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36화 (236/634)

236.

러셀이 잘 해주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악역 수행이었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분노를 이끌어 낸 녀석은 내가 등장하는 순간의 열기를 최대한으로 키워주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간 헛짓거리를 한 러셀을 실컷 두들겨 패주면서 럼블 매치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러셀의 목과 허리를 붙잡고 내던져 링 위로 힘껏 올려보냈다.

[Yeeeeeeeeeeeeeaaahhhh!]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그 뒤를 따라 링으로 올라간 나는 러셀에게 그간 묵혀둔 분노를 있는 힘껏 쏟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작스레 옆에서 나타난 마크 진랙이 나를 공격해왔고, 그것을 본 관객들이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ooo-!]

분위기도 파악하지 못하고 끼어든 마크에게 이어지는 야유. 그로서 이야기에 하나의 복선이 깔렸다.

마크 진랙이 갑작스레 난입해 날 공격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윽……!”

순간 당황한 나는 마크에게 계속 공격을 받아 로프까지 밀려났다.

바로 그때였다.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러셀이 분노틀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넌 뭐야!!”

녀석은 나를 공격하고 있던 마크를 세게 밀쳐냄으로써 결과적으로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말았다.

[Waaaaaaaaaaaaaggghhhhh!]

뜻밖의 사태에 환호하는 관객들.

당황한 마크가 머뭇거리는 사이, 러셀과 나는 한 대씩 주먹을 주고받으며 싸움을 계속 이어나갔다.

링 위에는 다른 선수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관객들의 시선은 러셀과 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모두 의도된 바였다.

그러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링 사이드에 누워 휴식을 취하면서 최대한 체력을 버는 시스템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어지럽게 뒤엉켜서 싸우는 스팟도 물론 있기는 했지만.

러셀과 나의 싸움은 현재 경기에서 가장 핫한 매치 업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선수들이 쉬는 타이밍을 버는 스팟으로 충분히 기능했다.

섬머 슬램 이후 각자 다른 브랜드로 찢어졌지만, 러셀과 나는 아직까지 싸울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 싸움에 마크가 끼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야유로 보답해주었다.

분명 이상한 행동이었다.

마크는 나를 떨어뜨리는 데 무척이나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해설자들이 분명 그것을 말할 터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러셀과 또 다른 악연을 맺고 있던 거트 엔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헉?!”

갑작스러운 기습.

거기에 당한 우리는 각자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어준 채 흩어졌다.

옆으로 빠진 나는 긴장한 듯 보이는 마크에게 오더를 하나 내렸다.

“넘겨요.”

“뭐, 뭐?”

“로프 손으로 잡고 버틸 테니까 저를 클로스라인으로 넘겨버려요.”

그 말에 크게 심호흡을 한 마크가 로프에 양팔을 걸치고 서있던 나의 목에 팔을 대고 힘차게 밀어냈다.

몸이 그대로 뒤로 돌아 3단 로프 위로 넘어갔다. 관객들의 탄성이 순간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Uooooooooooooohhh!!]

하지만 나는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허리를 당겨 링 위에 발을 두었다.

몸은 넘어간 그대로.

아슬아슬하게 로프를 잡고 버티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연기했다.

이 상태에서 링 바닥으로 떨어지면 탈락이 확정되는 위기의 순간!

마크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피해냈다.

[Ooooooooooooooohhhh!!]

관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몇 번, 미리 합을 맞춰둔 대로 주먹을 피해낸 나는 마지막 순간에 한 대를 맞고 휘청거렸다.

몸이 뒤로 넘어갔다.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

순간적으로 몸이 반쯤 돌았던 나는 바리게이트 바로 앞의 여자 관객이 반쯤 혼절하는 것을 보았다.

겨우 로프를 붙잡았다.

아슬아슬하게 한 팔로 버텨냈다.

전신이 크게 휘청거리는 순간, 마크가 다시 한 번 나를 공격해왔다.

몸을 비틀어 겨우 피해낸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잡고 마크를 공격했다.

[Yeah!]

관객들이 환호했다.

내가 주먹을 한 대씩 먹일 때마다 마치 코믹북의 효과음처럼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순간 크게 이어졌다.

거기에 맞춰 휘청거리는 마크.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나는 로프를 타고 넘어가 큰 기술을 시전했다.

로프에 엉덩이를 걸치고 튕겨 오르는 반동을 이용해 다시 마크의 어깨 위까지 힘차게 뛰어올랐다.

양다리를 뻗어 그 어깨 위에 걸치고, 동시에 뒤로 구르며 체중을 실어 그대로 내쳐버렸다.

콰앙!

프랑켄슈타이너.

[Yeeeeeeeeeeeeaaaaahhhh!!]

호쾌한 반격에 환호하는 관객들.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링 버저가 요란하게 울렸다.

13번 선수.

175cm의 작은 백인. 랙다운 소속의 대표적인 자버인 섀넌 모어였다.

하지만 나는 오늘 끝나고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넬 예정이었다.

링 위로 올라온 섀넌이 투지로 들끓는 내 표정을 보고는 그대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연기가 일품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창백해진 안색.

갈 곳을 잃은 채 두리번거리는 시선. 그리고 환호하는 관객들.

옆으로 스텝을 밟은 나는 왼발을 내던져 그대로 슈퍼 킥을 갈겼다.

쫘악-!

거기에 맞은 섀넌 모어는 그대로 로프를 타고 단숨에 뒤로 넘어갔다.

최단시간 탈락에 버금갈 기록.

나는 포효하며 과장된 동작을 통해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 뒤질 준비들 하라고!!”

[Yeeeeeeeeeeeeeaaaaahhhhh!!]

그렇게 내 시간이 시작되었다.

부여받은 임무대로, 나는 완전히 미쳐 날뛰며 다가오는 선수들 모두에게 차례차례 기술을 먹였다.

콰앙!

일단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마크가 다가오자 스쿱 파워 슬램.

콰앙!

상대가 다가오는 반동을 이용해 돌면서 바닥에 내리찍는 메치기 기술.

거기에 거트에게 혼쭐이 난 뒤 우연히 나와 마주한 러셀에게는 다시 한 번 힘찬 슈퍼 킥을 선사했다.

쫘악!

마지막으로 거트를 주먹질로 밀어붙여 코너에 던져 넣은 뒤,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서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내가 우승하겠다고 말했지!!”

[Waaaaaaaaaaaaaaggggh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완전히 내 시간이었다.

아예 모두 녹초가 되어 쓰러진 상황. 로프를 밟고 올라간 나는 자기 자신을 탈락의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리고 그런 날 노리고 뒤에서 다가오던 러셀과 마크의 존재를 느끼고는 힘차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문설트 프레스.

뒤로 270도를 돌며 떨어지는 일격을 두 사람이 완벽히 받아주었다.

콰앙!

[Yeeeeeeeeeeeeaaaaahhhhh!!]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시간이다. 나를 방해하는 건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런 의지를 내보이듯 나는 힘차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전광판이 움직였다.

시계가 숫자 10을 가리키고, 뒤이어 천천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9! 8! 7!]

그 숫자를 세는 관객들.

사실 이 이후가 진짜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리했다.

딱 하나였다.

쇼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끝.

그와 함께 카운트가 끝났고 하이든리히의 클래식 음악이 경기장 내부에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 * *

하이든리히가 올라온 뒤로 상황이 점점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직접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텔레비전 앞의 시청자들. 그리고 그 사실을 정리해 전해야 하는 해설자들.

그 모두가 링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이 신에게 더블 팀 수플렉스를 사용합니다! 이거 크게 넘어가는데요?!”

“두 선수가 신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동시에 아주 훌륭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일어선 신에게 앞뒤로 공격이 들어갑니다! 무릎이 꺾이고 맙니다!”

“분명히 우승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신이건만,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대로 탈락하는 걸까요!!”

그 해설은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동시에 신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궁금하게도 했다.

번호가 계속 이어졌다.

15, 18, 19, 21.

선수들이 계속 올라왔고 그만큼 빠져주었다. 링 위에서는 열 명 남짓한 선수들이 경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신은 마크 진랙과 하이든리히의 협동 공격에 계속 당하면서도 끝끝내 버텨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답한 상황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방식을 통해 풀려나갔다.

“크억?!”

힘을 쥐어짜내 하이든리히에게 킥을 먹인 신이 마크의 팔을 잡고 반대편으로 힘차게 내던졌다.

그 앞에는 거트 엔젤을 힘겹게 링에서 제거한 러셀 하트가 서있었다.

가까이 온 마크 진랙을 확인하고는 힘차게 엘보우를 먹이는 러셀.

콰앙!

쓰러지는 마크.

순간 놀라는 관객들.

숨을 몰아쉬는 신과 러셀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링 위에서 교차했다.

“……!”

“…….”

침묵하던 신이 자신을 다시 덮치려는 하이든리히의 복부를 걷어찼다.

“컥!”

그대로 하이든리히의 머리에 팔을 휘감은 신이 수플렉스를 사용했다.

콰앙!

크게 떨어진 하이든리히의 위로 자연스럽게 러셀이 공격을 이어갔다.

쾅!

엘보우 드롭.

두 사람이 태그 팀이던 시절, 자연스럽게 함께 사용했던 무브였다.

경계하며 일어서는 신과 그런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는 러셀.

그 광경을 맨 앞자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프로레슬링 너드, 조나단 호스가 흥분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이 조합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계속 유지한 채 이어지는 신과 러셀의 드라마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GCW 시절부터 봐왔던 신과 러셀의 ‘최강 태그’.

그게 다시 한 번 펼쳐졌다.

링 위의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기술을 시전하고 그대로 툭탁거리는 일이 많았지만.

레이를 합동해 쓰러뜨리고는 서로 욕설을 내뱉는 내용이 조나단의 귀에는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내 공격에 맞춰서 움직여!]

[아앙?! 네가 나한테 맞추라고!!]

……사실 절대 그런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 드라마에 깊이 몰입한 조나단은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하이든리히가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달라붙었다.

그가 말하는 게 들려왔다!

[우효~ 내분인가!]

……사실 절대 하이든리히가 그런 말을 할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조나단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돌아선 신이 힘차게 킥을 날렸다.

쓰러지는 하이든리히.

이미 로프 위로 올라간 러셀!

“오, 오오오오오오!!”

흥분한 조나단은 옆자리에 함께 온 친구와 끌어안은 채 소리쳤다.

신의 발이 하이든리히의 얼굴을 짓밟았고, 그 위로 힘차게 초승달의 궤적을 그리며 러셀이 떨어졌다.

투콰앙-!

그 순간,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관객석에 있는 조나단은 다른 이들과 함께 미친 듯이 환호를 보내며 두 사람의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최악의 재회!

하지만 공공의 적 앞에서 잠시 협력하는 신과 러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무브를 재현한다!

“이번만 임시 동맹을 맺은 거라고!!”

“신은 아직 러셀을 용서하지 않았어! 하지만 크아! 저 완벽한 호흡을 봐! 정말이지 엄청난데!!”

조나단과 그의 친구는 흥분해 들고 있던 팝콘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반대편의 남자, 프로레슬링 너드 경력 30년의 릭 나카무라는 안경을 쓸어 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거 어쩌면, 꽤나 위험한 조합이 재탄생한 걸지도 모르겠는데요.”

럼블 매치의 경기장에 그야말로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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