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땡땡땡-!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링 벨이 울리며 케인과 나는 각각 반대편의 링 사이드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20만이 넘는 팬들의 챈트가 링을 감싸고 있는 철창을 뒤흔들었다.
마치 콜로세움과도 같았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우리는 오늘 이 헬 인 어 셀에서 기나긴 악연을 끝장낼 생각이었다.
시작은 물론 락 업으로 가야겠지.
그게 기본이다.
[Waaaaaaaaaaaaaaaaggghhh!!]
계속해서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성 속에 나는 팔을 들고 접근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케인 맥센은 곧바로 복싱을 하듯 자세를 취한 채 내게 달려들었다.
이게 우리의 차이였다.
그리고 내가 케인에게 넌 프로레슬러가 아니라고 말한 근거였다.
케인의 경기 스타일은 프로레슬러라기보다도 스턴트맨에 가까웠다.
낙법은 완벽하게 익혔지만 그 밖의 다른 기술들은 초짜나 다름없었다.
그걸.
피한다.
뻗어오는 원투를 허리를 숙여 피한 나는 그대로 케인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 테이크다운을 걸었다.
“……!”
[Waaaaaaaaaaaaaaagggghhh!]
그 상태에서 안면을 후려갈긴 나는 이어 케인의 허리를 붙잡았다.
서로 몸을 밀착한 상태에서.
허리를 이용해 있는 힘껏 뽑아 머리 위로 내던졌다.
“흐압!!”
투쾅-!
밸리 투 밸리 수플렉스.
서로 몸을 밀착해 잡은 상태에서 던져버리는 테크니션의 무브였다.
바로 이것이 레슬러다.
그것을 보여주듯 나는 그간 쓰지 않던 무브들을 사용해 리드를 잡고 케인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초장부터 속도를 높였다.
배정된 경기 시간은 길었다.
무려 40분.
일반적으로 내가 했던 경기들이 최대 20분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면 그 두 배나 되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격하고 힘든 경기다.
부상의 위험 또한 컸고, 크게 각오한 범프도 많이 준비해왔다.
그럼에도 그걸 의식해서 속도를 줄이는 건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팬들의 환호가 절정에 이른 이 순간, 모두가 기대하던 이 메인이벤트가 시작되는 바로 이 시점에서.
나는 탑 턴버클을 밟고 뛰었다.
[Waaaaaaaaaaaaaaggghh!]
20만 명의 관객들이 보였다.
거의 4미터 높이까지 도약한 나는 링 중앙에 서있는 케인을 노렸다.
미사일 드롭킥.
퍼억-!
양발을 이용해 차내는 반동을 따라 몸을 뒤집은 나는 그대로 전방 낙법을 취해며 바닥에 떨어졌다.
콰앙!
링 바닥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뿐만 아니라 케인 맥센 역시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졌으니 말이다.
두 거구가 쓰러지는 충격에 순간적으로 심판이 중심을 잡을 정도.
팬들이 크게 환호를 보내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경기 시작 후 약 5분.
그동안 나는 경기를 계속 리드하면서 케인을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이게 바로 ‘클래스 차이’였다.
현재 시점에서 케인은 모든 부분에서 나보다 훨씬 부족한 놈이었다.
녀석은 5년 가까이 레슬링을 안 했다. 거기다 나이도 나보다 많았고, 기술 구사력에서도 그 차이가 컸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분명 개연성 있는 흐름이었다.
그것을 팬들에게 알리듯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야?! 고작 이거야?!”
[Yeeeeeeeeeeeeaaaaaaahhhh!!]
“헬 인 어 셀이라며!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었어?! 홈그라운드에서 붙어줬는데도 고작 이 정도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흐름은 완전히 내 것이었다.
선역으로서 나는 트위너 경향이 있는 탑 독 캐릭터였다. 시나와는 완전히 정반대 성향이라는 말이다.
비록 흐름을 내어줄 때는 있어도, 팬들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속 시원하게 두들겨 패주는 스타일.
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만 해서는 이 40분짜리 경기는 절대로 성립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케인도 내게 대항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준비해왔다.
반대편 바닥에 쓰러져 있던 케인이 천천히 굴러 링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여기는 헬 인 어 셀.
도망칠 곳은 없다.
[Boooooooooooooooooo-!]
도망친 케인에게 야유가 쏟아지는 가운데, 나는 링 밖으로 내려갔다.
아직 회복이 덜 됐는지 숨을 몰아쉬며 검은 바닥에 누워있는 케인.
그 머리채를 움켜쥔 순간.
쩌억-!
뭔가가 이마를 강타했다.
[Uoooooooooooooohhhh!!]
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양철 쓰레기통 뚜껑.
동그랗고 주름진 그것이 내 이마를 세차게 강타했다. 그로서 케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레슬링이라면 분명히 내가 우위.
하지만 이 경기는 그와 동시에 두 남자의 야만스러운 싸움이었다.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 새끼……!”
이를 악물며 일어난 케인은 그동안의 설움을 갚아주듯 링 아래쪽에서 온갖 무기를 다 꺼내들었다.
철제 의자와 테이블, 죽도에 양철 쓰레기통, 손에는 그 뚜껑을 잡고.
퍼억-!
내 이마를 힘껏 후려쳤다.
쓰라린 통증에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당했다.
쿠당탕-!
철제 계단에 몸이 부딪히고.
“크으윽……!!”
철조망에 얼굴이 갈렸다.
내 머리를 붙잡고 있는 케인은 악에 받쳐서 팔을 마구 휘저어댔다.
딱딱하고 얇은 선에 얼굴이 마구 긁혔다. 결국 나는 그 충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철창 바깥이 보였다.
“신, 일어나!!”
“발라버려!!”
온갖 팬들이 내게 필사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통해, 나는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읽어냈다.
일류 선수만 할 수 있는 것.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척 셀링을 진행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의 공격에 반응해주는 것이었다.
관객들의 표정이 변했다.
[Uooooooooooooohhhhh!!]
날 놔두고 로프를 타고 올라간 케인이 탑 턴버클 위에 서있는 것이, 등 뒤의 일이 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팬들이 머리를 움켜쥐는 시점에서 뛰어오른 게 보였다!
콰앙-!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날 덮치려던 케인을 피해냈다. 녀석의 안면이 그대로 철조망에 박혔다.
그런데, 어라?
‘좀 강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보자니 케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이 웃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하드코어하게 가자는 건가.’
그 마음을 알아차린 나는 케인의 머리를 잡고 반대편으로 던졌다.
차앙-!
철조망이 크게 흔들렸다.
그 상태에서 달려가 드롭 킥.
철조망에 부딪힌 케인이 쓰러졌다. 그 팔꿈치에서도 피가 흘렀다.
경기의 양상이 완전히 변했다.
그 밑에 있던 철제 의자를 집어든 케인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쩌엉-!
허리를 숙여 등으로 의자를 받아내며 나는 그 통증을 견뎌내고 다시 한 번 케인을 들이받았다.
촤앙-!
철조망이 다시 흔들렸다.
그리고 나는 무너졌다.
“허억, 헉……!”
“괜찮냐?”
“계속, 하죠.”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케인은 전혀 봐주지 않고 내 멱살을 붙잡고 들었다.
그 상태에서 링 기둥에 밀쳐졌다.
쾅!
충격에 비틀거리며 나온 나를 케인이 다시 한 번 힘차게 내던졌다.
반대편에 세워져 있던 테이블.
쩌억-!
나무로 된 거기에 달려들어 몸을 부딪친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온갖 도구가 다 나오는 상황.
하지만 이조차 시작에 불과했다.
[Waaaaaaaaaaaaaaggggghhhh!!]
경기 자체가 주는 박력에 팬들에게서 더 이상 야유는 나오지 않았다.
좋은 신호였다.
팬들이 케인에게 야유를 보내지 않는다는 건, 지금 이 경기에 큰 만족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지만.
“신, 신! 괜찮나?!”
좀 따끔따끔 거린다 싶더라니.
테이블이 부서지며 그 파편이 순간 등을 세차게 할퀴고 지나갔다.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링 위에서 내려온 심판이 내게 다가와 상태를 체크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지혈용 테이프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숨을 몰아쉬며 서있는 케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상황이 어색해진다.
“괜찮아.”
“뭐? 아니, 일단……!”
“걱정 마. 안 죽어.”
순간 흐름이 어색해질 뻔했다.
나는 심판을 밀어내며 일어나 케인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녀석이 다가왔다.
순간 흐름이 깨져서 잦아들던 불길에 다시금 내가 장작을 던졌다.
[Waaaaaaaaaaaaaagggghhh!!]
환호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상하잖아?
한창 싸우고 있던 도중에 내가 다쳤다고 상대가 기다려주고 나는 얌전히 지혈 테이프를 붙이는 게.
그러므로 속행이 맞았다.
우리는 계속 싸움을 이어나갔다.
주먹과 발, 무기까지 동원해서.
하지만 물론, 경기 주도권은 계속해서 케인의 손에 있는 상태였다.
온갖 공격을 버텨내며 반격의 실마리를 찾던 나는 이내 아까 전의 그 위치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철조망 앞.
“크아아아아악-!!”
반대편에서 힘차게 돌진해온 케인이 내 몸통을 들이박고 그 무게를 더해 철조망에 부딪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장창-!
조립식으로 된 철조망의 한 구역이 부서지며 그대로 뒤로 엎어졌다.
우리 두 사람은 그대로 철창 바깥으로 빠져나와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강대한 통증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Uooooooooooooooohhhhhhh!]
오늘 준비해온 범프 중 가장 약한 수준의 물건이었으나, 관객들의 반응은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강렬한 수준의 범프였다.
검은 바닥에 그려진 붉은 선.
내가 구르면서 등에서 난 피가 바닥에 질척질척 뒤엉킨 흔적이었다.
충격에 빠진 관객들.
하지만 핀 폴은 없었다.
먼저 일어선 케인이 철창 바로 옆에 있던 아나운서 테이블에서 기자재들을 빼내 옆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나를 그 위에 눕히고.
숨을 몰아쉬다가 철창을 타고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2미터, 3미터.
그리고 4미터.
나는 정신이 몽롱한 척 퀭하게 눈을 뜨고 그런 케인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케인 맥센은 나를 싫어한다.
자신이 포기하고 지냈던 프로레슬러로서의 길을 ‘나 같은 놈’이 멋지게 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나인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았다.
동양인, 비주류 중의 비주류.
그런 내가 이 백인들을 타깃으로 삼은 이 업계에서 매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꼬왔던 거다.
그렇기에 그는 회사로 돌아와 곧바로 내게 출장 정지를 선사하고 랙다운을 장악해버리고 말았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나를 태양을 바라며 날아가나 불타 떨어지는 이카로스에 비유하면서.
그런 녀석이 이내 매달려있던 철창에서 힘차게 몸을 내던졌다.
[Uooooooooooooohhhhhh!!]
투-콰앙-!!
지금까지 중 가장 큰 소리였다.
리프 오브 페이스.
다이빙 엘보 드롭과 동형기.
순간 내장이 어떻게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충격이 몸을 덮쳤다.
아나운서 테이블이 무너지며 우리 두 사람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Waaaaaaaaaaaaaaaggggghhh!!]
화끈한 범프에 환호하는 팬들.
하지만 큰 충격으로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윽…….”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꽤나 시간이 흐른 끝에 케인 맥센이 다시 일어섰다.
날 잠시 노려보던 녀석은 심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철창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aagghhhh!!]
환호성이 귀를 후려쳤다.
진짜로 좀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생각했다.
케인은 날 박살 내고자 했지만.
나는 끈질겼다.
신의 존재를 바라는 팬들의 염원에 의해 돌아와 랙다운을 이끌었다.
그리고 케인은 행동에 들어갔다.
킹스 럼블에서의 습격.
이후 시작된 대립.
하지만 마음대로 풀리진 않았다.
녀석이 날 억누르려고 할수록 팬들은 내 이름을 더 크게 소리쳤다.
수많은 이들이 날 지지했다.
결국 남은 방법은 단 하나.
힘으로 날 쓰러뜨리는 것뿐.
나의 폭로로 인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케인은 그런 식으로라도 이 싸움의 승자가 되고 싶어 했다.
물론, 나라고 다르진 않았다.
그간 그 갑질에 질릴 정도로 당해온 나는 수많은 팬들의 앞에서 케인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싶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져도 좋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내 인생이 끝난 뒤.
이 돌아온 삶에서 내가 부당한 이득을 취한 걸로 신神께서 벌을 주고자 하신다면 달게 받을 것이다.
단, 지금 쌓아가고 있는 이 커리어는 역사에 남긴 채로.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케인이 감히 내가 부럽다고?
질투가 난다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어섰다.
“으, 극……!”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의 환호성에 귀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