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네, 지금 어…… 솔직히 말씀드려서, 불리한 상황이잖아요?”
바티스타가 의아해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 작가가 시선을 피했다.
그는 눈썹을 찡그렸다.
거구인 자신과 비교했을 때 160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여자 작가.
거기다 신입.
그렇기에, 랙다운에 이적한 후 담당이 된 그녀였지만 바티스타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처럼 뭔가 한마디하고는 곧바로 시선을 피해버리니 말이다.
이쪽이 더 크니까 어느 정도 위압감이 있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야수 취급을 받는 상태에서 파트너십을 발휘할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좀 놀랐다.
그간 바티스타 쪽에서 일방적으로 소 닭 보듯 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도 각본만 넘겨주고는 바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랬던 그녀가 이렇게 찾아와서 갑자기 의견을 꺼낼 줄이야.
자신은 오늘 그 정도로 형편없게 일을 했나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나쁘진 않은 의견이다 싶어 바티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불리하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관객 반응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고 그로 인해 열심히 생각한 대사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그래서 링에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미리 촬영해둔 분량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세그먼트’란, 선수들이 쇼에서 드라마를 진행하기 위해 선보이는 경기 이외의 행위들을 뜻했다.
크게 링 위에서 행해지는 링 세그먼트와 촬영 분량을 내보내는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로 나뉘는데.
개중에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미리 촬영해두는 게 가능해서 보다 연출적인 표현이 가능했다.
거기에 관객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링과 달리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겠지.
“괜찮을 것 같은데.”
바티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반응에 안도한 작가가 이어 파일철을 하나 내밀었다.
“시간 나실 때 읽어보세요.”
“이건……?”
“지금 상황을 정리해봤어요. 신에게 반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스토리가 필요할 테니까요.”
바티스타는 그것을 확인했다.
신과 자신이 지난 커리어 내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는가.
그리고 현재의 대립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까지 자세하게 분석해놓은 문서였다.
“…….”
“저, 저기요?”
“왜 이런 걸?”
바티스타가 의아해 물었다.
순간 납득이 안 갔다.
신과 그는 미리 짜둔 각본의 디테일을 무시하고 대립 중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솔직히 작가로서 열이 받아도 모자랄 판인데, 왜 자료를 정리해서 가져온 거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작가의 업무는 어디까지나 각본을 작성하고 정리하는 거니까.
하지만 이건 지금껏 회사에서 쇼와 이벤트를 진행해오면서 쌓인 공식적인 기록과 설정의 정리였다.
분명 의무적으로 할 일은 아니다. 그러자니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작가가 쓰게 웃었다.
“……저희는 파트너잖아요?”
“파트너?”
“예, 저는 바티스타. 당신을 위해 대본을 쓰는 작가에요. 제 선수가 신에게 완전히 발리고 있는 모습을 두고 볼 수는 없죠.”
순간 그렇게 말했던 작가가 이내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아, 아니! 발렸다는 말은 그냥 관용적인 표현이고 실제로는……!”
“푸하하하하하!”
폭소하는 바티스타.
그렇게 크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봐, 작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어깨에서 힘이 빠진 채 차량에 기댄 바티스타가 말을 이었다.
“그 자식은 정말 대단해.”
“……작가진들도 항상 하는 말이에요. 자신들보다 더 오래 이 일을 해본 사람 같다고 말이죠.”
“나는, 형편없나?”
그 말에 침을 삼키는 작가.
그녀는 이윽고 커다란 안경 안쪽의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절반 이하라고 생각해요.”
“……뭐?”
“원래 당신이 낼 수 있는 상품성의 절반 이하요. 아, 음. 온전히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요.”
“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
“상대가 신이니까요.”
“그, 그건…….”
“거기에 무리한 턴 힐로 캐릭터가 중심을 잃은 것도 있고요.”
“중심……?”
“악역이 된 바티스타는 무슨 이유로 링에 오르고 있는 거죠?”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바티스타는 비로소 머릿속의 혼란이 멈춰가는 걸 느꼈다.
* * *
12월.
올해의 마지막 페이퍼뷰인 파이널 아마겟돈에서 나와 바티스타의 일대일 경기가 부킹되었다.
큰 대립은 아니었지만, 올해의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바티스타와 나는 버닝콩에서 드래프트로 이적해온 이후 서로 정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선역으로서 다시금 자리를 잡았고.
바티스타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레볼루션에서 양아치 짓을 하던 그때처럼 비겁한 악당이 되었다.
전생에서는 물론 이러지 않았다.
당시 랙다운은 계속 헤이건이 맡았고 바티스타가 락커룸 내의 평판이 좋지 않아도 꾸준히 밀어줬다.
하지만 그런 헤이건이 없는 상태에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랙다운은 바티스타를 희생시켰다.
화제성을 위해 턴 힐 시키고는 그대로 반쯤 방치하다시피 했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바티스타가 자초한 감도 있고, 이후로도 계속 쇠락하고 있는 건 역시 녀석 스스로의 문제가 컸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한 뒤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이 회사에는 함께 협조해서 일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언제나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일에 임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계획은 순조롭게 이어져, 얼마 후 나는 바티스타의 담당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신 선수.]
“예, 작가님. 어떻게 됐나요?”
[정리가 이제 끝나서 메일로 제안서 하나 보내놨어요. 시간 나실 때 확인 한번 부탁드릴게요.]
“위쪽에는 제출해놨죠?”
[예, 확인해보시고 허가 떨어지면 바로 영상 쪽에 협조 받아서 촬영에 들어갈까 하는데요.]
“바로 확인해볼게요. 전화 끊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마침 운동을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던 나는 곧바로 작가에게서 날아온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면 메일 읽으시면서 같이 설명 드려도 될까요?]
“아, 부탁드려요.”
[일단 신과 바티스타가 버닝콩에서 같은 시기에 이적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은 현재까지 정반대되는 길을 걸어왔죠.]
“흐음…….”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 나 역시도 대립을 한다면 이런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비슷한 길을 걸어왔던 나와 바티스타의 차이를 일단 부각시키는 동시에 자기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게 링 서바이벌에서 벌어졌던 ‘빅 죠 들기’ 사건을 기점으로 터져서 대립이 시작되었단 거죠.]
“흥미롭네요.”
[신 선수는 어떻게 보세요?]
“예?”
[바티스타는 현재 의무로부터 도망쳤던 신 선수가 운이 좋아서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바티스타가요?”
각본상의 바티스타인가.
아니면 현실의 바티스타인가.
그런 내 질문에 어색한 웃음을 흘린 작가가 이내 말을 이었다.
[물론 각본상으로죠.]
“……그래도 나아지려고 많이 노력했나 보군요.”
[열심히 했죠. 정말로.]
단호한 대답.
거기에서 나는 바티스타의 태도가 나아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의 담당 작가.
이름은 안지 스미스.
일본계 혼혈로, 전생에 내가 은퇴해 프로듀서로 전업했을 때까지도 업계에 남아있던 작가였다.
그때는 총괄 작가가 되어서 내게 많은 도움을 줬던 그녀는, 자신이 꼬마 작가였던 시절 담당했던 선수인 바티스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야말로 거만 그 자체라고.
막내라고 무시하는 탓에 함께 일하는 동안 협업은커녕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해서 고생이 많았다고.
그녀 역시도 전생의 바티스타가 보였던 비협조적인 태도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계까지 내몰린 바티스타는 안지가 가진 작가로서의 능력을 믿고 기대기 시작했다.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해봅시다.”
일이 잘 풀려가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다시 며칠 뒤.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촬영을 순조롭게 끝마친 바티스타는 숨을 몰아쉬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각종 기자재들을 내던지고 부수고 하면서 많이 지쳤지만.
링 위에서 아무 말도 못하던 때에 비하자면 훨씬 나은 상황.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바티스타는 이대로 옷을 갈아입은 뒤 호텔로 돌아가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를 막아섰다.
“다 끝났는데, 이제 뭐해요?”
뒤를 돌아본 바티스타는 복도 끝에 웃으며 서있는 신을 발견했다.
왠지 그가 거대하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아, 그래. 솔직히 생각해서 경이롭다는 표현 외에는 불가능했다.
이번 대립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신은 확실하게 ‘쿨한 놈’이었다.
바티스타가 작가와 한참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도 군말 없이 따라준 데다가.
위험한 범프를 수행할 때도 지난번 실수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그게 멋지겠다면서 몸을 맡겨왔다.
마치 신뢰 관계가…….
아니, 그 표현은 아직 이르겠지.
하지만 바티스타는 이전보다는 마음이 더 편해진 것을 느꼈다.
애초에 서로 상황이 불편해지도록 싸울 필요가 없던 상대였다.
그것을 깨달은 그가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맥주라도 한잔할까?”
“그건 좀 나중으로 미루죠.”
“뭐하려고?”
“땀이라도 뺄까 싶어서요.”
그렇게 말한 신은 경기장의 어딘가로 바티스타를 데리고 갔다.
지친 상태의 바티스타는 적당히 이유를 대며 거절하려고 했지만.
“안 오면 후회할걸요.”
그 말을 듣자니 순간 또 호기심이 생겨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훈련장이었다.
딱딱한 군인 같은 인상의 백인 남자가 서있더니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신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 나도 막 온 참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이 랙다운의 링 프로듀서 역할을 맡고 있는 베테랑, 다비드 핀레이.
프로레슬링 기술이나 경기 스팟을 짜는 데 도움을 주는 그를, 바티스타도 물론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평소 그다지 이야기할 기회는 없어서 조금 어색했다.
그러자니 신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이끌어 나갔다.
“일단 몸부터 풀어둘까요?”
“뭐?”
“땀 좀 빼자고 했잖아요? 혼자서 훈련할 수도 없고 핀레이도 나이가 있으니 좀 도와주시죠.”
“이 자식이.”
신의 농담에 핀레이는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고작 그 정도였다.
회사 내에서 존재감이 크면서도 평소 직원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존중하고 챙겨주는 신이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아니, 신. 이게 무슨…….”
아무리 그래도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한 바티스타가 물었다.
그러자니 신은 옆에 있는 핀레이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분이라면 바티스타,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겁니다.”
“도움?”
“예, 도합 30년 경력의 프로레슬러. 그게 바로 핀레이니까요.”
그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다비드 핀레이.
지금은 링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전까지 온갖 단체를 누비며 선수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2006년, 48세의 나이에 선수로 WWF에는 처음 데뷔해 랙다운의 감초로 활약했다.
물론 나이가 많아 일주일에 최대 여섯 경기씩 뛰는 풀-타임 레슬러로서의 활동은 힘들었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남자.
아이리시 파이터.
그는 분명히 2000년도 후반의 랙다운을 거론할 때 반드시 이름이 나오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피규어도 잘 팔렸고.
어쨌든 지금은 트레이너를 거쳐 링 프로듀서 역할까지 맡은 만큼 기본기도 탄탄했고 지식도 상당했다.
그렇기에 신은 이 남자의 ‘프로듀싱’이 바티스타를 제대로 된 선수로 만들어주길 기원하고 있었다.
뭐, 그뿐만 아니라 자신도 아이디어를 왕창 내긴 할 거지만.
그렇게 훈련이 시작되었다.
“아니, 제기랄……!”
지쳐있던 바티스타는 핀레이의 지휘에 따라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그 옆의 신과 함께, 지독할 정도로 빠른 훈련에 구토감을 느낄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낙법을 쳐댔다.
콰앙!
펑!
“펑은 안 돼! 펑은!”
핀레이는 귀신처럼 실수를 잡아냈다.
신과 대화를 할 때는 그래도 너그럽게 굴더니, 이제는 반대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갈궈댔다.
“크윽……!”
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바티스타는 숨을 몰아쉬었다.
안 그래도 세그먼트 촬영으로 지쳐있던 상황이었던 터라 빠르게 체력이 소모되었다.
“더 빨리!”
하지만 핀레이는 유독 그에게만 움직임을 재촉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옆에 있는 신은 그 젊음을 바탕으로 핀레이가 시키는 속도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바티스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