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33화 (233/634)

233.

브리 로건과 신이 더 파머스에 출연하기 4주 전의 일이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시작해서 연초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연휴 시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바트 맥센은 계속 평소 스케줄을 소화했다.

새벽 다섯 시, 본사로 출근.

이번 연휴 기간에는 특별히 두 브랜드의 방영 시간에 특집 방송을 편성해 내보내기로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바트는 올라온 기안을 확인한 뒤 다시 해오라는 코멘트를 남기고 아침 운동을 하러 이동했다.

60세를 넘긴 고령에도 보디빌더급의 근육을 가진 이유가 다 있었다.

운동 후, 간단히 아침 식사.

그리고 업무.

점심쯤 2차 운동.

임원들과 점심 식사.

그리고 업무.

저녁 운동.

저녁 식사.

야간 업무.

퇴근.

수면.

새벽 다섯 시 기상해 출근.

그야말로 운동과 업무 이외, 특히나 휴식이라곤 전혀 없는 삶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히 미쳐버렸을 스케줄이지만 바트 맥센은 이미 미쳐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정은 소홀히 했고.

가족들조차 쇼의 일부로 이용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기자들 모두가 놀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일에 언제나 사력을 다하고 있는 바트에게 그 외의 인생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냥 매일 같은 업무를 소화하고, 운동하고, 그 반복이 전부였다.

물론 거기에 맞춰주는 다른 사람들은 황금 같은 연휴에 집에도 가지 못하고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바트는 그런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

다음 날 날아온 기안서의 수정 부분을 확인해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작년 한 해.

이 회사에서 가장 큰 성장을 한 것은 분명히 신과 숀 시나였다.

그 두 사람은 2005년 전반기에는 각각 버닝콩과 랙다운에서, 그리고 하반기에는 서로 반대되는 브랜드로 이적해 큰 활약을 선보였다.

그나마 신은 그의 계략으로 한동안 랙다운에 나오지 못하면서 그 커리어에 약간의 제동이 걸렸지만.

링 서바이벌에서 엄청난 만회를 선보이면서 전보다 훨씬 겟 오버 했다.

덕분에 바트는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간 꼴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서 피로감을 느낀 바트는 이후로 지금까지 딱히 신을 건들지 않고 지내왔다.

괜히 더 터치를 해봤자 그 빌어먹을 자식은 더 멋진 아이디어로 빠져나가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안타깝지만 신은 확실하게 돈을 벌어주는 선수였다.

바트 맥센도 그쯤은 생각했다.

남들은 바트 맥센이 회사를 마음대로 운영한다며 떠들고 다녔지만.

그리고 그런 힘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역시 사업가.

그래도 아예 소비자들의 마음을 무시하면서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링 서바이벌 당시 신이 확실하게 뜬다는 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이번에 진행할 특집 방송에서 신은 올해 전반기, 버닝콩의 중심 선수로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를 빼면 레볼루션 스토리나 현재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악역, 러셀 하트에 대한 설명이 안 되니.

모두가 신의 의도대로였다.

바트는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백스테이지 내부의 평가도 최고.

외부 활동도 잘해서 사실상 사람들은 다시 프로레슬링으로 끌어들였다. 그건 분명히 좋은 점이었다.

바트 맥센이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과 달리.

집안의 돈은 쌓여갔고, 회사는 보다 큰 사업체로 확장을 해나갔다.

하지만 바트는 그런 상황이 도리어 자신의 목을 죄는 걸 느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자신이 평생 모아온 이 재산과 회사를, 딸과 그 빌어먹을 사위 놈에게 넘겨주게 될 것만 같았다.

분노로 몸을 떨던 바트 맥센은 이내 멍한 채 한마디를 내뱉었다.

“……대체 왜 백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거냐. 빌어먹을 개자식아.”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노크를 해왔다.

[아버지, 접니다.]

“케인? ……들어와라.”

바트의 말에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케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처리 하나 똑바로 하지 못한 아들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고 있던 바트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연휴고 해서 아버지 일하시는 모습 보고 인사라도 드리려고 왔죠.”

“난 할 말 없다.”

“하, 신 때문에 그러세요?”

“너 때문이지.”

바트가 눈을 부라렸다.

“난 어린애 손목 비트는 것처럼 간단한 일을 맡겼다. 그리고 넌 그걸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지.”

“예, 신을 쇼에 출연시키지 말라고 하셨죠. ……그런데 웬걸, 그게 딱히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전권을 가진 프로듀서에다가 회사 내의 후계자 이미지까지 씌워줬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예. 그 자식, 괴물이에요.”

케인이 단언했다.

“대체 뭐하는 놈이죠? 이제 3년 차 선수 맞아요? 그 자식이 뒤에서 공작 몇 번 부리니까 저는 쓰레기가 되어있고 복귀를 시키지 않으면 랙다운이 망하게 생겼던데?”

“…….”

“아버지도 결국 막지 못하셨잖아요? 그 자식, 대체 어떻게 해야 그 상승세를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바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보셨어요?”

케인이 품 안에서 둘둘 말아둔 잡지를 하나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피플즈 매거진.

표지에 떡하니 있는 신의 얼굴을 본 바트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이건…….”

“예, 1위에요. 미친놈이죠. 그리고 그럴 만해요. 작년 한 해 동안 미국 전체가 이 개자식 하나 때문에 들썩들썩했으니까 말이죠.”

“어처구니가 없군.”

“아니, 실제로 능력을 보여줬잖아요. 그 자식이 데뷔한 이후로 회사가 계속 어땠는지 기억하세요?”

“……상승세였지.”

“왜 상승세입니까? 예? 지금 방송 전체이용가 노선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팬들 반발이 심한 상황인데?”

“감내해나가야 할 문제지.”

바트는 눈썹을 찡그렸다.

버닝콩과 랙다운, 두 브랜드 모두 방송사 측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시청 등급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방송이 예전보다 덜 자극적으로 변해서 기존의 하드코어함을 원하던 팬층이 떠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새로 떠오른 슈퍼스타인 숀 시나를 내세워 어떻게든 돌파구를 열어나가던 중이었다.

이제 프로레슬링은 자극적이며 음란한 문제적 컨텐츠에서 벗어나.

온 가족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볼 수 있는 따뜻하고 유쾌한 쇼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걸 위해 회사에서는 이번 레슬 임페리움 이후로는 이마에 피를 내서 경기에 격렬함을 더하는 ‘블러드 잡’ 또한 금지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회사는 상승세를 거듭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기존 시청자층이 우르르 빠질 타이밍인데 새로 들어오고 있는 신규 시청자층이 그것보다 더 많다고?

“아니죠. 기존 시청자층을 포함해 파이 자체가 커지고 있는 겁니다.”

“시나가 잘해주었기 때문이지.”

“그것만으로 설명은 안 되죠.”

케인이 단언했다.

“신과 시나, 두 사람이 랙다운과 버닝콩, 양대 브랜드에서 각자 골든 보이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든 보이.

쉽게 말해서 아이콘이 될 자질이 보이는 선수를 뜻하는 단어였다.

“지금껏 월드 챔피언 벨트도 하나 얻지 못한 그 녀석이 말이냐?”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정말로 모르시는 겁니까?”

“뭐?”

“후우, 아닙니다.”

한숨을 내쉰 케인은 이내 책상에 잡지를 올려두고 뒤로 돌아섰다.

한없이 심각한 그 말투에 바트 맥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케인?”

“휴게실에서 쉬고 있을 테니 저녁 되면 둘이서 식사라도 하시죠.”

그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 * *

의아해하는 회장을 남겨두고 나온 케인은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가 연휴에 본사를 방문한 이유는 한 가지 ‘분석’에 대해 바트를 한번 떠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누며 겨우 깨달았다.

아버지는 지금 현상을 분석할 생각조차도 없었다.

사실 방금 말한 모든 건, 얼마 전 연락했던 전(前) WWF 아이콘, 락콜드 스티비 스틴의 분석이었다.

돌아온 이후로 정신이 없어 좀 늦게 연락했는데, 그는 신에 대해서 무서운 녀석이라며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의 분석을 듣게 된 케인은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락콜드의 분석을 단 한마디로 쉽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월드 챔피언 벨트를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신을 더 특별한 선수로 만들고 있다.’

지금껏 WWF의 아이콘들은 월드 챔피언 벨트를 통해 상징성을 가지고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과정까지 한 명의 선수로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팬들의 열망과 지지를 차곡차곡 쌓은 끝에 벨트를 따내 새 시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이 시대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시나 역시도 그랬다.

그는 졸부였던 JBL에 맞선 노동자들의 친구, 언더독 같은 포지션을 잡아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걸 위해 회사에서는 시나를 키우는 한편, 반대편에서 적대자인 JBL을 키워서 반응을 몰아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JBL을 쓰러뜨리고 챔피언 자리에 오른 시나는 자신의 시대를 열고 계속 싸워나갔다.

[이게 일반적인 수순이지. 나도 존 마이클스를 쓰러뜨리고 챔피언에 오르며 시대를 열었고, 바트와의 대립을 통해 완벽히 증명해냈어.]

[캡틴 로건은…….]

[그 양반은 프로레슬링의 시조 같은 존재라서 사람보다는 시대와 대립했지. 당시의 미국 사회와.]

[당시의 미국 사회요?]

[히피와 베트남전 패배로 울고 있던 국민들에게 미국의 자부심을 되돌려주면서 아이콘이 된 거야.]

깔끔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신은 아직 자신의 시대를 열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그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유하고 있지.]

[신이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뭐? 지금까지 레슬링을 제대로 보기는 했냐? 그 자식이 아니면 대체 누가 다음 시대를 개막한다는 말이야?]

[로건이 영웅, 락콜드가 반항아, 시나가 노동자였다면…… 신은 뭐죠?]

[혁명가겠지.]

[어떤 혁명가요?]

[좀 차별적인 이야기지만, 그 동양인 놈이 이 업계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혁명이 되는 거야.]

락콜드는 낄낄 웃었다.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다.

동시에 그 인종들 간에 분명히 선을 그어두고 각자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 베트남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보수 세력들의 꿈을 그려낸 프로레슬링에 도전하고 있잖아?]

그런 무대 위에 뜻을 두고 나타난 한 명의 동양인.

솔직히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종의 벽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잘하고 있음에도.

모든 선수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 타이틀은 가지지 못한다.

쉬이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이유 때문에.

그렇기에 열망은 쌓였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열광하면서도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신이 만약 모두의 목표인 월드 타이틀을 쉽게 따낸다면.

[그 특별함은 사라지겠지. 동양계 미국인 남자에게 주어지는 그 엄청난 시련이 사라지면, 남는 건 그냥 존나 잘하는 레슬러 한 명뿐이야.]

하지만 바트는 그걸 막고 있다.

[진짜 그 양반 존나 천재야. 봐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수를 아주 핫하게 키워내고 있잖아.]

새로운 시각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하고 싸워나가는 동안, 열망은 서서히 쌓여나갈 것이 분명했다.

신이 자신들을 대신해 벽을 부숴주고, 일선을 넘어 새로운 사실을 증명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 인종의 용광로에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자유의 나라에서.

그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자리에 올랐을 때.

[바로 그 순간, 미국인들 모두가 진짜 자유를 얻게 되지 않을까.]

그 말이 마음에 울렸다.

“……후우.”

한숨을 내쉰 케인은 핸드폰을 꺼내 곧장 락콜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그렇게 이야기를 맺고서, 락콜드가 한 가지 물어본 게 있었다.

[이걸 바트에게 말할까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아니꼽거든. 내가 만들었던 시대를 뒷전으로 밀어낼 새 시대가 만들어진다는 게 말이야.]

그걸.

막고 싶었다.

* * *

락콜드는 은퇴 후 고향인 텍사스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있었다.

회사에서 몇 번이고 복귀를 종용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냥 모아둔 돈으로 사냥이나 하면서, 버릇처럼 업계의 동향이나 빠삭하게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오늘도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엽총을 내려놓은 그는 마침 전화가 걸려오자 곧바로 받았다.

“락콜드요.”

[접니다.]

“오, 케인.”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얼마 전 케인과 통화를 하면서 장난을 하나 쳤는데,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케인은 락콜드가 말한, ‘바트에게 이 사실을 말하겠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말리려고 들었다.

[그거, 그만해주십시오.]

“뭐?”

일단 모르는 척을 했다.

[아버지한테 말씀하시는 거요.]

“왜?”

[……싸우기로 했습니다.]

“누구와?”

[신과요. 이번 레슬 임페리움까지 회사에서 PG 정책을 미니까. 아마 마지막 싸움이 되겠죠. 이게.]

“이봐, 케인. 너무 흥분했는데.”

락콜드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지금 케인은 깊은 고양감을 느끼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었다.

“내 질문에 대답을 하게나. 자네도 신의 팬이 되었군?”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 친구가 고난을 거치고 수많은 선수들과 대립해 전설을 쌓은 뒤, 마침내 팬들의 열망을 담아 한 시대를 만드는 걸 지켜보고 싶나?”

[제가 일조하고 싶습니다.]

“맥센 패밀리와의 대립은 언제나 핫하지. 나도 그렇게 성장했고. 그래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 건가?”

[물론, 져줄 생각입니다.]

케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제 영혼을 담아서요.]

“자네의 영혼이 뭔데?”

[그야 태도 불량 시대의 잔재와도 같은 거죠. 저는 그 시대에서 가장 위험한 범프를 수행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경기가 되겠나?”

[물론.]

케인이 잠깐 뜸을 들였다.

그 경기는 사실 너무나도 위험해, 업계인들 사이에서는 함부로 입에 담는 것조차 어려운 단어였다.

헬 인 어 셀Hell In A Cell.

락콜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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