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내가 돌아왔다.’
그렇게 복귀를 선언한 케인은 이어 럼블 매치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변호를 시작했다.
[이건 꼭 기억해둬. 나는 지금 너희 모두를 위해서 행동한 거야.]
[Booooooooooooooooo-!]
[그런 녀석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져서는 안 돼. 그것이 정말 이 회사의 미래를 위한 길이야.]
야유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케인은 팬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계속 집중하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말을 해나갔다.
[나는 모든 걸 바로 잡기 위해 돌아왔어. 랙다운은 이제 내 통제 하에 놓여 있고.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거야.]
케인이 궤변을 늘어놓았다.
[웃기는 이야기지? 안타까운 일이라니. ‘왜 신이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성장하는 게 안타까운 일인가.’ 그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볼까?]
그렇게 악역으로서 자신의 목적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나갔다.
[여기에서 혹시 이카로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수준을 보아하니 없을 것 같지만.]
[Boooooooooooooooo-!]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야.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감옥을 탈출하려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서 결국 추락해버렸지.]
태양열에 밀랍이 녹으며 날개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던 존재.
[내가 누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 바로 신이야. 그 녀석이 이카로스고, 너희는 말하자면 하나하나가 깃털이 된 셈이지.]
그렇게 모인 깃털은 날개가 되었고 신이 하늘을 날게 해주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춰야 해. 이 이상 가다 보면 그는 결국 태양을 향해 날아갈 테고 파멸하겠지.]
시적인 비유였다.
……내가 생각한 거지만.
만약 나와 팬들의 유대감에 대해 반론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유서 깊은 방식이었다.
그는 이 업계에서 성공할 만한 인재가 절대로 아니며, 잠시 눈이 멀었을 뿐인 팬들은 당장 지지를 그만두라는 주장.
2010년대의 대니얼 라이언이라는 레슬러도 이런 각본으로 성공했다.
나와 케인의 대립도 시작은 비슷한 스타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점점 변하겠지만.
“신 선수, 준비해주세요.”
바로 그때, 상황을 체크하고 있던 음향 팀장이 신호를 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커튼 앞에 서서 링으로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케인이 하는 헛소리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느낀 시점이었다.
[신은 태양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럴 그릇이 아니라고! 너희는 지금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거야!]
[Booooooooooooooooooo-!]
케인은 이렇게 말했다.
팬들의 성원이 계속될수록 그럴 그릇이 되지 못하는 신은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위험한 행동을 할 테고.
그게 결국 파멸을 초래할 거라고.
마치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려고 한 이카로스의 말로처럼.
거기에서 나는, 솔직히 말해 한없이 진짜에 가까운 분노를 느꼈다.
이게 연기고, 그 각본조차 내 아이디어였는데도 열 받는 소리였다.
내 가치를 정하는 건 높은 위치에 앉은 한두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나를 지지해주는 팬들이지.
‘역시 잘될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한 직후, 경기장 내에 장엄한 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나는 곧바로 커튼을 걷고 나섰다.
* * *
입장로 위.
테마곡이 끝난 뒤 내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쉬이 식을 것 같지가 않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관객들이 내 이름을 계속 외쳤다.
내가 말을 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음에도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나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알려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소름이 돋았다.
내가 이들에게서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가가 느껴졌다.
나는 입가에서 마이크를 떼고 씨익 웃었다.
‘이거면 뭐.’
사실 내가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마이크를 관객석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SIN이라는 팬들의 외침이 오디오에 담겨 더욱 커졌다.
SIN……!
SIN……!
SIN……!
여기서는 좀 여유를 부려볼까.
나는 아예 반대쪽 팔을 흔들며 더 크게 챈트를 유도했다. 팬들이 나를 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계속되는 챈트를 듣다 못한 케인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다들 그만해! 그만하라고!!]
멋진 애드립이다.
[너희들의 책임감 없는 알량한 호응이 저 녀석을 죽이고 말 거라니까!]
[Boooooooooooooooooo-!!]
[너희들이 끝까지 저 녀석을 사랑할 것 같아? 아니지! 너희 팬들은 그냥 회사의 선택에 반발하고 싶어서 저 녀석을 택한 것뿐이잖아?!]
“이거 뭐, 회사를 나가 있는 5년 동안 시인으로 데뷔라도 하셨나.”
내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얘들아. 지금 저 남자가 이카로스니 뭐니 복잡하게 꼬아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이유가 뭔지 아냐?”
관객들이 내 말에 집중했다.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어떻게든 허세라도 부려보는 거야. 참으로 불쌍하게도.”
[……내가 불쌍하다고?]
“그래, 현실을 보지 못하니까.”
나는 다시 마이크를 건넸다.
다시금 챈트가 이어졌다.
SIN……!
SIN……!
SIN……!
SIN……!
나를 응원하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 그것이 심장에 울려 퍼졌다.
“이게 내 날개가 되어주는 건 맞아. 날 인정하지 못하는 많은 자들의 앞에서 나는 이 사람들의 응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으니까.”
[Yeeeeeeeeeeeeaaaahhhhh!!]
“그 말인즉슨, 내가 그만큼 멋진 개자식이라는 뜻이지!! 너는 이들의 감정을 재단할 수 없어! 케인!!”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그걸 부정한다는 건 이 비즈니스의 근간을 무시한다는 말이야! 어디 한번 할 말이 있으면 해보던가!”
그 말에 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
[We Want SIN! We Want SIN! We Want SIN! We Want SIN!]
관객들이 자신의 의견을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날개가 되어 날 더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보수적인 업계인 프로레슬링.
그 정점에 위치한 회사에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본 적이 없었던 동양인.
하지만 난 실력으로 증명했다.
팬들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계속해서 증명해왔다.
이 대립은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과거, 케인 맥센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묵을 지키던 케인이 한숨과 함께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넌 해고야.]
[Uoooooooooooooooohhhh!!]
그 말을 들은 나는 순간 의아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니 케인은 아예 내게서 몸을 돌렸다.
[시큐리티, 나와서 저 친구 좀 끌어내. ‘전’에 처리했던 대로 계속 뒀으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거잖아?]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뭐?”
[어이쿠, 들었어?]
“지금 뭐라고 했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을 이해해버린 나는 충격에 빠진 채 되물었다.
“아니 잠깐, 그게 너야? 두 달간 내가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출장 정지가 바로 네 지시였다고?”
일단 짤막하게 설명해서 관객들이 자연히 상황을 깨닫게 만들었다.
거기에 카메라는 피식 웃는 케인의 얼굴을 보여줘서 그에게 분노가 쏠리도록 했다.
나는 마이크를 내던졌다.
쿵-!
울리는 소리.
[Yeeeeeeeeeeeeeaaaaahhhhh!!]
그와 함께 쏟아지는 환호.
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던 내 앞을 이내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검은 옷을 입은 보안 요원들.
열 명 남짓한 덩치들이 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마치 맹수를 진정시키듯 내게 이야기했다.
“신, 물러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어이가 없어 웃은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내가 정말로 맹수라도 되는 것처럼 뒤로 물러나는 보안 요원들.
보다 못한 케인이 소리쳤다.
[뭐해?! 안 잡고!!]
그 말에 보안 요원들이 곧바로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물론 호락호락 당해주진 않았다.
아니, 그것뿐이랴.
나는 오히려 압도했다.
“크헉!”
어깨로 밀어 보안 요원 세 명을 날려버리고, 뒤에서 덮쳐오는 한 놈에게 힘차게 슈퍼 킥을 먹였다.
나는 그렇게 날 막아서는 보안 요원들을 처리하며 링으로 나아갔다.
혼란이 번져갔다.
[Waaaaaaaaaaaaaagggghhhh!]
관객들의 환호가 휘몰아쳤다.
날 막기 위해서 더 많은 보안 요원들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케인이 있는 링을 향해 나아갔다.
보다 못한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이 내려와 날 막으려고 들었다.
눈앞의 보안 요원들보다 옆으로 두 배는 더 넓은 프로레슬러들.
그 상대를 위해 나는 보안 요원들의 허리에 채워진 경봉을 빼앗았다.
촤르륵!
접혀져 있던 경봉을 휘둘러 길게 늘이고는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일부러 팔뚝과 등 부분을 노려 최대한 힘을 뺀 상태에서 휘둘렀다.
뻐억!
“끄하악?!”
비명을 지르는 하이든리히.
진짜로 아프겠지만 나는 분명 아까 각오를 해두라고 말했다.
이 정도는 해줘야 연기가 살지.
화끈한 공격에 관객들의 환호가 점점 더 커졌다.
“다 죽여~!!”
“가라! 신!”
“케인을 박살 내버려!”
바리게이트 너머의 팬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려왔다.
그들은 이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상의 사건을 마치 현실처럼 느끼며 몰입해주었다.
그리고 길이 열렸다.
내 상대가 될 이는 없었다.
“허억, 헉……!”
숨을 몰아쉬던 나는 곧바로 내달려 링 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딜, 가……!”
하이든리히와 마크가 내 발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그와 함께 보안 요원들이 링 위로 올라왔다.
[Uooooooooooooohhhhh!!]
탄식하는 관객들.
마치 죄인처럼 보안 요원들의 손에 구속을 당한 나는 그대로 케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게 되었다.
빌어먹을 상황이다.
수많은 야유 속에서 권력자인 케인 맥센은 여유롭게 이야기했다.
“이걸 어쩌겠어. 신.”
[Boooooooooooooooooo-!]
“얌전히 받아들이라고.”
그와 함께 마이크가 날아들었다.
뻐억-!
최악의 굴욕.
하지만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지금 겪은 이 굴욕을 되갚아줄 레슬 임페리움까지의 시간이 정말로.
기대가 됐다.
* * *
[……죽여주는구먼.]
[그러게…….]
[이카로스 비유 봤어? 정말이지 어썸(Awesome) 했어. 빌어먹게도 케인 맥센이 남자가 되어 돌아왔군.]
[바트와는 다르게 말이야.]
[바트는 좀 전형적이었지. 하지만 케인은 예전과는 달라졌어. 그 부분이 이카로스에서 드러나더군.]
[지적인 CEO라. 정말 예전과는 다른데,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어.]
내가 따온 부분은 거기까지였다.
캠핑 버스로 이동 중.
이야기할 게 있었던 나는 특별히 케인 맥센을 여기에 초대했다.
오튼 그 자식은 따로 말도 안 하고 내가 쓰는 안쪽 침대에서 자고 있어서 별다른 고생 없이 분위기가 잡혔다.
일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어떻게 생각해요?”
“……이 평가?”
“예, 이 기자들.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거든요. 오늘 세그먼트 반응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좋네요.”
“내가 지적인 캐릭터라.”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거죠.”
“아니, 그렇진 않잖아?”
케인이 쓰게 웃었다.
“세그먼트도 네가 짜준 거고. 음. 맞는 옷은 아니라는 느낌이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죠?”
“……심리 테스트야?”
“음, ‘돌아온 케인 맥센’ 캐릭터의 발전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죠.”
“나는, 글쎄.”
케인이 시선을 피했다.
“딱히 변한 건 같진 않은데.”
“하지만 안 그런 척을 했죠.”
“왠지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케인은 잠시 침묵했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해서 놔뒀다.
나는 상대를 가르치지 않는다.
자연히 깨닫도록 유도한다.
이게 맞는 방법이었다. 이래야만 내가 생각한 틀에 갇히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었다.
물론, 하이든리히나 마크처럼 아직 감이 없는 초보자의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방법을 설명해주겠지만.
케인 맥센은 그래도 나름 태도 불량 시대를 관통해온 인물이었다.
하드코어한 스타일의 경기도 다수 가졌고, 역사에 남을 정도로 위험한 범프도 꽤나 많이 수행했다.
그랬던 그가 2001년 이후 회사를 나가 2006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말했다.
딱히 변한 건 같진 않다고.
그런데 바로 어제 링에서는 그런 식으로 팬들을 설득하려고 했었다.
물론 아이디어는 내가 제시했지만, 케인은 그게 좋다고 하면서 따라왔었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케인은 자신이 옛날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팬들의 앞에서 정장을 입고 점잔을 뺀 것일까?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볼 때다.
자기 스스로.
쇼에 등장하는 케인 맥센은 결국 무엇인가.
그걸 확실하게 느껴야만 이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겠지.
물론 이 각본이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많은 만큼, 케인 맥센은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지만.
“……좀 생각해볼게.
“그럼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정해두었던 대로 각본을 진행하죠.”
“그러는 게 좋겠어.”
고개를 끄덕인 케인이 뭔가를 떠올린 듯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티파니하고 다시 일을 한다고?”
“굉장할 겁니다.”
거기에 난 확신하며 대답했다.
분명히 다음 주는 최고의 쇼가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