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시내의 대형 레스토랑.
유명 셰프인 제이콥 호프먼의 가게라서 그런지 코스 디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쌌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런 상류층의 소비 생활에는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소에 나는 그냥 적당히 길가에 핀 풀이나 뜯어먹고 생고기를 집어먹는 것 같은 식생활을 해왔으니 말이다.
물론 나오는 음식 하나하나가 환상적으로 맛있긴 했지만.
과연 그만한 값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그래도 내 돈이 나가는 건 아니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다.
이 식사비는 바티스타가 낸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주일간 내가 여행에서 쓴 경비 전부를 녀석이 대신 내주기로 되었다.
레슬러 법정의 판결대로.
그래서 일단 비싼 가게에 왔다.
오튼도 함께.
“오, 이거 좀 맛있는데.”
“조개 관자 요리라고 했던가.”
“야,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살려면 얼마나 벌어둬야 하려나.”
“꾸준히 벌 수 있어야겠지.”
“역시 주식을 사둬야겠어.”
“분산투자해라…….”
안타깝게도 지난번에 슬쩍 액플에 대해서 말해줬지만, 녀석은 자기 안목을 꺾지 않을 모양인지라.
어쩌면 이때의 투자 실패가 빨리 은퇴하고 싶어 하려는 생각과 달리 WWF에 20년이 넘도록 근속하는 배경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시큼한 소스가 인상적인 요리를 계속 먹었다.
그러자 접시를 깔끔하게 비운 해치운 오튼이 질문을 하나 해왔다.
“그런데 말이다.”
“응.”
“바티스타가 과연 순순히 테이커의 판결에 따르려고 할까?”
“안 하면 어쩔 건데.”
“반대로 강제성도 없잖아.”
“없다고 생각해?”
나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어, 솔직히 말해서 안 지킨다고 감옥에 가두는 것도 아니잖아?”
“대신 신뢰를 잃겠지.”
“그래서…….”
“1992년의 일이야.”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 지난해인 1991년에 ‘양떼들의 침묵’이라는 영화가 대박을 쳤지.”
“아 그, 한니발 젝터가 나오는?”
“거기 살인마가 있잖아.”
“한니발 젝터?”
“……아니, 버팔로 릭.”
그 버팔로 릭을 패러디한 캐릭터가 WWF에서 잠깐 활약……까지는 아니고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이름이 버팔로 잭이었던가.”
“그런 사람이 있었나?”
“아주 잠깐 나왔어. 경기에서 사고를 치고 레슬러 법정에 회부되었는데 판결을 지키지 않았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 뒤로 방송에 못 나갔지.”
“맞아죽어서?”
“아무도 같이 일을 안 하려고 했기 때문이야. 대립 상대가 없는데 방송을 무슨 수로 나가겠어?”
그로부터 얼마 후, 버팔로 잭은 WWF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아마 바티스타도 판결을 지키지 않으면 그와 똑같이 되고 말겠지.
내 설명에 눈을 휘둥그레 뜬 오튼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바티스타가 쌓아온 위상이 있는데! 회사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어?”
“바티스타가 뭐?”
“응? 아니, 나름대로 월드 챔피언 커리어를 가지고 랙다운 내에서 인지도도 갖추고 있는 선순데.”
“그 인지도가 뭔데. 결국 네 개인적인 기준에 의한 거 아니야?”
“……그, 그렇지.”
“지금 랙다운에서 테이커를 빼고 봤을 때 가장 큰 흥행력을 가지고 있는 스타가 누구일 것 같아?”
“어, 음. 부커?”
“레이야.”
“어째서?”
“멕시코 시장 때문에.”
“아하.”
“그런데, 아직 바티스타에게 그 정도 상품성은 없지. 결국 회사의 부속품 중 하나라는 뜻이야.”
나는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해, 현재의 바티스타는 하락세를 겪고 있는 만큼 회사 쪽에서도 반드시 챙겨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보다는 락커룸의 규율을 수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
녀석은 아직 부족했다.
잠깐의 기세를 타고 올랐을 뿐,
그때까지 나는 계속 바티스타를 박살 내며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누가 더 위에 있는 선수인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자니 메인인 스테이크가 나왔고, 오튼이 그걸 황홀경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와, 이거 진짜…….”
“맛있겠는데.”
“하하! 그래도 바티스타가 사고 쳐준 덕분에 이 비싼 코스 요리를 얻어먹고 있으니, 나한테는 좋은 건가?”
“무슨 소리야?”
“뭐?”
“바티스타가 내는 건 어디까지나내 경비야. 너는 포함되지 않지.”
“……어, 그러면 왜 아까 코스 요리 먹으러 가자고 한 건데?”
“그냥 가자고 했는데 네가 오케이했잖아. 그럼 계산은 따로지.”
“너, 분명…… 바티스타가 돈 낼 거니까 가는 거라고 했잖아?”
“나만.”
너는 말고.
나는 뭔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는 오튼에게 확실히 짚어주었다.
녀석은 창백한 안색으로 숫자가 다다닥 붙은 계산서를 들춰보았다.
* * *
금요일 밤의 랙다운.
12월의 페이퍼뷰인 파이널 아마겟돈까지 남은 시간은 3주.
경기장에 온 바티스타는 락커룸에 들어오지 못해 경기장 구석의 화장실에서 경기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치심으로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도 녀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판결을 성실하게 이행하려는 태도였다.
내가 레스토랑의 영수증을 건넸을 때는 심히 당황해하긴 했지만.
아예 락커룸의 규율 자체를 무시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서, 그래도 갱생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평소라면 노골적으로 바티스타를 무시했을 선수들도 딱히 건드리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위클리 쇼가 시작되었고, 나는 방송 중간쯤 예정되었던 대로 환호 속에 링에 올랐다.
오늘도 나는 지난주 했던 것처럼 바티스타를 발라버릴 예정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2만1천여 명의 관객들.
내가 복귀하자 랙다운의 시청률과 티켓 판매량은 원래의 수치대로 안정화가 되었다.
아니, 거기에 더 성장했다.
프로레슬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상승했다.
이 업계는 얼마 전과는 달리 다시금 핫한 매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두 슈퍼스타.
나와 숀 시나로 인해서.
“다들, 이걸 좀 보라고.”
링 위에 선 나는 이마에 덮어둔 의료용 테이프를 손으로 가리켰다.
사실, 상처는 다 나았다.
애초에 그다지 깊지도 않았다. 예전 라스트 맨 스탠딩 매치 때처럼 깊게 파고들어 찢어진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연출을 위해 나는 일부러 상처가 다 낫지 않았다고 설정했다.
“여기 보여? 의사 놈이 목욕도 하지 말라고 해서 가려워 죽을 지경이야. 바티스타의 작품이지.”
[Booooooooooooo-!]
“그래, 그 개자식이 지난주 경기에서 내 이마에서 토마토케첩이 흐르게 만들었지. 하인스 케첩에서 광고 하나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이 낄낄 웃었다.
바티스타에게 격한 야유를 보내던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졌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김에 결심도 하나 했지! 나와! 바티스타! 링 위에서 남자답게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Yeeeeeeeeeeeaaaaahhhhh!!]
당당한 외침에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나는 그대로 바티스타가 링 위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쿠궁, 쿠궁, 쿠구궁……!
바티스타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삼각팬티 형태의 경기복에 이번에 발매한 자신의 ‘The Animal’ 티셔츠를 입은 그가 링으로 올라왔다.
나를 노려보며 지나친 녀석이 아래에서 마이크를 받아 가지고 왔다.
키는 바티스타가 좀 더 컸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링 위에서 당당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페이스 투 페이스.
그리고 나는 압도적인 환호를 뽑아내며 바티스타를 짓눌렀다.
[Yeeeeeeeeeeeeeeeaaah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는 팔을 좌우로 뻗었다.
모두의 환호가.
열망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 랙다운에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지를 느끼게 했다.
그렇게 압도적인 환호 속에서 나는 스스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시금 시작한 이래, 나는 끝없이 노력해왔다.
링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나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고 어떻게든 팔아먹어 꿈을 이루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내가 돌아왔다.
스스로가 가장 자유로운 곳으로.
프로레슬링의 링 위.
하지만 그런 나를 상대하게 된 바티스타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그 멋들어진 몸과 카리스마는 분명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완벽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아니,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은, 동료와의 협조성은 필수적인 것이다.
난 그걸 확실히 가르쳐주었다.
전과 같이 각본은 없는 상태.
마이크를 쥔 바티스타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Booooooooooooooooooo-!]
관객들이 그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피식 웃은 내가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자 야유가 싹 멎고 말았다.
내가 이야기했다.
“이게 네가 상대할 남자다.”
[Yeeeeeeeaahhh!!]
“네가 지난주 이마를 찢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경기를 갖지 못해 열이 받은 남자기도 하지.”
[Boooooooo-!]
“들려? 지금 이 사람들이 널 죽일 것처럼 야유하는 게. 나 역시도 그래. 이 멋진 필라델피아에서 내가 누군지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워.”
[Yeeeeeeeeeaaaahhhhh!!]
랙다운이 개최된 필라델피아를 언급하자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바티스타는 한마디도 못했다.
녀석이 반격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댈 때마다 관객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내가 그걸 유도했다.
그리고 이마의 상처도.
모든 건 녀석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렇기에 그 상대인 내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동료가 아닌, 적.
그렇기에 나는 완전히 원 맨 밴드처럼 혼자서 쇼를 펼쳐댔다.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올해의 마지막! 파이널 아마겟돈에서 너와 내가 일대일로 말이야!”
[Yeeeeeeeaaaaaaaaahhhh!!]
대답은 듣지 않았다.
관객들을 향해 돌아선 나는 로프를 붙잡고 몸을 내밀며 소리쳤다.
“누가 이길 것 같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누가 가장 멋진 남자 같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누가 너희를 오늘 밤 잠 못 이루게 만들 인큐버스인 것 같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도 사랑해! 필라델피아!!”
[Yeeeeeeeeeeeeaaaaahhhhhh!!]
이것이 슈퍼스타의 아우라다.
나는 그것을 내보이듯 수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의외의 모습이 나왔다.
바티스타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세그먼트가 끝난 뒤.
락커룸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바티스타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곧바로 정처 없이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이내 렌트해온 미니 트럭에 탑승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데뷔한 이후 최대의 굴욕.
거대한 벽을 마주친 듯했다.
알고는 있다.
예전처럼 누군가 이끌어주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은 이끄는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번 대립은 달랐다.
기본 상황만 존재하고 각본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바티스타 자신이 자초한 결과였다.
‘어쩌면 좋지?’
링 서바이벌 이후로 뭔가 이상하게 일이란 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게 모두 신 때문이다.
그 녀석에 대해 선수들이 이야기하는 게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괴물이었다.
링 위에서 그 녀석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도 압도적인 반응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다녔다.
어떻게 그 동양인 놈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더군다나 GCW 시절에는 정말 완벽할 정도의 악역이라고 했었지.
그런 걸 어떻게 이기지?
계속해서 반응이 내몰리다가 결국 마지막에 패배하고 끝나는 건가?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바티스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은 헌터에게 패기 있게 도전하며 메인 이벤터 반열에 올라갔던 상승세의 선수가 아니었다.
하락하고 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신이 지금처럼 복귀하기 이전까지 바티스타에게 가해졌던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모두가 강하고 단단한 야수를 원했다. 그런 기대치에 조금만 못 미쳐도 실망해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게 팬이다.
그런데 그놈은 어떻게?
대체 어떻게 그 많은 기대를 충족시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가?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티스타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걸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락커룸의 모두가 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자신은 실패하고 다시금 아무것도 없던 과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있던 순간, 누군가 창문을 쿵쿵 두드렸다.
순간 놀라 고개를 든 바티스타는 안경을 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의 담당 작가.
[어, 잠깐 괜찮아요?]
그녀는 사실, 신으로부터 부탁을 하나 받고 여기에 온 것이었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바티스타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