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부커의 원투를 얻어맞고 코피를 흘린 바티스타는 기세를 잃지 않고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프로레슬링과 MMA, 그리고 실전 싸움 간에는 까마득한 차이가 존재했다.
잔뜩 성이 난 부커를 제압할 수도 없어 당황해하고 있던 나는 잠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에 관해서 이후 다른 선수들의 끈질긴 물음으로 수도 없이 이야기를 해주게 되는데.
바티스타가 링 위의 짐승이라면, 현실의 부커는 완전히 파괴자였다.
뻐억!
부커는 태클을 먹이려는 바티스타의 등을 팔꿈치로 찍어버렸다.
“크헉!”
그리고 힘이 빠진 바티스타의 복부에 연거푸 무릎을 먹이고 언더에서 허리를 휘감아 올리는 완벽한 스윙……!
아니, 난 왜 신이 난 걸까.
콰앙!
무슨 해머로 철골 기둥을 내리찍는 것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부커의 어퍼가 바티스타의 턱을 후려치고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흩날리는 레게 머리.
검은 피부.
남자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제기랄.
“그만 좀 해요!!”
이미 늦었지만.
나는 부커의 뒤에서 달라붙으며 그를 제지했다. 숨을 몰아쉰 그가 바티스타에게 발길질을 했다.
“너 이 새끼, 한 번만 더 이놈 건드렸다가는 정말 죽는 거야.”
“으앙! 그만해!”
나는 애처럼 우는 소리를 내며 겨우 부커를 뜯어말렸다.
숨을 씩씩 몰아쉬는 그를 진정하라며 좀 바깥으로 내보내고서 다시 돌아오자 바닥에 쓰러진 바티스타를 둘러싸고 있는 선배들이 보였다.
뻔한 조합이었다.
테이커, JBL, 레이, 젠코까지.
“하아…….”
“오, 돌아왔냐?”
짓궂게 말을 걸어오는 젠코.
“아니, 좀 같이 말려주시지.”
“얘 죽은 것 같은데.”
“예?”
어이가 없어 되물은 나는 꿈쩍도 않고 있는 바티스타를 살폈다.
“아니 좀, 몸 좀 가누게 하고 깨워주시지 그러셨어요!”
“피 묻는 거 싫어.”
“…….”
틀렸다.
이 사람들. 일을 평화롭게 해결하자는 마인드가 전혀 없었다.
물론, 처음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나였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한 계산 아래에 바티스타를 도발한 거다.
어쨌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짚어주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선배들은 그것보다 더 격한 방식을 선호하는 듯했다.
촬영은 잠시 중지되었다.
바티스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쪽팔렸는지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후로 대강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돌아온 부커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 뒤.
화장실 근처의 휴게실에 모여 있는 디바진을 찾아가 바티스타에 관해서 확실히 못을 박아두었다.
“니키.”
“어, 신.”
갈색 머리칼을 길게 기른 니키는 말했듯 GCW 시절부터 나를 도와주기도 했던 멋진 동료였다.
딱히 동양인이라고 편견을 갖는 일도 없어 나는 그런 니키에게 언제나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바티스타가 그녀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또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응, 미안. 고마워.”
“……왜 사과를 해?”
“그냥, 괜한 문제로 신경 쓰게 만드는 것 같아서.”
“됐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가 잘못한 거 아니니까 사과하지 마. 잘못한 건 바티스타고 난 그걸 바로 잡을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니키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우리는 크루잖아.”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니키와 가볍게 브로피스트를 주고받았다.
링 위에서는 ‘미친 여자’ 기믹이었지만 사실 참 평범한 성격이다.
그런 우리를 보고 고참 디바들 몇몇이 또 장난스럽게 웃었다.
“신 같은 남자가 또 없다니까.”
“그러니까 아가씨가 반하지.”
“……여기서 그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아쉽다 이거지! 니키도 꽤 아쉬워하는 눈치였는데.”
“아니거든요!”
니키도 항의를 했다.
그렇게 좀 분위기가 풀어지려던 와중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자 테이커가 서있었다.
“신, 잠깐 괜찮나?”
“아, 옙.”
바쁘군, 바빠.
나는 니키와 디바진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테이커를 따라갔다.
* * *
테이커의 물음에 나는 그간 바티스타의 행적을 자세하게 말했다.
그러자니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그가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전혀 몰랐군.”
“당연합니다.”
아무리 지금의 ‘망나니스타’라도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랙다운…… 아니, 지금 이 WWF를 통틀어 가장 존경을 받는 테이커의 앞에서는 눈치를 보겠지.
그런 면에서는 또 철저해서 테이커는 전혀 몰랐을 테고.
그렇다 해서 선수들이 편하게 상담을 하러 오는 것도 아니니, 테이커로서는 조금 당황했겠지.
이 모든 문제는 결국 그와 우리 시대의 차이에 의해 발생했다.
그것을 감안하고 보자면 신인들이 테이커에게 상담을 꺼리는 이유가 대충 납득이 갔다.
테이커는 90년대 락커룸 세대였고, 지금은 그로부터 10년 뒤다.
테이커가 신인이었던 시절의 락커룸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절을 거쳐 자라온 테이커인 만큼 아까 부커와 바티스타 사이의 분쟁에도 개입하지 않았던 거겠지.
……자신에게는 그런 것이 무척 일상적인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했다.
무슨 애들도 아니고.
“바티스타를 레슬러 법정에 기소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나는 고민에 빠졌다.
테이커가 신인이었던 시절 고안된 레슬러 법정은 선수들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비교적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누군가 기소를 하면 변호사와 검사를 맡은 선수들이 각각 잘잘못을 따지고 판사가 형을 내리는 방식.
아, 참고로 판사는 테이커다.
법정의 그는 판사-테이커였다.
“아까 내가 말리지 않아서 좀 실망했나?”
“……예?”
“부커와 바티스타의 싸움.”
“아뇨, 그냥 뭐.”
“솔직히 말해봐라.”
“사람들이 어쩜 저렇게 야만적일 수 있지? 라고 생각했어요.”
“이 자식이.”
테이커가 내 뺨을 꼬집었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냐.”
“인정합니다.”
“물론, 너를 갈굴 마음은 없다. 오히려 잘했어. 사내놈이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하면 맞아야지.”
테이커는 좀 안심한 눈치였다.
“원래, 에디가 이걸 해줬지.”
“이거요?”
“그래, 후배들하고도 잘 어울리면서 민감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나서서 정리해줬어. 그래서 컨트롤이 편했는데.”
테이커가 내 어깨를 매만졌다.
“이제는 네가 도와주겠군.”
“……그게 사실은요.”
“알고 있다. 케인이 너에게 바티스타 문제를 부탁했다면서?”
“예, 그랬습니다.”
거기에 나 개인적으로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바티스타 문제는 좀 해결을 해두고 싶었다.
그는 정말 문제가 많은 선수였지만, 그래도 재능이 없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알맞은 방식으로 이 업계에 적응하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인물이다.
뭐, 그러는 김에 대립해서 이기면 내 위상도 자연히 올라가겠지.
“그래서 말인데, 레슬러 법정은 좀 미뤄주시면 안 될까요?”
“뭐 생각이라도 있나?”
“예, 제 친구 하나가 이 문제를 환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거든요.”
“……누구?”
“지금 버스에서 자고 있습니다.”
“설마.”
“네.”
오튼이다.
* * *
현재 선수들은 오튼을 랙다운 내부의 천덕꾸러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 자처하는 감은 있다.
……그 자식,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태업을 하기 시작했거든.
그럼에도 예전 같은 역반응은 없이 그냥 무난한 악역으로서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 나가고 있었다.
영리하다는 증거였다.
‘전생에는 안 그랬는데.’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국 또 나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전생과 비교했을 때, 이 업계에서 바뀐 것은 나밖에 없었다.
내가 초반에 날이 서있던 오튼을 참교육해주고 나자 완전히 쓸데없는 힘이 빠져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선수들은 오튼을 그냥 갈구기 쉽고 재미있고 친근한데다 멍청한 후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굉장한 장점이었다.
이 거친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무시당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나 역시도 그래서 선배들 앞에서 약간 기싸움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오튼은 그러지 않았다.
선배들이 갈궈도 그날만 잠시 시무룩할 뿐, 다음 날이면 또 신나서 마구 사고를 치고 다녔다.
그래서 선수들이 나보다 훨씬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상대였다.
이 일을 심플하게 일로만 생각하는 선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튼은 딱히 자존심을 부리지 않았고, 가진 재능과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자기 할 일을 해냈다.
그렇게 링에서 딱히 엄청나게 특출 나지는 않아도 안 보이면 심심한 그런 캐릭터가 된 것이다.
……아니 웃긴 게, 전생의 녀석은 그래도 회사 내부의 정치 싸움 때문에 고참이 되기 전까지는 양아치 같은 기질을 곧잘 발휘했는데.
이상하게도 내게 참교육(?)을 받자 그 까칠함이 곧장 풀어졌다.
바로 그런 성격이 현재 랜스 오튼이란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오튼에게 바티스타와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그 자리에 껴서 일 이야기를 진행해보겠다는 작전이었다.
바티스타는 오튼과 레볼루션 시절부터 함께 다니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제법 친한 것 같았으니까.
캠핑 버스를 타고 다음 랙다운 촬영지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잠시 귀찮아하던 녀석은 포스터 촬영 당시 남아서 챙겨온 맥주를 건네주자 바로 거래에 응했다.
……참 다루기 쉬운 놈이다.
“어, 게이브. 나야 랜스. 응? 아, 지금 뭐하나 싶어서 전화했지.”
녀석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기가 잘 풀렸으면 하고 바라보고 있던 나는 이어진 오튼의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녀석이 예정에도 없던 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 우리 곧 도착하는데 만날까? 뭐? 그야 신이지. 셋이 만나서 체육관에서 운동이나 하자고.”
“……?”
“에이, 그 자식 안 그래. 너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는데? 오케이~. 그렇게 나와야 남자지!”
그리고 전화를 끊는 오튼.
녀석이 게임 패드를 들었다.
“만나기로 했어. 자, 이제 다 끝났으니까 다시 게임이나 하자.”
“어, 떻게 한 거냐?”
나는 의아해 물었다.
분명 지금 바티스타는 포스터 촬영 때 있었던 일로 내게 굉장히 화가 난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만나자는 사실을 말하고도 약속을 잡았다고?
이 자식, 대체 뭐지?
의아해 바라보자니 오튼이 잠깐 정지해둔 게임 화면을 가리켰다.
“……게임 안 해?”
“안 해.”
대답이나 해라.
그런 내 눈빛에 잠시 뾰로통해져 있던 오튼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네가 나한테 부탁한 대로 불러낸 건데 뭐 문제라도 있어?”
“당연히 있지.”
“응?”
의아해하는 오튼에게 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대강 설명했다.
포스터 촬영일 때의 싸움.
그로 인해 서로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는데 대립을 하게 되어서.
“네가 만날 때 적당히 끼어들어서 좀 대화를 해볼까 싶었지.”
그래서 오튼이 예고도 없이 내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이거 당연히 꺼지라고 하겠구나 싶었는데.
“바티스타가 뭐라고 했냐?”
그런 내 질문을 들은 녀석은 망설임 없이 답을 내놓았다.
“날 봐서 응한 거겠지.”
“뭐……?”
“웃기는 게, 게이브가 그래도 진짜 의리가 있는 성격이거든.”
“그런 양반이 랙다운 크루들 앞에서는 왜 그딴 식으로 구는데?”
그리고 나한테도.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아, 근데. 그 풀이 되게 좁아.”
“무슨 풀?”
“예전에 게이브가 말했었지. 자기는 레볼루션 멤버들에게만큼은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고.”
“나한테는?”
“너도 그렇다고 이야기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헌터랑 대립하는 걸 보고 좀 불편했던 게 아닐까.”
“미친.”
나는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좁은 울타리 안의 인원에게만 굉장히 따뜻해지는 성격 같았다.
‘그거 완전 애잖아.’
나는 어이가 없어 생각했다.
그러자니 오튼이 바티스타를 약간 변호했다.
“그래도 그 양반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마. 성장 환경 때문에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거니까.”
“뭐……?”
“아니, 미안. 실언이었군.”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 봤던 뉴스 기사에서 바티스타의 취미가 ‘도시락 통 모으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딱 잘라 말해서 그게 녀석이 이후로 저지르게 될 나쁜 짓을 변호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이야기를 해둔 김에 확실히 오튼에게 지금의 상황을 주지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새 백스테이지에서 바티스타가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니거든.”
“알고 있어.”
“어떻게든 해야겠지 싶은데.”
“글쎄, 꼭 그래야 하나?”
“그럼 이대로 두자고?”
“그래야지 어쩌겠어. 바티스타가 네 아들도 아니고. 사람은 절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대로 뒀다가는 분명 너한테 피해가 갈 거야.”
“응? 왜?”
“협조성 없이 안하무인으로 구는 바티스타가 유일하게 의리를 지키는 남자가 랙다운에서 너잖아.”
“그게 뭐?”
“다들 그걸 알면 바티스타를 대신해 널 갈구지 않을까? 그 녀석 좀 어떻게 해보라면서 말이야.”
“……다들 모르잖아.”
“지금은 그렇지. 지금은.”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설마 말할 거냐?”
“에이, 그럴 리가. 당연히 그전에 네가 현명한 선택을 하겠지.”
“이, 이 악마 같은 놈아!”
오튼이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물론, 나는 그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꼬우면 얌전히 날 돕던가.
“제기랄!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단, 바티스타가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알게 해야지.”
오튼이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다.
예전의 바티스타는 그래도 지금과 같은 망나니는 아니었다.
녀석이 락커룸에서 문제 인물로 부상한 건 분명 월드 타이틀을 따내고 랙다운으로 이적한 뒤였다.
‘전생에도 그랬지.’
지금처럼 부커와 싸움을 벌여 발리고 하면서, 어쨌든 랙다운에도 서서히 적응하긴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성미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해두자.
내가 바티스타를 폄하하긴 했지만 그는 그럼에도 한 시대를 빛나게 했던 수많은 별 중 하나였다.
단지 그 재능을 헛된 곳에 쏟아내면서 대성하지 못했을 뿐.
그리고 나는 그런 바티스타가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 완전히 자존심을 짓뭉갤 필요가 있겠지.
이 업계의 그 누구도 네가 무시할 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며.
특히나 나는 더 그런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