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37화 (237/634)

237.

상황은 이러했다.

러셀과 나는 서로에게 원한이 남은 상태에서 링 위에서 재회했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다.

상대를 완벽히 제압함으로써 럼블 매치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

하지만 이 위에는 적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해서 선수들의 방해가 들어왔다.

그렇기에 일단 협력한 것이다.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내가 먼저 손을 뻗었고 러셀이 거기에 응했다.

그렇게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을 탈락시킨 우리는 이후로도 힘을 합쳐 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태그가 결성되자 순간 놀랐던 관객들은 이내 우리에게 엄청난 반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GCW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주도에 의해 이제는 희미해진 태그팀 시절의 챈트가 울려 퍼졌다.

[SIN-Sell! SIN-Sell! SIN-Sell! SIN-Sell! SIN-Sell! SIN-Sell!]

경기장이 한순간 시끄러워지자 우리는 서로에게 크게 목소리를 높이는 척하며 다음 행동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레이를 공격할 거야!”

“레이를?!”

“그래, 차보가 나오니까!”

“어? 아……!”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 말을 이해한 러셀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레이의 허리를 잡고 옆구리를 위로 올려 힘껏 들어올렸다.

것 렌치 리프트.

상대를 들어 올릴 때 순수하게 힘을 사용해야만 하는 어려운 자세.

그 상태에서 레이가 뒤로 내던져지며 것 렌치 수플렉스가 들어갔다.

투콰앙!

아직까지 쌩쌩한 모양이었다.

그 상태에서 레이의 목을 잡고 일으켜 세운 나는 뒤에서 허리를 감싸안은 상태에서 말을 걸었다.

“레이, 괜찮아요?”

“충분히 쉬어뒀어.”

“던질 테니까 제 머리 위에 올라타서 허리케인라나로 반격해줘요.”

그렇게 말한 나는 그대로 백 드롭 자세로 레이를 크게 들어올렸다.

동시에 내 무릎을 밟고 뛰어오른 레이가 어깨에 걸터앉은 뒤 몸을 비틀며 목에 다리를 걸었다.

휘청 기운 몸이 그대로 반대편으로 내던져졌다. 나는 천천히 다가오던 러셀과 부딪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Yeeeeeeeeeaaaahhhhh!!]

환호하는 관객들.

이게 좋은 점이었다.

러셀이 먼저냐.

아니면 신이 먼저냐.

그 차이에 따라 우리는 악역과 선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 러셀과 나는 럼블 매치를 최후반부까지 이끌어나갈 수 있는 완벽한 포지션에 놓이게 된 셈이었다.

‘오랜만인데.’

사실 나는 스스로가 악역일 때 조금 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선역을 할 때도 아슬아슬하게 선 위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농락하고는 했다.

지쳐 일어나지 못하는 레이를 일으켜 세운 러셀이 신호를 보냈다.

턱을 노린 슈퍼 킥.

쫘악!

[B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레이가 그만큼 큰 선수라는 반증이었다. 이번 럼블 매치에서 그의 우승을 바라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 직후, 나와 러셀은 협력해 레이를 로프 위로 힘차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로프를 잡고 버티는 레이.

관객들이 그 모습을 안타까워 바라보는 가운데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10에서 1까지.

모두가 기도하듯 숫자를 외쳤고.

카운트가 끝나는 버저 소리와 함께 익숙한 테마 음악이 울려 퍼졌다.

꿀이 떨어지는 여자의 목소리.

[Wooooo~ Chaaaa~vooo~~.]

[Yeeeeeeeeeeeeeeaaaahhhhh!!]

반응은 엄청났다.

흥겨운 라틴 음악.

무게감이 없는 여자의 콜링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차보 비테레로는 그다지 인기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정확히 미드 카더.

그 위도 그 아래도 아닌.

그렇게 커리어를 지낸 남자.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차보 비테레로.

현재는 고인이 된 에디 비테레로의 나이 많은 조카이자, 레이와도 사이가 좋은 멕시칸 레슬러.

거기에 분명히 베테랑이었다.

링 위로 올라온 차보는 지금의 상황을 보고 곧바로 행동을 결정했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레이를 구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Chavo! Chavo! Chavo! Chavo! Chavo! Chavo! Chavo! Chavo!]

그런 차보에게 챈트가 쏟아졌다.

계획대로군.

* * *

백스테이지.

경기를 끝까지 보지 않고 퇴근한 이들 덕분에 락커룸은 한산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방에 모인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숀 시나, 그리고 케인 맥센.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케인은 락커룸에 혼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시나에게 흥미를 느꼈다.

숀 시나.

현재 신과 똑같이.

하지만 반대로.

회사에서 내건 차세대 간판으로 거대한 푸시를 받고 있는 남자.

그 의견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 시나는 생각했던 것과는 영 다른 성격이었다.

신과 케인이 레슬 임페리움에서 경기를 갖는다는 내용을 듣더니 감탄을 금치 못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와, 그거 멋지겠는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역시 신다운 대립답다 싶네요. 큰 대립을 할 때는 언제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보여줬죠.”

“어쩌다 저런 놈이 나왔는지.”

“그러게요. ……와! 차보 선배한테 환호 진짜 엄청 나오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캬, 역시 멋지시다니까!”

[차보가 신과 러셀을 공격합니다! 그 기세가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왜라고 생각하나?”

“예?”

“왜 지금 차보가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 글쎄요. 어……. 아, 레이 선배를 구해줘서구나.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시나.

케인은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확실히 그러고 보면, 시나는 딱히 탁월한 선수까지는 절대 아니었다.

외모는 탑 페이스로서 완벽했고, 말도 재미있게 잘 하기는 했지만.

신처럼 완벽한 기술로 경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아, 신과 러셀이 한 거구나.”

“자랑스러운 동료들인가?”

“네, 하지만 이번 일은 분명히 신이 계획한 것 같은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신은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 선수를 생각해주거든요. 러셀도 그러긴 하지만…… 음, 이 정도로 교묘하게 짜내진 못한다고 해야 하나?”

“현재 회사의 얼굴인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어쩐지 이상한데.”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신은 천재다.

그렇게 말한 시나가 다시금 환하게 웃어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프로레슬러가 되는 데에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면, 확실히 신을 수식하는 표현으로는 천재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케인 자신은 천재라는 단어에는 시나가 더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프로레슬링이란 무엇인가.

결국 반응을 이끌어내는 거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이 치밀하게 계획했던 대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신도 천재였지만.

그와 정반대로.

선수로서의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태양과 같은 사랑을 받는 선수인 시나 역시도 불세출의 천재일 터였다.

그렇기에 만약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줘야만 한다면 자신은…….

바로 그때였다.

“케인! 여기 계셨군요!!”

방문이 벌컥 열리며 다급한 표정의 직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현재 막 스물일곱 번째 선수인 비체라가 링에 올라서고 있었다.

정확히 나갈 차례였다.

그 사실을 자각한 케인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땀으로 범벅이 된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이 서있었다.

“좋아, 가보자고!”

그 두 사람을 이끌고, 케인 맥센은 링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나와 러셀은 그렇게 팀을 짜고 럼블 매치를 주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에게 맞서서 다른 선수들도 팀을 짜면서 대항해 경기는 삽시간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반응은 완벽했다.

그렇게 링 위에서 멋진 앙상블을 선보이며 때가 오는 걸 기다렸다.

경기의 후반부.

[Waaaaaaaaaaggggghhhhhh!!]

관객들의 환호가 절정에 달했다.

남은 선수는 총 여섯 명.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에서 나와 러셀이 탈락하면서 파이널 포가 경기에 남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심판에게 허가를 들은 건 원래 계획보다 2분 뒤였다.

“신 선수, 준비 끝났답니다.”

“이제야……?”

나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다행히 관객들의 반응이 한계까지 뛰어올랐다가 살짝 침체되어있는 상태라서 아주 좋았다.

바로 이 순간.

관객들이 진정해있는 지금 이 상황이라면 케인 맥센의 ‘복귀’가 분명히 충격적으로 느껴질 터였다.

나는 러셀에게 눈빛을 보냈다.

나와 반대편 코너에 쓰러져 있던 녀석이 로프를 잡고 겨우 일어났다.

우리는 쓰러진 선수들 사이를 헤치고 링 중앙에서 다시 만났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에 대한 환호가 쏟아졌다.

거기에 열이 뻗친 러셀이 먼저 주먹을 날리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기세 좋게 공격을 주고받던 나는 러셀의 팔에 당겨져 코너로 향했다.

퍼억-!

양쪽으로 벌어진 로프에 팔을 걸치고 추욱 늘어지자 기세 좋게 달려오려던 러셀이 무릎을 꿇었다.

[Yeeeeeeeeeeaaaaaahhhh!!]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

숨을 몰아쉬던 나는 링 아래에서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러셀을 향해 천천히 몸음 움직였다.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Uooooooooooooohhhhh?!]

경악하는 팬들.

그와 함께 나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붙잡혀 있는 힘껏 당겨졌다.

쿵!

놀라 돌아보자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이 내 몸을 붙잡고 서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선지. 아까도 집요하게 날 노리던 두 사람이 탈락한 후에도 끈질기게 잡고 늘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

야유하는 관객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몸을 붙잡히고만 나는 그대로 3단 로프 위로 크게 넘어가고 말았다.

탈락 직전의 순간.

누군가 내 발을 붙잡고 버텨냈다.

[Uooooooooooooooohhhh!!]

다시금 터져나온 경악의 목소리.

바로 러셀이었다.

로프 위로 팔을 뻗은 녀석이 내 다리를 붙잡았다. 나 역시도 거꾸로 선 채 로프를 붙잡고 버텨냈다.

“어딜 가는 거냐! 신!!”

기묘한 상황이었다.

러셀이 신의 탈락을 막다니.

로프에 몸이 대롱대롱 걸린 채 위로 천천히 올라가던 나는 관객들의 엄청난 반응을 느꼈다.

심지어 챈트마저 나왔다.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Russell!]

압도적인 야유를 받는 악역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 그것이 우리의 라이벌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선과 악의 싸움을 떠나서 무언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두 습격자는 내가 떨어지리라 생각하고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큭!”

하지만 러셀의 구조에 당황해하며 위로 올라가는 내 팔을 붙잡았다.

“이, 이 새끼들이?!”

“그냥 탈락해, 인마!”

팔이 다시금 당겨졌다.

그렇게 누구 하난 물러서지 않은 채로 교착 상태가 계속 이어졌고.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 링 아래에서 한 사람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케인 맥센이었다.

몇 년 만에 귀환한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완전히 비명을 질러댔다.

그야말로 경악의 퍼레이드.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을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이 케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왜? 어째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럼블 매치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로프를 잡고 링 위로 올라온 케인은 러셀의 안면을 후려쳤다.

뻐억-!

손을 놓치고 나가떨어지는 러셀.

모두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낙법을 치고 정신을 차리자 나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

탈락.

충격에 빠진 관객들.

하지만 내가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전, 하이든리히와 마크의 집단 린치가 이어졌다.

배와 머리를 걷어차이고, 몸을 웅크리자 등이 마구잡이로 차였다.

퍽, 퍼억! 퍽!

그런 내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케인.

가증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우승을 도둑맞았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여기에서 나는 습격자들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러셀이 아이디어를 냈다.

사실상 이 시점에서 러셀의 역할은 끝났다. 이후로 적당히 당해주다 경기에서 탈락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마지막 순간 되도 않는 스팟을 하나 생각해냈다.

신호는 내가 보낼 예정이었다.

[Boooooooooooooooooo-!!]

엄청난 야유가 나왔다.

링 위의 레슬러들도 대부분 멍하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양쪽에서 팔을 붙잡혀 억지로 일으켜 세워진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케인을 노려보았다.

내 뺨을 붙잡은 케인은 떡대들을 대동한 악당 도련님처럼 굴었다.

“그러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그리고 그다음 순간이었다.

“뒤.”

나의 작은 신호에 맞춰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입이 떡 벌어졌다.

“어딜 가는 거야! 이 자식아!!”

탑 턴버클 위.

러셀이 우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나와의 싸움을 방해받게 된 녀석은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스스로 탈락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단숨에 몸을 던져왔다.

러셀의 몸은 공중에서 깔끔한 초승달을 그리며 우리에게 떨어졌다.

[Yeeeeeeeeeeeeeeeeaaahhh!]

우리 네 사람이 그 무게를 받아내며 함께 쓰러지자 관객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슈퍼 멋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가 지금 이 럼블 매치마저 훔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아무렴 어떠랴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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