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43화 (243/634)

243.

3월 페이퍼뷰인 원 데이 스탠드에서의 경기가 그렇게 윤곽을 드러냈다.

개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물론, 신이 할 2:1 핸디캡 매치였다.

“…….”

어두운 밤, 사무실.

케인 맥센은 최종적으로 확정된 여덟 개의 경기 리스트에서 오직 신의 경기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신 vs 하이든리히&마크 진랙.

4월의 레슬 임페리움까지 대립을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경기였다.

그러므로 승자는 신이 될 예정……이었지만 솔직히 좀 걱정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이 아니라 반대쪽.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

그 두 사람이 제대로 경기를 ‘리드’할 수 있을지가 좀 걱정이 됐다.

어찌되었든 핸디캡 매치였다.

경기의 어떤 시점에서는 두 사람이 신을 몰아붙이면서 경기를 주도해나가는 타이밍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은 그런 부분의 경험이 아직 부족했다.

그럼에도 신은 자신만만하게 맡겨만 달라고 말한 뒤 두 사람을 데리고 훈련장으로 사라졌다.

그 소리가 아직까지 들려왔다.

콰앙-!

쿵!

쫘악!

날카로운 파열음.

그런 상황에서 케인은 왠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 채 생각을 거듭했다.

이게 대체 무얼까.

그때 신이 물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은 과연 무엇을 위해 여기에 돌아온 것인가.

글쎄다.

현실의 일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물론 신을 막기 위한 아버지의 사주를 받아서였다.

하지만 분명 그런 확장성이 넘치는 이유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왜냐면 신은 항상 절묘한 지점에서 현실을 비틀어내면서 드라마를 만들어왔으니까 말이다.

조금, 불편해질 정도로.

“…….”

그래, 그래.

불편했다.

케인은 그런 아이디어를 짜내도 수행할 수 없었다. 때문에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그가 부러웠던 것이다.

거기에서 자연히 깨달았다.

“아, 그건가.”

그렇게 하면 될까.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확실히 신을 상대하는 내내 케인은 그 멋진 모습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그랬지.’

절대로 다시는.

프로레슬링을 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돌아와, 정말로 큰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남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남자는 자신과 같다고.

자신 역시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프로레슬러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는 다른 벽을 앞에 두고도 절대 그만두지 않았다.

그게 참 아이러니했다.

신과 케인은 같다.

프로레슬러로서 절대 대성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존재했다.

신은 인종.

케인은 가문.

그래서 공감했지만.

반대로 압도적인 재능만으로 그것을 뚫고 나가버리는 그가.

너무도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그런 결론에 다다른 케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이 자신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걸 하라고?

지금까지 절대, 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걸, 링에서 말하라고?

아무리 맥센 가문이 쇼의 흥행과 돈을 벌기 위해 자기 가족까지 팔아먹은 망나니 집안이라고는 해도.

‘거기까지 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분명히 죽여주겠지.

서로 죽이고 싶어 싸우는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테지.

케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 * *

“과연 그렇게 하려고 들까요?”

티파니의 질문에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나는 옷을 입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도록 만들 거야.”

질문은 간단했다.

과연 케인 맥센이 이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둔 본심을 드러내고 나와 대립을 진행할 것인가.

그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

질투심.

자신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반면, 나는 어떻게든 만들어나가고 있는 프로레슬러로서의 환상적인 커리어.

그 질투심으로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이라는 전개에 동의를 할 것인가.

대답은 물론 ‘Yes’였다.

“의외로 토해내면 편해지거든.”

“……그걸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숨겨온 게 아닐까요?”

티파니가 쓰게 웃었다.

“케인의 유일한 꿈은 프로레슬링이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결국 자기 자신만 상처를 입은 채 끝나버린 짝사랑이 되었죠.”

“그래서 회사를 떠난 거고.”

“저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그 감정을 숨긴 채 떠났었죠.”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 나이를 먹고 자기감정을 깨달을수록 그것을 드러내는 건 점점 더 힘들어지지.”

“감정은 개인의 영역이니까요. ……드러내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케인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잖아?”

시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분명 케인은 전생처럼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우리’만으로 될까요?”

“정확히는 WWF 유니버스까지.”

해석하자면 WWF의 세계관이다.

이 프로레슬링 단체가 10년 넘게 생방송을 이어오고, 그전부터 계속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설정들.

그리고 거기에 함께하는 사람들.

팬, 레슬러, 그 외 모든 것을 통틀어 WWF 유니버스라고 이야기했다.

케인의 캐릭터에도 있는 그 ‘공백 기간’을 위해서라도 각본은 분명 그런 쪽으로 전개가 되어야 맞았다.

2001년까지.

맥센의 도련님일지언정 누구보다 프로레슬링에 열정적이었던 케인은, 대체 무슨 이유로 회사를 나갔나.

“그렇게 진행하면 팬들도 자연히 몰입할 테고, 케인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을 거야.”

캐릭터에 녹여내서 말이다.

“……이상하게 들리네요.”

“뭐가?”

“그건 마치 오빠가 선역으로 부킹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거든요.”

“누군가는 그렇게 느끼겠지.”

그게 내가 추구하는 레슬링이었다.

선과 악의 경계가 희미한.

이 프로레슬링이라는 독특한 세계에서 현실과 인간에 대해 담아내면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이야기.

“그래도 상관없어.”

“상관없다고요?”

티파니가 그렇게 되묻자 나는 셔츠를 다 챙겨 입고 락커를 닫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난 악역을 더 잘하거든.”

“……하긴.”

피식 웃은 티파니가 자신의 등 뒤에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안쓰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

새벽 내내 이쪽이 진행한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행한 두 사람은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였다.

“당신은 악당이죠.”

“당신도 그렇고.”

싱긋 웃은 나는 그대로 티파니와 함께 락커룸을 나섰다.

* * *

이후로도 위클리 쇼가 전개되었다.

2월 4주차와 3월 1주차.

그리고 그 주말의 WWF 랙다운 온리 페이퍼뷰, ‘원 데이 스탠드’.

남은 2주간의 위클리쇼에서 하이든리히, 마크 진랙과 경기를 진행한 나는 링 위에서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가진 선수로서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그걸 경기에 녹여내 팀원들과 좋은 경기를 기획했다.

페이퍼뷰의 메인이벤트인데다가 많은 선수들이 대립에 개입해있는 만큼 일반적인 경기로 갈 생각은 없었다.

테이커와 로건이 출연하고.

케인이 불러낸 악역 선수들과 선역 선수들이 뒤엉키며 메인이벤트다운 경기가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거기에 대해 링 프로듀서인 핀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날 바라보았다.

“가히 예술 작품이로군.”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확실하게 스타 파워를 끌어낼 수 있는 슈퍼 멋진 구성이지.”

핀레이가 포인트를 잡았다.

“일단 이번 페이퍼뷰에서 월드 챔피언 경기가 안 잡혀 있는 상황이라 기대감이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레슬 임페리움을 위함이었다.

그걸 대신해서 바티스타와 레이가 싸울 예정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회사로서는 월드 챔피언인 오튼이 나온다면서 홍보를 하고 싶은지라.

오튼이 메인이벤트에 난입해 케인의 말을 듣는 구성이 좋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겠지.

“또 테이커 역시 그래.”

핀레이가 다시 감탄했다.

“고관절을 쉬게 해야 해서 지금은 경기를 뛰지 못하는 타이밍이었는데.”

“메인이벤트에 나와서 초크 슬램 한 번만 날려줘도 다들 좋아하겠죠.”

“로건도 비슷하고.”

“거기다 하이든리히나 마크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요.”

두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 페이퍼뷰 메인 이벤트였다. 그러므로 그 부담감을 꽤나 심하게 느끼는 듯했다.

그걸 다독여주면서 내 나름대로 기술을 전수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마 실전에서 퍼포먼스는 본래 능력 대비 약 70퍼센트 정도밖에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타 파워가 있는 선수들에게 한 스팟씩 맡기면서 두 사람의 분량을 줄여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보고하자 케인 맥센은 별 잔소리 없이 동의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페이퍼뷰를 준비했다.

나는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이벤트에서 관계되는 수많은 이들에게 말을 아끼지 않고 활약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테이커는 너털웃음과 함께 순간 내가 총괄 프로듀서 같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정확히 의도한 대로였다.

나는 관여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내 실력을 마음껏 드러내었다.

그렇게 개최된 원 데이 스탠드.

레슬 임페리움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마지막 페이퍼뷰. 거기에 쏟아지는 관심은 분명히 적지 않았다.

더욱이 케인과 나의 대립에 대한 반응이 엄청나게 좋았기 때문에 경기장은 당연히 만석을 채웠다.

총원 54,353명.

하지만 그조차 모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로 모은 건 아니었다.

애초에 경기장 크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관람을 원하는 팬들이 티켓을 사지 못한 상황에 가까웠다.

랙다운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그런 상황에서 선수단이 모두 모여서 마지막으로 기합을 불어넣었다.

케인도 함께 참석한 와중, 테이커가 씨익 웃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뭐 한마디 해봐라.”

“……또요?”

“그래, 명실상부 이번 페이퍼뷰의 주인공은 너니까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테이커는 나에 대한 신뢰로 넘치는 듯한 얼굴이었다.

바라던 바였다.

케인은 그렇게 앞으로 나선 나를 가만히 관찰하듯 주시하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

나는 입을 열었다.

“다 죽여버리죠.”

[Ooooooooooooooooohhh!!]

선수들이 크게 기합을 불어넣었고.

원 데이 스탠드가 시작되었다.

폭죽과 함께 개장된 페이퍼뷰는 각 경기가 나름대로 좋은 반응을 얻어내면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나는 오늘 경기를 같이 뛰게 된 하이든리히와 마크의 상태를 확인했다.

“컨디션은 좀 어때요?”

“……심장이 아까부터 계속 뛰어서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야.”

하이든리히의 말에 마크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징조죠?”

“그래, 이번에는 분명히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요 한 달간 내게서 철저하게 트레이닝을 받은 두 사람은 이제 내가 봤을 때 꽤 괜찮은 레벨까지 올라왔다.

이후로는 경험을 쌓는 것뿐이다.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고 끊임없이 다른 선수를 보고 연구하며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

바로 그게 프로레슬링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기다리자니 앞선 일곱 경기가 쏜살 같이 지나갔다.

“메인이벤트! 준비해주세요!!”

막내가 이야기를 전하러 왔고 우리 세 사람은 링과 백스테이지의 경계 지점인 고릴라 포지션으로 향했다.

총 지휘부 역할도 겸하고 있는 그곳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나를 환영하며 응원 한마디씩을 건네주었다.

“신 선수, 오늘도 부탁해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세요!”

“저도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리에 서자니 영상 팀장에게 지휘권을 넘겨준 케인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신.”

“예, 케인.”

“오늘 잘 부탁해.”

“세상을 박살 내보자고요.”

씨익 웃으며 나는 하이든리히와 마크에게도 비슷한 주문을 했다.

지금쯤 다른 선수들 역시도 각자 위치에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광고가 끝난 뒤.

그 첫 번째 주자로 링 위에 있던 아나운서, 토미 치멀이 입을 열었다.

정장 차림의 그는 특유의 날카롭고 청량한 목소리로 꽤나 유명했다.

땡땡땡!

[이어질 경기는 본 쇼의 메인이벤트인 핸디캡 매치입니다!!]

[Yeeeeeeeeeeeeeeeaaaahh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그 타이밍에 맞춰 음향 팀장이 곧바로 케인 맥센의 테마를 틀었다.

그와 동시에 소리쳤다.

“고!!”

[Here Comes The Money~!]

앞장서 팬들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해 동료들이 링으로 입장했다.

케인 맥센.

그 옆에는 삼각 팬티 스타일의 경기복을 입은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이 함께였다.

[B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순식간에 어그로를 끌어낸 케인은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힘차게 하늘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폭죽이 터졌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오늘 쇼에서 가장 화려한 폭죽이 터졌으나 팬들은 거기에 응해주지 않고 계속해서 야유를 보냈다.

그렇게 나에게 돌아올 환호를 쌓아주며 링으로 입장한 케인은 잠시 서서 두 떡대들을 격려해주었다.

계속해서 케인의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나를 기다렸다.

“호오.”

각본팀장이 그걸 알아보았다.

하이든리히는 마치 냉혹한 기계처럼 가만히 서있었고, 마크 진랙은 반대로 자신의 야만성을 드러냈다.

“이거 멋진데. 신.”

“두 사람에게도 말해주시죠.”

“자네 작품인 거 다 알아.”

그 말에 가만히 웃은 나는 그대로 다음 차례가 돌아오는 걸 기다렸다.

이어서 음향팀이 내 테마 음악을 재생시켰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빠밤-빠밤-빠밤-빠밤-빠밤-!

드럼과 나팔.

두 조화 속에 입장로 앞으로 거대한 연기가 분사되는 것이 보였다.

좋아.

다 죽여버리러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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