고 끌고 가는데 말이야!”
4:3의 상황이 되자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이 환하게 웃었다.
16만의 관객들 대부분이 오늘 랙다운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버닝콩 측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빅 죠를 탈락시킨 나는 곧바로 젠코와 태그를 하고 뒤로 빠졌다.
‘죽는 줄 알았네.’
확실히 들어올리기는 했지만, 무게를 분배할 때 실수했었다가는 당장 허리가 작살이 났을 거다.
그럼에도 했다.
나는 나를 믿었고, 더욱이 신이라는 남자를 믿어주고 있는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더 이상은 안 하겠지만.
아니, 제기랄. 그거 한 번 들었다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났다.
“후우.”
숨을 몰아쉬면서 서있자니 옆에 서있던 테이커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나?”
“예, 어땠어요?”
“죽여줬다.”
“바티스타의 실수를 만회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완전히 우리 쪽으로 분위기가 넘어왔고.”
“그래, 잘 부탁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테이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방식으로 이 제거 매치에서 탈락할 예정이었다.
젠코의 다음으로 말이다.
경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버닝콩 측에서 나온 헌터는 특유의 올드스쿨 레슬링을 바탕으로 젠코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체인 레슬링으로 돌아가 해머링과 클로스라인, 팬듀럼 백 브레이커로 등을 조지며 호흡을 늦췄다.
[Booooooooooooooo-!]
느릿하게 돌아간 경기 양상을 보고는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
하지만 헌터는 영리한 레슬러였다. 물오른 랙다운의 기세를 늦추기 위해 일부러 저러는 것이었다.
젠코 역시도 어떻게든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한참 쉬다 나온 헌터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젠코를 잔혹하고 느릿하게 요리한 헌터는 자신의 피니시 무브인 페디그리를 준비했다.
엎드린 젠코의 머리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양팔을 붙잡고 뛰었다.
투콰앙-!
젠코의 안면이 링 바닥에 처박혔고 그와 함께 커버가 이어졌다.
1, 2, 3……!
젠코가 허무하게 탈락했다.
“우오오오!”
기뻐하며 포효하는 헌터.
경기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관객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헌터가 이렇게 강했나?
헌터. 이 자식 또 뒤에서 술수 부려서 경기 결과 바꾼 거 아니야?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해석하려고 하겠지.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해 테이커가 링 위로 나섰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응원의 챈트를 보내는 관객들.
하지만 물론 모든 결과를 알고 있는 나는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체력을 회복해둘 생각이었다.
‘테이커가 탈락하고.’
그다음으로 레이가 힘이 빠진 날 대신해 나서서 RVD를 처리한다.
하지만 직후, 헌터의 기습을 받고 탈락하면서 상황은 랙다운이 2대1까지 수세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저력을 발휘해 두 사람을 처리하고 이 쇼를 훔치게 되는 결말.
‘할 수 있다.’
나는 그 말을 되새겼다.
땀이 턱에서 뚝뚝 떨어졌고 호흡은 아직 다 정돈이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끝없이 자기 암시를 걸었다.
경기 시간은 아직 20분 이상 남은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링에 나서는 것은 10분 뒤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10분간, 나는 두 거물들을 상대로 싸워 이겨야만 했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호흡을 정돈하며 경기를 계속 지켜보았다.
헌터와 테이커는 서로 대등했다.
관객들은 테이커를 응원하면서 그 승리를 기원했다. 그리고 그런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테이커가 점점 헌터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격투기 기술에서 따온 언더 훅과 연이은 펀치. 헌터는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코너에 내몰렸다.
그리고 뒤로 물러난 테이커가 달려들어 헌터를 들이받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회피하는 헌터.
턴버클에 머리를 부딪힌 테이커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고 헌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헌터는 테이커의 뒤에 드러누우며 손으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일명, 롤 업.
자연스럽게 테이커의 어깨가 바닥에 닿으며 심판이 카운트를 셌다.
1……!
아무리 머리에 갑작스럽게 충격을 입었어도 테이커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2……!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헌터는 로프에 발을 걸쳐 테이커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무게를 실었다.
명백한 반칙.
3……!
그게 쓰리 카운트로 이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
거대한 야유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는 우연히 관객석의 팬들이 하는 몇몇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저 X팔놈이!!”
“Fu-k you! Hunter!!”
“You Son Of Bi-ch!! Fu-king Co-k Jugling ThunerCu-t!!”
“느금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멋들어지게 이긴 것처럼 포효하는 것이 헌터라는 남자의 진면목이었다.
“……이거 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곧바로 심판에게 항의하기 위해 링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