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45화 (245/634)

245.

[멋진 페이퍼뷰였지.]

[나도 재미있게 봤어. 솔직히 그런 이미지가 있잖아? 킹스 럼블로부터 레슬 임페리움까지의 징검다리 페이퍼뷰는 사실 중요하진 않다는.]

[하지만 그걸 정확하게 비틀어내면서 아주 멋진 쇼를 만들어냈지.]

[프로레슬링 업계에는 ‘현실’이 있어. 간단하게 말해서 ‘어른의 사정’으로도 치환할 수 있는 말인데.]

[그쪽이 더 어렵잖아.]

[……어쨌든 그래. 이들은 결국 팬들 생각도 해야 하지만 회사의 가치를 성장시키기 위한 상징적인 지표가 필요하단 말이지?]

[그중 하나가 레슬 임페리움에 쏟아지는 관심이지. 전 세계 스포츠 이벤트 중에서 4위잖아?]

[월드컵에 밀려나지 않았나?]

[다시 이겼어. 미식축구의 수퍼 볼, 하계 올림픽, 동계 올림픽, 그리고 여기 이 레슬 임페리움이지.]

[정말로 미친 회사라니까.]

[정확히는 미국이 미친 거지. 전 세계에서 다 참가하는 올림픽보다 수퍼볼이 더 가치가 높으니까.]

[……그것도 그렇군.]

[어쨌거나 이야기가 좀 샜는데, 결국 레슬 임페리움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서 보통 2월, 3월에 하는 각 페이퍼뷰는 좀 구리다는 인식이 있잖아? 실제로도 그래왔고.]

[하지만 오히려 이번에 랙다운은 ‘에라이, 다 신나게 놀아보자!’라면서 마구 날뛴 느낌이란 말이야.]

[선역 레전드들과 악역 선수들이 싸우면서 확실히 멋진 그림을 만들었지. 대립 이외에도 이런 엔터테인한 부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멋진 쇼가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맞아, 맞아. 그래서 말인데. 요새 보면 버닝콩보다는 랙다운 쪽이 더 재미있다는 느낌이야.]

[뭐, 신규 팬들은 대부분 시나가 있는 버닝콩을 선호하지만 말이야.]

[신이 참 대단해.]

[또 신이야?]

[하지만 뭐, 지금 그림을 보면 누가 공을 세웠는지 훤히 보이잖아?]

[……신이겠지.]

[케인과의 대립을 위해서.]

[이번에 이기겠지?]

[아마 그럴 거야. 랙다운 쪽에서도 밀어줄 선수는 하나 필요하니까.]

[오, 오튼?]

[오튼도 좋은 선수기는 한데. ……예전에는 절대로 좋은 선수까지는 아니었지. 그래도 언제부턴가 묘하게 자기 역할은 해준단 느낌이군.]

[신하고 다니기 시작한 시점부터가 아니었나? 그 자식 나아진 게.]

[제기랄, 결국 또 신이잖아.]

[……좋은 선수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문제지. 이 이상 뭘 바라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날 때부터 완벽한 선수란 게, 대체 어떻게 있을 수가 있는 걸까.]

두 사람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그건, 내가 이미 20년 넘게 이 일을 먼저 해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그때는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해 의욕이 없어서 링 위에서 실력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고 점점 자신감이 붙으면서, 결국 나 자신이 가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다.

나는 잘한다.

좋은 선수다.

하지만 누누이 말하듯, 절대로 혼자서는 빛날 수가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는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각자 멋진 상대와 경기를 할 예정이었다.

프로레슬링은 탱고를 추는 거다.

아니, 탱고가 아니라 둘이서 추는 춤이라면 무엇이든 넣어도 좋다.

혼자서는 출 수 없다.

멋진 상대가 필요했다.

숀 시나는 트리플H가.

랜스 오튼은 레이 미스테리우스가.

러셀 하트는 RVD가.

“이 매치 업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글쎄.”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슬 임페리움을 몇 주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케인의 생각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이후로 대립은 케인과 내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진행이 되었다.

3월 페이퍼뷰인 원 데이 스탠드 애프터 쇼에서는 내가 로건과 나와 축포를 쏘면서 승리를 자축했고.

이후로도 케인은 계속해서 나의 랙다운 출연을 막으려고 들었지만 그때마다 난 멋지게 골탕을 먹였다.

대립은 무난했다.

팬들은 최종 국면인 레슬 임페리움에서 케인과 내가 경기를 가질 것을 원했고, 그럴 예정이었다.

남은 건 하나.

“저 역시도, 이 사람들에 못지않은 훌륭한 상대 선수가 필요해요.”

앞선 세 사람은 각자 업계의 전설로 취급되는 상대 선수들과 경기를 가지면서 위상이 더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들과 레슬 임페리움에서 경기를 가졌다는 사실은 분명히 커리어에 큰 족적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나도 필요했다.

이 대립을 시나 대 헌터 못지않은 멋진 경기로 부킹하고 싶었다.

“……내가 선수라고?”

“그게 아니라면 팬들이 당신에게 보내는 리스펙트는 설명할 수 없죠.”

“글쎄. 나는 그냥 스턴트맨이었을 뿐이야. 프로레슬러는 되지 못했지.”

“그 또한 프로레슬링이잖아요?”

“……솔직히 말해도 될까?”

“예.”

“그렇게 되면 너에게 갈 스포트라이트를 빼앗는 건 아닐까 싶어서.”

케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악역의 역할은 나쁜 짓을 하고 호쾌하게 당해주는 거지. 그런 나에 대해 설명한다고 한들 관객들이 그걸 좋게 받아들일까를 모르겠어.”

“뭐,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내가 그냥 조용히 당해주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닐까?”

“아뇨,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난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케인, 우리는 치열하게 붙어야 해요.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가지고 와서 붙어야만 한다고요.”

“그 시대? 태도 불량 시대?”

“예, 저는 지금 그 태도 불량 시대에서 가장 미친놈이었던 케인 맥센과 싸워서 이기고 싶은 거예요.”

“…….”

“팬들도 그걸 원할 겁니다. 당신의 캐릭터는 악역 권력자가 아니라 미친 개자식이었으니까요.”

참으로 간곡한 설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야만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을 알고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악역 권력자를 무참히 두들겨 패는 것도 분명 재미있는 그림이겠죠.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대립은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너와 내가 대립하는 걸 보고 싶어 한다는 건가?”

“예, 태도 불량 시대의 가장 미친놈이었던 당신이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멋진 드라마가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글, 쎄다.”

케인이 잠시 말을 멈췄다.

표정에는 당혹감이 서렸고, 눈가는 붉게 충혈되었다.

시대를 넘어, 내게 인정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만 모를 뿐이다.

그리고 바트 역시 몰랐기에, 케인은 줄곧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해왔다.

권력자의 아들.

회사의 도련님.

하지만 경기를 뛸 때의 케인은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질감이 하나 존재했다.

케인은 언제나 그날 가장 위험한 범프를 수행하는 터프 가이였다.

사람들은 그냥 단순히 멋진 장면으로 받아들였지만, 나는 언제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회사의 도련님이 13미터 위에서 추락하는 미친 범프를 수행하다니?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케인 맥센이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였다.

‘나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회사와 그의 아버지는 끝내 알아주지 않았고, 인베이전 각본을 통해서 쐐기를 박아버리고 말았다.

그는 도련님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이후 그 일이 발생했다.

에디 비테레로의 죽음.

“…….”

긴 침묵의 끝.

케인이 진심을 이야기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말이야.”

“예.”

“나는, 에디가 부러웠어.”

“……진짜 개소리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게 당신이잖아요?”

나는 케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걸로 가죠.”

* * *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다.’

회사에서 가장 유명한 하드코어 레슬러이자 헬 인 어 셀의 두 주인 중 하나인 믹 졸리가 한 말이었다.

통상 3회의 월드 챔피언.

하지만 그 보유 기간은 29일.

그럼에도 그는 이 거대한 프로레슬링 세계에 당당히 이름을 새겼다.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환상적이고 잔혹한 순간을 만들어서.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렇기에 이 대립이 단순히 노동자와 권력자의 싸움이 아닌,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갔으면 했다.

그리하여 멕시코에 있는 비키 여사께 가장 먼저 허락을 받았고.

우리는 죽은 에디를 기리기 위해서 이 각본을 사용하기로 했다.

레슬 임페리움을 2주 앞둔 링 위.

로드 투 레슬 임페리움 기간 동안 나는 케인을 철저하게 괴롭혔다.

그리고 오늘은 항상 케인을 보호하고 있던 마크 진랙과 하이든리히도 오늘 쇼 초반에 나한테 당해서 자리에 없는 상태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가 연이어지는 가운데, 팬들은 오늘도 내가 어떤 즐거움을 줄 것인가를 기대하며 이 자리에 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다지 즐겁기만 한 이야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기억 속에 평생 남아 한 번씩 들여다볼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겠지.

“에디 비테레로를 기억하나?”

그런 내 말에 순간적으로 챈트가 멎을 정도로 관객들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해나갔다.

“아직도 그 멋진 모습이 똑똑히 기억이 나는군. 하지만 말이야. 얼마 전 한 선수가 여기에서 그 전설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했지.”

하늘을 가리키고.

이어서 링을 가리켰다.

그렇게 나는 분명히 프로레슬링의 신神과 함께 있을 에디에 대해서 말하고, 이내 케인을 몰아붙였다.

“그거 네 공작이었지?”

“…….”

“네가 그렇게 말하도록 한 거잖아? 분명히 레이가 열 받을 거라면서. 레이뿐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서 나는 케인을 씻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이로 몰고 갔다.

케인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그랬다. 그리고 확실하게 깨달았지. 에디는 아직도 모두가 그리워하는 선수라고 말이야.”

[Booooooooooooooooooooo-!]

너에게는 에디 비테레로의 이름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듯 팬들은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이어진 케인의 말에 순간적으로 경악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참 부럽더군.”

“뭐?”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케인의 그 말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죽은 사람이 부럽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던가?

하지만 케인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난 그것을 믿었다.

이 진심을 담은 세그먼트는 분명 케인 맥센과 나의 대립을 역사에 남는 순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에디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회사를 나갔지.”

“지금 네 이야기 들으려고 내가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냐?”

“좀 들어봐. 내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는 말이니까.”

팬들의 반응도.

티파니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모두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크게 내몰린 케인은 그제야 모조리 포기하고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으니까.”

결국 그것이었다.

“‘도련님’은 아무리 몸을 던지고 미친 범프를 수행해도 알아주지 않고, 기회조차 받지 못하거든.”

“지금 내 앞에서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길 하는 거냐?”

“그래, 나는 어디까지나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어. 이제 와서는 정말로 늦은 이야기지만 말이야.”

피식 웃는 케인.

“그리고 열 받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온몸을 내던지면서 싸웠는데도 항상 역사는 상대만을 기억하더군!”

이어 흥분한 녀석은 우리의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거트 엔젤! 테스크! 카인! 다 나와 경기를 가졌고 내가 그 경기에서 가장 위험한 짓을 도맡아 했지만 승자는 놈들이 됐고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갈 기회를 얻었어!”

케인의 발언은 제4의 벽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가 돌아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 그래서 계속했지! 미친 짓을! 차라리 이러다 죽어버리면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그 빌어처먹을 에디가 기억되는 걸 보고 존나게 부러웠다고!!”

케인이 내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 지금은 빌어먹을 네가!! 대체 왜 자꾸 내 눈앞을 돌아다니는 건데!!”

“…….”

나는 침묵했다.

팬들 역시도 반응하지 못했다.

케인 맥센이라는 레슬러의 커리어가 바로 이곳에서 다시금 이어졌다.

끊어졌던 과거의 고리가 복원되며 사람들은 이 남자를 기억해냈다.

이해했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어이구, 그러셨어요. 도련님?”

“……뭐?”

“와, 우리가 도련님 꿈을 이해하지 못해서 참으로 슬퍼요. 모두 한번 눈물 한 방울 흘려줄까요?”

나는 일부러 그를 조롱했다.

“프로레슬러의 평균 수명이 몇 살인지 알고 하는 소리지? 60살을 넘기면 용하다고 듣는 세상이야.”

그렇게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프로레슬러인 신이 보기에 그런 케인의 말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징징거림에 불과했다.

“다 죽었어. 나도 아마도 일찍 죽겠지. 뭐, 사실 옛날 사람들 이야기고, 회사는 그런 위험성을 최대한 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나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내 심장을 가장 뛰게 하는 일을.

“나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어.”

하지만 케인은 아니다.

“네가 13미터 아래로 떨어져도 되는 이유? 당연히 내일 경기가 없기 때문이야. 당장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없기 때문이야. 너 씨팔, 지금 에디가 죽은 뒤 그 가족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는 알고서 하는 이야기냐?”

한편으로는 정말로 화가 났다.

에디가 죽은 뒤, 평범한 텔레마케터에 불과했던 비키 비테레로는 이 회사에 들어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각본을 수행했다.

뚱뚱보 아줌마.

방구쟁이 아줌마.

더러운 아줌마.

악역으로서 프로레슬링 스토리의 감초 역할을 해내면서 수많은 팬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지만.

링 아래, 낡은 호텔 방에서 죽은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멕시코의 가족들에게 전송했던 게 그녀의 삶이었다.

“그런데 에디가 부럽다고? 넌 아무것도 아니야. 케인. 너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병신 쓰레기라고!”

말이 거칠게 나왔다.

하지만 나는 현역 프로레슬러로서 녀석에게 확실히 말해야만 했다.

에디의 죽음을 부럽다고 하는 이 녀석은 프로레슬러가 아니었다.

“그런 너에게 가르쳐주지. 장소는 레슬 임페리움이 좋을 것 같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케인을 향해 다가서며 똑똑히 말했다.

“너와 나.”

일대일.

“헬 인 어 셀.”

그 말에 이윽고 관객들이 충격에 빠진 소리를 내뱉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가정하듯 표현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게는 지금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오직 눈앞의 케인 맥센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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