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19화 (219/634)

219.

랙다운이 개최될 예정인 도시에 도착한 우리는 그날 저녁 펍에서 바티스타와 만났다.

다행히 바티스타는 나와 만나자마자 포스터 촬영 때의 사건이 자신의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미안해. 신. 그때는 내가 좀 술에 취했는지 말을 함부로 했군.”

“괜찮습니다. 반대로 저는 마시지도 않았는데 흥분했는걸요.”

“제기랄, 취하지만 않았어도 부커와 좋은 승부를 냈을 텐데.”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은근히 자기 자존심을 챙기려고 들었다.

“그러게요.”

일단 동의를 해주었지만 나는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부커가 키운 근육이 격투가에 가깝다면 반대로 바티스타는 보디빌더 쪽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거기에 부커는 은퇴 후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자신이 살았던 거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그런 부커가 다른 사람에게 싸움으로 쉽게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사건은 바티스타가 부커에게도 사과를 해야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좀 바티스타의 심리에 대해 파악을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바티스타, 부커와 화해할 만한 자리를 만들어도 괜찮을까요?”

“응? 어떻게…….”

“나중에 다 같이 모여서 운동이라도 하죠. 사실 모두 당신에게 운동을 배우고 싶어 해서.”

“크하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다 같이 운동? 좋지, 좋아!”

“나는 빼줘.”

오튼이 빠져나가려고 들었다.

거기에 대답하려던 순간 바티스타가 오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뭐야, 랜스! 인마. 그렇게 노력 안하다간 평생 제자리일걸?”

“그래도 뭐.”

“이 자식이 다 좋은데 자꾸 일을 대충 하려고 든다니까? 링에서도 그렇고. 안 그러냐. 신?”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방금 그 발언이 흥미로웠다.

바티스타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게 방금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잘만 하면 방금 그걸 이용해서 바티스타의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오튼이 그래도 꽤 해요.”

“……뭐?”

“물론 바티스타 당신이 보기에는 한참 모자라 보이겠지만 말이죠.”

“하하! 아냐, 아냐. 나도 알지. 그래도 이놈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걸!”

순간 굳어졌다 풀어지는 얼굴.

거기에서 확실해졌다.

바티스타는 오튼을 좀 철없는 막내 동생처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잘 챙겨주기는 해도 내가 괜찮게 한다는 말을 하자 순간적으로 날을 세웠던 거겠지.

하지만 사실이었다.

이게 또 전생과 현생의 차이인데, 오튼의 현재 실력은 절대 바티스타가 녹록히 볼 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면 옛날처럼 정신을 잡을지도 모르겠군.

바티스타가 오만한 성미를 드러내기 시작한 건 분명 메인 이벤터 반열에 올라온 이후였다.

그러므로 다시금 자기 위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예전처럼 까불지는 못할 터였다.

* * *

연거푸 맥주를 들이키며 바짝 취한 바티스타는 자신을 알아본 옆자리의 여성 팬과 놀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을 놔두고 오튼과 함께 화장실에 가겠다며 나왔다.

차가운 겨울 밤.

술집 앞에 선 오튼이 불안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진짜로 할 거냐?”

“훈련? 물론 해야지.”

“무슨 생각이야?”

“바티스타가 큰 착각을 하나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알려주려고.”

“무슨 착각인데?”

“레슬러의 위상과 실력이 비례한다는 거랑, 자신이 멋대로 굴어도 될 위치의 선수라고 생각하는 거.”

“응?”

“자기는 월드 타이틀도 걸쳐봤으니 너나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레슬러라고 착각하는 거지.”

“아니야?”

“……그럼 맞겠니?”

내가 황당해 바라보자 오튼은 머쓱한 듯 머리통을 긁적거렸다.

“아니 뭐, 바티스타 정도면 환호도 잘 받고 하니까. 너 정도면 몰라도 나보다는 훨씬 낫지.”

“아니야. 오튼.”

나는 약간 뒤로 빼고 있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훨씬 나아.”

“아니, 네가 잘한다고 하면 왠지 더 일하게 될 것 같다고! 그러지 마!”

“…….”

“이번에 회사에서 메인 전선에 올린다는 거 안 한다고 했는데!”

“해.”

“뭐?”

“너 잘하잖아. 해봐.”

“아니, 지금 스케줄도 소화하기 힘들어서 죽을 거 같은데.”

오튼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메인 챔피언을 지내면 스케줄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나로 인해 위기감이 사라진 오튼은 현재 그게 싫어서 월드 타이틀을 따는 걸 거부하는 듯했다.

‘전생에는 반응 끌어볼라고 훨씬 일찍 월드 타이틀을 들었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실력은 확실히 더 좋아졌지만 그로 인해서 커리어 자체는 전보다 더 늦게 올라가고 있다니.

어쨌든 잘할 놈이지만.

좀 충고를 해둘까.

“오튼, 지금 네 연봉이 얼마쯤 되는지는 내가 모르지만 말이야.”

“150만 받지.”

그걸 또 말 해주냐.

“잘 들어. 커리어 초반에 월드 타이틀을 들어서 몸값을 올려두면 선수 생활 하는 동안 통틀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

“그, 그런가?”

“월드 타이틀 들어본 선수라면 회사에서도 나중에 더 좋은 협상 조건을 제시할 거란 말이지.”

“호오”

“연봉 150만으로 20년과 500만으로 20년.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더 많은 돈을 받아가겠어?”

“20년이나 뛸 맘은 없는데.”

“……네가 평생 가족하고 먹고 살 돈을 더 일찍 벌어서 빨리 은퇴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아, 그렇겠네.”

그러자 흥미를 보이는 오튼.

지극히 현실적인 놈이다.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업계에 투신한 3세대 레슬러.

그런 독특한 포지션에 있는 녀석은, 사실 이후로 우리 중 누구보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

전생에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랜스 오튼이라는 선수가 지닌 두 번째 장점이었다.

* * *

오튼은 현재도 이후에도 몸을 던지는 위험한 범프는 하지 않았다.

내가 했던 것처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피를 튀기면서 몸을 던지는 행동 따위를 말이다.

지금 물어봤더니 무섭기도 하고 딱히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어쨌든 그로 인해 빨리 은퇴하겠다는 지금의 선언과는 달리, 그는 누구보다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나갔다.

대충 2023년까지 풀-타임 레슬러를 지냈고 은퇴한 뒤에도 회사가 나오라면 나와서 경기를 가졌다.

말 그대로 녀석은 회사의 황혼기를 곁에서 지켜보았던 선수였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프로레슬링을 끝까지 지켜보며 남은 놈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게을렀던 오튼이었다.

전생의 나는 35살쯤에 안 되겠다고 생각해 프로듀서로 전업했고.

러셀도 정치 싸움에서 밀려서 경기력으로 어필하려다 큰 부상을 입고 그대로 은퇴했다.

그리고 시나도 오튼보다는 더 빨리 은퇴해 영화계로 전향했다.

40세 이후로 팬들의 기대에 응하지 못하게 되는 늙은이는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오튼은…….

그냥 오튼했다.

남들이 기대를 하든 말든 그냥 링 위에 올라 196cm의 슈퍼 장신을 바탕으로 R.K.O.를 갈겼다.

그리고 그게 인기를 끌었다.

잘생긴 외모, 조각 같은 몸.

커리어 중반기를 넘어가면서 언제나 여유로운 그 모습이 오히려 꽤나 배드애스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오래 활동했다.

‘한마디로 재능충이란 거지.’

천재는 아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의 천재는 러셀과 같은 쪽이었다. 가진 재능이 너무나도 뛰어난 인간들 말이다.

인간의 몸으로 신神의 움직임을 보여주려다가 땅으로 추락하고 마는 이카로스 같은 존재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어디까지나 퍼포먼스가 중요한 업계였다.

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화려한 움직임이나 위험한 범프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쪽으로 타고났던 오튼은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전생과 달리 나에게 배워 기본기마저 예전보다 더 빠르게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을 제일 처음 알기 시작한 건 나와 같은 선수들, 개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고참들이었다.

레이가 언젠가 말했었다.

실력은 좋은데 대충 하는 게 보여서 오튼을 갈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오튼은 갈궈서 되는 인재가 아니다. 오히려 꿈을 심어줘야지.

높은 연봉, 행복한 노후.

그리고 그 말은 곧바로 다음 날부터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곧장 케인에게 월드 타이틀 전선에 뛰어들겠다고 승낙을 받아 대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요일 오후.

우리는 부커와 바티스타의 화해를 겸해 경기장에 모여 훈련을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만큼 이런 문제는 일찌감치 정리를 해두는 게 나았다.

경기장 구석에 설치된 연습용 링.

내 부름에 응한 건 부커와 테이커, 그리고 레이까지 셋. 거기에 나와 오튼, 바티스타까지 더해 총 여섯 명의 선수들이 모였다.

지금 우리는 각자 오튼vs부커, 테이커vs레이, 신vs바티스타로 대립하기로 되어있는 상태였다.

일단 부커와 바티스타가 화해의 악수를 나눈 뒤,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테이커가 말을 꺼냈다.

“일단 기본기 훈련을 좀 진행하고, 이후에는 각자 대립 상대와 기술 훈련을 하는 걸로 하지.”

맞는 말이었다.

몸도 풀 겸 낙법 같은 기본기를 30분 정도 한 우리는 그대로 각자 상대와 각 코너로 흩어졌다.

바티스타는 나와 대립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내가 널 끌어주게 되다니.”

“그렇게 보여요?”

“그야 당연하지. 나는 월드 챔피언까지 지낸 경력이 있는데.”

거만하게 말하는 바티스타.

하지만 이제 곧 녀석은 그 자존심이 철저하게 박살날 터였다.

기본기 훈련만으로도 벌써 체력이 빠지는 것이 눈에 보였거든.

“일단 체인이나 해보죠.”

“체인?”

“체인 레슬링이요. ……저기, 먼저 링 좀 써도 될까요?”

내 말을 들은 네 사람이 링을 양보해주었다. 나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링 중앙으로 가서 섰다.

바티스타가 피식 웃었다.

“체인 레슬링을 하자고?”

“예, 서로 맞춰봐야죠.”

“서로 기술 합 맞춰보는 정도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경기 가져본 적 꽤 많잖아?”

“그전에 일단 현재 상태에 대해서 파악을 해둬야죠. 서로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를 알아야 하니까.”

여기에서 살짝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러셀이나 그렉, 거트 같은 실력파 선수들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해 체인 레슬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고 있던 바티스타가 이윽고 천천히 손을 뻗어왔다.

나 역시도 손을 들고서 그대로 체인 레슬링을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훗……!”

느닷없이 안쪽으로 파고든 바티스타가 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헤드록을 걸려고 들었다.

자연스럽게 거기에 걸린 상태에서 꽈악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뭐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 생각한 나는 녀석의 두터운 근육 안쪽으로 팔을 넣은 뒤 그대로 쉽게 빠져나왔다.

의아해하는 바티스타.

내가 마술사처럼 보이겠지.

“적당히 갈게요.”

싱긋 웃으며 이야기한 나는 그대로 공격을 시작했다.

체인 레슬링.

팔과 팔이 체인처럼 엮이면서 계속 이어지는 형태의 레슬링이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팔을 꺾고 허리를 잡고 머리를 조이는, 그나마 실전에 가까운 레슬링이었다.

화려하고 강해 보이는 기술들이 많아진 현대에는 경기가 시작한 뒤 서로 간을 보기 위해서 잠깐 하는 전초전 정도로 여겨졌지만.

경기 전, 기본적인 ‘설정’을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서로 누가 더 힘이 강한가.

아니면 상대가 걸고 있는 기술을 쉽게 빠져나와 기술력이 있음을 어필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바티스타와 내가 서로의 팔과 뒤통수를 붙잡으며 한데 엮였다.

락 업.

그 상태에서 내가 뒤로 밀려나며 코너까지 밀어붙여졌다.

상대의 힘이(설정 상)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

“빠져나갈게요.”

그렇게 말했지만 바티스타는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안쪽으로 팔을 넣어 꾹 누르며 손쉽게 빠져나왔다.

놀란 바티스타가 돌아보았다.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녀석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빠른 속도로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팔을 꺾고, 바티스타가 빠져나와 꺾으려는 것을 회피하고 팔을 엮으며 크게 돌았다.

얼굴이 벌게진 바티스타.

링 아래의 선수들도 대화를 하는 동시에 우리 둘의 체인 레슬링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바티스타의 하찮은 자존심을 뭉개는데 도움이 될 터였다.

“좋아, 좋아!”

내가 도발을 하자 흥분한 바티스타가 태클을 시도하려고 했다.

훌쩍 뛰어 낮아진 바티스타의 어깨를 무릎으로 밟은 나는 앞으로 구르며 롤 업을 시도했다.

내 머리 위를 지나가며 벌러덩 넘어진 바티스타의 양쪽 어깨가 그대로 바닥에 닿았다.

선셋 플립Sunset Flip.

링 바깥에서 박수가 나왔다.

“뭐, 뭐야?!”

“흐음.”

의아한 표정과 함께 벌떡 일어선 나는 고개를 잠깐 갸우뚱했다.

조금 전의 ‘관광’으로 영 심기가 불편해져 있던 바티스타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잠깐만요.”

나는 고민하는 척하다 이내 링 바깥에 서있는 오튼을 돌아보았다.

“야, 올라와봐.”

“어, 나?”

“영 안 되겠어. 네가 좀 내 스타일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

그러자 말했듯, 자신 대신 오튼을 택한 바티스타의 얼굴은 심각할 정도로 구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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