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16화 (216/634)

216.

“말도 안 돼!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내가 왜 탈락인데!”

“그렇다면 헌터, 당신 손에 왜 철제 의자가 들려있는 거지?”

“아니, 하……!”

그동안의 업보가 터졌다.

안 그래도 주변 반응으로 심판 역시 누군가 반칙을 저지른다고 의심하고 있던 상황에서, 헌터는 빼도 박도 못하고 탈락하게 되었다.

일반 경기에서 철제 의자로 상대방을 내리치면 당연히 반칙패다.

나는 에디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우리 둘의 이름이 번갈았다.

기절한 척 누워있던 나는 심장이 흥분으로 쿵쿵 뛰는 걸 느꼈다.

비겁한 선역.

세상에서 에디 비테레로 이외에는 절대로 소화할 수 없는 기믹.

내가 그것을 따라했을 때, 행여나 역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나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흥분해 분노를 토로하던 헌터가 계속된 심판의 선언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거칠게 링 바깥으로 나갔다.

관객들이 그를 위해 노래했다.

[Na~Na~Na~Na~!]

그 유명한 ‘굿바이 송’이었다.

[Na~Na~Na~Na~!]

그때쯤 하여 나는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Hey! Hey! Hey! Good Bye!]

즐거워하는 관객들.

퍼포먼스가 제대로 먹혔다.

기분 좋게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반대편에 쓰러져있던 거트가 나와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16만 명의 열광적인 반응을 느낀 그가 씁쓸한 듯 웃어 보였다.

“……미쳤군.”

“어떻게 하죠?”

“네가 책임져. 인마.”

입술을 비죽인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선배의 의견을 물어보기는 했지만, 사실 이후로는 딱히 별다른 짓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팬들은 에디와 나의 이름을 계속 연호하면서 경기를 즐겼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거트와 맞붙어 젊음의 패기로 그를 잡아냈다.

“하아, 하아…….”

서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거트.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에서 그 안면에 슈퍼 킥을 먹였다.

쫘악-!

충격으로 휘청거리다 이내 버티지 못하고 거트는 무릎을 꿇는다.

뒤로 빠져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곧바로 그를 향해 돌진했다.

먹잇감을 덮치는 짐승처럼.

쩌억-!

무릎을 들어 올려 안면을 후려갈겼다.

거트의 몸이 그 충격으로 순간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나 역시도 중심을 잃고 데굴데굴 구른 뒤 겨우 중심을 잡았다. 관객들의 환호는 최고조에 달했다.

한때 지나 싶었는데, 나는 그야말로 에디의 가호를 받았다.

[1……!]

쇼를 훔쳤고.

[2……!]

승리를 도둑질했으며.

[3……!]

비겁한 동시에 더없이 매력적인 승자가 되었다.

땡땡땡!!

그렇게 40분이 넘도록 이어진 남자 5:5 제거 매치의 최종 승자는 나와 랙다운 팀이 되었다.

[Yeeeeeeeeeeeeeaaaahhhhh!!]

크게 환호하는 사람들.

내 테마의 기타 연주 파트가 날카롭게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힘들었다.’

커버를 마친 뒤, 바닥에 코를 처박고 쓰러진 나는 쓰게 웃었다.

환호에 귀가 먹먹해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기분 좋은 소리였다.

오늘은 이걸 자장가 삼아서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환호가 점점 커졌다.

대체 뭔가 싶어 돌아본 나는 입장로를 통해 나오고 있는 블루 팀 선수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 이런.’

잊고 있었다.

조금 전 그걸 통해 랙다운의 링 서바이벌 승리가 확정되었다.

우리들의 승리다.

* * *

[신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3:0까지 몰렸던 랙다운을 이끌고 승리의 깃발을 꽂습니다!]

[그야말로 팀워크의 승리로군요! 캡틴 로건과 테이커가 신을 어깨 위에 올립니다! 모두가 신과 에디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에디도 분명 자신의 팀이 승리하는 광경을 보고 있을 겁니다!]

[멋진 밤입니다!]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백스테이지의 복도.

링 서바이벌 방송이 그런 멘트로 마무리되었고, 모두가 황홀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방송은 끝났지만, 이후 관객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낸 뒤 무대 장비를 해체하는 것까지가 일이었다.

직원들이 모두 바쁘게 백스테이지를 오가는 가운데, 두 남녀가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한 남자는 차보 비테레로.

오늘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으나, 따로 경기장에 와서 삼촌이 입장하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는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치는 옆의 여성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슬퍼서 우는 게 아니야.”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그녀가 이윽고 씨익 웃어 보였다.

“내 남편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남자였는지를 확인했더니 너무 기뻐서 그런 거야.”

“……숙모님.”

여인의 이름은 비키 비테레로.

남편인 에디가 사망한 이후 집안을 지탱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랙다운에서 활동했던 여걸이었다.

특별히 바트의 허락을 받고 이곳에 온 그녀는 큰 감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 업계가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원망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곳에 남아있었다.

언제까지?

아마.

에디의 의지를 계승한 저런 남자가 나오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

감동에 차 방송이 끝난 모니터링TV를 올려다보고 있던 비키는 이윽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옆을 돌아보자 고릴라 포지션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차보가 슬쩍 권했다.

“인사라도 나누실래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비키가 손수건을 쥔 채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그러자 그녀를 알아본 선수들이 공손하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전설적인 선수의 아내이자, 스스로도 업계에 족적을 남긴 그녀인 만큼 존경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고릴라 포지션 안으로 들어선 비키는 많은 선수들과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신을 발견했다.

다들 자신을 알아보며 자리를 비켜줘, 비키는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신을 향해 다가갔다.

고된 싸움을 끝마친 그는 엉망진창으로 지친 상황에서도 비키를 보고는 쾌활하게 웃어보였다.

“여사님.”

손을 가져가 손등에 입을 맞추는 여유까지도 부렸다.

그 앞에서 얼룩진 얼굴로 부드럽게 웃은 비키가 이어 한마디를 내뱉었다.

“고마워요.”

역사적인 날이었다.

* * *

링 서바이벌은 그야말로 역대급의 호응 속에서 막을 내렸다.

이어진 후속 매체들도 모두가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에디를 기리며 예의를 갖췄다.

그리고 한동안 멕시코 쪽에서 내 티셔츠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에디를 기리는 각본의 중심인물로서 쇼를 진행했던 일은, 내 캐릭터에 있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회사 내에서의 내 평가도 천장을 꿰뚫을 기세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냥 나 자신이 좋았다.

멋진 경험을 했다.

다시 한 번 내가 죽더라도 이 사랑하는 업계에 영원히 남을 드라마를 한 편 쓴 것이었다.

[고마워요.]

경기를 끝내고 돌아온 직후, 비키 여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뒤, 원치 않는 WWF 생활을 했던 그녀는 정말로 숱하게 나쁜 일을 겪었다.

남자를 밝히는 아줌마 각본.

뚱뚱보 아줌마 각본.

징징거리는 권력자 각본.

바트는 웃기다고 생각해 그 따위 것들을 실행시켰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지만, 비키에게는 결코 좋은 기억일 수 없었겠지.

그리고 회사를 잠시 떠나있는 지금 시점에서 비키는 프로레슬링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이후 생활고로 인해 몇 번이나 복귀하고 계속 비웃음을 당하는 악역 역할을 맡으며 고생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 그녀가 정말로 WWF를 떠날 때, 지금까지 고생한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때 비키는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에디가 그랬던 것처럼 프로레슬링을 사랑했구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 고생이 미화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실제로 커리어 내내 비키는 굉장히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으니까.

마지막에는 결국 자신이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이번 일이 그것을 조금 일찍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정말, 에디를 기리는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영광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회사 내에서는 내 활약에 대해서 대부분 좋은 반응을 보내주었다.

이전까지 연봉 문제나 긴 휴가로 불만을 가졌던 선수들이 단숨에 나를 중요인사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테이커가 선수들을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를 계기로, 완전히 불만이 사그라졌다.

링 서바이벌으로부터 일주일 뒤, 애프터 쇼가 있는 날이었다.

랙다운에서는 선수들이 쇼의 시작 전에 모여서 테이커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지는,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풍습이 하나 있는데.

그 자리에서 날 불러낸 테이커는 선수들 앞에서 선언했다.

“다들, 지금껏 이 자식한테 불만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한 내가 되묻자 테이커가 머리 위에 팔꿈치를 턱 올리며 제지했다.

“넌 조용히 하고 있어라.”

그 말에 나는 합죽이가 되었다.

뭐, 아무리 그래도 테이커가 한 건 제대로 해낸 내게 나쁜 말을 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두 달씩이나 휴가를 다녀왔고 그동안 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아 챙겼으니까.”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테이커.

그가 나와 케인 사이에 잠시……라고 하기에는 꽤 길었던 분쟁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말인즉슨 알고 있는 상황임에도 일부러 이렇게 말한다는 뜻이겠지.

회사 내에서 쏠리지 않게 균형을 잡는 한편, 나를 커버해주려는 그런 행동이 순간 좀 감동적이었다.

전생의 나는 테이커가 지나가다 보는 벌레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날 아예 자기 애완 멍멍이처럼 귀여워하며 말했다.

“나도 안다. 그로 인해 한동안 락커룸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거. 하지만 이번 일로 증명이 되었지.”

“저 녀석이 천만 달러를 받아갈 가치가 있다는 거 말입니까?”

그렇게 말한 건 레이였다.

마스크를 쓴 채 상자 위에 앉아있던 그가 싱긋 웃었다.

“물론 동의합니다.”

“그래. 새파란 애송이가 귀염성이 없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테이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녀석은 그래도 괜찮다. 만약 이중에 아직까지 이 녀석에게 불만이 있는 놈이 있다면 내 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반발하는 선수는 없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커의 이야기에 순응하는 눈치였다.

‘확실히 랙다운은 다르군.’

버닝콩보다 좀 더 가족적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테이커라는 가장을 중심으로 다들 똘똘 뭉친 분위기였다.

버닝콩 선수들도 대부분 날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기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경우도 많은데.

테이커는 역시 이 업계의 존경을 받는 선수답게 카리스마로 락커룸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커의 소집(?)이 끝난 뒤 내 곁으로 다가온 레이는 다른 부분에 주목한 것 같았다.

“테이커가 안 그러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잘하는 싹수가 보이는 후배를 챙겨주려고 든다니까.”

“시나 같은 녀석이요?”

“시나 때도 그랬지. 잘 나가니까 다들 은근히 시기했는데, 테이커가 한마디 하니까 조용해졌어.”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물론, 지금 락커룸에서 네게 불만을 가진 놈은 아무도 없을 거다. 넌 그야말로 혼자 힘으로 이 랙다운 전체를 회생시켰으니까.”

“과찬이십니다.”

애초에 일이 그렇게 진행된 이면에는 나라는 원인이 있는 만큼, 정말로 딱히 잘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시간은 더 걸렸겠지만, 어딘가 부족하더라도 랙다운은 분명 또 한 명의 스타를 발굴해 키워냈을 터였다.

‘물론 내가 출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레이가 다시금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이 양반은 링 서바이벌 이후 나에게 큰 호감을 표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JBL이 꼼짝도 못하고 있는 거 아니냐. 저놈, 와이엇은 진짜 더럽게 괴롭혔는데.”

“그, 그렇군요.”

“말한 김에 와이엇 그 녀석도 부상 회복하고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말이야.”

브로큰 와이엇.

오랜만에 GCW 시절 선배였던 그는 이름을 들은 나는 반가움과 동정심을 동시에 느꼈다.

……JBL의 괴롭힘을 견딘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디 형제들의 자서전에서 읽었다.

어쨌든.

와이엇은 내가 랙다운에 오기 직전, 무릎 부상을 제대로 당해 지금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랙다운 이적 직후에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다시 한 번 대립을 해보자고 이야기했었지.

물론 그때까지 랙다운에서 내 위치를 공고히 해야겠지만 말이다.

아직은 나 혼자만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대립 상대는 정해뒀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케인과 만나 그 대립 상대에 관해 털어놓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조심스럽게 한 가지 부탁을 하나 해왔다.

“바티스타를 부탁해도 될까?”

“……바티스타요?”

“그래. 그 친구, 요새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그는 내게 바티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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