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46화 (246/634)

246.

수없이 많은 프로레슬러들이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다.

혹독한 스케줄에 떨어지는 체력.

잔부상을 달고 사는 몸.

그걸 견디기 위한 진통제 투여.

그 외에도 각종 불법적인 약물들.

그 후유증은 인간의 몸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망가뜨렸고, 끝끝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부러웠다니.

“……후우.”

티파니 맥센은 하늘 높이 담배 연기를 뱉어내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어둠에 잠긴 사무실.

정규 방송이 종료된 TV에서는 흑백이 뒤엉킨 노이즈가 흘러나왔다.

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어.]

그리고 케인이 했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에디가 부러웠어.]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문득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케인도 그렇고 신 역시도 일반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거기다 헬 인 어 셀.

두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경기를 펼칠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알고는 있어.’

신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위험한 행동을 할 선수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가 선수 생명을 깎아먹을 정도로 위험한 범프를 수행한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근거가 있을 터였다.

걱정을 앞세워 선을 그어버리는 순간, 신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티파니는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 요새 들어서 담배가 늘었지만.

어쨌거나 딱히 티는 내지 않고 프로답게 경기를 지켜볼 예정이었다.

‘퇴근이나 하자.’

그렇게 연달아 세 개비를 태운 티파니는 재킷을 걸치고 일어났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기에 있는 거울에 단정한 용모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혹시 몰랐다.

연예기획사의 사장으로서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건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1층으로 로비에서 내리자니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름을 확인한 티파니의 눈썹이 가볍게 흔들렸다.

“……여보세요?”

[아~ 사장니임~!]

술에 취한 목소리.

브리 로건이었다.

[혹시 다음 주에 시간 돼?]

“글쎄요. 무슨 일이에요?”

늦은 밤의 전화.

약간 무례하다고 볼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브리는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티파니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의도가 있는 행동이었지만.

티파니는 딱히 선을 그어두지 않고 브리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나 지금 플로리다 바이커스 구단주님이랑 놀고 있는데 말이야! 구단주님이 플로리다에 엄청 좋은 별장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하지 뭐야!]

“네, 그래서요?”

[혹시 신이랑 사장님이랑 같이 갈까 싶어서 말이야. 시간 돼?]

바로 이게 그 의도였다.

그 촬영 이후로, 브리는 노골적으로 신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보였다.

파머스 이후로 태도가 훨씬 좋아져서 그냥 놔두고 있기는 했지만.

글쎄다.

신이 과연 며칠 뒤에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 싸울 예정이라고 해도 그런 관심이 지속될까 싶었다.

아니, 거기다.

“이제 곧 레슬 임페리움이잖아요.”

[아, 그거~ 아직도 해?]

“예, 아마 말씀하신 시간대에는 맞추기 힘들 것 같아요.”

[사장님은? 거기 바이커스 선수들도 부를 수 있다는데!]

“저도 보러갈 예정이라서.”

[음, 그럼 나 혼자 가야 되나?]

“……간다고 해도 부디 위험한 짓은 하지 말고 돌아오세요.”

전화는 그런 식으로 끝났다.

그때쯤 주차장에 도착해, 티파니는 한숨과 함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세단, 마이바흐에 탑승했다.

그러자니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뭐예요?”

[아아, 하나만 더.]

브리가 어색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어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해왔다.

[혹시 이번 레슬 임페리움 어디서 열려? 나도 가볼까 싶어졌거든.]

“…….”

[사장님?]

“……지아.”

[응?]

“조지아에요.”

거기에 잠시 고민하던 브리가 이내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아, 거기는 너무 멀어! 안 갈래!]

“…….”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 * *

2006년 4월.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벤트, 레슬 임페리움이 개최될 도시는 바로 조지아 주의 아틀랜타였다.

레슬 임페리움은 특별했다.

보통 회사에서는 4월 첫째 주 일요일과 전후의 주간을 ‘레슬 임페리움 위켄드’라고 표현했는데.

그동안 열리는 위클리 쇼와 하우스 쇼의 표를 묶어 판매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게 보통이었다.

회사뿐만이 아니었다.

레슬 임페리움 주간의 개최 주州 역시도 회사 못지않게 여행객들로 인해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레슬 임페리움은 그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의 스포츠 이벤트였다.

그 공기를 느끼며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었고, 숙박, 음식, 관광으로 거의 수백억 가까운 수익을 냈다.

심지어 레슬 임페리움 유치는 주지사 선거의 공약으로 내세워질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상황.

레슬 임페리움 직전의 마지막 위클리 쇼인 금요일 밤의 랙다운.

나와 케인 맥센은 링 위에 서서 경기 계약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아직 내가 유리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목청껏 내 이름을 불러대는 가운데, 나는 먼저 사인을 하고는 곧바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케인 역시도 사인을 했다.

[Waaaaaaaaaaaaaaaaghhhhh!!]

경기가 확정된 순간,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모두가 우리의 경기를 원했다.

신 VS 케인 맥센.

헬 인 어 셀.

권력자 대 노동자의 대립으로 시작해, 나는 케인의 가면을 벗겨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추악한 감정이 드러나며 대립은 더 심화되었다.

온몸을 던지며 노력했지만, 그는 결코 프로레슬러가 될 수는 없었다.

그 열등감과 분노는 멋진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던 내게 도달했다.

케인은 회사로 돌아왔고, 그대로 내 커리어에 큰 제동을 걸어버렸다.

그러면서 이카로스를 예시로 들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추악한 감정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게 밝혀진 바로 지난주.

나는 케인의 그런 행동을 애새끼의 징징거림이라고 표현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케인은 자신이 팬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근거로 그 누구보다 험하게 몸을 쓴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그건 그가 현역 생활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현역 선수들은 자신의 몸 상태를 철저히 가늠하면서 커리어를 만든다.

하지만 지난번에 말했던 대로 케인은 그런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수들은 큰 부상 한 번 입으면 커리어가 박살 나는 경우도 수두룩한데 케인은 그럴 염려가 없었다.

잘릴 이유도 없고, 잘리면 다시 금수저 도련님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겨야만 했다.

프로레슬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나는 헬 인 어 셀에서 철저하게 케인을 때려눕힐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링 위에서 말한 건 어디까지나 ‘각본 상의 일’이었다.

프로레슬러인 신의 생각과 그걸 기획하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케인 역시도 그것을 알았다.

링에서 내려온 그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속이 시원한데.”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대립은 처음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맥센 가문과 아버지, 권력 따위를 위해서 대립해왔다.

하지만 그건 안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케인 맥센의 바람과는 전혀 달랐다.

케인은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어 했으며, 미친 듯이 몸을 던졌으나 인정받지 못한 채 상처를 입었고.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이제야 그걸 토해낼 수 있었다.

팬들은 성대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도 한 명의 프로레슬러로서 그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솔직하게 토해내면서 비판을 했다.

그리고 그 최종 결착은 이제 레슬 임페리움에서 이어질 예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철저하게 준비해 와요.”

“무슨 준비를?”

“제가 당신을 비판했잖아요? 선수가 아니니까 그런 미친 범프를 수행하고도 괜찮을 수 있는 거라고.”

“……변명할 수 없더군.”

“하지만 이제 당신은 거기에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 대답은 케인에게 맡겨두자.

* * *

마지막 위클리 쇼가 끝난 뒤, 우리는 곧바로 애틀랜타로 이동했다.

레슬 임페리움은 20만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슈퍼 돔 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애틀랜타 시 외곽에 있는 경기장은 주변의 조망권을 해칠 정도로 거대해서 대관료 같은 것도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레슬 임페리움은 그보다 최소 열 배 이상의 수익이 나기에 괜찮았다.

애틀랜타는 프로레슬링 관련 이벤트로 북적북적했고, 이때를 노리고 인디 단체에서 이벤트를 열기도 해서 늦은 밤까지 열기로 가득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혹시라도 위험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경기장에서 먹고 자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토요일 밤.

이제 24시간 뒤면 레슬 임페리움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4층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헬 인 어 셀의 철창이 조립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동료들과 함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시나와 러셀, 그리고 오튼까지.

각자 대립 상대와 충분히 회의를 거친 우리는 이제 감정을 다듬으며 경기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나가 입을 열었다.

“신, 축하한다.”

“뭐가?”

“레슬 임페리움 메인이벤트.”

시나가 손을 내밀었다.

전생과는 결과가 달라졌다.

전생의 2006 레슬 임페리움에서는 시나와 트리플H의 유니버스 챔피언 매치가 메인이벤트였다.

하지만 바뀐 이유가 있는데.

“헬 인 어 셀이잖아.”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구조물을 내리고 설치한 다음에 해체하는 과정이 무척 번거로워서 우리가 메인이벤트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이 그걸 얌전히 인정해주었다는 건 조금 놀라웠다.

그 양반이라면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숀 시나를 밀어주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시나에게 너무 힘을 실어주기 않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군.’

바트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아이콘의 탄생을 경계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수준까지의 아이콘을 원했다. 그 생각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다들, 내일 몸조심하고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보자고.”

“그래야지.”

“좋아.”

내가 주먹을 내밀자 시나와 러셀이 각자 그 위에 주먹을 얹었다.

그리고 좀 시간이 흘렀다.

“…….”

“…….”

“오튼?”

내가 돌아보자 오튼은 티셔츠 안쪽에서 묵주를 꺼내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하냐?”

“아니, 내일 경기에서 레이 선배가 나보고 각오를 좀 해두라고 해서.”

“그래서 신에게 빈다고?”

“의외로 효과가 있다고. 아마.”

녀석다운 행동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 우리는 오튼의 손에 잡힌 묵주까지 얹고서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다들 무사하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나자 오튼이 뭔가를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야, 그러고 보니 여기 조지아잖아. 너희 셋은 환호 엄청 받을 텐데. 제기랄, 부러워 죽겠다야!”

“난 오히려 걱정인데.”

러셀이 진지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 순간 환호를 받아버리면 내가 악역으로서 부족하다는 말이 되잖아.”

“걱정 마. 러셀. 너는 진짜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 자식이니까.”

“…….”

시나의 말을 들은 러셀은 조금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은 나는 문득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GCW에서 마지막 날에 다들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지.”

“아, 그때?”

“동의하지 마. 오튼. 넌 없었잖아.”

오튼이 시무룩해졌다.

이 자식, 의외로 자기만 GCW 출신이 아니라는 걸 신경 쓰고 있나.

그러자니 러셀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에보니하고 너하고 무슨 일 있는 건가 좀 궁금해했는데.”

“에보니?”

“아~ 그 간호사 말이지?”

“그래, 그 뒤로 연락해?”

“간간히, 안부만.”

그나마도 최근 들어서는 바쁘다 보니 영 잊고 지냈다. 그쪽에서 연락하는 것도 뜸해졌고.

그래도 나름 내가 고민할 때 도와준 사람이자 친구라고 느껴서, 되도록이면 계속 안부를 주고받고 싶었는데.

‘혹시 이번에 오나 연락해볼까?’

그것이 다시 연락할 좋은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이 자식들, 여기 있었구먼?”

누군가 말을 걸어와 돌아본 우리는 반가운 얼굴을 한 명 발견했다.

“바쿠!”

“와, 여기 어쩐 일이에요!”

“인력 딸린다고 해서 지원하러 왔다. 올해 레슬 임페리움이 진짜 상상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나봐.”

“할리도 왔습니까?”

“할리도 왔고. 그리고 너희들이 알 만한 사람도 한 명 데리고 왔지.”

그렇게 말한 바쿠의 소개와 함께 계단 아래에서 한 사람이 더 나왔다.

“어?”

상대의 얼굴을 본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이 여기서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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