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더 파머스는 고정 출연자들의 전문성과 고된 농사일을 겪으며 고생하는 게스트들의 모습을 주된 재미 요소로 삼은 프로그램이었다.
특히나 파머스의 농장에는 기계화가 되지 않은 시설이 꽤나 많았다.
소(小)재배를 하고 있는 과일이나 야채 같은 농작물들이 그러했다.
그걸 하루 종일 손질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게스트들은 그대로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들 스스로가 나름대로 몸을 움직이는 분야에 있음에도 그랬다.
그만큼 농사일은 보통 체력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일에 속했다.
거기에 촬영팀 측에서 일부러 고생을 시키는 것도 컸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달랐다.
PD는 어안이 벙벙한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신은 그래도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애슬리트Athlete 계열의 사람이니까 잘해낸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문제는 브리 로건이었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던 그녀는 지금 돼지우리에 들어가 있었다.
일단 그것부터가 놀라웠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연예인들은 저런 장소를 기피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여기 오면 해야 한다.
그걸 이용해서 처음에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지금까지 방송의 주된 재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버티기 힘든 이 악취 속에서도, 브리는 아무런 불평 없이 작업복을 입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이 깨진 와중, 노인 출연자인 브라이언이 플라스틱으로 된 큰 삽을 브리에게 내밀었다.
“돼지 똥이나 좀 치우자고.”
“……비료로 쓰려고요?”
“응? 아가씨, 알고 있나?”
“그럼요. 저도 어렸을 적에는 농장에서 돼지 돌보고 그랬는데요.”
“이런, 이런. 아름다운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과거로군. 놀라워.”
“지금까지 기회가 없어서 밝히지 못했을 뿐이죠. 제가 만든 우리보다는 훨씬 더 악취가 심하지만.”
“호오, 우리를 만들어?”
“예, 돼지, 소, 양, 닭, 말까지. 키울 수 있는 건 다 키웠다니까요?”
“그거 재미있는데. ……우리 축사가 냄새난다는 소리를 들은 건 솔직히 좀 기분이 나쁘지만.”
“하지만 사실인걸요.”
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돼지 분변을 치우며 이야기를 해나갔다.
물론, 축사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정 출연자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축사는 일부러 촬영팀에서 취한 연출에 가까웠다.
축사가 더러워야 할리우드의 연예인들이 더 괴로워할 테고, 그로 인해 확실한 방송 분량이 확보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브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저 신으로부터 받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라’는 오더를 최대한 이행하기 위해 열심히 축사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동시에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브라이언과 이것저것 일에 관한 잡담을 나누었다.
“우리가 너무 좁잖아요. 돼지 아이큐가 80은 된다는데 얘들도 우리만 넓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 구분하고 살아서 관리하기 편해요.”
꾸이익!
브리의 말에 동의하듯 옆에 있던 돼지가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거기에 브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는 문제지.”
“그건 맞아요. 고생하는 만큼 벌어가지 못하는 게 농사일이죠.”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드는 브라이언.
브리로서는 아무 생각 없이 건넨 말이었지만, 그것은 농사 경력 40년 사내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사실, 그는 브리를 처음 보고는 예전에 캡틴 로건의 가족이 모두 나오던 옛날 리얼리티 프로그램 때와는 달라진 모습에 놀란 상태였다.
마치 고등학생 때는 순수했던 딸이 대학물을 먹고 불량해진 걸 보는 듯해서 어딘가 좀 불편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예전의 순수했던 소녀는 그대로였다. 브라이언은 콧잔등이 찡해지는 걸 느끼며 한마디 했다.
“얼른 끝내고 수프라도 먹지.”
“와! 전 콘수프가 좋아요.”
그런 일련의 대화에 방송을 찍고 있던 PD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브라이언의 콘수프!
그건 바로 그가 인정한 게스트들에게나 아주 가끔씩 해주는 마법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브리는 그걸 최단 시간에 얻어낸 출연자가 되고 말았다.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
하지만 PD는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의 브리는 스쿨 걸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보다 빛났다.
오랜 옛날, 신화 속의 지모신은 건장한 모습으로 그려질 때가 많았다.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고, 생존에 지친 만인을 품에 안는 모성애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 브리는 확실하게 그런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꾸이익! 꾸익!
돼지들이 우리가 깨끗해지자 브리의 옆을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브라이언, 돼지들이 귀찮게 구는데 꿀밤 한 대씩 먹여줘도 되나요?”
“돼지 치는 막대로 하면 되는데.”
“에이~. 그건 너무 야만적이잖아요. 저희는 그냥 적당히 내쫓아요.”
“하하하하! 어디 한번 해봐!”
브리의 이야기를 들은 브라이언이 호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주먹을 든 브리가 꿀꿀 대고 있던 돼지의 머리를 내리쳤다.
뻐억-!
그리고 돼지가 죽었다.
“………….”
“……?”
“어?”
모두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브리를 졸졸 쫓아다니던 돼지들이 뒤로 물러섰고, 브라이언이 다가가 돼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냥 기절한 정도였지만.
PD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기존에 없던 캐릭터였다.
* * *
일을 끝마친 뒤 저녁.
농장일은 고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열량을 섭취해주는 것이 정말로 필수적……이라는 모양이었다.
“콘수프는 아주 좋죠. 거기에 빵 같은 거 찍어 먹으면 환상이고.”
브리는 표정이 훨씬 좋아졌다.
축사에서 벌어진 일을 PD에게 전해들은 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는 다행히도 이 방향이 좀 더 맞을 거라 빠른 판단을 내리고는 우리 쪽에 방송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런 상황에서 브리와 나는 카메라가 콘수프를 만드는 장면을 찍는 사이 물러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더 좋네.”
“예?”
“당신 말이야. 그렇게 웃는 게 더 예뻐. 괜히 꾸미는 것보다야.”
“…….”
브리의 뺨이 붉어졌다.
“아, 아니. 뭔 소리래?”
퍼억-!
등짝을 때린다.
많이 아프다.
“바, 방송이라고 해서 좀 오버한 거거든요? 저는 사실 이런 거 안 좋아하고 그냥 옛날 일이라서 적당히 재미있게 방송 만든 거거든요?”
“그래, 그래.”
“그렇게 웃지 말아요!”
퍼억!
웃음이 싹 사라졌다.
“……사실 좀 걱정이에요.”
“뭐, 뭐가?”
“사람들이 이런 내 모습을 과연 좋게 받아들여줄까요?”
“그건 모르지.”
“그럼 왜 시킨 거예요?”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실패하면 책임질 거예요?”
“어차피 당신은 S&T 소속이니까 뭘 해도 책임을 질 생각이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브리가 볼을 부풀렸다.
“남자로서 책임져요.”
“응……?”
좀 당황했다.
이거 설마 그런 의미는 아니지?
“아, 아니. 어쨌든 방송 쪽에서 잔뼈 굵은 PD나 티파니도 그랬고. 다들 좋다고 말했으니까 말이야.”
“책임진다고 믿을게요.”
아뇨, 제발.
어이가 없어져 그냥 웃어버린 나는 이내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럼 내 아이디어에 따라.”
“호오, 뭔데요?”
흥미롭다는 듯 웃는 브리.
그 말에 나는 벽난로 옆에 장식품으로 놓여 있던 ‘그걸’ 가리켰다.
바로 통기타였다.
그것을 본 브리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 저거야?”
“날 믿어보라고. 브리. 사람들 반응도 좋았으니까 분명 먹힐 거야.”
“끄응.”
붙인 손톱을 들여다보는 브리.
길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좀 떼고 할게요.”
좋았어.
* * *
촬영이 끝나고 한 달 뒤.
짧은 휴식 끝에 레드넥들이 고대하던 더 파머스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남부’로 분류되는 주에서는 모두 20퍼센트 이상의 시청률이 나왔다.
그야말로 초대박인 셈이었다.
텍사스에 거주하는 이 청년, ‘프리덤 스미스’도 그렇게 더 파머스를 즐겨 보는 시청자 중 하나였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근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퇴근 후 맥주를 한 잔 걸치며 파머스를 보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다.
“야, 프리덤.”
바로 그 순간, 프리덤의 조부인 새뮤얼 스미스가 말을 걸어왔다.
맥주를 건네서 받고, 낡은 트레일러 차량을 집 삼아 사는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광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언제 시작한대냐?”
“모르겠는데.”
“쉬버럴~ 하여간 자본가 새끼들 광고 한번 오지게 때려 넣는군.”
“가서 기저귀라도 갈고 오시던가.”
“이 새끼, 네 부모 뒤지고 나서 키워줬더니 그게 나한테 할 말이냐?”
“제기랄, 그럼 부모가 대마초 빨다 홍콩가기 전에 이딴 이름 지어주는 거나 좀 막아주지 그러셨수.”
“프리~덤~.”
“제기랄.”
낄낄거리며 웃는 손주, 프리덤.
말했듯, 새뮤얼은 어렸을 적부터 프리덤을 유일하게 돌봐온 혈육이었다.
부모는 히피였고, 마약을 빨다 죽었다. 그때 막 태어난 프리덤은 이런 이상한 이름으로 텍사스 깡촌에서 조부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TV를 보는 것과 가끔 나가는 토끼 사냥이 유일한 낙인 20대의 청년.
주급은 쥐꼬리에 주변에 여자는 없고 매일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일하는 삶.
미래는 없다.
인생이 항상 불만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프리덤은 파머스에 나오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어떤 종류의 대리만족이냐고?
그야 물론, 할리우드 스타들이 멍청이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고된 농사일에 녹초가 되어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빌 때마다 쾌감을 느끼며 방송에 더 몰입했다.
아무리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스타들이라도, 고된 농사일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프리덤 스스로가 매일같이 농사일을 하는 만큼 그런 비틀린 형태의 만족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조부인 새뮤얼 스미스도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고 나온 게스트들을 본 두 남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신이잖아?”
“브리 로건…….”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게스트에게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손주인 프리덤이었다.
“할배, 저 여자 누구야?”
“떽! 넌 그것도 몰라! 불멸자! 캡틴 로건의 딸 브리 로건이잖아!”
“대체 언제 적 캡틴 로건이야? 신이나 봐요. 저 자식 죽여준다니까?”
“저건 웬 동양인 놈이야?”
“제기랄, 뭘 모르네. 저 자식 하는 짓이 아주 죽여주는데.”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응원하는 게스트들을 응원하며 고정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 의문을 느꼈다.
프리덤은 신을.
새뮤얼은 브리를.
자신들이 호감을 가진 게스트가 나온 상황에서 또 파머스는 그들을 개고생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그 답은 금방 나왔다.
[장작을 패라고요?]
“낄낄! 저러다 허리 나가겠구만! 동양인 놈이 무슨 도끼질을 해!”
“하 씨, 개무시하네? 신이 저번에 빅 죠도 들었거든요?”
“에잉~ 빅 죠는 우리 시절 기간트보다 훨씬 마른 놈이거든!”
그런 새뮤얼의 생각은 신이 도끼를 한 번 휘두른 뒤 그대로 깨졌다.
쩌억!
“허……!”
“그렇지! 잘한다! 신!!”
주먹을 불끈 쥐는 프리덤.
물론, 그 역시도 처음부터 신이라는 선수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웬 동양인 놈이 링 위에 서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점차 변했다.
그가 가진 배드애스한 면모에 공감하고 그 활약에 몰입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연 것이었다.
오랫동안 프로레슬링을 보지 않은 새뮤얼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신은 분명 그 보수적인 남부 쪽 젊은이들에게마저 새로운 ‘쿨한 놈’으로 여겨지고 있는 선수였다.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역시 운동선수구나 싶었어요. 도끼질 솜씨가 아주 예술이던데요.]
소년 출연자인 닉이 신의 도끼질에 대한 감상을 인터뷰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방송으로 돌아와.
[아, 덥다. 더워.]
한숨과 함께 입고 있던 상의를 벗는 신. 완벽하게 조각된 몸으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캬! 저거지! 저 자식 몸 보이죠? 남자라면 저래야 한다니까!”
“……크, 크흠. 좀 하는군!”
눈 덮인 산장 앞에서 청바지 하나만 입은 채 계속 도끼질을 하는 근육질의 남자.
분명히 멋진 그림이었다.
일평생 동양인을 본 횟수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새뮤얼이 호감을 표시할 정도로 말이다.
그가 봤던 미디어 속 동양인은, 푸-만추 수염을 기르고 비겁하게 동양의 무술이나 주술을 사용하다가 멋진 백인들에게 깨지는 악당이었다.
마냥 그렇게만 생각했던 새뮤얼의 생각이 아주 약간은 바뀌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돼지 축사에서 화기애애하게 일을 하는 브리 로건의 모습이 나왔다.
브리가 돼지에게 꿀밤(?)을 먹이자 새뮤얼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캬하하! 멋진 아가씨가 되었군!”
“돼, 돼지를 저렇게?”
“저 정도는 해야 여자지! 크하하! 요새 것들은 마냥 말라빠지기만 해서 말이야! 안 그러냐!”
“그, 그러게요.”
프리덤의 뺨이 붉어졌다.
확실히 화면 속의 브리는 아름다운 미모에 체격도 건장하고, MTV 등에 나오는 가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프리덤이 보기에는 건강한 것처럼 느껴졌다.
같이 농사일을 하면서 트랙터를 맡겨도 될 것 같은 멋진 여자.
거기에 평소 게스트 출연자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던 캐릭터인 브라이언이 최초로 그녀를 인정했다.
[아주 자세가 됐어. 요즘 것들은 매일같이 돼지를 먹으면서도 눈앞에 두면 더럽다고 난리인데 말이지. 순간적으로 나중에 농장을 물려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까?]
그와 함께 브라이언이 특제 콘수프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브라이언의 아들인 케이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콘수프를 만들어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나 싶었죠.]
프리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벌써 콘수프를?!”
“캬하하하! 딸을 잘 키웠군! 로건!”
새뮤얼은 캡틴 로건이 마치 자신의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캡틴 로건은 그 시절 모든 미국인들의 친구와도 같았던 선수였다.
그렇게 콘수프를 먹고, 밤 작업을 한 뒤 모여서 거하게 환영 겸 바비큐 파티를 하며 방송이 이어졌다.
거기에서도 브리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미트 파이를 만들면서 제대로 브라이언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기분이 좋아진 브라이언이 벌꿀주를 내오면서 분위기는 더더욱 화기애애한 채 방송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방송의 마지막 부분.
신이 선배들을 상대한 경험으로 농장 사람들의 술 상대를 해주는 가운데, 기타를 들고 나온 브리 로건이 조율을 시작했다.
오래된 장식용 기타.
거기에 숨이 불어넣어졌다.
모두가 흥미를 가지는 가운데 브리는 편하게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호오.]
잔을 들어 올리는 브라이언.
컨트리계의 불멸의 명곡.
Take Me Home이었다.
벽난로 앞.
고정 출연자들이 눈을 감은 채 그 노래를 즐겼고, 화면 속의 신도 벌꿀주를 든 채 노래를 들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To The Place~.]
사실 보컬은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그 분위기가 완벽했다.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했다.
시골과 통나무집.
카우보이와 통기타.
그리고 오래된 술과 함께 추운 겨울 날 벽난로 앞에 모여 다 같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
브리의 기타는 미국인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향수를 아주 정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프리덤과 새뮤얼.
고된 일상으로 지쳐 언제나 자극적인 쾌락만을 찾았던 두 남자.
그들은 오늘 방영된 파머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감동을 느꼈다.
“신 저 자식, 꽤 물건인데.”
새뮤얼은 오늘 하루, 전형적인 미국 남자다운 멋진 모습을 보인 신에게.
“브리이…….”
반대로 프리덤은 기타를 치고 있는 브리에게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 * *
방송은 완벽했다.
우리가 출연한 더 파머스의 방영이 끝난 이후에도 한참이나 내 팔뚝에 머리를 베고 있던 티파니는 이내 감탄사를 내뱉었다.
“몸 진짜 좋네.”
“……저런 남자가 좋아?”
“그럼. 남자가 저 정도 근육은 있어야 만질 맛이 나는 법이지.”
장난스럽게 묻자 킥킥 웃으며 대답하는 티파니. 거기에 나는 살짝 뾰로통한 척하며 옆으로 빠졌다.
“그럼 저런 남자 만나던가.”
“그래야겠네요. ……어! 바로 여기에 있잖아! 숨겨진 꿀 복근!”
만지작, 만지작.
“가, 간지러워.”
“그럼 그쪽도 만지던가.”
새침하게 말하신다.
그렇게 한참 장난을 치던 우리는 이내 일어서 좀 산책을 했다.
손을 잡고 정원을 걸으며 티파니는 내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분위기 죽여주던데요. 나도 일만 없었다면 따라가는 건데.”
“브리의 기타가 좋았지.”
“저렇게 잘 칠 거라고는 솔직히 상상 못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어쩌다 보니.”
“가끔 귀신같다니까.”
너스레를 떠는 내 앞에서 티파니는 피식 웃은 뒤 앞장서 나아갔다.
나부끼는 금발.
그 아래의 가녀린 어깨는 밤바람에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멋졌다.
분명 저것은 브리 로건이 원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는 ‘컨셉’이겠지.
하지만 말했듯,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었다. 나 역시 상품으로 살아가며 생각하는 바였다.
내 무기를 활용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리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같은 신체 능력, 그러한 감수성을 갖는 것도 사실 일반인으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재능을 무기로서 사용하는 것이 맞았다. 다행히 미국은 그런 다양함은 포용이 됐으니까.
그러자니 다시금 슬그머니 내 앞으로 다가온 티파니가 이야기했다.
“확실히 컨트리 뮤직 쪽으로 데뷔하면 대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치? 추진해봐.”
“근데 본인이 하려고 할까요?”
“걱정 마. 사람이란 건 결국 간사한 동물이니까.”
이번 성공은 그녀에게 있어 고무적인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었을 터.
아마 이 상황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면 분명히 브리는 응할 것이다.
그러자니 잠시 고민하던 티파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볼게요.”
“……혹시 한 대 맞는 게 싫으면 견갑 같은 거 착용하고 만나.”
“하하하, 이미 시험해봤죠.”
그런데도 브리의 펀치는 그걸 뚫고 들어와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저렇게 건강하니까 그쪽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거겠지.
그렇게 방송이 끝났다.
주변의 반응을 기대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니 티파니가 질문을 해왔다.
“그쪽은 어때요?”
“응?”
“이번에 케인하고 대립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어떻게 되나 싶어서.”
“아직까지는 별 소득이 없지.”
“……괜찮은 거 맞아요?”
“아직 때가 아니야. 아직은.”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티파니의 말이 맞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신년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딱히 누군가와 대립 각을 세우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냥 보다 급이 낮은 선수들과 싸워 이기며 나의 힘을 과시하고는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번 킹스 럼블에서 반드시 내가 우승을 하겠다고.
“각본 상 이번에 우승하기로 된 선수가 누군데요?”
“레이 미스테리우스.”
“그러면 지금 우승 선언이 별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요?”
“아니지. 티파니.”
내가 그렇게 열망에 차 말하는 만큼 관객들도 분명 원할 터였다.
나의 킹스 럼블 우승을.
그렇다면 그걸 방해하는 자가 나왔을 때 분명히 큰 야유를 보내겠지.
“그 대상이 WWF 역사상 가장 ‘악역 아이콘’에 걸맞았던 일가의 일원인 만큼 더 분노하겠지.”
케인 맥센 vs 신.
권력자 대 노동자.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핫했던 라이벌리, 바트 맥센 vs 락콜드처럼.
아니, 그보다 더 위대하게.
우리는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역사를 다시 쓸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