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41화 (241/634)

241.

Real American.

그 테마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팬들은 로건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Waaaaaaaaaaaaaaagghhhh!]

그리고 실제 본인이 입장로 위에 나타나자 환호는 훨씬 더 커졌다.

케인의 압박을 받아 지친 로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입장했다.

붉은색과 노란색 조명이 이리저리 뒤엉켜 화려한 색채가 입혀졌다.

캡틴 로건은 그런 남자였다.

마치 어둠 속의 불꽃처럼.

자신의 열정을 활활 불태우며 팬들에게 온기를 선사하는 선수였다.

그러므로 지금 이 모습은 차근차근 팬들의 반발을 쌓고 있을 터.

깜짝 등장을 위해 경기장 반대편으로 돌아온 나는 관객석 뒤쪽의 휴게실에 숨어 방송을 지켜보았다.

영상팀 막내도 함께였다.

이 친구가 HQ인 고릴라 포지션에서 신호를 받아 전달하면 그때부터 내 활약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링 위로 올라간 로건이 마이크를 쥐자 팬들은 환호를 멈추고 자신들이 할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We Want SIN……!

그것은 일종의 시위였다.

로건을 향해 케인에게 굴복하지 말라고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였다.

거기에 긴 한숨을 내쉰 로건이 이윽고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클리블랜드. 역시 너희들답군.]

[Yeeeeeeeeeeeeeaaaahhhhh!!]

오늘 랙다운이 개최되고 있는 도시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팬들이 순간적으로 큰 환호를 보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신들의 도시와 주(州)에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분위기를 끌어올린 로건이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역시나 달인다운 멋진 솜씨였다.

[내가 녀석과 만난 것은 뉴욕에 있는 한 호텔의 파티장에서였지.]

……저건 거짓말이지만.

우리는 그냥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 주고받은 뒤 경기장에서 만났다.

[이름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실제로 보니 박력이 있더군. 키도 크고 덩치고 있고 눈에 확 들어왔어.]

팬들은 내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인지 로건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파티가 끝나고 집에 와서 정말 오랜만에 프로레슬링을 봤어. 섬머 수플렉스였지.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놈에게 연락을 하고 있더군.]

로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저 감정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로건은 내가 먼저 손을 뻗어 이 업계에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전성기를 떠올리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지금 깨달았지. 이 업계에는 항상 높으신 분들이 있어. 팬들을 통제하고 선수들을 제멋대로 휘두르려는 더러운 인간들이.]

[Boooooooooooooooooo-!]

[하지만 인간은 절대, 거기에 굴복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다들 어떻게 생각해?!]

[Yeeeeeeeeeeeaaaahhhhh!]

[그러니까 나와! 신! 내가 네 속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분명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지?!]

그 말에 관객석의 팬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비춰졌다.

위클리 쇼에 온 2만의 관객이 그러는 모습을 보자니 장관이었다.

[랙다운의 제너럴 매니저로서 말하겠다! 신의 해고는 무효야! 녀석은 아직 우리 선수 중 하나라고!]

[Yes! Yes! Yes! Yes! Yes! Yes!Yes! Yes! Yes! Yes! Yes! Yes!]

[이 소리를 듣고 있겠지! 신!]

물론 듣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내 차례는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혼란스러운 순간에 나가서 로건을 도울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을 부추기기 위해 케인이 커튼을 걷고 나왔다.

[잠깐, 잠깐, 잠깐. 기다려봐. 로건.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지금 대체 누구를 부르고 있는 거죠?]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케인.]

[그럼 당신은 해…….]

[넌 날 해고시킬 수 없어!]

로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Yeeeeeeeeeeeaaaaah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고, 로건은 로프를 뒤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그만둘 거니까!]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로건의 호쾌한 선언을 들은 팬들이 열화와 같은 챈트로 보답했다.

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잔뜩 신이 나 목소리를 높이는 관객들. 그 앞에서 케인은 조용히 손짓해 부하 두 사람을 불러냈다.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

두 떡대를 앞세운 케인은 그대로 로건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세 사람이 링을 향해서 움직이자 순간적으로 큰 야유가 쏟아졌다.

[Booooooooooooooo-!]

하지만 로건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먼저 링 위로 올라오려는 떡대들의 안면에 각각 한 방씩.

이어서 로건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찢으며 포효했다.

하지만 그 뒤로 몰래 의자를 가지고 들어온 케인의 공격이 이어졌다.

쩌억-!

[Uooooooooooooohhhhh!!]

탄식하는 관객들.

자신을 배신한 로건을 본보기로 삼겠다는 듯, 케인은 들고 있던 철제 의자를 사납게 휘둘렀다.

쩌억-!

등짝을 강하게 얻어맞고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로건.

그사이, 링 위로 올라온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까지 가세해 집단으로 린치가 이어졌다.

‘슬슬 나갈 때군.’

그렇게 생각한 시점, 고릴라 포지션으로부터 같은 무전을 들은 영상팀 막내가 신호를 주었다.

“가시죠. 신 선수.”

“후우.”

심호흡과 함께 일어선 나는 휴게실 문을 열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비명소리가 쏟아졌다.

“꺄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온갖 팬들이 날 보기 위해서 휴게실 앞에 모여 있었다.

혼란을 막기 위해 회사의 보안 요원들이 길을 터놓은 상황이었다.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 선수, 어제 공항에서 봤어요! 사인 좀 해주세요!!”

“신! 사랑해요!”

“악수 한 번만 해줘요!!”

내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인 이들. 물론 그냥 넘어가면 다들 오늘 밤 싱숭생숭해서 못 자겠지.

나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순간.

나는 그걸 외면하지 않았다.

일단 입술 위에 검지를 대고 조용히 해달라는 표시를 해보였다.

팬들이 입을 다물었다.

“나 지금 몰래 들어온 거거든?”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역시 내 ‘해고’가 각본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걸 알고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프로레슬링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목소리 좀 줄이자고. 멋지게 등장하고 싶거든.”

분위기가 좀 집중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안경을 쓰고 있는 한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알겠지, 꼬마야?”

“그럼 이 아저씨들은 뭐예요?”

“응?”

“어차피 같은 회사 사람들 아님?”

재치 있는 대답을 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기에 한 방 먹은 척하던 나는 이내 꼬마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이어진 말을 전부 들은 꼬마가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다음 주에 나올 거야.”

“와!”

“비밀이야. 꼭 지켜줘.”

“응! 알았어요!”

환하게 웃는 꼬마.

나는 방금 소년에게만 ‘이 사람들은 티파니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비밀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각본을 미리 스포일러한 것이었지만, 괜찮았다.

이로써 나는 소년의 어린 시절 추억에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으니까.

소년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은 나는 영상팀 막내의 재촉에 곧바로 관객석 쪽으로 움직였다.

그렇다.

해고된 상태에 있는 나는 오늘 관객석을 통해서 입장할 생각이었다.

팬들과 깊은 유대감을 맺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연출.

기다리고 있던 보안 요원들이 옆으로 비켜섰고 나는 적절한 타이밍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자니 영상팀 막내가 돌연 말을 걸어왔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뭐가?”

“팬들을 완전히 휘어잡으셨잖아요. 보통은 다 무시한다던데.”

“다들 나름대로 큰돈을 써가며 쇼를, 우리들을 직접 보러온 거니까.”

그러므로 될 수 있다면 최대한 그에 걸맞은 멋진 추억을 하나쯤은 선물해주고 싶었다.

후회로 남는 밤이 되지 않도록.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영상팀 막내가 마이크를 척 내밀었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도요?”

“그야 물론.”

그것을 받아 든 나는 그대로 커튼을 걷고 관객석 안으로 들어섰다.

* * *

링 주변에는 랙다운에 소속된 모든 선수들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모두 로건을 제압한 케인이 불러낸 것이었다. 거기에는 심지어 테이커 같은 선수마저도 포함되었다.

팬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슬슬 각본을 넘어 현실에까지 미쳤다.

아무리 그래도 테이커 같은 선수까지 케인이 마음대로 다루는 게 되냐면서 다들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 절묘한 지점.

거기에서 내가 등장했다.

“적당히 해둬. 케인.”

카메라가 내 모습을 비췄다.

[Uoooooooooooooooohhhhh!!]

순간 크게 놀란 관객들이 날 돌아보며 어마어마한 환호가 쏟아졌다.

“드디어 왔구나! 신!”

“믿고 있었다구!”

으레 듣는 이야기였다.

관객석 입구에 서있던 내게 주변의 팬들이 귀가 따가워질 정도로 엄청난 응원을 보내주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챈트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그 엄청난 성원에 나는 어깨가 든든해지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왕이라도 되냐?”

[포기할 줄을 모르는군. 신.]

“이런 걸로 포기했다면 내가 아니지. 그렇지?! 클리블랜드?!”

[Yeeeeeeeeeeeeeeaaaahhh!!]

“이 목소리가 들리냐?! 어?! 네가 얼마나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는 표정인데!!”

[……선수들, 지금 신이 이 위로 올라오는 걸 모조리 막아내도록.]

“말이 안 통하는구먼! 도련님! 결국 너는 내가 태양을 집어삼키는 게 두려운 거잖아?!”

[너 같은 건 조금도 두렵지 않아. 신. 말했듯 나는 회사와 너의 미래를 생각해서 한 선택일 뿐이야.]

“우리 솔직해지자고. 케인.”

나는 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팬들이 단지 회사의 결정에 반발하기 위해서 나를 지지해주는 걸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그렇지! 이들이 나를 지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멋진 놈이기 때문이야! 여기에서 유일하게 너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지!”

[……헛소리는 그쯤 해둬라.]

케인은 또 다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끝내려고 했다. 그런 녀석에게 팬들이 다시금 야유를 보냈다.

그것을 쳐내듯 나는 단전에서 끌어 모은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테이커!!”

갑작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릴 터.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의아해하며 나와 테이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게 오늘 스팟이었다.

케인의 결정에 반발하는 선수가, 나를 인정하는 선수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

나는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그것을 본 케인이 소리쳤다.

[마, 막아!!]

바리게이트 앞으로 당황하며 모여드는 악역 선수들. 하지만 그들을 쳐내며 테이커가 길을 열어주었다.

그로써 케인 맥센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품은 선‧악역 선수들이 뒤엉켜 싸움이 벌어졌다.

[Waaaaaaaaaaaaaagggggh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하지만 나는 반대로 긴장으로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 걸 느꼈다.

내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어려운 스팟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내면 슈퍼 멋지겠다는 생각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죽으로 된 바리게이트를 밟고 힘차게 뛰었다.

날 붙잡으려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JBL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너머.

공중에 떠오른 나는 테이커가 준비를 끝마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깍지를 끼고 있는 그 손에 내가 한쪽 발을 얹자 테이커가 힘을 주어 힘차게 위로 들어 올려주었다.

나 역시도 다시 뛰었다.

몸이 공중을 부웅 날았다.

지금 이런 내 모습을 수천만 이상의 사람이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원래 계획대로 멋지게 로프 위에 발을 얹었다.

흔들거리는 로프.

거기서 다시 중심을 잡고, 나는 경악한 케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콰앙-!

엘보우를 먹이며 쓰러지자 순간 숨을 멈췄던 관객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Yeeeeeeeeeeeeeeeaaaahhhh!!]

“다 덤벼! 새끼들아!!”

흥분해 소리친 나는 의자를 들고 일어선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 * *

메인 이벤트는 환상적이었다.

특히나 신이 ‘바리게이트 → 테이커 → 스프링보드 엘보우드롭’을 연결시키는 장면은 WWF의 역사에 영원히 남겨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걸 고릴라 포지션에서 지켜보고 있던 티파니는 방송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오늘 신이 로건을 구해주며 케인에게 빅 엿을 먹이는 부분은 정말 최고였다.

팬들의 반응.

케인의 악역 수행.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신.

깔끔한 기술 시전.

주변 선수들의 반응.

모든 게 연계되면서 멋진 그림이 나왔다. 괜히 신이 선수들에게 최고라고 인정받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문제는 그 결말이었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버스 안.

[아! 이걸 어떻게 기다리냐고!!]

뉴스레터 기자의 감정적인 감상을 들은 티파니는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의 생각과 같았다.

“다들 화가 난 것 같은데요.”

거기에 신은 뺨을 긁적거렸다.

“어쩔 수 없지. 정해진 방송 시간이 있으니까. 그만큼에서 최고의 재미를 뽑아내고, 사람들이 또 보러오도록 다음 주에 대한 호기심을 남겨두는 게 우리의 목적이니 말이야.”

“그게 위클리 쇼의 구성이죠.”

랙다운은 두 패로 나뉘었다.

신을 중심으로 해서 뭉친 선역들과 케인을 중심으로 뭉친 악역들.

마지막에 링을 점거한 건 선역 선수들인 가운데, 두 그룹의 분쟁을 보여주면서 쇼가 마무리되었다.

내용을 다 알면서도 자신 역시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정도였다.

맥주를 홀짝인 티파니는 이어 묘한 생각이 하나 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출연은 바로 다음 주.

해고된 신을 도와주기 위해 잠시 선역 권력자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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