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그렇게 즐거운 연휴가 지난 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온 나와 티파니는 뉴욕으로 이동했다.
슬슬 연예기획사로서 업계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S&T의 사무실.
연휴를 즐기고 돌아온 직원들이 자신들의 대표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잘 쉬셨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Good Morning~!”
집안에서와는 달리 몸에 깔끔하게 달라붙는 검은 정장 차림의 티파니.
긴 금발을 틀어 올려 묶고, 커다란 안경을 쓴 모습이 잡지 화보 속의 커리어 우먼처럼 느껴졌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앞장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티파니는 책상에 앉아있는 직원들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맞다! 휴가 전에 보내드렸던 거 빨리 좀 체크해주세요!”
“음악 샘플 들어온 것도 한 번 들어주시고요. 피드백 넣은 대로 나쁘지 않게 결과 나왔던데요?”
“그쪽 작곡가가 연휴 수당 챙겨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처리할까요?”
“BDC에서 드라마 다음 시즌 재계약 문제로 공문 보냈던데요.”
“대표님, 브리 로건 좀 최대한 빨리 만나게 해주시겠어요.”
마지막 말은 내가 한 거다.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돌아본 티파니가 일단 직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이거부터 처리하고 나머지는 오늘 중으로 다 확인해볼게요!”
시원시원한 목소리.
분위기가 좋은 걸 봐서 회사는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은 순간.
“그리고 다들! 지금 업무 시간에 ‘성과’ 이야기는 안하는 건가요?”
티파니가 호통을 쳤다.
직원들이 의아해 고개를 들었고 그녀는 뒤쪽에 서있던 날 보란 듯이 돌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지금 2005년 가장 섹시한 한 해를 보낸 남자가 여기 있잖아요!”
“아, 맞다!”
“아니, 신이 너무 조용히 들어와서 까먹고 있었는데!”
“축하해요!”
“믿고 있었다구~! 젠장!”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스무 명 남짓한 직원들이 모두 책상에서 일어나 내게 몰려들었다.
갑작스레 주목을 받게 된 상황에서 티파니는 회사의 최대 성과물인 나를 자랑스럽다는 듯 보았다.
“이야! 우리 배우님 때깔 좋다!”
“멋지다! 멋져!”
“오늘 파티 합니까?!”
“아, 하죠! 하죠!”
그런 상황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나는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어, 감사합니다.”
왠지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칭찬을 막 해주면 좀 창피하단 말이지.
티파니로서는 정말 기뻐서 한 말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강 수습하고는 곧장 자리를 빠져나왔다.
살짝 툴툴거렸다.
“바보야, 내 성격 몰라?”
“에이, 그래도 남들한테 축하는 받아야죠! 당신 덕에 우리 S&T 평가도 올라가게 생겼는데!”
“……난 네 칭찬만 있으면 돼.”
“어머나, 어머나.”
“자꾸 놀리기야?”
“당신이야말로 자꾸 로맨틱하게 이야기하면서 넘어가기에요?”
내가 졌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겪고 도착한 사무실 안쪽의 대표실.
커피 머신을 켠 티파니가 날 돌아보았다.
“커피 마실래요?”
“아니, 괜찮아. ……그보다 분위기가 꽤 화기애애하던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죠.”
“호오, 어떤 점에서?”
“아무리 편하게 대해줘도 회사 대표는 연봉을 많이 주고 최대한 아는 척을 안 해줘야 한다는 거?”
“바트와 정반대로군.”
“아버지는 돈도 짜게 주면서 가족 같은 경영을 모토로 삼고 있죠.”
킥킥 웃는 티파니.
“어쨌든, 잘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당신이 계약을 제안했던 뮤지션들 반응이 정말 좋더라고요.”
당연히 그럴 터였다.
현재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뮤지션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분명 어떤 식으로든 대박을 터뜨렸다.
그렇기에 오히려 아직까지는 성장하고 있는 단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회사에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1년이 지난 후에는 그 결과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때까지 회사는 계속해서 사업을 진행하며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뭐, 그렇게 잘하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 문제가 하나 생겼죠.”
“브리 로건?”
“예, 소속 아티스트에 대해 뒷말을 하는 건 안 좋은 거긴 한데.”
“어떤데 그래?”
“통제가 불가능해요.”
“자세히 말해봐.”
“……힘에서 밀려요.”
“뭐?”
“사실 좀 부끄러운 이야긴데요.”
티파니의 뺨이 붉어졌다.
“그쪽에서 싫은 제안 있으면 너무 힘으로 몰아붙이려고 해서 저도 그냥 홧김에 밀어버렸거든요?”
“중학생이냐?”
“아니! 근데 그쪽에서 너무 아프게 때려서 화가 났단 말이야!”
“……초등학생이냐.”
“어, 어쨌거나. 그랬는데 꿈쩍도 안 해서. 그때 느꼈죠. 확실히 유전자가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그야 아버지가 캡틴 로건이니까. 실제로 로건은 200kg 넘어가는 기간트마저 메칠 만큼 힘이 좋았지.”
나는 쓰게 웃었다.
티파니도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싫은 제안에 힘으로 몰아붙인다는 말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자기도 홧김에 밀어버리다니.
아무리 그래도 소속 아티스트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대표가 대체 어디에 있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얼마 후, 나는 그 말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 * *
브리 로건.
회사 앞의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미인이었다.
어머니를 닮은 것일까.
어딘가 유쾌해 보이는 인상의 서구형 미인.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 게 정말로 밸리 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달랐다.
등이 엄청나게 넓었다.
키도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목소리도.
“푸하하하하! 아, 진짜 웃긴다!”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브리.
……지금 손에 힘주니까 커피잔에 금이 간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정말요? 아빠가 그랬어요?!”
“예, 에. 그런데.”
“아, 웃겨. 내가 기타를 친다고?”
“아닌가요?”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추운 겨울이었건만 브리는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여기에 나왔다.
거기에 굳이 테라스석을 고집해서 옆자리의 티파니는 아까부터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얼른 이야기를 끝내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기타’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브리의 호쾌한 웃음을 듣게 된 것이었다.
이런, 제기랄. 귀가 먹먹하다.
피 나는 거 아니겠지.
“아니, 좀 치긴 했었죠. 옛날에 시골 살면서 할 것도 없을 때.”
“그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으에, 싫은데~.”
“왜죠?”
이게 중요했다.
뭔가 복잡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면서 기타를 쳤지만 이후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셔서…….
“꼴사납잖아!”
꼴사나워서 그런 거였군.
“봐요. 신. 내 손톱.”
브리가 무기로 써도 될 정도로 거대한 손톱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쁘죠? 이번에 샵 가서 받은 건데 이걸로 어떻게 기타를 쳐?”
“………….”
“그러니까 기타는 안 칠래요. 그냥 브리트니 같은 느낌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무슨 음악을 시키려고 기타를 치래요?”
“컨트리 음악이죠.”
“허얼~.”
“…….”
“헐킈~.”
“저기, 그.”
“안 해. 안 해. 나 같이 젊고 예쁜 아가씨가 웬 컨트리~. OMG~. 완전 구리잖어~.”
와.
실제로 있구나.
밸리 걸이.
나는 황당한 느낌을 받으며 브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니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보다 시인~.”
“네?”
“끝나고 나랑 놀러가지 않을래요? 내 친구들이 당신 보고 싶다고 난리를 피워서 말이야! 아, 다들 그래도 꽤 잘나가는 집안 애들이니까 거기서 여자친구 구하는 건 어때?”
티파니가 헛기침을 했다.
“그런 건 됐고요. 브리 양. 일단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어떻게…….”
“아이~ 그거 싫다니까!”
활짝 웃은 브리 로건이 곰 발바닥만한 자신의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게 티파니의 어깨를 향해 힘차게 날아드는 걸 본 내가 깜짝 놀라 앞으로 나섰다.
쩌억-!
순간 거멓게 죽는 시야.
“어, 어?!”
“신?!”
“아니, 괜찮슴다.”
뺨을 얻어맞고 순간적으로 ‘기절’했던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대체 이 충격은……?
흡사 빅 죠의 찹을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버텨내라. 몸아.
버텨내! 기절해서는 안 돼!
“미, 미안해요. 신. 내가 원래 바디 토크를 좀 잘하는 편이라서.”
“아, 그러셨군요.”
“네, 왜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서 뺨을 맞고 그래요~! 아팠어요?”
“괘, 괜찮습니다. 선수인걸요.”
“오호호! 너무 웃긴다!”
퍽, 퍽, 퍽.
브리가 내 어깨를 계속 때렸다.
옆에서 안색이 창백해진 티파니가 안절부절못하며 어떻게든 말리려고 들었다. 나는 거기에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나는 프로레슬러가 되면서 단 한 번도 가드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프로레슬러는 가드를 들지 않는다. 상대방의 타격기는 맞아준다.
그게 당연한 상식.
그런 내가 브리 로건의 활달한 공격에 처음으로 가드를 들었다.
‘……이것 때문이었군.’
기침을 쿨럭쿨럭하자 피가 좀 나온 것 같았지만, 내 착각이겠지.
어쨌거나.
“브리, 어떤 예능이라서 출연하지 말자고 한 거예요?”
“아, 무슨 정글 가는 예능이요~. 거기서 살아남는 거라는데 저처럼 연약한 여자가 어떻게 그걸 해요!”
“…….”
아니, 다른 의미로 거기에 출연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왠지 정글에서 생존하는 게 아니라 정글‘이’ 브리로부터 생존을 해야만 하는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방송국도 넘 작구~ 나도 나름 이름난 셀럽인데 어떻게 그런 작은 프로그램에 나가요?”
“그 말인즉슨, 사이즈가 큰 프로그램이라면 납득하고 출연하겠다는 말이죠?”
“예?”
“제가 마침 브리 당신한테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하나 아는데. 같이 출연해보시겠어요?”
“어머, 어머, 뭔데요?”
브리가 흥미를 보였다.
걸려들었군.
“빨리 말해줘요~!”
쩌억!
내 어깨를 후려치는 브리 로건.
팔이 빠진 것 같았다.
* * *
팔에 멍이 들었다.
“괘, 괜찮아요?”
“……아까 당신한테 초등학생이라고 놀렸던 거, 진심으로 사과할게.”
오히려 티파니는 강했던 거다.
링 위에서 활동하며 각종 공격을 맞은 경험도 있기 때문일까. 이 엄청난 공격을 모두 받아주다니.
어떤 느낌인지는 알 거 같았다.
‘여자애’들이 서로 악의 없이 그냥 꺄르르 웃으면서 리액션으로 상대방을 툭툭 때리고 하는 그걸 똑같이 한 거겠지.
하지만 브리 로건은 등 근육이 악귀의 형상을 띄는 타고난 파이터.
키 180cm에 체중 74kg.
지금은 별다른 운동도 하지 않는데 저 정도면, 정말 타고난 유전자가 상위 1퍼센트 급이라는 소리다.
“차라리 MMA 쪽에 진출하면 제왕이 되어서 다 휩쓸 것 같은데.”
“그 제안을 하면 진심이 담긴 펀치를 맞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난 죽겠지.”
“그래서 사실 어떤 식으로 키워야 할지 참 고민이 되는 사람이에요.”
“기타를 치게 하면 되잖아.”
“……정말로 잘 치는 거예요? 아니, 그보다 본인이 저렇게 싫어하는데. 과연 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해봐야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브리에게 자기 매력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가르쳐줄 생각이야.”
“그 강함이요?”
“그래, 그거.”
프로레슬링계의 명언이 있다.
아무리 선수가 똥이라고 해도 빛나는 똥으로 포장하는 게 홍보팀의 역할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야말로 프로레슬링뿐만 아니라 상품을 파는 모든 이들이 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브리는 똥도 아니지. 오히려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거라고.”
“그, 일단 묻겠는데요.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실 생각이에요?”
“The Farmers.”
“뭔 머스요?”
“파머, 농부, 농부.”
“……예?”
황당해하는 티파니.
하지만 난 분명히 이 프로그램이 브리에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파머스.
다큐멘터리 전문 방송국인 히스토리아에서 방영되는 버라이어티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었다.
그냥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내들의 모습을 그린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한 가지 독특한 게 이 방송은 평소에 할리우드에서 셀럽으로 살던 이들이 농사를 지으러 와서는 개고생을 하는 게 포인트였다.
“이게 왜라고 생각해?”
“……고생하는 셀럽들과 그걸 타박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면서 느껴지는 대리만족?”
“바로 그거야.”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므로 이 방송의 주된 시청자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미 남부의 레드넥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때 프로레슬링과 캡틴 로건의 엄청난 지지자였고.
한술 더 떠서 컨트리 뮤직의 엄청난 신봉자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상황이 다 좋게 돌아가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브리 로건은 확실히 더 파머스에 출연해 능력을 보여줘야만 했다.
왜냐고?
지금은 필사적으로 숨기는 사실이지만, 브리는 실제로 어렸을 적에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거든.
캡틴 로건이 유명해지기 전에, 조부모님의 농장에서 말이다.
‘대박이 날 수밖에 없지.’
나는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