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이후, 신과 바티스타의 싱글 매치가 메인이벤트로 부킹되었다.
그리고 막상 경기에서도 신은 완전히 바티스타를 가지고 놀았다.
그것을 모두가 보았다.
오늘 월드 타이틀 도전을 선언했던 오튼은 모니터링TV로 이어지는 경기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심한데…….”
경기가 아니라 관광이었다.
바티스타는 신이 속도를 높이자 전혀 따라가지 못했고, 또한 그런 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좀 맞아주는가 싶다가 금방 또 그라운드 레슬링으로 들어가고.
소위 말하는 올림픽 스타일의 레슬링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몸이 그라운드 위에서 뒤엉켰다.
그런가 싶더니 빠져나온 신이 드롭킥으로 또 분위기를 바꿨다.
완전히 상대방을 화나게 만드는 구성. 각본의 방향성과 같았지만 오튼은 동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감탄도 하고 말았다.
“절묘하군.”
테이커마저 그렇게 이야기했다.
기술의 구사부터 시작해 신의 경기에는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거기에 아마, 자신이 의도한 대로 충실히 이끌고 있을 터였다.
이 경기를 보는 모든 관계자들은 신의 환상적인 레슬링 스킬에 감탄하는 한편 바티스타를 동정했다.
계속해서 신의 의도대로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인가 반격을 하기도 했지만 반응이 한 템포씩 늦었다. 말인즉슨, 신이 보내는 지시에 따른다는 뜻.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바티스타는 실제로도 정말 화가 났다.
한 번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이끌고 나가지 못했으니까.
신의 지시대로 주먹을 날리다가 그게 빗나가 돌아보니 신이 바로 롤 업을 걸고 있다는 상황.
레슬러로서 굴욕이다.
무엇보다 절묘한 점은 일반 관객들은 그런 사실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들에게는 이 경기가 깐족대는 신과 느리고 굼뜬 바티스타가 만들어내는 서사로 보이겠지.
그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로 바티스타가 신의 앞에서는 한없이 느리고 굼뜨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오튼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 테이커.”
“뭐냐.”
“이걸로 괜찮을까요?”
“뭐가 말이냐. 실제로 경기는 아무 문제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저러다 바티스타가 빡돌아서 신을 진짜 때려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죠. 뭐.”
“너에게는 바티스타가 프로레슬링에 있어 최악의 짓을 저지를 사내로 보이는 것 같군.”
“그건, 아니지만…….”
“걱정 마라.”
테이커가 단언했다.
“만약 바티스타가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향후 어떤 단체에서도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거다.”
“…….”
사실 그게 걱정이었다.
돌발적인 사고.
각본을 따르지 않는 실제 상황.
프로레슬링에서는 그런 상황을 슛Shoot이라고 불렀다.
서로 합을 맞추고 진행하는 프로레슬링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슛이 벌어질 수 있었다.
세그먼트 등에서 각본과 전혀 다른, 자기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는 이야기를 갑자기 한다거나.
제 분에 못 이겨 감정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심지어 경기 전에 이런 슛을 하겠다고 상대 선수 측 몰래 협의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예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경기는 시멘트 매치라고 표현했다. 상대를 묻어버린다는 의미였다.
예를 들어 바티스타가 화가 나 진짜로 신을 공격한다면 그건 시멘트 매치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상대 선수의 이미지를 묻어버릴 각오로 행해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분명 슛은 맞았다. 갑자기 권총을 뽑아서 사격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이 어떻게 대응을 해도 상처는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바티스타 역시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여기는 법치 국가다.
상대를 갑자기 쏘는 행위는 어떻게든 제재를 받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오튼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제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고가 터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처럼 신의 ‘관광’으로 계속 이어지던 경기는 분노를 참지 못한 바티스타의 반칙패로 끝났다.
링 아래로 쫓겨난 그가 신이 다가오는 사이 몰래 붙잡은 링 벨을 그대로 뒤로 돌면서 휘둘렀다.
오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쓰러지는 신의 이마 쪽에서 붉은 무언가가 힘차게 튀어 올랐다.
“이런, 썅!”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는 곧바로 고릴라 포지션으로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그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던 테이커는, 무엇보다 모니터링TV의 상황에 집중했다.
이후가 문제였다.
오튼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이제는 신이 폭발하지는 않을까가 걱정이었다.
* * *
또 이마였다.
찢어진 곳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방송은 그대로 끝이 났다.
심판이 전해주는 상황을 들은 나는 곧바로 깜짝 놀란 바티스타를 들여보낸 뒤 상처를 지혈했다.
멎지 않는 피.
지혈 테이프로 둘둘 이마를 감싼 채, 확실히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링 위에서 다시 마이크를 쥐었다.
“제기랄, 이거 더럽게 아픈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바티스타 그 개자식이 내 이마를 찢고 도망쳤지만 나는 끝까지 추격할 거야!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단 걸 가르쳐주지!”
[Yeeeeeeeeeeeeeaaaaahhh!!]
크게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대충 봉합은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 일을 완수했다.
순간 놀랐던 관객들의 충격을 최소화시킨 나는 그대로 심판의 부축을 받고 안으로 들어왔다.
“야, 신! 괜찮냐?!”
오튼이 서있었다.
“너라면 괜찮겠냐.”
“이, 이거 어쩌지. 일단 병원에 가보자!”
“그럴 필요는 없어.”
한숨을 내쉰 나는 마침 달려 나오고 있던 팀 닥터를 돌아보았다.
“타카 건 몇 발 쏴줘요.”
“일단 확인 좀 해보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닥터.
나는 일단 다크 매치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오튼과 심판의 부축을 동시에 받아 이동했다.
의무실 앞에 서있던 바티스타는 나를 발견하자 놀라 다가왔다.
“신……!”
“아, 괜찮아요. 괜찮아.”
정말로 당황한 게 보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실수란 게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면서 팔부터 휘둘러서 거리를 재지 못했던 거겠지.
일단 상처의 치료가 먼저라고 생각한 나는 의무실로 들어서 닥터에게 상처를 보여주었다.
대충 감아둔 지혈 테이프를 뜯어내자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서, 선생님. 얘 어때요?”
“어, 좀 찢어졌네. 신, 네 말대로 타카 건 정도면 되겠는데?”
“일상 같은 일이라서.”
어색하게 웃은 나는 일단 의료용 스테이플러로 상처를 봉합했다.
다섯 방.
마취도 안 한 채로 찢어진 피부를 붙여 타카타카 쏘아댄 뒤,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다음, 뇌진탕 체크.”
“안 해도 되요.”
“안 돼.”
닥터는 단호했다.
눈동자에 불빛을 비추고 방안을 몇 바퀴 정도 돈 뒤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의식은?”
“전혀 안 없어졌어요.”
“영화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는?”
“유령.”
“뭐?!”
오튼이 놀랐다.
왜 놀랐냐. 너 설마 몰랐냐?
“다행히 문제는 없는 것 같군.”
“그냥 긁힌 정도에요.”
링 벨은 바닥이 나무 재질에 황동으로 만든 벨 부분이 그 위에 있는 형태였는데.
“그게 딱 이마를 스쳤죠.”
“설마 고의는 아니었겠지.”
“뒤로 돌아본 채로 팔부터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노리겠어요.”
아무리 그 경기로 바티스타가 잔뜩 열이 받았다고 할지라도 구조상 성립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흥분한데다가 잔뜩 지친 상황에서 집중력이 떨어져 나온 실수.
그런 결론을 내리며 나는 바티스타에게 불운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녀석은 락커룸 내에서 신용을 크게 잃을 것이 분명했다.
‘나로서는 일을 더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어서 좋은 일이었지만.’
그때, 누군가 의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테이커였다.
“신, 좀 괜찮나?”
“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이래서 오늘 다크 매치는 소화 못할 것 같은데요.”
“내가 케인에게 이야기해둘 테니 쉬어라. 그리고 바티스타는 레슬러 법정에 회부할 생각이다.”
“……뭐라고요?”
“너에게 슛을 걸 의도가 있든 없든, 녀석은 선수로서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어. 그렇게 알아둬라.”
이거 일이 커지게 생겼군.
* * *
레슬러 법정.
80년대 후반 푸에르토리코에서 일어난 실제 선수들 간의 살인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풍습이다.
말 그대로 단체에 소속된 선수들 간에 발생하는 문제나 잘못을 법정을 열어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선후배 간의 규율이 특히 엄격한 프로레슬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문화였다.
판사는 테이커.
검사로 JBL, 변호사는 아마 부커가 맡게 될 것이다.
피고는 바티스타.
원고는 나.
문자로 고발이 날아가고, 위클리 쇼 며칠 전에 선수들이 모두 경기장에 모여 진행되는 시스템.
거기에 참석한 나는 바티스타가 내 이마를 찢어놓은 이후로 줄곧 하고 있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일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풀려가고 있었다.
바티스타의 정신을 차리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그 오만함을 짓밟아두어야만 했다.
그게 지금 이루어지고 있었다.
“피고는 확실히 신의 이마를 향해서 링 벨을 휘둘렀습니다!”
안경을 쓴 JBL이 소리쳤다.
그 두꺼운 근육질의 손에는 확실히 바티스타의 유죄를 확정 짓기 위한 서류가 들려 있었다.
안타깝게도 노안이 온 모양이다.
“아니, 그게 고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참작이 필요할 듯한데.”
부커가 대답했다.
변호사인 그는 어떻게든 ‘고의가 아니었다.’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지 시선을 피했다.
락커룸 가득 30여 명에 달하는 랙다운 선수들이 모여서 그런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심의 테이커와 맞은편의 원고, 피고만 의자에 앉고 다들 일어선 채라서 무척이나 더웠다.
“이 상처를 보세요! 선수 이마를 이렇게 찢었으면서 어떻게 우리 동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JBL이 붕대를 칭칭 감아둔 내 이마를 가리키며 성토했다.
사실 다 나아서 풀었는데.
오늘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JBL이 붕대를 감고 오라고 사법 거래(?)를 제안해 그렇게 해주었다.
어쨌든 바티스타의 오만함을 짓뭉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바티스타는 얼굴이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희는 상대를 신뢰하고 몸을 맡겨야 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락커룸에 계신 선수 일동 여러분! 바티스타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가 동료라고 생각하십니까?”
“……고의가 아니었다니까.”
부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대고 호소하는 JBL의 목소리가 더 컸다.
더군다나 지금껏 바티스타가 백스테이지 내에서 쌓은 업보가 있어 다들 유죄로 여기는 눈치였다.
결국 유죄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 상태에서 테이커가 입을 열었다.
검사와 변호사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테이커가 마지막으로 바티스타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당당한 태도를 취하려고 했지만.
안색이 창백한 게 보였다.
“정말 고의가 아닙니다. 경기 중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운 나쁜 사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테이커.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런 대답을 들은 나 역시, 테이커와 같이 바티스타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조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운 나쁜 사고.
최악의 대답이다.
왜냐면 우리는 그 운 나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처절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들여 훈련했으니까.
그렇기에 경기에서 실수를 했을 때 운은 금기시되는 단어였다.
죽음을 무릅쓴 위험한 범프를 수행할 때까지도 운에 맡길 텐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렇기에 실수라고 말해선 안 됐다. 방금 그것이 바티스타의 판결을 결정짓고 말았다.
테이커가 입을 열었다.
“피고는 함께 일하는 락커룸 동료를 다치게 하고도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옳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JBL.
“따라서 유죄를 선언하며, 처분은 이렇게 진행하도록 한다.”
락커룸 한 달간 사용 금지.
신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앞으로 일주일간의 식대와 이동 경비를 대신 내줄 것.
조금 놀랐다.
‘두 개씩이나?’
명확한 법률이나 강제성이 없는 만큼 레슬러 법정의 판결은 유치해 보여도 상징적인 게 많았다.
락커룸 출입을 금한다는 건 그동안 동료로서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의미로, 상당히 강한 판결이다.
거기에 나 개인에 대한 사과도 겸하라니.
이렇게 두 개가 동시에 나온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당연히 반발하는 바티스타.
“그게 뭐야?! 하나만 해, 하나만! 내가 뭘 그리……!”
“판결은 났다.”
테이커가 바티스타의 분노에 찬 외침을 곧바로 잘라냈다.
“그걸 이행하는 건 이제부터 네 자유고.”
“윽…….”
“하지만 네가 이걸 지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랙다운 락커룸에서 너와 경기를 가지거나 협력해서 일할 선수는 아무도 없을 거다.”
테이커는 단호하게 말했다.
거기에 입술을 빠득 깨문 바티스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