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50화 (250/634)

250.

믹 졸리가 말했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순간이야.’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을 불멸로 만들어 누군가가 몸서리치게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는 앞으로 이처럼 위험한 종류의 범프를 최대한 금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전체이용가 시대가 다가왔다.

숀 시나라는 아이콘을 중심으로 삼아, 이전의 황금시대처럼 선과 악이 맞붙는 고전적인 드라마의 시대.

그렇다면 지금밖에 없었다.

케인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경기를 기획할 때 마음이 맞았다.

이것은 어쩌면 폭력적이었던 그 시대에 우리가 보내는 헌정사였다.

“……!”

소리가 돌아왔다.

“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순간 정신을 차린 나는 경기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 테마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Uh-Oh-! Oh-Oh-Oh-Oh!!]

팬들이 나의 음악을 불러댔고, 눈앞에는 에보니가 소리를 질러댔다.

“숨 천천히 쉬어요! 아주 천천히!”

각종 처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스트레처 카를 발견하고는 이내 물었다.

“어떻게 됐어?”

입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기억 안 나요?”

“조금도.”

“최악의 순간이었어요.”

“그래도 완벽했지.”

그렇게 말한 것은 심판이었다.

“당신, 끝까지 했어.”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그래, 아득바득 기어가서 케인을 커버했고, 아주 멋지게 승리했지.”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셀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관객석 쪽으로 넘어온 스트레처 카가 다가와 나와 케인을 실으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심판에게 물었다.

“셀 올린대요?”

“자네들 다 싣고 나면.”

“아니, 아직 하지 말라고 해.”

“신!”

“제기랄, 아직 승자가 세리모니도 안 끝냈는데 멋대로 경기를 끝내?”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코 안쪽에 피가 들러붙었는지 머리가 띵했다. 동시에 입안에서는 피 맛이 계속 느껴지고, 정말 슈퍼 최악이다.

하지만 할 일이 남았다.

나는 미끄러진 척 쓰러지면서 케인의 앞에 털퍼덕 드러누웠다.

정신이 돌아온 그는 몽롱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엉망진창.

다 박살이 났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물었다.

“케인.”

“……왜.”

“싫어할 수 없죠? 프로레슬링.”

“평생 짝사랑이겠지만.”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거기에 내가 대답했다.

“아뇨,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프로레슬링도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과연 그럴까?”

“예, 당신의 프로레슬링에 대한 사랑을 다들 알게 되었으니까.”

케인은 자유로워졌다.

그가 가지고 있던 꿈, 실패, 열등감, 도망, 모든 것을 이야기했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이제 더 이상 팬들은 케인을 단순한 권력자 도련님이 아니라 보다 더 복잡한 인물로 이해할 터였다.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프로레슬러였다.

여기에 자기 인생을 녹여낸.

“……머저리 같은 자식.”

케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다녀와. 마무리를 짓고 와라.”

“예.”

고개를 끄덕인 내가 일어섰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수많은 이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레슬 임페리움 2006의 엔딩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걸 해야만 했다.

“신……!”

“놔둬요.”

바로 그때, 날 만류하려는 에보니의 손을 누군가 제지하고 나섰다.

티파니 맥센이었다.

“언제 나왔어?”

“……다녀와요.”

긴말은 필요 없다는 걸까.

애써 웃는 티파니에게 반대로 활짝 웃어 보인 나는 마지막으로 셀을 천천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테마는 진작 끝났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우리 둘이 기절했으니 엔딩 없이 레슬 임페리움을 끝내겠단 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둘까 보냐.

레슬 임페리움의 엔딩을 장식하는 것은 승자의 정당한 권리였다. 그러므로 나는 철창을 기어 올라갔다.

[Yeeeeeeeeeeaaaaaaaahhhhh!!]

그런 날 보고 환호하는 관객들.

몸 상태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뒈져버리기 직전이었지만. 그들의 환호가 나를 끌어올려주는 듯했다.

다시금 6.5미터 위.

그렇게 끝까지 올라간 나는 셀의 중앙에서 힘이 빠져 무릎을 꿇었다.

‘제기랄, 난 원래 쿨한 놈인데.’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필사적인 그림도 분명 슈퍼 섹시하게 보일 터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힘차게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 안을 박살 낼 듯이 몰아쳤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등 뒤로 터져 오르는 폭죽.

레슬 임페리움은 그렇게 철창 위의 나를 비추며 성대한 막을 내렸다.

* * *

깊은 새벽의 응급실.

한창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온 티파니 맥센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서 타들어가는 불빛.

연기를 한 모금 삼키고 내뱉자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나타났다.

바로 에보니 수였다.

인근 병원까지 일행을 따라온 그녀는 현기증을 느끼는 티파니를 대신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방금 끝난 것이었다.

“……괜찮아요?”

“예, 좀 어때요?”

“수술은 막 끝났어요.”

“결과는 어땠어요?”

“양호하대요.”

고개를 끄덕이는 에보니.

“당신 오빠도 참 대단해요. 어떻게 그 짓을 해놓고 크게 다친 게 신장 파열 하나뿐인 건지 모르겠네.”

“……그래요?”

“더 괴물 같은 건 신이죠.”

에보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똑같이 그 짓을 했는데 타박상하고 어디 약간 찢어진 정도에 그쳤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거죠. 의사가 말하기를 선천적으로 몸이 단단하다던데.”

“그런 문제가 아니지만요.”

순간 그렇게 대답했던 티파니는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정정했다.

“아, 그. 죄송해요. 지금 피곤해서 그런지 순간 말이 헛…….”

“그럼 담배 하나만 줄 수 있어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티파니가 군소리 않고 담배와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듀~퐁! 하는 소리에 순간 놀랐던 에보니였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걸로 불을 붙였다.

에보니 역시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만 담배를 피우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티파니와 나란히 벽에 기댄 에보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두려웠나요?”

“……예.”

“저도 두려웠어요. 신이 피투성이가 되어갈 때마다 다리가 떨려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할 수가 없더군요.”

에보니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아요. 순수하게 친구로서 걱정했다는 거예요.”

요새는 연락이 뜸했었지만.

머쓱한 듯 이야기하며 웃는 에보니를 본 티파니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왠지 전 남편도 이런 남자였던 게 생각도 나면서 말이죠.”

“전, 남편요?”

“트럭커였죠. 과속하다가 차가 뒤집혔고. 내 속도 그때 뒤집혔고.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지.”

연기가 흩날렸다.

“그때 생각했어요. ‘위험한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신을 보고 그 마음이 잠깐 흔들렸었지만.”

가벼운 윙크와 함께 뼈가 섞인 농담을 건넨 에보니는 그런 식으로 넋이 나간 티파니를 위로해주었다.

“GCW에서 러셀이랑 싸울 때 보고 확실하게 느꼈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고.”

“……이번에는, 어떠셨나요?”

“아예 그 생각에 공구리를 치던데요. 마지막에 그 높은 데서 밑으로 떨어질 때 잘 하지도 않는 욕만 계속 나오고,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정신 나간 광경이었다.

두 사람이 6.5미터 아래로 추락해 각각의 아나운서 테이블에 처박히고 경기장은 순간적으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 그들이 죽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직후, 신이 고개를 번쩍 들고 쓰러진 케인에게 기어갔다.

이어서 커버.

1, 2, 3!!

20만이 한마음 한뜻으로 떼창.

경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들 미칠 듯이 열광했지만, 에보니는 절대로 그들처럼 경기를 즐길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나 몰라.”

“프로레슬러는 슈퍼맨이니까요.”

“응?”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즐기죠. 물론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티파니는 황량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한도 내에서 더없이 안전하게 연출된 시합이었어요. 하지만 역시, 이번에는 보기 힘들더군요.”

“좋은 방법을 가르쳐줄까요?”

“뭔데요?”

“좀 우는 거예요. 그리고 뺨을 쫙 두들기고 들어가서 무사히 돌아온 걸 축하하면서 꽉 안아주는 거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남편이 가족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했는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두 사람은 부부도 아니고 신이 티파니를 먹여 살리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경우가 다르겠지만.

티파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깨 좀 빌려도 될까요?”

“담배 값이라고 생각하죠.”

거기에 등도 두드려주었다.

티파니는 아주 잠깐 울고는, 이어 천천히 병실 쪽으로 사라졌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대가로 담배를 한 개비 더 받은 에보니는 상황이 좀 기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티파니 맥센은 거대 기업의 회장 딸이자 한 회사의 사장. 그야말로 상류층 중의 상류층인 사람이었다.

평범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온 에보니와는 원래대로라면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렇게 되었다.

‘자주 연락할 것 같은데.’

그래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한 멍청한 남자를 똑같이 걱정하는 친구로서.

* * *

대체 회장님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회사에서 1인실을 빌려줬다.

덕분에 혼자서 푹 쉴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귀찮은 게 붙었다.

바로 오튼이었다.

조용한 병실에서 쉬면서 좀 오늘 경기를 복기해보려고 했는데. 하필 녀석이 내 간병인이 되고 말았다.

레이와의 경기에서 오늘 드디어 원하는 대로 벨트를 빼앗긴 녀석은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날 미친놈 취급했다.

“넌 무슨 몸도 하나인 놈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그러냐?”

“……누가 들으면 넌 두 갠 줄 알겠다야.”

“그래서 난 사리잖아.”

왜 저놈이 프로레슬러인 걸까.

“다른 선수들은 네가 혼자서 이번 레슬 임페리움을 한 단계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하더라.”

“케인도 잘해준 거야.”

“어, 테이커가 그러던데? 널 따라서 저런 짓을 할 놈은 케인밖에 없다고 말이야.”

그 말이 맞았다.

프로레슬러라고 해서 다 이와 같은 범프를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지극히 소수의 몇 명 정도나 이러는 게 가능했다.

믹 졸리나.

케인 맥센 같은.

정말 선천적으로 겁 없이 태어난 인간.

……나도 거기 포함될 테고.

어쨌거나.

‘나쁘지 않았어.’

원하던 걸 모두 풀어냈다.

그와 동시에 케인이나 팬들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케인 맥센은 훌륭한 레슬러였다.

기술은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지만,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다음 랙다운에서 나는 그 감정을 전할 거고, 그로써 팬들이 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케인 맥센은 단순히 금수저 또라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프로레슬러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물론, 내 주가는 이제 또 한없이 위로 뛰어오르겠지.

그러자니 아래쪽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오튼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너 괜찮냐?”

“잠 좀 자자, 잠 좀.”

“아니, 신기하단 말이야. 똑같이 경기 뛴 케인은 신장 파열로 지금 수술까지 받았는데 말이야.”

“몰라, 인마.”

“코리아 음식에 뭔가 있나?”

“재능이다. 재능.”

그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어, 확실히.

아마도 지금 L.A.에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자면 그것이 맞겠지.

나는 스스로가 선수로서 전혀 재능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적어도 무슨 짓거리를 해도 크게 다치지 않는 단단한 몸 하나만큼은 제대로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실제로 오늘 경기에서 찢어진 상처 말고는 그나마 심한 게 떨어지면서 난 등 쪽의 멍 자국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잠깐 기도를 드린 시점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티파니……?”

안으로 들어온 티파니는 단호한 얼굴로 대충 바닥에 구겨져 앉아 있던 오튼을 바라보았다.

“오튼.”

“응?”

“여기는 제가 있을 테니 가요.”

“어, 아냐. 괜찮아. 어차피 오늘 그렇게 격렬하게 한 것도 아니고.”

“…….”

“예, 예.”

눈치를 보면서 일어섰다.

나는 뭔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가는 오튼을 막고자 했지만.

“신.”

티파니가 좀 더 빨랐다.

“으, 응?”

된통 혼나려나 싶었는데, 티파니는 뜻밖에도 나를 칭찬해주었다.

“오늘, 환상적이었어요.”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무리하는 게 아니에요. 이번 일로 당신은 내일 아침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해질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제가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만들겠어요. 당신은 오늘 밤 정말 이 업계의 역사에 남을 일을 해줬으니까.”

“저기, 그, 케인도 같이…….”

“걔는 됐어요.”

“…….”

케인 맥센은 어쩐지 불행의 별자리 아래에서 태어난 남자 같았다.

솔직히 같이 고생했으니 공을 따지자면 서로 반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업계인들은 그렇게 안 보니까,

어쨌거나.

티파니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내게 바싹 붙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당신이 너무 멋져요.”

“…….”

“최고에요.”

아니,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무슨 일 있었어?”

“멋진 선배가 생겼어요.”

“……왜 이야기를 몇 바퀴 정도 건너뛴 느낌이 드는 거지.”

“인생의 선배 같은 거예요.”

“이런 조언을 해준 거야?”

살짝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인 티파니의 뺨을 살짝 꼬집은 나는 어쩐지 조금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칭찬을 들으면 좀 싫어하는 나였지만.

역시 이건 그냥 넘길 수 없지.

“그럼 그 조언 들은 거 더 해줘.”

“네, 일단 좀 씻을게요.”

“?”

순간 의아해 바라보자니.

자리에서 일어선 티파니가 다시금 성큼성큼 걸어가 병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로 묶고 있던 머리를 풀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티파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순간 6.5미터 위에 있을 때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며 환자복 위로 입고 있던 겉옷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씻다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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