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케인의 발을 붙잡았다.
“……?!”
철창을 기어 올라가던 녀석이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상태에서 팔에 힘을 줘 당겼다.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케인.
콰앙-!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나운서 테이블이라는 완충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정확히 중간 지점.
3미터 위에서 떨어질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오기가 생겼다.
철조망을 잡은 손에서는 이제 슬슬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몸에 돌았다.
그런 상황에서 더 위로.
위로.
그렇게 올라간 나를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열화와 같은 외침.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심판과 관계자들은 손을 내젓고 있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아차렸다.
너무 높았다.
거의 4.5미터?
몇 번 더 몸을 움직이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높은 위치였다.
불어온 바람에 몸이 떨렸다.
철창이 덜컹거릴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밑을 내려다본 나는 케인이 일어선 걸 발견했다.
녀석이 비틀거리며 숨을 쉬었다.
두려울 것이다.
내 실제 체중은 90kg 정도.
그 무게가 4.5미터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량은 정말 어마무시했다.
하지만 받아줄 것이다.
나는 믿고 있었다.
케인은 이런 범프를 수행할 때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선수였다.
나는 몸을 던졌다.
[Uoooooooooooooh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객들.
케인이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대로 떨어져 내리자 케인이 나를 받아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엄청난 충격에 다시금 내장이 요동치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곁으로 다가온 심판이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내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 신! 괜찮나?!”
“어어…….”
겨우 대답했다.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몸에 감각이 돌아오면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몸이 움직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케인은 움직이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놈을 향해 다가갔다.
심판이 당황해 나를 막아섰다.
어떻게든 이게 각본인 척하면서 호흡을 되돌리자고 제안했다.
“잠깐, 천천히 하라고!!”
“되겠어?”
하지만 난 그걸 밀어냈다.
“뭐?”
“되겠냐고.”
나는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오늘 이 레슬 임페리움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가장 큰 환호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심판이 놀란 표정으로 물러섰고, 나는 케인을 향해 다가가 녀석의 목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작게 물었다.
“괜찮아요?”
“……아직, 할 수 있어.”
그가 투지를 내비췄다.
시간은 이제 막 20분.
경기의 중반.
나와 케인은 계속 싸워나갔다.
치열하게.
오늘 죽을 것처럼.
* * *
고릴라 포지션 안.
[아, 신이 케인을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조금 전에는 정말 엄청난 위력의 다이브였는데요!]
[두 사람 다 충격이 크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공격을 당한 케인의 충격이 훨씬 클 수밖에 없겠죠!]
잔뜩 흥분한 해설자들의 코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모든 관계자들은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프로레슬링은 결국에는 협업을 통한 공연 예술이자 스포츠였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 간에는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진다. 그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좋은 평가를 받은 선수는 기회를 받아 위로 올라가고, 반대로 아닌 선수는 자연히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의 WWF가 절대로 모든 선수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올라갈 선수는 어떤 식으로든 위로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마치 신처럼.
그리고 그렇게 선수가 올라갔을 때, 백스테이지에서 그에 기여한 이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동시에 그 성공의 지분에 자신 역시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아무리 저들이 링 위에서 멋지게 날뛰어도 자신들이 하는 역할 역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영상, 시설, 음향, 각본, 보안.
크게 다섯 개로 분류된 현장팀 멤버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는 것과 비교하자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국 이와 같은 미친 범프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한정되기 마련.
아니, 차라리 케인은 이해가 갔다. 그는 바로 다음 날, 혹은 앞으로 경기를 안 뛰어도 되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신은?
그의 커리어는 이제 슬슬 신인 딱지를 떼고 있었다. 말인즉슨, 10년 이상은 남아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몸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범프.
자신의 선수 생활을 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저 경기.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경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기류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 역시 존재했다.
바로 티파니 맥센이었다.
[안 됩니다! 신! 안 돼요! 거기에서 몸을 던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Waaaaaaaaaaaaaaaggggghhh!!]
[팬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신이 결국……! 와아아악!!]
입장로 위까지 이어진 싸움.
신이 입장로 아래쪽에 놓여있던 케인과 함께 그 안으로 떨어졌다.
조명 기구가 완전히 박살 나며 그 옆에 준비되었던 불꽃이 터졌다.
팬들은 거기에 더 환호를 보냈다.
‘못 보겠어.’
하지만 티파니는 시선을 돌렸다.
입장씬을 도와준 후, 자연히 바로 옆에 있던 고릴라 포지션에서 경기를 보게 된 그녀는 현재 턱을 덜덜 떨 정도로 두 사람을 걱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경기가 너무 격렬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신의 이마가 피투성이가 된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계속 움직였다.
케인을 붙잡고 나와 숨을 몰아쉬면서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 눈동자가 셀 위로 향한 것이 보였다.
설마, 아니.
아니, 에이, 저기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티파니는 차마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아나운서 테이블은 ‘두 개’ 더 있었다. 평소보다 하나 더 많았다.
그리고 이어.
안색이 창백해진 채 손톱을 까득까득 깨물고 있는 티파니의 모습을 바트 맥센이 발견했다.
눈썹을 찡그린 그는 헤드셋을 벗고 곧바로 냅다 소리를 질렀다.
“티파니!! 분위기 망칠 거면 여기 있지 말고 나가 있어라!”
그 말에 발끈한 티파니가 곧바로 바트 맥센의 앞으로 다가왔다.
“회장님이야말로 지금 이걸 보고도 느껴지는 게 없으세요?”
“뭐?”
“저렇게 완벽한 선수가 지금 회사에 있는데 뭘 하시는 거냐고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구나.”
하지만 바트는 침착했다.
“이걸 알아둬라. 사업가란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거고, 지금 네 태도는 빵점이다.”
갑작스러운 싸움.
그런 상황에서 고릴라 포지션의 직원들 모두가 눈치를 보았다.
바트 맥센과 티파니 맥센.
부녀의 싸움은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는 채로 계속해서 진행될 것처럼 느껴졌지만.
피식 웃은 티파니가 바트의 손을 가리키며 상황이 반전되었다.
“그렇게 이성적이시라는 분이 지금 손을 떨고 계시는군요.”
“…….”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신이 지금 이 레슬 임페리움에서 최고로 빛나고 있어서 분하신 거죠?”
“나가라.”
짧은 한마디.
거기에 피식 웃은 티파니는 역시나 손을 덜덜 떨며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이 손을 떨고 있는 이유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티파니는 신과 케인이 걱정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바트는 달랐다.
그 스스로 무엇인지 알았지만, 인정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처음으로 회장이 일어섰다.
거기에 모두가 놀랐다.
이 고릴라 포지션에서 경기를 지휘하면서도 그 어떤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그였는데.
그리고 저도 모르게 모니터로 나오는 경기를 몰입해 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철창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Waaaaaaaaaaaaagggggghhhh!]
[단 한 사람도! 단 한 사람도 지금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십만 명이 모두 기립합니다!!]
[이십만 명이라뇨! 지켜보고 있는 수천만 명 모두가 그럴 겁니다!]
타이밍 좋게 이어진 해설자의 말.
거기에 바트는 굴욕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신과 케인이 보여주는 이 완벽한 퍼포먼스에 넋을 놓았다.
경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체력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철조망을 기어 올라오는 동안 드러낸 가슴팍이 긁혀 피가 흘렀다.
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먼저 위로 올라온 나는 곧바로 올라오는 케인의 뒷목을 붙잡고 세게 당겼다.
그때,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미식축구 저지가 뜯어졌다.
위로 올라오며 내 손을 쳐낸 케인은 그대로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거기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진짜로 때렸다.
하지만 나는 통증을 잊고 일어나 셔츠를 벗어던지는 케인을 향해 전력을 담은 펀치를 날렸다.
코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는 케인. 하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코피를 셔츠로 닦아내고.
녀석이 그것을 내던지자 나풀거리며 관객석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것을 잠깐 멍하니.
사실, 짜둔 각본이 아닌데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그 주변의 관객들이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를 피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케인이 이야기했다.
멀어서 카메라는 잡지 못했다.
“……할까?”
“예?”
“다들 기억할까?”
“그야 물론이죠.”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입니다.”
내 말에 케인이 웃었다.
정말 거창한 대립이었다.
누군가는 괜히 복잡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로써 케인은 더 이상 맥센의 도련님이 아니게 되었다.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로부터 도망쳤던 남자.
그 사실을 결국 고백해버린 남자.
그게 중요했다.
그걸 말해서 모두가 알게 되었다.
케인 맥센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링 위에서 싸울 때의 그는 그 어떤 놈보다도 터프했다.
그리고 신은 거기에서 자연히 인정하게 되는 거다.
케인 맥센은 프로레슬러다.
철창은 밟을 때마다 물침대 위에 있는 것처럼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모든 나사는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위에서 위험한 범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케인이 나를 들어서 메치고.
반대로 내가 케인의 안면을 까버렸다. 녀석은 비틀거리며 셀 위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6.5미터 위.
바람이 불어오고.
팬들의 환호가 울리고.
[Waaaaaaaaaaaaagghhhhh!!]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관객들 모두가 Insane Moment를 원했다.
Insane. 정신 나간.
Moment. 순간.
그리고 아마 근 10년 동안은 누구도 하지 못할 마무리가 될 거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될 수 있지.
그리고 이 경기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범프가 코앞에 찾아왔다.
러셀과의 경기에서도 5미터 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높았다.
무려 6.5미터.
자그마한 여자 키 정도의 높이를 더 올라온 상태에서 떨어질 거다.
혹시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서로 다른 곳으로 떨어진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것을 준비하며 마지막으로 길게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 순간, 머릿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머니, 아버지.
GCW 시절의 동료들.
내 친구들.
회사 사람들.
너무나도 좋아하는 우리 회장님.
나를 사랑하는 팬들.
윌리.
에디.
마지막으로.
티파니까지.
그들을 위해.
눈앞의 케인을 위해.
나를 위해.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말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크하아아압!!”
나는 힘차게 케인 맥센의 안면에 슈퍼 킥을 먹였다.
쩌억-!
강렬한 한 방에 케인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며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W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성.
동시에 우려하는 목소리.
숨을 몰아쉰 나는 마지막으로 케인의 눈이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녀석이 눈으로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야.
나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대로.
케인 맥센을 몸으로 들이받으며.
우리는 천장 바깥으로 떨어졌다.
6.5미터 아래의 풍경이 보이며.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하는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들은 이걸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