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51화 (251/634)

251.

다음 날 아침.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희뿌연 시야 너머로 누군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를 들여다보고 있어, 누군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티파니이…….”

“내가 그렇게 보이나?”

어? 회장님?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운 나는 허리가 순간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윽……!”

아, 아니! 그럴 때가 아니다!

티파니는?!

깜짝 놀라서 돌아보자 바로 옆에 있는 간병인 침상에서 자고 있는 티파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옷도 다행히 입고 있다.

“후우.”

“……왜 내 딸이 여기에서 자고 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겠네.”

“어, 오해 마세요. 장인어른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장인어른이라고 하지 마!”

바트 맥센이 소리를 내질렀다.

평소 입던 회색 양복 차림.

대체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걸까.

“설마 제가 걱정돼서 왔다든지 그런 건 절대 아니라고 해주세요.”

“케인 병실도 안 들렀다.”

“그래야 회장님답죠.”

하지만 그 말인즉슨.

“문제가 생기셨군요.”

“…….”

“어제 경기로 인해서.”

“귀신같은 놈.”

길게 한숨을 내쉰 바트가 내 옆에 있던 리모컨을 잡고 TV를 틀었다.

막 아침 뉴스가 시작되었다.

CNN이었다.

ABC의 하락세 이후, 미국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전문 뉴스 채널.

그 오프닝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쪽 해설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아침 뉴스는 어젯밤 이어진 헬 인 어 셀 경기의 마지막 추락 장면을 편집해 보여주면서 시작되었다.

[어, 어어어! 안 됩니다! 신!]

[으아아아아악!!]

[누가 이 경기를 좀 끝내주세요!]

[그래도 움직입니다! 신……!]

“와, 되게 잔인하네.”

“네가 한 거다.”

바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걸 보고서야, 제대로 정신 나간 짓을 했구나, 하고 새삼 확실히 느꼈다.

엄청나게 위험한 범프였다.

케인과 나는 동시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케인을 아나운서 테이블 쪽으로 밀어주는 동시에 또 옆으로 뛰어야만 했다.

그래서 사실, 혹시 어색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좀 고민을 했었는데.

추락 범프는 케인이 옆으로 피하면서 서로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

즉,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너무 그런 나머지 뉴스 앵커도 그렇게 생각한 듯했지만.

[참으로 충격적인 장면으로 뉴스를 시작하게 된 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바트와 나는 뉴스를 시청했다.

충격적인 헬 인 어 셀 범프와 함께 프로레슬링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 전문가로 섭외된 사람과의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스티비 씨.]

[예, 이전에 WWF에서 활동한 적이 있던 락콜드 스티비 스틴입니다.]

[회사의 ‘아이콘’이셨죠?]

[과찬이십니다.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말이죠.]

“락콜드……?”

“저놈이 말해준 거다.”

바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듣자 하니, 오늘 아침 뉴스에 프로레슬링의 위험성에 대해서 증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거기에 응하면서 동시에 바트에게 따로 언질을 해주었단 거고.

어젯밤에서 오늘 새벽까지.

내가 자는 동안 바깥에서는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프로레슬링이 가장 빛났던 시대를 견인한 저 남자라면 확실히 말하는 바에 다들 설득력을 느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바트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론이 악화되었다. 아마 이 일에 관해서 조사가 나올지도 몰라.”

“어, 학부모 협회 그런 거요?”

“연방 의회다. 조금 전에 알고 지내는 사업가로부터 연락이 왔어.”

“사업가? 누구요?”

“로널드 트럼프.”

“뭐라고 하는데요?”

“청문회가 열릴 거라는군.”

“흐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로널드 트럼프.

향후 미국의 대통령 직위에도 오르는 그분.

바트 맥센과 정치적으로 죽이 잘 맞아서 절친하게 지낸다고 했었지.

실제로 레슬 임페리움에도 몇 번 출연하고, 자기 이름이 들어간 TV쇼를 런칭하는 등, 사업가와 셀럽을 오가는 면모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믿기가 힘들었다.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믿어선 안 될 종류의 인간이 둘 있는데.

하나는 변호사고, 다른 하나는 사업가다.

대체 우리 회장님은 트럼프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좀 더 알아보자.

“아니, 무슨 연방 의회가 이런 일로 소집됩니까? 스테로이드 파동이야 명백하게 회사의 쓰레기 짓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

“지금은 아니잖아요? 저희가 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방송 중에 사람이 시체가 된 것도 아니고.”

보여줄 뻔했지만.

“지금까지 이 회사가 쌓아온 업보가 터졌다고 이해하면 되겠지.”

바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제 와서 왜?’라는 느낌은 드는군. 아무리 그래도 철저하게 시청 등급을 준수하면서 수행한 멋진 범프였는데 말이야.”

“예?”

“…….”

“방금 멋지다고 하셨어요?”

“닥쳐라.”

바트가 눈을 부라리며 날 노려보았다.

피식 웃은 나는 이어서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전에도 이 프로레슬링 컴퍼니는 청문회에 불려간 적이 한 번 있었다.

황금시대의 스테로이드 파동.

그때는 회사의 절정기였다.

어쩌면 태도 불량 시대보다 더.

그때 캡틴 로건은 그야말로 모든 미국인들의 영웅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걸 질투하고 훼방을 놓으려는 이들도 많았다.

딱히 동종 업체뿐만이 아니라, 이 회사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는 모든 업계에서.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신발과 스포츠웨어 회사인 라이키의 회장은 꽤나 예전에 회사의 라이벌이 일본의 진텐도라고 말했었다.

회사의 잠재적인 고객층을 아예 다른 곳으로 빼돌렸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그리고 말인즉슨.

어제 나와 케인 맥센이 저지른 경기가 미국 전역에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였다.

이어,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고 확실하게 잡아낼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젯밤부터 지금 사이, 단 몇 시간 만에 청문회 관련 일이 진행되는 게 말이나 될까?

“회장님.”

“……뭐냐.”

“로널드 트럼프가 이번에 런칭한 사업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요.”

“뭐?”

“아십니까? 그게 뭔지.”

“어, 아마 이번에 트럼프 타워에서 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전국 단위 점포로 열 생각이라고 들었다.”

“그렇군요…….”

“근데 그건 왜?”

“아뇨, 재미있지 않나요? 오늘 아침 뉴스는 그렇다 쳐도 트럼프가 그 야밤에 연방의회에서 우리를 주목한 걸 캐치해서 전한다는 게.”

“……또한, 저녁 단위의 여가를 책임져야 하는 레스토랑이 보기에 우리는 영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겠지.”

어라?

이걸 알아차려?

내가 슬쩍 놀라 돌아보자니 바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트럼프를 건들 생각이냐?”

“어, 알고 계셨네요.”

“날 바보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그래도 트럼프와는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야.”

“가만히 넘어갈 건가요?”

“……그래야지. 트럼프가 이끄는 사업은 우리보다 훨씬 크니까.”

바트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거 좀 마음이 약해진다.

아무리 바트와 내가 적이라도 한솥밥 먹는 가족인데, 못난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는 다른 집 가장한테 맞고도 찍 소리 못하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괜히 나서지 마라.”

“예, 예.”

“조사 들어오면 바로 응할 생각이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이야기한 바트 맥센은 곧바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마 당사자인 네가 청문회에 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절대, 행여나 허튼 수작 부릴 생각 말아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자기 할 말을 끝낸 바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아니, 그 직전.

“……그리고 하나만 더.”

자리에 멈춰서 말을 꺼냈다.

“앞으로 절대, 다시는. 어제와 같은 위험한 짓은 하지 마라.”

“절 걱정해주시다니. 이거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당연하지.”

“……?”

“아무리 그래도 넌 내 선수다. 링 위에서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바트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어딘가 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바트가 남기고 간 일련의 이야기를 되새짐질 했다.

그러자니 뒤를 이어 침대 아래쪽에서 약간 쉰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버지가 저런 말을 하다니.”

“깨있었어?”

“예, 뉴스도 들었어요.”

슬그머니 일어난 티파니가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옆에 털썩 누웠다.

“허리 아파.”

“그러게 캠핑 버스로 가지.”

“환자를 놔두고 어떻게 가요. ……어쨌든. 아버지 말대로 할 거예요?”

“청문회?”

“예, 나쁘지 않은 기회 같은데.”

싱긋 웃어 보이는 티파니.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오판했다.

“바트는 아마 지금 내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그래요?”

“그러니까 온 거지. 저 양반이 허투루 남의 병실에 올 사람이야?”

“그래도 마지막에 하고 간 말은 진심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그건.

글쎄다.

뭐,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 * *

리무진 뒷좌석에 앉자 차량은 곧바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바트는 병원을 싫어했다.

병원은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평등하게 약자가 되는 공간이었다.

바트는 언제나 강자로 살아온 입장에서 자신이 약자가 되는 듯한 그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 녀석도 그랬다.

어제만 해도 붕붕 날아다니던 놈이 병원 침대에서 하룻밤 잔 것만으로도 완전히 눈이 초췌해졌다.

“흥…….”

그 모습에 순간 화가 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던 바트는 이내 좌석에 천천히 몸을 기댔다.

그러자니 반대편 좌석에 기대어 앉아 있던 회사의 2인자, 존 로이타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회장님.”

“왜.”

“이번 기회에 트럼프 회장님하고 이야기를 하셔서 로비를 좀 넣어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예?”

이런 놈을 데리고 그 능구렁이 트럼프를 만나러 가야만 한다니.

바트 맥센은 한숨을 내쉬었다.

존 로이타스.

회사 내에서는 그럭저럭 쓸모 있게 일을 했지만, 역시 이쪽으로는 영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 녀석이 이상한 거다.

그 몇 마디로 거기까지 상황을 간파해낼 줄이야.

‘얄궂구먼.’

그 녀석 대신 로이타스와 트럼프를 만나러 간다는 게 서글퍼졌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상황이 더더욱 안타까웠다.

“저, 회장님……?”

“일단 상황을 좀 파악하고.”

“알겠습니다.”

“나중에 잡음 없게 선수들 단속이나 해놔. 행여나 우리가 위험한 짓을 강요했다고 증언하는 녀석이 나온다면 곤란해지니 말이야.”

“그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바트의 취향은 어디까지나 슈퍼 근육맨 두 사람이 맞붙는 거지, 하드코어한 스타일의 경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그런 범프를 강요한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트 맥센은 비슷한 상황을 다시 겪게 되자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테로이드 파동.

그때 회사는 공중 분해될 뻔했고, 자신은 죽음까지도 각오를 했었다.

안 그래도 공격적인 확장 방식으로 잔뜩 업보를 쌓았던 자신이 감옥에 간다면, 분명 라이벌 프로모터 측에서 살인 청부를 해버릴 테니까.

감옥에서 면도날로 만든 칼에 목이 베여서 비참하게 죽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고, 바트 맥센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독재자가 되었다.

그렇기에 또 비슷한 상황을 겪자 그때의 그 불쾌한 무력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못하고 구렁텅이에 처박히게 되는, 그야말로 최악의 감각.

로이타스는 심각하게 굳어진 바트의 얼굴을 보고 재차 질문을 했다.

“저, 그런데.”

“또 뭐.”

“신, 그 친구에게는 어째서……?”

“괜히 사고 치지 말라고 했네.”

“하하, 그렇죠. 괜히 놔두면 또 허튼 짓거리로 골치 아플 친구죠.”

“그건 그래. 어디에 놔둬도 그 자식 머리통은 쌩쌩 돌아갈 거야.”

“솔직히 이번에 보여주기 식으로 방출하는 건 어떨까 싶어지네요.”

“그 흉내를 냈다가 작년 하반기 랙다운이 어땠는지 알고 하는 소리겠지?”

“……그, 그것도 그렇군요.”

“뭐, 나로서는 사람들이 그 머저리 같은 놈에게 왜 열광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지만.”

바트는 그 후, 절대로 사석에서는 내뱉지 않을 한마디를 내뱉었다.

“Sin May Be A Son Of A Bitch, But He's Our Son Of A Bitch.”

“예?”

“루즈벨트가 한 말이라고 흔히들 떠돌아다니는 내용이지.”

“그 새끼는 우리 개새끼라고요.”

“그래, 맞아.”

그래서 약간의 기대감은 느꼈다.

맛이 간 인간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로널드 트럼프는 그야말로 능구렁이의 표본과도 같았다.

‘다들 미디어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무식쟁이들의 말초신경에 다양한 측면으로 자극을 주는 게 바로 방송의 역할이었다.

그런 상대 앞에서 신이라면 과연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지금껏 실컷 괴롭힘(?)을 당해온 바트로서는 그야말로 그 개새끼가 우리 개새끼인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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