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25화 (225/634)

225.

핀레이의 주도 아래에 진행된 기초 훈련은, 솔직히 정말 빡셌다.

나 역시 끝날 때는 숨이 부쳤을 정도니 바티스타는 말 다 했지.

“허억, 헉…….”

땀으로 흠뻑 젖어 낙법을 친 자리에 웅덩이를 만든 바티스타.

눈빛조차 퀭해져 슬슬 입에서 단맛까지 느낄 정도가 된 듯했다.

그때가 딱 좋았다.

저게 경기의 종반부.

‘바티스타 밤’을 사용할 때 바티스타가 가지고 있는 체력 상태다.

“잠깐 물 좀 마시고 쉬어라.”

핀레이의 지시에 링 아래로 내려간 우리는 일단 수분을 보충했다.

“크흐……!”

쾌감에 몸을 떠는 바티스타.

우리가 그렇게 숨을 돌리는 사이 핀레이는 마대걸레를 가지고 올라가 바닥의 땀을 닦아냈다.

실제로 쇼가 이어질 때도 중간마다 저런 식으로 링을 정리했다.

“다시 올라와!”

“옙!”

“예에…….”

“바티스타, 괜찮나?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솔직히, 죽겠슴다.”

바티스타가 허세를 부리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핀레이가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이유가 뭔지 아나?”

“예?”

“자네 체중이 지금 얼마지?”

“어, 126kg입니다.”

“자네 몸은 그 무게를 계속 지탱고서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남들보다 빨리 지칠 수밖에 없지.”

맞는 말이었다.

바티스타는 정확히 말하자면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체력이 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야수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과도할 정도로 근육을 부풀린 보디빌더 스타일의 몸 때문이었다.

내가 188에 90kg 정도. 바티스타가 196cm에 126kg이니까.

키는 고작해야 8cm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체중은 바티스타가 36kg이나 더 많았다.

아무리 근육이라고 해도 과체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나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나보다 36kg의 무게를 더 짊어지고 움직이는 거니까.

거기다 나이 문제도 크고.

바티스타는 30대 중반이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그럼에도 마냥 근육을 빼라고 말하기에는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의 특성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 야수 같은 근육이야말로 바티스타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바티스타 밤을 갈기고 그 반동으로 일어나 포효하는 그의 모습은 팬들의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기술이 부족했는데도 오래 기억에 남았던 거겠지.

핀레이의 설명도 나와 비슷했다.

멋진 몸을 보여주기 위해서 키운 근육이 레슬링에는 방해가 된다.

그런 설명을 들은 바티스타가 침울한 표정으로 자문을 구했다.

“체중을 좀 줄여야할까요?”

“아, 그건.”

“호오.”

핀레이가 날 돌아보았다.

“뭐냐, 신. 의견이라도 있나?”

“머, 먼저 하시죠.”

“아니다. 네 의견이 듣고 싶군.”

“그러시다면야.”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는 두 사람의 신뢰가 쌓이길 기대해서 되도록 핀레이에게 맡겨두고 싶었는데.

반대로 핀레이는 내가 가진 능력을 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냥 의견을 냈다.

“저는 굳이 지금 체중을 줄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같은 의견이다.”

“왜냐면 바티스타의 몸은 정말로 멋지니까요. 그 하나만으로 개성이 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죠.”

그걸 버릴 필요까지는 없다.

“결국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모든 방면을 완벽하게 타고난 사람은 이 세상에 절대로 없었다.

인간은 결국 누가 됐든 간에 부족한 부분이 한 개씩은 존재했다.

중요한 건 거기에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한 번의 실패를 겪고 돌아온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넘어서면서 그것을 깨달았다.

“지금 버닝콩에서 압도적인 환호를 이끌어 내고 있는 시나도 경기력이 안 좋다는 단점이 있죠.”

“그 녀석은 유연성이 영.”

핀레이가 쓰게 웃었다.

“그 천재인 러셀 하트도 말을 아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무색무취의 선역으로서 자멸할 뻔했고.”

“……오튼은?”

“성격이 영 글러 먹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식빵귀퉁이 같은 거죠.”

Walking 식빵귀퉁이.

즉, 하찮은 놈이다.

바티스타의 질문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단 말이죠.”

바티스타가 진지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계속 말을 해나갔다.

“경기를 뛸 체력이 부족하다.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죠.”

“그걸 위해 우리가 온 거다.”

핀레이가 씨익 웃었다.

“물론, 네가 우리의 도움을 바랄 때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부끄럽습니다.”

바티스타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에서 더 자존심을 짓뭉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핀레이의 뒤로 물러났다.

그는 요 몇 주간 했던 고민과 힘든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전 아무것도 아니었군요.”

“아니다. 오히려 자기 혼자서 죄다 해내는 놈이 이상한 거지.”

핀레이가 그를 위로했다.

“각본, 마이크워크, 외모, 레슬링, 경기, 연기, 관객과의 소통. 모두 혼자서 해내는 놈은 없다.”

그게 이 업계의 생리다.

혼자서 완성되는 상품은 없다. 모두가 각 전문가들의 의견이 취합되면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은…….”

“저 녀석을 같은 규격에 두지 마라. 모두가 단점이 하나씩은 있다느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지만.”

핀레이가 날 가리켰다.

“이 녀석은 단점이 없다.”

그야 그렇겠죠.

나는 이미 얼룩진 인생을 경험해보면서 내 재능을 살리는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왔으니 말이다.

거기에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다는 이점을 대부분 빠짐없이 모조리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부족한 부분이 없는 선수로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들에게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놔둬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지금의 내 위치가 온전한 실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고 계속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전생의 안 좋은 일을 바로 잡고, 이 업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끈다.

그것이 프로레슬링에 뜻을 둔 내가 할 일이었다.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할 수 있어요.”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바티스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은 힘쓰는 기술을 조금 빼고 경기 스타일을 바꿔야겠죠?”

“바른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핀레이.

“하나 더. 피니시 무브는 새로운 걸 개발하는 편이 좋겠더군.”

“바티스타 밤을 빼고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핀레이.

이어진 설명은 간단했다.

보통 바티스타 밤을 사용하는 순간은 경기의 종반부.

다시 말해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을 시점이었다.

“그러니까 바티스타 밤을 사용할 때 다리를 덜덜덜 떠는 거지.”

“아니, 그건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스쿼트 열 세트 더 하고 난 뒤에 신을 들어볼 텐가?”

“…….”

당황하는 바티스타.

그처럼 바티스타 밤은 본인에게 있어서 계륵과도 같은 무브였다.

일단 힘을 과시하기에 좋은 파워 밤 계통의 피니시 무브였지만.

본인이 사실 기대 받는 것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배를 걷어차거나 해서 허리를 숙이게 만든 뒤 그대로 다리 사이에 머리를 끼운 상태에서.

상대의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려 앞으로 목마를 태운 상태로 기다렸다가 힘껏 내리찍는 기술.

거기에 바티스타는 시전과 함께 자신도 자리에 주저앉는 싯 다운(Sit Down) 파워 밤을 사용했다.

문제는 시전 도중이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기술인 만큼, 바티스타는 이 기술을 사용하게 되는 경기 종반부에 체력이 떨어져서 상대를 든 상태로 다리를 떨 때도 있었다.

그게 무척 꼴사나워 바티스타 밤을 사용할 때 카메라는 기술에 맞는 선수에 맞춰 위로 올라갔다.

그런 단점들을 가진 기술……이었지만, 지금 당장 다른 피니시 무브를 개발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래도 일단 현재의 바티스타를 상징하는 무브니까요. 당장은 바꾸지 않는 방향으로 가보죠.”

“그래도 괜찮을까?”

“어떻게든 해봐야죠.”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잘, 부탁한다.”

날 바라보는 바티스타의 눈에서 적개심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 * *

12월 3주차의 랙다운.

쇼의 오프닝이 끝난 뒤, 화면에는 락커룸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바티스타의 모습이 나왔다.

당연히 관객들은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o-!]

하지만 화면 속의 그에게 그런 관객들의 반응은 닿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난주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화면 밖에서 나타난 남자 인터뷰어가 다가가 그런 바티스타의 심경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바티스타, 지난주에는 정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셨죠.]

그 말을 들은 바티스타는 곧바로 꼭지가 돌아 눈을 부라리며 인터뷰어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내가 뭐?]

[어, 그. 신 선수와…….]

[내가 신에게 개발렸다고? 너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그 자식, 마음에 안 들어.]

[어째서…….]

[말하지 않았나? 두 달 동안 이 랙다운은 쓰레기 같은 일을 겪었어! 모두 미쳐버린 상태에서 이 쇼를 지탱해온 건 바로 나야!!]

[Booooooooooooooooo-!]

[하지만 빌어먹을 팬들은 그 은혜도 모르고 나에게 욕을 하더군! 그리고 두 달간 회사를 쉬고 온 그 멍청이에게 환호를 보내다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어, 음. 휴식기가 있었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분명 신이 랙다운을 구했…….]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티스타가 인터뷰어의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위로 들어올렸다.

[커흑!!]

[다시 한 번 말해봐.]

화면이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바티스타는 분노와 열등감에 가득 차 소리를 내질렀다. 거기에 관객들의 야유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바티스타가 왜 싸우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싸움은 깜빡이를 틀기도 전에 곧바로 시작되었다.

[적당히 해.]

[Yeeeeeeeeeeeaaaahhhhh!]

화면 바깥에서 나타난 내가 인터뷰어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인터뷰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진 순간, 바티스타는 곧바로 내게 돌진해 태클을 먹였다.

[Waaaaaaaaaaagggghhhhh!!]

엎치락뒤치락 싸우기 시작한 우리를 보고 관객들이 환호했다.

‘사실 저기서 고민을 많이 했지.’

어떤 식으로 내가 막아서야 신의 캐릭터에 걸맞을까 하고 말이다.

그냥 말만 걸거나. 아니면 친절하게 인터뷰어를 내려주거나.

저게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그림이 멋졌다.

[Boo!]

[Yeah!]

백스테이지 난투극.

바티스타와 나는 온갖 기물을 파손하고 장소를 바꿔가면서 마구잡이로 싸움을 계속 이어나갔다.

백스테이지의 현장팀 직원들까지 화면에 잡혀 혼란이 가속되었다.

다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라면서 놀라 바라보지만,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완전히 야수들의 혈투였다.

[크윽?!]

바티스타의 어깨에 받혀서 들린 나는 그대로 철조망에 등을 부딪친 뒤 그대로 뚫고 뒤로 넘어갔다.

멋진 세그먼트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한 달간의 짧은 대립이었지만 바티스타와 나는 이로서 확실히 우리가 ‘왜 싸우는지’를 증명해냈다.

바로 그때, 시간을 재고 있던 영상 팀장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카운트하겠습니다!”

영상의 끝에서 바티스타와 나는 자연스럽게 입장로로 나가며 이어지는 것처럼 할 예정이었다.

고릴라 포지션 안.

물론, 준비는 모두 마쳤다.

“사람들 한번 미치게 만들어 보자고요. 바티스타.”

“나도 잘 부탁한다. 신.”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바티스타.

아무래도 핀레이와의 일까지 더해 다시 한 번 느낀 모양이었다.

“2……!”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가 있는지를 말이다.

“1……!”

영상 팀장의 신호에 맞춰.

나는 바티스타의 목을 잡고 입장로 커튼 바깥으로 내던졌다.

* * *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우리가 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야수와 같은 힘을 발휘하는 바티스타와 그에게 맞서 온갖 기상천외한 기술을 모두 사용하는 나.

멋진 대립 구도였다.

백스테이지에서 시작되어 링까지 이어진 바티스타와 나의 난투극은 결국 열 명이 넘는 보안요원들이 뜯어말린 끝에야 겨우 멈췄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서로를 비난하면서 계속해서 대립을 이어나갔다.

12월 4주차.

바티스타는 지금까지 형성된 자신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멋진 마이크워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희들을 위해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왔는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냐?!]

[Booooooooooooo-!]

물론 그 혼자서 낸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바티스타를 계속 도와주었다.

그로 인해, 바티스타는 스스로도 점점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목표를 설정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파이널 아마겟돈에서 확실히 보여주마! 내가 저 녀석을 꺾고 랙다운의 진짜 스타가 누구인지를!]

동시에.

이번 대립은 나를 위해서 완벽하게 희생하는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렇게 온갖 것들을 다 걸고서 덤벼오는 바티스타를 박살 내면 분명히 내 위상은 크게 오르겠지.

역시 재능은 있었다.

녀석은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날 띄워줄 수 있을 만한 멋진 악역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그때쯤 내가 잘 이야기해 테이커가 바티스타를 다시금 락커룸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였고.

나중에 테이커에게 들어보니, 니키 제임스에게 찾아가서 먼저 사과를 한 일이 결정적이었다는 모양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 채 파이널 아마겟돈이 찾아왔다.

총 관객수 5만3천 명.

역시 이전까지의 페이퍼뷰에 비하자면 확실히 상승한 수치였다.

모두가 나와 바티스타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는 오늘도 멋진 경기를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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