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게이브 바티스타는 분명 랙다운으로 이적할 때까지만 해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끄는 선역이었다.
트리플H에게서 막 왕좌를 건네받았던 그는 이후 JBL과 대립하며 그대로 선역 메인 이벤터로서 자리를 잡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이야기했다.
첫째로 이적 한 달 뒤 바티스타에게 주어진 각본이 형편없었다.
둘째로 랙다운 내에서의 문제 있는 태도가 바깥으로 새어나가며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의 존재가 그 커리어의 발목을 잡았다.
얼핏 듣기에 이상한 이야기였다.
관계자들만 아는 사실이었지만 당시 신은 케인과의 분쟁으로 랙다운에 출연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존재가 바티스타의 선역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다들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대해 유명한 프로레슬링&종합격투기 전문 기자인 데이브 렐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랙다운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쌓여가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뇨, ‘에디는 죽었어.’ 이전에 신이 출연을 안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영향으로 선역들의 반응이 미묘하게 떨어졌다. 바티스타 역시도 그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는 화제성을 위해 바티스타를 희생시켰다.
부커-리에게 벨트를 잃게 만들었고, 직후 턴 힐을 시켜 사람들이 방송을 다시 보도록 만들었다.
물론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런 선택에 대해 인터넷 프로레슬링 팬 사이트의 운영자, 닉네임 ‘썬더 버드’는 이렇게 말했다.
“병신 짓이죠. 프로레슬링은 공연과 스포츠, 드라마의 결합체입니다. 그러므로 몰입이 중요하죠.”
하지만 랙다운은 바티스타의 턴 힐을 스토리의 일부가 아니라 회사의 ‘똥꼬 쇼’로 보이게 만들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대놓고 훤히 드러나는데 어떻게 거기에 몰입하고 즐길 수 있겠습니까? 드라마에서 뻘하게 PPL이 나오면 김이 새는 거랑 같은 거죠.”
물론 프로레슬링은 가상의 사건과 현실의 문제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즐길 수 있었다.
“영화를 예로 들어봅시다. 걸작으로 남는 영화는 예술성을 드러내지 않아요. 오락성 안에 예술성을 교묘하게 감춰서 그걸 작성한 작가의 변태적인 성향을 숨기지.”
그리고 거기에 흥미를 갖는 몇몇 독자들이 숨겨진 뜻을 찾아보고 영화에 더 몰입하도록 만든다.
“프로레슬링도 비슷하단 말이죠. 예술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대로도 재밌고 은유를 찾아보면서 보아도 재미있다는 겁니다.”
그는 예시를 한 가지 들었다.
“신이 이번 링 서바이벌에서 드디어 복귀해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죠. 에디를 추모해가면서요.”
그 이야기는 자체만으로도 재밌지만 이렇게 즐길 수도 있었다.
“신은 아마 이후 랙다운에서 키 메이커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위클리 쇼 전체를 통제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선수.
그에 비하면 바티스타의 턴 힐은 단순히 화제성만으로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치졸한 의도만이 뚜렷이 느껴졌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바티스타 본인도 링 서바이벌에서 빅 죠를 들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까지.
현재 그는 모멘텀이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다음 대립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잘해줘야만 했다.
다음 대립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바티스타의 향방을 정할 터였다.
* * *
바티스타와 다퉈 대립각을 세운 나는 위클리 쇼가 시작될 때까지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어차피 내가 반응을 독식하는 건 확정적이라 딱히 걱정할 부분은 없었다.
왜냐고?
그야 당연하게도, 나는 링 서바이벌에서 랙다운 팀의 최종 승리를 확정 지은 메가 슈퍼스타니까.
반대로 바티스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예정에 없던 실수까지 저지르면서 탈락했지.
그러므로 오늘 있을 바티스타의 난입과 이어질 대립은 팬들에게 열등감의 발로로 비춰질 터였다.
뭐, 그걸 잘만 이용한다면 괜찮은 야유를 받을 수도 있겠지.
결국 그게 악역의 역할이니까.
하지만 나였다면 각본을 받았을 때 확실하게 거절을 했을 거다.
각본이 나를 질투해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고 링 서바이벌 경기에서의 실수를 계속 상기시키니까.
그리고 나는 당연히 그쪽을 파고들어 반응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신 선수! 신 선수!!]
누군가 버스 문을 두들겼다.
잠깐 선잠이 들었던 나는 곧바로 일어나 버스 문을 열고 나갔다.
직원이 서있었다.
“바로 가셔야 합니다!”
“입장 끝났어요?”
“네네! 바로 가면 되요!”
나는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복도에서 느릿하고 치열한 느낌의 메탈 음악이 울려 퍼졌다.
공기가 슬쩍 달아오르는 느낌.
몸의 피가 빠르게 회전하며 나는 할 수 있겠다는 감각을 느꼈다.
링 서바이벌 애프터 쇼.
팬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난 그들을 열광하게 만들 것이다.
“오, 신. 왔나?”
고릴라 포지션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로건이 날 반겨주었다. 우리는 주먹을 맞부딪혔다.
“좀 어때요?”
“제기랄, 신인 때로 돌아간 기분이야. 위클리 쇼 전날이면 자꾸 잠을 설치게 됐어.”
씨익 웃어 보이는 로건.
눈가에는 주름이 졌지만 아직도 그는 꿈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고맙네.”
“저야말로요.”
서로 윈윈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나 역시도 그렇게 대답했다.
캡틴 로건이 GM으로 취임한 이후로 랙다운의 이미지는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본 상 권력을 가진 그가 주도하면서 관객들은 더 이상 랙다운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랙다운은 팬들의 기대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구성을 취하기에 아주 적합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쇼의 오프닝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와 로건이 나가서 반응을 끌어내고 시작하는 거다.
바로 그때,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케인이 나를 불렀다.
“신!”
“예, 케인.”
“멋지게 보여줘.”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말에 좀 놀라는 직원들.
링 서바이벌 이후로 내가 케인의 고집을 꺾었다는 건 알았지만 응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거겠지.
하지만 바트와의 약속을 저버린 케인에게는 이 길밖에는 없었다.
더 이상 내 성장세를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럴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나와 협력하는 것.
그리고 나는 이전 바트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조만간 케인을 완벽하게 내 동료로서 포섭할 생각이었다.
그가 프로레슬링이라는 매체에 품고 있는 신념을 채워주는 것으로.
‘일단은 바티스타를 좀 어떻게든 해야겠지만 말이야.’
케인도 내 말을 듣고 기다리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시간은 충분히 주어졌다.
쇼의 오프닝이 끝난 뒤, 링 서바이벌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게 끝난 뒤에야 해설자들이 코멘터리를 시작했다.
[링 서바이벌 애프터!! 금요일 밤의 랙다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내에 계신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저희 랙다운은 빌어먹을 버닝콩 놈들로부터 승리하고 링 서바이벌을 완전히 빼앗아왔습니다!]
[Yeeeeeeeeeeeaaaaaah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모두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 기대감을 채워주기 위해 준비를 했던 우리는 걸려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위클리 쇼를 진행했다.
내 테마곡이 오늘 쇼에서 처음으로 경기장 안에 울려퍼졌다.
둥-둥-둥-둥-둥-둥-둥-둥!
북과 나팔.
[Waaaaaaaaaaaaaagggghhh!]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
“좋아, 가자!!”
힘 있게 외치며 사기를 북돋운 나는 그대로 링을 향해 나아갔다.
입장로 위로 나아가자 환호가 한층 더 커졌다.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나는 환하게 웃으며 머리 위로 주먹을 들어올렸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터져 오르는 폭죽.
귀가 먹먹했고 보드카에 취한 것 같은 쾌감이 몸을 덮쳤다.
그 뒤를 이어 로건이 나오자 환호는 그야말로 극에 달했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링에 오른 나는 마이크를 쥔 채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가 너무 거셌다.
좀 당황해 마이크를 입가에 대보았지만 그러자 환호가 더 커졌다.
‘너무 날 좋아하는데.’
거의 아이콘 급의 환호였다.
내가 지난 일요일에 해낸 일은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그만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 한 가지 패를 더 준비해왔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관객들이 의아해하자 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하늘을 가리켰다.
에디.
그는 저 위에 잇다.
살면서 수많은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었기에 분명 신神의 곁에서 계속 쇼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가 담긴 사인.
관객들도 이해를 했다.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Eddie!]
챈트가 이어졌고, 분위기를 잡은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쥐었다.
“나에게도 의미가 깊은 경기였어. 이 자리를 빌어 확실하게 말하고 싶군. 에디는 천국에 있다고.”
[Yeeeeeeeeeeeaaaaahhhhh!]
“로건, 그렇게 생각하죠?”
“그야 물론이지. 신. 에디는 내가 지금까지 본 선수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로건.
거기에 싱긋 웃어 보인 나는 약간의 오만함을 드러냈다.
“저 역시 지진 않을 겁니다.”
에디는 분명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아직 내게 남아있는 커리어의 어딘가에서, 그를 뛰어넘어 보일 것이다.
그만이 아니었다.
이 업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온 수많은 선수들을 모조리 다.
그런 야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한마디에 사람들이 다시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주었다.
나는 관객들에게 이야기했다.
“다들 함께해주겠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내가 이 회사의 얼굴이 되어도 너희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군!”
바로 그때였다.
쿠궁, 쿠궁, 쿠구궁……!
Yeeeeeeeeeeeaaaaaahhhh!!
보컬의 힘찬 괴성과 함께 바티스타의 테마 음악이 시작되었다.
‘I Walk Alone’.
나는 혼자 걷는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짐승처럼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바티스타의 야망을 나타낸 곡.
그와 함께 정장 차림으로 나온 바티스타는 관객들에게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야유를 받았다.
[Boooooooooooooo-!]
하지만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바티스타는 개의치 않고 입장로 위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네가 회사의 얼굴이라고? 너 같은 게 회사의 얼굴이 된다고?]
[Boooooooooooooooo-!]
[내가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신. 넌 절대로 회사의 얼굴 같은 게 되지 못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여기서부터는 모두 즉흥.
원래대로라면 적당히 폼만 잡았을 우리의 대립은 초장부터 살벌하게 감정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 환호를 봐! 지금의 네가 이런 걸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나?”
[후, 이제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어. 난 오직 나를 위해서 싸우니까 말이야.]
[Boooooooooooooo-!]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바티스타. 우리가 이들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 뭐. 그래. 팬들이 있어야 우리 경기가 가치가 생기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넌 그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두 달이나 쇼에 나오지 않았던 건가?]
역시 이렇게 나오셨군.
지금 내가 가진 약점은 한동안 쇼에서 빠졌던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면 오히려 더 구려 보이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사실, 내가 그 이유를 좀 명확히 설명해줄까 했거든? 하지만 이거 안 되겠네. 바티스타. 넌 지금 선을 넘고 있어.”
[아, 그러셔?]
바티스타가 다가왔다.
[더 넘어왔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어, 음. 너무 무서운데.”
잠깐 당황해 물러났던 나는.
“빅 죠도 들지 못한 찐따 냄새가 나서 가까이 가지 못하겠어!”
바티스타를 완전히 애 취급했다.
폭소를 터뜨리는 관객들.
그 말을 들은 바티스타는 얼굴이 빨개진 채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 덩치를 고작 스쿱 파워 슬램으로 넘겼다고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응, 넌 못했어.”
바티스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래서 싸움을 걸어온 게 바티스타의 실수였다고 이야기한 거다.
그리고 그걸 파악하지 못할 정도면 바티스타는 아직까지 배워야 할 게 무척 많았다.
거기에 하나 더.
“왜, 내가 실버백처럼 수플렉스 자세로 들어서 서커스 쇼처럼 버텨야만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건가? 그러면 뭐 어쩔 수 없고.”
[그래, 네가 한 짓은……!]
“좀 사람이 하는 말의 의미 좀 똑바로 들어! 헬렌 켈러!”
나는 다소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걸 굳이 설명해줘야 하나? 나는 강하고, 동시에 유연한 면모까지 보여준 거야. 여자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거지.”
바티스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세가 오른 나는 거의 악역에 가까운 마이크워크를 이어나갔다.
“와이프하고는 잘 지내지?”
[Uooooooooooooooohhhhh!!]
충격적인 디스를 듣고 크게 비명을 내지르는 관객들.
바티스타는 거기에 반박할 멋진 대사를 준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