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심판, 어딜 보는 거야?!”
테이커가 탈락한 직후, 링 안으로 들어간 나는 강하게 항의했다.
“헌터가 로프에 발을 걸쳤잖아! 반칙이라고! 카운트는 무효야!”
[Booooooooooooooooo-!!]
그런 내 말에 힘을 실어주듯 심판에게 크게 야유하는 관객들.
확실히 헌터는 테이커를 롤 업으로 커버하는 동안 로프에 발을 걸쳐 몸무게를 완전히 실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반칙.
하지만 심판은 그것을 보지 못했고, 고개를 내저으며 선언했다.
“테이커는 탈락이야. 신.”
“아니, 미친……!”
“됐다.”
바로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테이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자기 코너로 돌아가 웃고 있는 헌터를 잠시 노려보았다.
버닝콩 팀의 선수들은 그들끼리 반칙으로 승리를 챙긴 헌터를 보고는 잘했다는 듯 웃어 보였다.
“뒤를 부탁한다.”
경기 중에는 심판의 판정이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그는 곧바로 승복하고는 링을 굴러서 나갔다.
그렇게 테이커가 경기에서 탈락하고 버닝콩에서는 쭉 쉬고 있던 거트 엔젤이 링으로 나왔다.
대머리에 성조기 문양이 들어간 아마추어 레슬링 스타일 경기복.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남은 건 너희 둘이냐?”
“닥쳐, 대머리.”
“뭐, 뭐?!”
“어디 한번 덤…….”
“잠깐, 신.”
바로 그때, 레이가 나섰다.
“내가 할게.”
“레이…….”
“괜찮아. 쉬고 있어.”
그는 아직 빅 죠를 상대한 내 체력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Rey! Rey! Rey! Rey! Rey! Rey! Rey! Rey! Rey! Rey! Rey!]
압도적인 환호가 나왔다.
하지만 응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레이와 거트가 맞붙었다.
랙다운 시절부터 호흡이 잘 맞았던 두 사람인 만큼 전개는 완벽했다.
아마추어 레슬러 출신으로서 거트는 개미지옥과도 같은 그라운드 공방전으로 끌고 가려고 했고.
반대로 레이는 거기에 걸려들지 않고 타격기로 거트의 발을 묶어 대미지를 누적시키고자 했다.
퍼억!
“크윽!”
허벅지를 갈기는 로우 킥.
거트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자 레이가 달려들며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다리로 목을 감싸며 뒤로 돌았다. 헤드 시저스 휩이 터지며 거트의 몸이 휙 날았다.
콰앙-!
하지만 자신의 코너 쪽으로 내던져진 거트는 재빨리 태그를 했다.
그를 대신해 RVD가 나왔고, 레이가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테이커의 탈락으로 인해 순식간에 2:3까지 몰리게 된 여파였다.
원래대로라면 바티스타가 더 버티다 탈락하면서 시간을 벌어줘야만 했지만 실수가 벌어지면서 레이가 좀 더 희생을 하게 되었다.
“레이, 태그!”
“안 돼!”
내 말에 버럭 소리친 레이가 그대로 RVD와 공방을 이어나갔다.
[Waaaaaaaaaaaagggghhhh!!]
화려한 축제를 보는 듯한 광경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쿵!
로프를 밟고 뛰어오르면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싸움은 서커스와 프로레슬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다.
무척 절묘한 지점이었다.
만약 여기에서 좀 더 화려했다면 작위적이었을 거고 서커스로 여겨져 흥미가 식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 몰아붙이지 않으면 레이 미스테리우스와 RVD라는 이름이 울게 된다.
로프 반동 후, RVD에게 달려든 레이의 몸이 그대로 크게 돌았다.
[Uoooooooooooohhhhh!!]
RVD의 어깨와 팔을 지지대로 삼아 몇 바퀴 회전한 뒤 그대로 목에 다리를 걸고 크게 넘겼다.
RVD도 참 놀라운 것이, 그 기술을 돋보이게 만들어주기 위해 ‘수직’으로 받아서 접수했다.
콰앙!
정수리가 바닥에 꽂힌 후 몸이 그대로 힘차게 위로 뛰어올랐다.
그 호쾌한 모습을 보고는 관객들이 완전히 미쳐 환호를 보냈다.
‘목에 스프링이라도 달렸나.’
괴물 같은 양반들이다.
하지만 그 이후, RVD 역시도 지지 않고 레이에게 반격을 했다.
특유의 킥 공격으로 레이를 쓰러뜨리고는 로프 반동 후 바닥을 구르며 뛰어올라 레이를 덮쳤다.
롤링 썬더.
콰앙!
괴로워하는 레이를 뒤로한 채, 탑 로프 위로 올라간 RVD가 그대로 힘차게 하늘로 도약했다.
체감 상 대략 5미터.
개구리처럼 몸을 말았다 펴며 상대방을 덮치는 프로그 스플래시.
거기에 RVD는 자신의 프로그 스플래시가 제일 특별하다면서 ‘5성급’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였다.
파이브 스타 프로그 스플래시.
그 체감 높이는 대략 5미터.
탑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 RVD의 헤비급 체중이 레이를 덮쳤다.
투콰앙-!!
이런 빌어먹을.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두 사람 다 크게 다쳐도 이상하지 않은 엄청난 스플래시였다.
바닥에 누운 레이와 충돌한 RVD의 몸이 튕겨져 날아오를 정도.
그리고 커버가 이어졌다.
1, 2……!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는 레이.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RVD는 자신의 피니시 무브로도 쓰리 카운트를 따지 못하자 무척 불쾌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레이는 내게 더 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앞선 공격을 버텨냈다.
그리고 끝장을 내기 위해 다가온 RVD의 앞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다.
“으헉?!”
레이가 다리를 걸자 RVD가 그대로 미들 로프 위로 쓰러졌다.
[Yeeeeeeeeeaaaah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레이 미스테리우스의 피니시 무브인 619가 나오기 위한 최적의 자세를 세팅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링 서바이벌.
일반적인 기술로 끝내기는 조금 아쉽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레이가 소리쳤다.
“신……!!”
마침 RVD가 상반신 걸치고 쓰러진 미들 로프는 바로 내 옆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가 로프 반동 후 단숨에 달려왔다.
로프를 쥔 그의 몸이 회전하는 동시에, 나 역시도 옆으로 몸을 비틀며 슈퍼 킥을 날렸다.
쩌억-!
날카로운 파열음.
옆과 정면.
두 부위에서 동시에 타격을 당한 RVD는 옆으로 회전하는 동시에 힘차게 뒤로 나가떨어졌다.
완전히 자동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 같은 접수였다. 관객들이 순간 자리에서 모조리 일어났다.
그리고 로프를 밟고 뛰어오른 레이가 쓰러진 RVD를 덮쳤다.
그대로 커버로 이어졌다.
1, 2, 3……!
그렇게 한 걸음.
“좋아!!”
[Yeeeeeeeeeeeaaaahhhh!!]
2:2까지 쫓아왔다.
랙다운 팀에 몰입하고 있던 관객들이 순간 큰 환호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직후.
탈락한 RVD가 링 바깥으로 나가기도 전, 안으로 들어온 트리플H가 레이의 복부를 걷어찼다.
이어지는 그의 피니시 무브.
페디그리.
콰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1, 2……!
당황한 내가 레이를 구하기 위해 나가려고 했지만 조금 늦었다.
3!!
[Booooooooooooooo-!]
탄식하며 야유하는 관객들.
하지만 트리플H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선역인 양반이 하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겁하고 더러웠다.
역시 헌터는 악역을 할 때 더 빛나는 남자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내두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을 굴러 나가는 레이.
그로서 남은 건 세 사람.
헌터와 거트 엔젤.
반대편에는 나 하나.
최악이었다.
조금 쉬었지만 아까 무리를 해서인지 체력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SIN……!]
그래도 나를 믿는 거겠지?
[SIN! SIN! SIN! SIN! SIN……!]
그러니까 모두 내 이름을 이렇게 애타게 연호를 하는 것이겠지?
그 기대에 응해주자.
16만의 관객이 날 원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는 수많은 팬들의 기대 속에서 천천히……는 개뿔.
아예 로프를 잡고 훌쩍 뛰어 당당하게 링 안으로 들어섰다.
쿠웅!
“좋아, 해보자고.”
목을 뚜둑 꺾으며 노려보자 나를 피식 비웃은 헌터는 뒤로 물러나 거트 엔젤과 태그를 했다.
그게 문제였다.
완전히 핸디캡 매치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상대를 몰아붙여도 태그를 하면 또 새로운 상대가 링으로 들어오게 되는 셈이었다.
최악의 상황.
거기다 상대는 현재 버닝콩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두 선수였다.
트리플H와 거트 엔젤.
따라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승리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두 선수를 맞상대해서 이기는 건 말이 안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또 에디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가 생전 자주 썼던 방식을 모방해서 사용한다면 내가 두 사람을 모두 쓰러뜨리고 승리를 차지하는 것도 가능했다.
거기에 내 캐릭터의 위상과 관객들의 반응 역시도 죽여주겠지.
‘그전에 일단.’
나는 링 위로 나온 거트 엔젤과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거트는 아마추어 레슬링을 베이스로 온갖 기술을 다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온갖 경험치로 단련된 내가 조금은 진심으로 경기에 임해도 잘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빠르게 가죠.”
“그러지.”
그와는 처음으로 맞붙는 상황.
하지만 우리는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일진일퇴를 반복했다.
내가 주먹을 날리면 거기에 맞아주던 거트가 수플렉스로 반격하고.
반대로 내가 그를 들어 올려 슬램을 갈기면 그 상태에서 곧바로 바닥에서 그래플링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거트와 내가 서로 다른 타입의 선수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합은 완벽히 맞았다.
서로가 반대되는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끼워 맞춤으로써 빠른 속도로 기술이 계속 이어졌다.
[Waaaaaaaaaaaaggghhhhh!!]
그러면서 큰 기술이 들어갈 때마다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거트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대단하군. 아직 어린놈이.”
“감사합니다.”
“어디서 레슬링을 배웠나?”
“……하늘이 가르쳐줬죠.”
정확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뒤쪽으로 돌아들어와 저먼으로 넘기려는 거트의 손을 붙잡고 가볍게 머리를 부딪쳤다.
정말 괜찮은 느낌이었다.
브롤러에 테크니션 성향인 나와, 기본기부터 철저히 다진 테크니션이면서 관절기 중심의 유럽 스타일이 가미된 거트 엔젤.
거기다 머리가 풍성한 나와 반대로 대머리인 거트였기에 어울리는 조합이라면…….
이건 너무 개소리인가?
“갑니다!”
신호를 보낸 나는 거트의 안면에 그대로 슈퍼 킥을 차 넣었다.
쩌억-!
[Yeeeeeeeeeeeeeaaaahhhh!!]
현재 내 피니시 무브는 여기에서 하이 니로 이어지는 연계기였다.
존경하는 리빙 레전드, 존 마이클스에게서 배워와 만든 기술.
하지만 거트가 무릎을 꿇은 직후, 링으로 난입한 트리플H가 나를 공격하며 흐름을 끊었다.
[Booooooooooooooooo-!]
당연하다는 듯 쏟아지는 야유.
밀려나면서 동시에 나는 옆에 있던 심판과 강렬하게 충돌했다.
“크헉?!”
심판이 그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동시에 링 위에 혼란이 찾아왔다.
경기의 가장 중요한 스팟으로 이어지기 위한 순간이었다.
“거트, 괜찮나?”
헌터가 거트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나는 링 밖으로 굴러나갔다.
[Booooooooooooooooo-!]
“야! 이 비겁한 새끼야!”
“죽어! 헌터 이 새꺄! 죽어!!”
“BullSh-t!!”
각기각색의 팬들이 헌터를 향해 마구잡이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거, 만약 나도 경기 내용을 모르고 보는 입장이었다면 함께 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겠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경기는 나의 승리로 끝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걸 몰라서 다들 분통을 터뜨리는 거니까.
난 그러한 의지를 드러내듯 링 바깥에서 철제의자를 접어 가지고 다시 링으로 돌아왔다.
에디의 방식.
그는 이 업계에서 유일무이하게도 ‘비겁한 선역’으로 활약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말인즉슨 팬서비스의 일환으로써, 에디와 같은 짓으로 경기를 풀어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방법이 뭐냐면.
“뭐, 뭐야!”
“덤벼!”
[Yeeeeeeeeeeeaaaahhhh!!]
화끈한 내 행동을 보고는 크게 환호를 보내주는 관객들.
하지만 거기에는 우려의 시선도 섞였다. 내가 이대로 헌터를 후려치면 당장 반칙패로 랙다운의 패배가 확정되기 때문이었다.
“죽여버리겠어!!”
흥분한 나는 의자로 바닥을 쾅쾅 두드리며 헌터를 도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쓰러진 심판이 천천히 일어났다.
“이, 이러지 말라고!”
놀란 헌터가 소리쳤고.
쓰러진 심판이 일어나는 시점에 맞춰 의자를 헌터에게 던지자, 그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고.
나는 그대로 기우뚱 쓰러졌다.
깨꼬닥.
“……?”
“…………???”
의아한 눈으로 지금 상황을 바라보는 심판과, 더 당황한 채 자신의 손에 들린 의자를 바라보고 있는 헌터.
조금 전 ‘콰앙!’ 하고 울린 소리.
헌터의 손에 들린 철제의자.
그 앞에 대자로 널브러진 나.
그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심판은 망설임 없이 헌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반칙! 탈락!”
[Yeeeeeeeeeeeeeaaaahhhhh!!]
지금껏 비겁한 행동을 저질렀던 그가 같은 방식으로 탈락하자 관객들이 힘차게 환호를 보냈다.
그런 상황에서 난 계속해서 의자에 맞아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
깨꼬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