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17화 (217/634)

217.

게이브 바티스타.

그는 시나나 오튼처럼 2000년대 초반 데뷔해, 메인 이벤터의 반열까지 올랐던 선수 중 하나였다.

마치 짐승과 같은 모습.

한때 그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모두가 헌터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전성기의 바티스타는 마치 잘 만든 마피아 영화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미남 배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전성기는 짧았다.

나이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시나와 오튼이 거의 2020년대까지 활동한 것에 비해 바티스타는 2009년쯤 은퇴해 영화계로 가버렸다.

이해는 한다.

나이는 큰 문제였다. 데뷔 당시부터 30대 초반이었던 바티스타는 빠르게 노쇠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비슷한 햇수 동안 활동했었던 락콜드처럼 불멸의 기록을 쌓아 올렸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비교대상이 너무 넘사벽인가.

락콜드는 남부 무식쟁이 블루 컬러의 캐릭터를 선보였으나, 실제로는 무척 영리한 선수였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그가 팟캐스트에서 말하는 레슬링 철학을 들어보자면 확실히 그런 면모가 느껴졌다.

기술구사력도, 접수력도 좋고.

언변도 뛰어나고. 외모 역시도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고.

거기다 대머리였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긴 WWF 역사상, 아이콘이나 그에 근접했다고 평가를 받는 레전드 선수들은 대부분 탈모였다.

캡틴 로건은 2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탈모가 시작되었고, 락콜드도 30대 때 탈모가 찾아왔다.

시나도 말년에 탈모.

테이커도 탈모.

더 팍도 탈모가 와서 밀었고.

헌터, 마이클스도 탈모.

모두 탈모다.

유일하게 캐나다 출신의 그렉 하트 선생만 탈모가 아니었다.

그들은 프로레슬링의 신神에게 자신의 머리털을 바친 대가로 그런 레슬링 스킬을 선물 받게 된 것이다!

……잡설이 길었군.

어쨌거나, 그 바티스타도 탈모라 커리어 후반에는 빡빡 밀었지.

아니, 아니. 제기랄.

이게 아니라.

그래서 바티스타가 레전드로 구분할 수 있는 선수냐고 묻는다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 정치력으로 회사를 장악한 헌터 쪽 파벌이라서 이후로 꽤나 높은 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레볼루션 각본 이후로 기대만큼의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일단 전체적인 레벨 자체가 다른 레전드 선수들에 비해 낮았다.

그렉 하트는 말했다.

‘프로레슬러에게는 크게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한데, 바로 외모와 기술, 언변이다.’

그렇게 해서 구분했을 때.

전성기의 로건은 외모와 언변은 9점 정도, 링 위에서의 기술은 1점이라고 평가를 했다.

그리고 자신은 외모/기술/언변에서의 점수를 7/12/7이라고 평가하면서 그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만천하에 드러내보였지.

그렇게 봤을 때 바티스타는.

‘아마, 10/1/2 정도?’

그나마 외모도 탈모로 머리를 밀어버리고 난 뒤 6까지 떨어졌다.

아마 헌터 라인에 들어가 그에게 잡을 받지 않았더라면 메인 이벤터조차 되기 힘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한 번 제대로 된 각본을 찍었던 바티스타는 WWF 입장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상품이 되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를 원래 역사대로 한 번 밀어준 것이었다.

하지만.

“바티스타가 링 서바이벌에서 실수를 했던 걸 기억해?”

“예, 저라면 자살할 거예요.”

쪽팔려서.

그때 바티스타는 단순히 몸을 덜 풀어서 쥐가 났는데, 그게 큰 부상인 줄 알고 탈락했다고 한다.

“음, 어쨌든. 버닝콩 때처럼 힘이 안 나오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야 그렇지.

랙다운 이적 이후 레볼루션 때의 카리스마를 잃은 바티스타는 더 이상 그만큼 위상의 고점을 찍지 못했다.

“네가 좀 도와줬으면 해.”

“대립을 진행하라는 겁니까?”

“그래, 지금 바티스타가 악역이니까 나름 괜찮지 않나 싶은데.”

“글쎄요. 저는 전혀 다른 사람과 대립을 하고 싶었는데요.”

“누구?”

“……어라, 말해도 괜찮아요?”

“뭔데 그래?”

“당신이요.”

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발 아래의 눈동자가 순간 황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사실 그렇잖아요. 내가 회사를 2개월간 쉬었는데. 실망한 팬들도 있을 거고. 그걸 살리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거든.”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지금 몇 년 동안이나…….”

“그러니 제가 바티스타와 대립하는 동안 다시 몸을 만들고 저와 대립할 준비를 하세요. 도련님.”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케인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잠깐 하는 정도라면 괜찮겠지.

그렇다.

케인이 협력 가능한 대상이라고 판단하게 된 나는 그와의 대립을 통해 랙다운 유니버스에 어떤 존재로서 정착할 생각이었다.

바로 ‘조커’ 말이다.

레전드 선수들, 메인 이벤터, 하이 카더 선수들을 가리지 않고 대립하며 그 중심에 서는 선수.

그래, 마치 과거의 에디처럼.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생에는 케인이 이루지 못했었던 꿈도 함께 이뤄줄 생각이었다.

지금 놀라서 당황하면서도 딱 잘라 거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니 확신이 섰다.

* * *

사실, 케인이 말하지 않았어도 바티스타와는 한 번쯤 다시 이야기를 나눠볼까 싶던 찰나였다.

갑자기 메인 이벤터로 치고 올라갔지만, 랙다운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건방진 태도로 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티스타가 성격이 마냥 쓰레기 같은 인간도 아니고.

옛날의 오튼과 비슷한 이유로 날이 서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맞잖아. 그냥 뭐 그, 스쿱 파워 슬램으로 드는 게 뭐 힘들다고.”

정정한다.

이 자식, 쓰레기 맞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 눈치도 없었다.

테이커가 내 뒤를 봐주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한 시점인데 말이다.

……얼마나 그 말이 잘 통했으면 후배들을 괴롭혀대기로 유명한 쓰레기 JBL도 나만 보면 활짝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걸어올 정돈데.

12월의 랙다운 페이퍼뷰인 ‘파이널 아마겟돈’의 포스터 촬영일.

그냥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가 포즈만 취하면 돼서 선수들은 제각각 모여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심지어 테이커가 촬영 감독과 합의하에 맥주까지 들여와 약간의 친목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마 바트가 본다면 남자답다며 자기도 껴서 마실 거고, 티파니는 몸 좀 생각하라며 다 치우라고 할 광경이었다.

회사 일을 하고 있는데 맥주를 마시는 건 확실히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행동이라서 나는 아예 안 마실 생각이었는데.

“야야, 신. 한잔해라.”

“인마, 마셔! 테이커가 사는 거니까. 요새 제일 귀여워하고 있는 네가 안 마시면 실망할 거다.”

“아니…….”

“마셔.”

무뚝뚝하게 말하면서 테이커가 맥주를 내미니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배들의 예쁨을 받고 있는 내가 아니꼬웠던 것일까.

여성 선수인 니키 제임스를 억지로 붙들어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던 바티스타가 말한 것이었다.

‘신이 빅 죠를 들어 올린 건 사실 별거 아닌 행동이다.’라고.

선배들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날 재미없다고 여겨 떠난 시점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니키 제임스가 GCW 시절부터 나와 함께 일한 절친이라는 사실이었다.

“글쎄.”

머지않은 미래에 트리쉬로부터 잡을 받고 성장한 그녀는 여성부를 이끄는 선수가 되었다.

“힘으로 든 게 아니라니까? 달려오는 반동으로 든 거지.”

“오히려 대단한 거 아니야? 단순히 드는 게 아니라 버티면서 돌리려면 유연성이 필요할 텐데.”

“그래, 그래.”

“힘들어 보이던데.”

“신~ 허리 힘 좋아?”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티스타에게 찍힌 니키가 걱정인지 다들 근처에서 도란도란 떠들다 한마디씩을 거들어주었다.

그런 걸 계속 겪는 아마 바티스타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불쾌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재능 있는 선수였던 니키 제임스는 바티스타로부터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고 이후 회사를 나갔다.

괴롭힌 이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처럼 바티스타는 니키를 꼬시려고 했는데, 니키가 전혀 넘어오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버였던 나를 보고도 항상 밝게 웃어주는 그녀였기에 이후 그 일을 알고 난 적잖이 화가 났었다.

……물론 니키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는 못했지만.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여성 레슬러의 입지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도 똑같은 존중을 받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함께 고된 여행을 하며 스케줄을 소화하는 락커룸 동료였으니까.

현재 시점에서 대부분의 여성 레슬러들은 남자들을 즐겁게 하는 아이 캔디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괴롭히고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

따라서 바티스타의 행동은 좀 교정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난 녀석을 좀 더 나은 레슬러로 만들고 싶었다.

적어도 링 위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과 달리 여자 괴롭히는 짓은 하지 않도록 말이다.

“잠깐 화장실 좀.”

바로 그때, 계속 질척대는 바티스타의 태도에 지쳤는지 니키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디바들의 말을 듣고 귀가 벌겋게 물들어 있던 바티스타가 이윽고 니키의 손목을 덥썩 붙잡았다.

“아……!”

“야야, 어딜 가?”

“아니, 화장실 간다니까?”

“이거 다 마시고 가. 그럼.”

니키가 마시고 있던 맥주 캔을 들어 내미는 바티스타

그걸 낚아챈 내가 꿀꺽꿀꺽 마셔 비워내고는 니키에게 말했다.

“다녀와.”

“으, 응?”

“넌 손 놓고.”

“지금 명령하냐?”

“애새끼처럼 굴지 마.”

“애새끼? 너 지금 나한테 애새끼라고 했냐?”

“아니, 네 행동이 애새끼 같다고. 말귀를 못 알아먹냐.”

“아, 아얏……!”

니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아무래도 바티스타가 힘을 주고 있는 모양이라 내가 손을 뻗었다.

디바들이 바티스타를 말리기 위해 가까이 다가온 시점이었다.

우드득!

“크악?!”

내가 손목에 튀어나온 뼈를 잡고 힘차게 돌리자 바티스타는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손을 놓았고, 나는 놀라 뒤로 물러난 니키에게 곧바로 이야기했다.

“다녀와. 돌아오지 말고.”

“으, 으응.”

“다 따라가 줘요.”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디바들이 니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잠시 소란이 벌어졌다.

“뭐야, 뭐야?”

“너희 왜 그래?”

“신 선수, 무슨 일 있어요?”

일촉즉발의 상황을 알아챈 이들이 우리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바티스타를 놓아주었다.

뭐, 이 시점에서 ‘그걸 멍청하게 왜 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몰라서 하는 말이었지만.

녀석이 무슨 수를 써도 나에게는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여자들 앞에서 허세 부리는 건 괜찮은데. 괜히 가만히 있는 나까지 걸고넘어지지는 말지 그래?”

“이 새끼가 어디서 명령이야!”

“왜, 하면 안 돼?”

“뭐, 뭐?”

“애새끼라. 링 서바이벌에서 똥 싸지른 거 다 받아서 치워줬더니만 이딴 욕이나 먹고 있어야 되나?”

나는 다소 차갑게 말했다.

“애초에 너 이 위치까지 올라오게 밀어준 거 누구야? 뇌가 있으면 나한테 이렇게 못 하지. 정신 차려. 바티스타. 환호 좀 몇 번 나왔다고 지금 스타 된 거 같지? 그거 다 내가 먹어버리는 수가 있다.”

“이 개새끼가!”

참지 못한 놈이 달려들었다.

휘둘러지는 주먹을 뒤로 물러서며 피한 나는 그대로 오튼에게 했던 것처럼 테이크다운을…….

바로 그때였다.

터억.

뒤쪽에서 뻗어온 진갈색의 손이 바티스타의 주먹을 막아냈다.

뭔가 싶어 돌아본 나는 특유의 레게 머리를 흔들며 나오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잠시 굳어졌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함부로 주먹질을 하고 있는 거야?”

부커-리 선생님이셨다.

“등뼈를 부숴주마.”

험악하게 말하며 나서는 부커.

그는 평소 나를 무뚝뚝하게 대하는 것과는 달리 바티스타의 행동에 진짜로 열이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당황해 생각했다.

바티스타는 데뷔 전, 취객 처리를 하는 술집 바운서 일을 했다.

그 나름대로 싸움꾼이었지만.

‘어, 바티스타가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데.’

문제는 내 옆의 부커가 무려 ‘무장강도’ 경력까지 있는 진짜배기 갱스터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자, 잠깐만요! 부커!!”

“넌 물러서 있어. 안 그래도 저 새끼 교육 좀 하려고 벼르던 참이었으니까.”

“아니, 아!!”

진심으로 빡친 부커는 내가 뒤에서 억지로 끌어안아도 무시하고 바티스타를 향해 다가갔다.

바티스타도 여기에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주먹을 들고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선배님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싸움이야~?”

“난 부커한테 50달러!”

“다들 걸어!”

“죽여버려라. 부커.”

아니, 테이커까지!

90년대.

분위기가 험악했던 락커룸을 거쳐 온 선배들이 보기에는 이게 장난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좀 그만해요!!”

결국 내 말림은 헛되이.

부커는 왼손 잽과 오른손 스트레이트로 바티스타를 박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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