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바티스타와 나의 경기는 페이퍼뷰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기 위한 오프닝 매치였다.
준비는 완벽하게 끝냈다.
락커룸의 분위기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나는 무척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타이밍을 기다렸다.
파이널 아마겟돈.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페이퍼뷰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과 함께 장내의 해설자들이 곧바로 코멘터리를 시작했다.
[2005년의 마지막 페이퍼뷰! 파이널 아마겟돈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프닝부터 메인이벤트까지! 최고의 경기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아, 저는 역시 오늘의 메인이벤트! 부커-리와 랜스 오튼의 월드 챔피언 매치가 기대되네요!]
[저는 테이커와 JBL의 U.S. 챔피언십도 꽤나 기대됩니다!]
[아니면 이건 어떤가요!!]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쿠궁, 쿠궁, 쿠구궁……!
5만3천 명이 모인 경기장에 일렉 기타의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짧은 전주가 끝난 뒤 야수가 포효하는 듯한 보컬의 샤우팅이 경기장 전체를 크게 뒤흔들었다.
Yeeeeeeeeeeeaaaaaahhhh!!
[Booooooooooooooooo-!]
하지만 뒤따르는 것은 야유.
바티스타의 투지와 거친 야수의 면모를 표현한 것 같은 테마였다.
I Walk Alone.
거칠고 잔혹하며 온갖 위협이 난무하고 있는 프로레슬링 업계.
나는 그런 업계를 남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걷는’ 맹수와 같다.
“후우…….”
그런 각오를 굳히고 심호흡을 한 바티스타가 나보다 한발 앞서 커튼을 걷고 경기장으로 나섰다.
나는 고릴라 포지션의 모니터링TV로 계속 상황을 지켜보았다.
야유 속에 입장로 위로 나선 그가 다리를 벌리고 기관총을 난사하듯 팔을 좌우로 크게 움직였다.
동시에 녀석의 등 뒤로 기관총 소리를 대체해 폭죽이 터졌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퍼펑!
마지막의 퍼펑! 하는 소리에 맞춰 일어선 바티스타가 특유의 어슬렁대는 걸음으로 입장했다.
그 멋진 얼굴과 몸, 더해 특유의 기관총 난사 입장 씬까지.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었다.
[B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도 미들 로프를 밟고 올라간 바티스타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며 투지를 내비췄다.
그런 녀석을 상대하게 된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편한 상황이었다.
‘……멋진데.’
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야유를 받고 있지만 그 카리스마는 정말 대단했다. 무엇이든 쓰러뜨리겠다는 강렬함이 느껴졌다.
물론 나 역시도 지진 않는다.
“신 선수!”
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멸망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구시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라틴어로 이루어진 웅장한 보컬.
광신도들이 일어서 노래한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좋아…….”
뺨을 쫙.
나는 성가대의 합창에 맞춰 커튼을 걷고 천천히 링으로 나아갔다.
푸화아아악-!!
그 순간 좌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나는 자연스레 그것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링 위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섰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터져 오르는 폭죽.
선글라스를 쓴 나는 링 위의 바티스타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가죽 재킷.
롱 팬츠 형태의 경기복.
부츠도 완벽하다.
링 위로 오른 나는 곧바로 바티스타를 향해 나아갔다.
“워워!”
곧바로 끼어드는 심판.
피식 웃은 나는 뒤로 돌아서 바티스타가 했던 것처럼 코너의 미들 로프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Yeeeeeeeeeeeeaaaaahhhhh!!]
쏟아지는 환호.
그와 함께 관객석에서 터진 카메라 플래시가 내 몸을 뒤덮었다.
그 빛 가운데에서 팔을 번쩍 치켜든 나는 고양감으로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Yeeeeeeeeeaaaaaaahhhh!!]
잘 해낼 수 있다.
그런 감이 들었다.
* * *
땡땡땡!
공이 울리자마자 바티스타는 곧바로 나를 향해서 돌진해왔다.
확실히 내가 지금껏 대립을 거쳐 온 선수들 중 덩치는 가장 큰 선수였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프로레슬링은 결국 연극이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렇기에 스포츠로서 상황을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스포츠 연극이란 틀로 봤을 때, 바티스타는 분명 내가 힘에서 밀리는 첫 번째 선수였다.
꽈앙-!
락 업으로 맞붙자마자 나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Booooooooooooooo-!]
엎치락뒤치락하던 중 코너까지 그대로 밀려난 나는 힘을 꽉 주고 있는 바티스타에게 이야기했다.
“힘 빼고. 빠져나간 다음에 도발할 테니까 열받은 척해요.”
주문을 넣고 행동에 들어갔다.
퍽!
락 업에 걸린 상태에서 나는 바티스타의 무릎을 걷어찼고, 그대로 힘이 풀린 사이 뒤로 빠져나왔다.
[Yeeeeaaa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호응을 끌어냈다.
“뭐야! 이것밖에 안 돼?!”
팔을 휘두르며 소리치자 관객들의 환호가 훨씬 더 커졌다.
반대편에 서있는 바티스타와 그대로 링을 한 바퀴 돌며 호응을 끌어낸 나는 그대로 씨익 웃으며 바티스타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겨우 이 정도야?!”
“덤벼라!!”
분노를 터뜨리는 바티스타.
거기에 쏟아지는 야유.
이게 링 사이콜로지였다.
만약 누군가 처음 우리의 경기를 보더라도 지금 상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
나는 압도적인 선역.
반대로 바티스타는 그런 날 끌어내리고자 하는 비열한 악역.
이런 퍼포먼스가 좋은 것은, 경기를 할 때 체력 관리가 굉장히 편해진다는 점이었다.
굳이 계속 싸우기보다도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심리전을 걸면 확실히 체력 안배를 할 수가 있었다.
‘긴장도 풀리고 말이지.’
씨익 웃은 나는 그대로 허리를 낮춘 채 바티스타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붙잡으려는 걸 주먹을 날려 파훼하며 나는 그대로 바티스타를 크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Waaaaaaaaaaagggghhh!!]
속도를 단숨에 높였다.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둘은 서로 지지 않고 기술을 하나씩 주고받으며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바티스타의 복부를 걷어차고 스냅 수플렉스를 선사했다.
콰앙!
허리를 튕겨 올리듯 들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깔끔한 공격.
주도권은 나에게 넘어왔다.
링 위에서 나는 바티스타의 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기술과 스피드로 응수하며 계속 몰아붙였다.
바티스타 역시도 지지 않고 나를 붙잡으려고 들었지만 점점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오직 경기를 보는 이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뿐.
실제로는 가만히 서서 공격에 당해주며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브롤러로서 특유의 해머링 + 찹 콤보로 녀석의 혼을 빼앗으며 완전히 주도권을 가지고 흔들어놓았다.
관객들의 환호에 박자를 맞추며 완전히 축제처럼 마구 폭발시켰다.
퍼억!
[Yeah!]
쫘악!
[Yeah!]
퍼억!
[Yeah!]
쫘악!
[Yeah!]
호쾌한 공격.
그렇게 나아가 코너까지 바티스타를 몰아붙인 나는 그대로 팔을 잡고 반대편 코너로 내던졌다.
쿵쿵쿵!
거구를 뒤흔들며 달려가 팔을 벌린 채 등으로 코너에 안착하는 바티스타.
뒤를 따라 내달린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러닝 드롭킥을 먹였다.
퍼억-!
쏟아지는 환호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나는 그대로 뒤로 구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달려들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서 원래의 코너로 내던졌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이번에는 뒤돌지 못하고 그대로 코너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바티스타.
비틀거리는 녀석의 뒤로 돌아간 나는 그대로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휘감은 뒤 넘어뜨렸다.
롤 업.
“1……!”
곧바로 빠져나오는 바티스타.
거기에서 멈췄다.
관객들의 큰 반응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탐색전으로 이완시켰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흥분한 관객들이 진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코너 드롭킥에서 롤 업으로 이어진 하나의 스팟이 끝나고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 또한 테크닉이었다.
경기 중간 중간 확실하게 쉬는 타이밍을 가져서 경기가 너무 과열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이미 상황 자체는 던져놨기 때문에 관객들은 우리의 다음 동작을 기대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 경기에서 바티스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무브가 터져 나왔다.
“우어어어어어-!”
괴성과 함께 돌진해오는 바티스타를 바라보며 나는 준비를 했다.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를.
미식축구 기술인 스피어 태클에서 따와, 실버백과 같은 덩치들이 자주 사용하고는 했던 기술.
스피어.
투콰앙-!
돌진해온 바티스타의 내 어깨가 내 복부를 꿰뚫을 듯이 부딪혔다.
“커헉!”
이 고통은 진짜였다.
전생에 그가 사용했던 스피어와는 달리, 핀레이와 나의 도움으로 완벽한 폼을 갖추게 된 기술.
그것을 본 관객들의 반응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Waaaaaaaaaaaggghhhhh!!]
멋진 기술에 쏟아지는 찬사.
물론 나는 죽을 맛이었지만.
그대로 나가떨어져 뒤로 구른 나는 충격에 빠진 채로 생각했다.
‘아프긴 진짜 아프네.’
원래 이런 돌진 계열의 기술이 정말로 접수하는 게 힘들었다.
숨을 몰아쉬며 실제로 고통에 몸부림친 나는 이윽고 바티스타의 팔에 붙들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기술은 파워 슬램.
상대의 복부를 한쪽 어깨로 들쳐 메는 오클라호마 캐리 자세로 올려 체중과 함께 내리꽂는 기술.
콰앙!
충격이 몸을 덮쳤다.
바티스타가 떨어뜨릴 때 내 뒤통수를 제대로 잡아주어서 그렇게 까지 큰 무리는 가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주도권을 내준 상태에서 녀석의 기술에 한동안 계속해서 당해줘야만 했다.
물론, 바티스타는 예전과 달리 중간 중간 여유롭게 날 도발하면서 관객들의 야유를 이끌어냈다.
“하하하! 고작 이 정도냐?!”
[Boooooooooooooo-!]
다시금 쉬는 타이밍을 확보했다.
그렇기에 바티스타는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 넘어가지 않고 버텨냈다.
‘좋아, 그렇게만.’
기술들도 파워 슬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대와 합을 맞춰 쉽게 들어 올리는 기술들로 바꿨다.
물론 그것도 힘을 쓴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체력 소모를 막아줄 거다.
상대를 뒤에서 들어 함께 쓰러지면서 등에 충격을 주는 백 드롭.
꽈앙-!
개중에서도 바티스타는 들어 올린 상태에서 버티지 않고 그대로 곧장 떨어지는 형태로 사용했다.
놀랍게도 여기에서 바티스타의 장점이 하나 드러나는데.
바로 유연성이다.
바티스타는 큰 근육을 가진 것치고 유연성이 좋은 편이라서 기술을 호쾌하게 잘 사용했다.
기술을 사용한 뒤, 그 반동으로 벌떡 일어나는 동작만 봐도 유연성이 없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그랬으면 근육에 무리가 가 부상을 당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런 바티스타에게 맞춰서 몸을 크게 던져주었다.
로프 반동 후 달려가자 허리를 숙인 바티스타가 한쪽 손을 내 무릎에 걸치고 위로 들어올렸다.
함께 뛰어오른 순간, 바티스타가 내 배를 누르며 바닥에 내리쳤다.
스파인 버스터.
투콰앙-!
등부터 떨어진 나는 충격에 허리를 활처럼 휘며 숨을 내뱉었다.
……사실 그냥저냥 그래도 버틸 만했지만, 정말 뒤질 것처럼 아파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오오오오오오-!”
[Booooooooooooooo-!]
양 엄지를 뻗어 아래로 내린 바티스타가 바닥에 쓰러진 내 머리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바티스타 밤.
허리를 숙여 녀석의 다리 사이에 몸을 끼운 나는 그대로 허리를 잡힌 뒤 타이밍을 기다렸다.
내 허리를 꽉 잡는 바티스타.
그게 신호였다.
다리를 차며 머리를 아래로 넣자 동시에 몸이 위로 부웅 떠올랐다.
시야가 거꾸로 회전하면서 눈앞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게 멈췄을 때.
나는 바티스타의 어깨 위에 반대로 목마를 탄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서 찍기만 하면 바티스타 밤. 지금껏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바티스타의 피니시 무브.
[Uoooooooooooooohhhhh!!]
관객들이 ‘꽂힐까? 아닐까?’를 걱정하며 크게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버텨라!’
나는 바티스타의 무릎이 덜덜 떨리지 않기만을 기원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 다 15분이라는 경기 시간을 기술적으로 이용했다.
그렇게 하나의 대립이 멋지게 최종 국면을 향해서 나아갔다.
작가의 각본.
핀레이의 스킬.
음향팀의 음악.
시설팀의 조명.
영상팀의 촬영.
그로 인해 우리가 빛났다.
질투와 분노로 인해 이성을 잃고 야성으로 물든 남자, 바티스타.
그런 녀석에게 뒤지지 않고 강함을 드러내 보이는 남자, 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고난에 맞서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바티스타도 잘 버텨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주먹을 들어 바티스타의 머리를 후려쳤다.
내리꽂지 못하고 자리에 꿋꿋이 버틴 채로 비틀거리는 바티스타.
이게 프로레슬링이다.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어깨에 상대를 올린 채로 공격을 맞아주는 기형적인 스포츠.
그 결말을 내기 위해.
나는 바티스타의 어깨에서 다리를 벌리고 떨어져 내리며 녀석의 머리에 힘차게 팔을 휘감았다.
바티스타의 거구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위로 날아올라 머리부터 링 바닥에 처박혔다.
투콰앙-!
반격 DDT.
[Yeeeeeeeeeeeeeaaaahhh!!]
곧바로 자리에서 빠져나온 나는 링 포스트로 돌아가 마지막 기술을 날리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내 피니시 무브.
슈퍼 킥 앤 러닝 니.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의 광신도들이 내 이름을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