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44화 (244/634)

244.

자욱한 연기를 뚫고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이 내게 엄청난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Yeeeeeeeeeeeeeeeeaaahhh!!]

케인 맥센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입장로 위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그런 상황에서 당당히 링 위로 올라간 나는 힘차게 팔을 들어 올리며 내 존재감을 과시해 보였다.

[Uh-Oh! Oh-Oh-Oooohhh!!]

테마곡의 떼창 파트를 따라 부르며 내게 반응을 보내주는 관객들.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입장을 끝마친 나는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를 벗어던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3대1의 상황.

하지만 케인은 여유를 부리는 대신 두 명의 부하들에게 오더를 내리고 그대로 링 아래로 내려갔다.

핸디캡 매치.

일반적인 태그 팀 매치와 똑같은 규칙으로 진행되었지만, 상대와 달리 내 사이드에는 태그를 할 선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일대일.

하지만 상대는 규칙에 입각해 선수 교체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첫 번째 리드는 보다 위상이 높은 내가 가져가는 게 맞았다.

서로 체력이 동등한 상태에서 나온 하이든리히를 내가 압도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그림이니까.

땡땡땡!

링 벨이 힘차게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었고 하이든리히가 달려들었다.

쿵쿵쿵!

거구의 사내가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는 걸 본 나는 그대로 몸을 옆으로 틀며 동시에 발을 내질렀다.

쫘악-!

슈퍼 킥.

[Uoooooooooooohhhh?!]

다짜고짜 터진 내 피니시 무브에 관객들이 경악해 비명을 질러댔다.

내 발은 하이든리히의 턱을 아주 제대로 후려 깠고, 녀석은 순간 의식을 잃은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보일 터였다.

이 모든 게 연습의 성과였다.

나는 멋진 셀링을 선보인 하이든리히를 칭찬하며 그대로 커버했다.

1, 2……!

바로 그 순간, 링 사이드에서 난입한 마크 진랙이 나를 밀어냈다. 그로서 카운트는 2에서 종료되었다.

“마크! 이게 무슨 짓이야!”

“워워, 진정하라고요.”

비열한 웃음과 함께 심판의 명령대로 링 사이드로 다시 빠지는 마크.

그에게 야유가 쏟아졌다.

[Boooooooooooooooo-!!]

마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거기에서 야유는 훨씬 더 심해졌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군.’

정확히 말하자면 관객들과의 소통이 어색하다는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아예 반응하지 말라고 한 건데.

어쨌거나 제대로 통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그대로 하이든리히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일단 내 시그니처 무브인 찹 앤 해머링 콤보로 시작해 빠른 속도로 공격해 들어가며 주도권을 쥐었다.

그 사이사이, 하이든리히 역시 반격을 시도했지만 스피드와 기술면에서 완성된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억지로 붙잡으려는 걸 쳐내고 뒤로 돌아 들어간 나는 그대로 하이든리히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백드롭.

안전을 위해 하이든리히의 한쪽 팔이 자연스럽게 내 목을 휘감았다.

그 상태에서 번쩍.

[Oooooooooooooh!]

탄성을 내뱉는 관객들.

이 한 달간 적어도 수백 번 영상으로 찍고 확인해본 백 드롭이었다.

허공에 번쩍 들린 하이든리히의 놀란 얼굴이 카메라에 담겼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그대로 중심을 견고히 잡은 채 뒤로 쓰러졌다.

콰앙-!

호쾌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떨어뜨린 반동을 이용해 벌떡 일어난 나는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계속 경기를 주도해나갔다.

압도적인 경기 양상.

물론, 숫자가 더 많은 상대방 역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보다 못한 마크가 반칙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듯 링으로 불쑥 나왔다.

“헤이, 마크! 뭐하는 거야!”

그 모습을 발견한 심판이 마크를 뜯어말리는 사이, 나는 계속해서 하이든리히를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윽?!”

뭔가에 발이 붙들려 당겨진 나는 그대로 바닥에 털퍼덕 쓰러졌다.

[Booooooooooooooooooo-!]

순간 쏟아지는 야유.

의아해 돌아보자 케인 맥센이 내 다리를 붙잡은 채 버티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달려든 하이든리히가 힘차게 내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정신이 아찔해지는 통증.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나를 뽑아 올린 괴물이 내 몸을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콰앙-!

기술이라고 할 것도 없이 힘만으로 메쳐진 나는 그대로 링 바닥을 굴러 코너에 처박혔다.

그리고 달려든 하이든리히가 그대로 내 복부에 발길질을 해댔다.

쾅- 콰앙!

바닥에 반쯤 걸어서 차는 킥.

그럼에도 하이든리히의 체격이 워낙 좋아서 몸이 반쯤 허공에 들렸다.

팔을 엮어 계속해서 날아드는 정강이를 막아낸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오더는 계속해서 내가 했다.

하이든리히가 미리 짜둔 대로 내 뒷목을 잡고 자기 쪽으로 당겼다.

머리가 거의 맞닿은 상황.

“좀 더 강하게 가보죠.”

내 명령에 눈빛으로 승낙한 하이든리히가 나를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 * *

신의 몸이 공중을 힘차게 날았다.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프로레슬링은 과장된 격투기 동작으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스포츠다.

그리고 신은 그 모든 동작을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평범한 격투기에서는 불가능한 동작. 하지만 프로레슬링이라고 생각한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선에서.

아주 완벽하게.

등으로 한 번 낙법을 치고는.

그 반동으로 튕겨져 올라 몇 번이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것은 확실하게 하이든리히를 띄워주었다.

[Uoooooooooooooooohhhh?!]

팬들이 그 힘에 경악했다.

케인 맥센은 링 아래에서 다른 의미로 경악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그 무브로 관객들은 확실하게 하이든리히의 힘을 느꼈다.

신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두 사람의 공격에 당해주면서, 신은 팬들이 두 사람을 확실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랙다운으로 이적한 뒤.

프로레슬러로서 대성할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았지만, 확실한 캐릭터나 각본을 받지 못한 두 사람.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

신은 팬들이 두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냉철함과 힘을 겸비한 채 괴력을 발휘하는 몬스터, 하이든리히.

반대로 야성을 드러내며 광전사처럼 싸워대는 맹수, 마크 진랙.

그렇게 포지셔닝 된 두 사람은 신을 공격하면서 팬들에게 점차 자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업계의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멋진 장면이다.

거기에 그 프로듀싱이 순전히 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케인 입장에서는 솔직히 경탄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거의 부조리를 느낄 정도였다.

테이커나 그렉 같은 경험치 덩어리들이라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독수리는 참새를 길러내지 못한다.

이건 철저하게 두 사람의 시선에서 경기를 만들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이 경기를 통해서 느끼고 배우는 게 많을 터였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일을 지금 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나갔다.

공격에 당해주면서 말이다.

[B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링으로 나선 마크가 신을 공격했다.

각종 수플렉스와 슬램으로 야유를 끌어 모으면서 짐승처럼 포효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경기는 신이 두 사람에게 주도권을 내준 채로 계속 진행이 되었다.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진 이후, 다음 스팟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난전 속에서 심판이 눈먼 공격에 맞아 쓰러지게 되면서, 케인 맥센이 경기에 난입하는 것이었다.

케인은 신을 몰아붙이면서도 경기를 끝내지는 못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아무리 강하게 몰아붙여도 신은 쓰리 카운트를 내어주지 않는다.

거기에 열이 받은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다잡은 순간, 링 위에서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신이 몸을 기울이면서 마크의 클로스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고, 동시에 그의 다리를 걸어 그대로 넘어뜨렸다.

“으헉?!”

순간 중심을 잃고 쓰러진 마크의 몸이 왜소한 체격의 심판을 덮쳤다.

쾅!

일이 벌어졌다.

마크의 몸에 맞고 크게 튕겨져 날아간 심판이 바닥에 픽 쓰러졌다.

뿐만 아니라 마크 역시도 턴버클에 부딪히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신도 힘을 쥐어 짜낸 무브였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실수처럼 보였다.

웅성거리던 관객들은 이윽고 신의 이름을 목청껏 소리치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 응원을 받은 신은 로프를 붙잡고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섰다.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제야 비로소, 케인은 자신의 역할을 알아차렸다.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각본을 수행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팬들이 응원하는 선역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짓밟아야만 한다.

따라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케인 맥센’은 마침내 링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일어서고자 하는 신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B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케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하이든리히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와!”

그 광기 어린 표정을 보자 하이든리히가 정말로 당황할 정도였다.

하지만 케인은 지금 이 상황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각본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를 완벽하게 깨달았다.

다음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덮어!!”

신을 공격해 쓰러뜨린 케인은 곧바로 하이든리히와 마크 진랙에게 그를 커버할 것을 지시했다.

[B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쓰러진 심판을 데려온 케인은 억지로 카운트를 세게 만들어 경기를 끝낼 작정이었다.

그렇게.

두 떡대가 신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케인은 기절해있는 심판의 손을 들고 카운트를 이어나갔다.

비겁하고 역겨운 행동으로 경기를 끝내고자 하는 모습에, 팬들의 야유가 그야말로 경기장을 뒤덮었다.

1!

2……!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쿵!

힘찬 드럼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테마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두 번 말하면 입 아플.

프로레슬링 업계의 전설.

캐스켓-테이커였다.

[Yeeeeeeeeeeeeaaaaahhhhh!!]

그 모습에 놀라 돌아본 케인은 바이크를 타고 입장로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테이커의 모습을 발견했다.

케인에게 각본 상의 해고를 당한 그가 신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상황은 혼란으로 치달았다.

링 위로 올라온 테이커는 쌩쌩한 상태에서 곧바로 링을 정리했다.

[Yeeeeeeeeeeeeaaaaaahhhh!!]

관객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그리고 테이커가 신을 일으켜 세워주자 그 환호는 훨씬 더 커졌다.

그렇게 선역 쪽으로 다시 주도권이 넘어가는 듯했지만, 악역 팀 역시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링 아래에 숨어 있다 나온 오튼이 테이커의 머리를 붙잡고 뛰어올랐다.

투콰앙-!

기습 R.K.O.

두 거한의 몸이 쭉 펼쳐진 채로 허공에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어서 그런 오튼을 상대하기 위해서 레이 미스테리우스가 나왔고, 다음으로 악역 쪽에서 바티스타도 등장했다.

그리고 캡틴 로건까지 나오며 경기의 열기는 가히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싸움이 단순히 선수와 선수 간의 대결이 아니라 권력에 대항하는 자들과 그에 빌붙는 자들 간의 대립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로건이 자신의 현역 시절 피니시 무브인 ‘아토믹 레그 드롭’으로 바티스타를 마무리하며 내보낸 순간.

겨우 정신을 차린 심판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선역 선수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결국.

신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열화와 같은 챈트 속.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있던 신은 한 박자 늦게 일어서는 마크 진랙의 안면에 슈퍼 킥을 선사했다.

쫘악-!

이어서 러닝 니까지.

쩌억-!

날카로운 콤보에 당한 마크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커버가 이어졌다.

테이커, 로건, 레이.

악역 선수들을 완벽하게 쫓아낸 세 명의 선역들은 팬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함께 카운트를 셌다.

[1!]

테이커가 엄지를 치켜들었고.

[2!]

레이가 V자를 만들어 보였다.

[3!!]

마지막으로 로건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카운트를 완성해주었고.

땡땡땡!

링 벨이 울리며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Yeeeeeeeeeeeeeaaaaahhhh!!]

완벽한 선역의 승리.

핸디캡 매치에, 더욱이 케인 맥센의 비겁한 공작까지 있었던 경기.

하지만 신은 다른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멋지게 승리를 만들어냈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계속해서 챈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선역 선수들이 위로 올라와 다 함께 세리모니를 펼쳐 보였다.

원 데이 스탠드는 그렇게 완벽한 결말 속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선역은 승리했고.

악역은 패배했다.

권선징악. 프로레슬링이 전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스토리였다.

그 모습을 링 아래에서 멍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케인은 생각했다.

확실히 멋진 그림이었다.

하지만 또한, 느꼈다.

맥센 가문의 도련님인 자신은 절대 저 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고.

그래서 그냥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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