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52화 (252/634)

252.

CNN에서 내보낸 아침 뉴스를 신호탄으로, 프로레슬링의 폭력성 문제가 다시금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기다리던 각종 언론 매체에서 보도를 내보내고 나와 케인의 6.5미터 추락을 방영했다.

……그로 인해 이후 발매 예정인 레슬 임페리움 DVD의 예약 구매량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고 하더라.

보도를 듣고 우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대로 흥미를 갖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WWF는…….

‘딱히 할 건 없지.’

그냥 원래 일정을 이어나갔다.

연방 의회에서 정식 공문이 내려오자, 회사 내부에서는 곧 조사가 이루어질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레슬 임페리움으로부터 바로 다음 주 금요일.

애프터 쇼가 개최되었다.

새로이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 레이 미스테리우스가 세리모니를 펼쳤고, 그 후로 바티스타가 나섰다.

두 선수의 대립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고 쇼는 그렇게 다음 대립을 보여주며 팬들의 흥미를 끌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이곳에 찾아온 팬들에게 평가를 받게 되었다.

레슬 임페리움에서의 경기.

나는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자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직 좀 몸이 덜 나은 케인은 긴장하는 눈치였다.

링에 올라가기 직전.

고릴라 포지션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래서, 나는 그 등을 두들겨주었다.

“케인, 몸은 좀 어때요.”

“어, 어. 괜찮아.”

“잘될 거예요.”

“확신해?”

“물론이죠. 지금까지 내 각본이 안 먹힌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자신만만한데.”

“날 믿고, 긴장 풀어요. 판 제대로 깔아둘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이러면 왠지 내가 너에게 신세를 지는 것 같은 그런 그림인데.”

“서로 이득을 보는 거죠.”

“……고맙다. 신.”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후련해졌어.”

“그건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고 난 다음에 말하는 걸로 하죠.”

나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2001년에 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케인이, 나와의 대립을 통해 마음에 진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다면.

난 거기에 긍지를 느꼈다.

그리고 음향팀장의 신호에 맞춰 나는 천천히 커튼을 걷고 나갔다.

쿵-쿵-쿵-쿵-쿵-쿵-쿵-쿵-!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박자.

[Waaaaaaaaaaaaaaaagggghh!!]

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3만 가까운 놀라운 숫자의 WWF 팬들.

곧바로 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은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오늘의 메인이벤트.

팬들은 순간 귀가 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큰 반응을 보내주었다.

자연히 미소가 번졌다.

케인은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 역시도 많은 것을 얻었다.

레슬 임페리움 메인이벤트.

업계 역사상 가장 하드코어하면서 테크니컬하다고 여겨질 멋진 경기.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순간.

바로 지금 이때.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You Deserve it!]

짝! 짝! 짝짝짝!

나에게 자격이 있다면서 박수와 함께 챈트를 보내주고 있는 팬들.

보통 ‘유 디절빗’ 챈트는 벨트를 따낸 선수에게 해주는 말이었지만.

그래, 나 역시도 벨트에 못지않은 중요한 순간을 따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팬들의 반응을 즐기던 나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지난 주 일요일, 레슬 임페리움에서 있었던 일을 너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나도 그래. 내 커리어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한 페이지였고, 그걸 할 수 있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껴.”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하지만 물론, 나 혼자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말인데. 아직 하나가 더 남았어.”

나는 입장로를 돌아보았다.

“케인 맥센! Get Your Ass Up Here! And See me Face To Face!”

[Waaaaaaaaaagggghhhh!!]

내가 그렇게 케인을 링으로 불러내자 팬들도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입장로는 고요했고 누군가 등장할 낌새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소리쳤다.

“이들 앞에서 남자 대 남자로서 할 말이 있으니까 좀 나오라고!”

그렇게 외치고 얼마 후, 케인의 테마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Here Come’s The Money-!]

[Waaaaaaaaaaaaaaggghhhh!!]

케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은 생각보다 훨씬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팬들은 헬 인 어 셀 경기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헌신’한 케인을 남자로서 인정해주고 있었다.

[Kane O’Mac……!]

‘케인 오맥’.

오랜 옛날부터 팬들이 케인 맥센을 지지하며 사용했던 별명이었다.

그 소리가 점자 커졌다.

링 위로 걸어오고 있는 케인은 그런 목소리에 다소 압도된 눈치였다.

스스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링 위에서 프로레슬러로 죽은 에디를 부러워한다고 말했었다.

그 감정을 팬들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케인은 헬 인 어 셀 위에서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다던 자신의 열망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나와 함께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지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 모습에서 팬들은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맥센가의 도련님인 그가 아니라, 한 명의 남자로서의 케인 맥센을.

물론, 케인이 했던 에디에 대한 발언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팬들은 이제 그를 질타하는 대신 응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한 명의 훌륭한 프로레슬러로서 팬들에게 헌신했다고.

왠지 이 광경을 프로레슬링의 폭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레슬링은 확실히 폭력적인 부분이 없잖아 있는, 스포츠와 드라마 그 모두를 포함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노력과 도전, 존중, 그리고 열정을 말한다.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사실, 팬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설득하기 위한 많은 말을 준비했지만.

필요가 없을 듯했다.

다들 멋진 사람들이었다.

챈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케인이 링 위로 올라와서 마이크를 쥐었다.

그 마이크를 쥐고 돌아서자 나는 다짜고짜 악수를 먼저 청했다.

남자 대 남자로서 서로를 인정했다는 걸 보여주기에 이만한 건 없었다.

케인은 이제 더 이상 맥센 가의 금수저 도련님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팬아로 헌신하는 한 사람의 프로레슬러다.

그걸 인정하는 악수였다.

잠시 내 손을 바라보고 있던 케인이 이어서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패자를 동정하는 건가?”

“남자를 인정하는 거지. 동시에 사과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뭘 사과한다는 거지?”

“넌 멋진 놈이었어. 단지 내가 조금 더 멋졌을 뿐이지만.”

“…….”

침묵하는 케인.

팬들이 그런 그의 선택을 돕기 위해서 자신들의 의지를 전해왔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하라는데?

그런 의미를 담아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그러자니 잠시 후 케인이 내 손을 붙잡았다.

[Yeeeeeeeeeeeeeeeaaaaahhh!]

그렇게 긴 싸움 끝에.

우리는 서로를 인정했고 팬들은 환호와 박수를 동시에 보내주었다.

그 속에서 내가 작게 말했다.

“기우라고 했죠?”

“……그래.”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확실히 지금 이 장면은 청문회에 가져가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 * *

그렇게 케인 맥센이 잃어버린 꿈을 이뤄주겠다는 내 선언은 나름대로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그는 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한 명의 남자로서, 선수로서.

맨몸으로 나와 싸워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내면서 ‘순간’을 남겼다.

그리고 케인은 말했다.

“앞으로 쇼에는 안 나갈 거야.”

“응……?”

“내 커리어는 여기까지인 거지.”

“왜 갑자기 그렇게 되죠.”

“내가 누군지 보여줬으니까.”

케인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민하고, 회사를 나갔던 그 이야기를 팬들 앞에서 할 수 있었어. 그러니까 내 이야기는 끝이야.”

“…….”

“넌 아니지만.”

그가 재수 없게 윙크를 했다.

“뭐, 당분간은 이쪽에 집중하고 싶단 이야기야.”

“프로듀서 일이요?”

“그래, 꼭 회사의 간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남자가 생겨서.”

“오튼이요?”

“너야, 신.”

물론 알고서 한 말이었다.

“그전에 일단 청문회 관련 일을 좀 처리해야겠지만 말이야.”

“그거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조만간 감사가 나오기로 했어. 선수들 인터뷰하고 회사 비디오 같은 거는 이미 다 제출했고.”

“……제가 예전에 오튼하고 했던 경기를 보면 깜짝 놀라겠네요.”

“아, 그거. 확실히 압정 범프는 믹 졸리가 은퇴한 이후로 사용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

“끄응.”

왠지 재수 없게 걸린 기분이다.

“그 인터뷰란 거, 혹시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어요?”

“트럼프 본인이 온다는데.”

“예?”

“의원 하나가 감사원으로 오면서 함께 오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아, 우리 회사가 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뭐 그런 거군요.”

“바로 그거야.”

“그리고 거짓말이고요.”

“아마 그렇겠지.”

케인이 쓰게 웃었다.

연방 의회에 WWF의 폭력성에 대해서 고발한 것은 아무래도 트럼프 본인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물론 자신이 런칭할 레스토랑 사업을 벌이는데 WWF가 큰 방해물이 되면서겠지.

어쨌든 현재 다시 떠오르고 있는 이 회사에 한 번 브레이크를 걸어보겠다는 의도로 느껴졌다.

케인의 말은 이내 락커룸의 선수들 전체에게 퍼졌고, 테이커는 선수들을 불러 모아 짧게 이야기했다.

“자유롭게 해라.”

물론, 랙다운에서 폭력적인 범프에 대해 회사의 강압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요새 워낙 락커룸 분위기가 좋아서 거의 유치원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렇게 다들 충분히 ‘감사’에 대해 이해하는 상태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어디론가 불려갔다.

바로 병원이었다.

거기에서 선수단 전체가 세금으로 건강 검진을 한 바퀴씩 싹 돌고.

그 결과가 나오는 동안 정부 측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우리에게 뭔가 이상한 검사를 시키기 시작했다.

바로 심리 테스트였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말하니 좀 싸구려 같이 들리는데.

정말 그게 맞았다.

“솔직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선수들의 앞에서 선글라스를 쓴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성실하게 테스트에 임하는지 감시를 했다.

테이커나 바티스타가 자기 몸에 안 맞는 작은 의자에 구겨져 들어가 열심히 작은 펜으로 글자를 눌러 쓰는 게 어쩐지 짠하게 보이는군.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좀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아무리 이 세상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그리 팍팍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는 해도 심리 테스트라니?

2020년쯤에는 인터넷에 대충 쳐도 돌아다니는, 그냥 별거 아닌 우울증 진단 같은 테스트였다.

예를 들자면 이러했다.

1번 문항, ‘당신은 평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십니까?’

절대 아니다. 아니다. 보통이다. 그렇다. 몹시 그렇다.

그런 식으로 다섯 개 답안 중에서 하나 고르고 넘어가는 문제가 무려 100개가 넘게 있었다.

문제의 개수를 확인해본 나는 1번 문항의 ‘몹시 그렇다’에 동그라미를 칠까 잠시 깊게 고민을 했다.

사실 진짜 그런 것은 아닌데. 이걸 일일이 풀 생각을 하니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하아.”

“성실하게 임해주십시오.”

나는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별수 있겠는가.

* * *

그 이후로는 선수들이 한 명씩 들어가 감사원 및 그 보좌들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종의 면접과도 같았다.

복도의 의자에 앉아 나는 무한하게 늘어지는 시간을 마냥 기다렸다.

면접은 회사 측에서 제출한 대로 낮은 위상 순으로 이어져서, 나는 분명히 아주 나중에나 방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런 와중 먼저 마치고 나온 선수들은 또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밥 먹으러 가자니 뭐니 해서.

나, 그리고 전(前) 월드 챔피언인 오튼은 거의 죽을 맛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오튼이 말했다.

“……야.”

“왜, 인마.”

“너 그거 왜 했어. 그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아냐.”

“나도 후회하는 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지 말 걸.

공무원 일처리는 느리다는 편견이 그대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들 빠지고.

오튼이 먼저 불려나가 신나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나오고.

그 뒤로 부커와 레이, 테이커.

……엥?

“신 선수!”

그리고 나서야 나라고?

아니, 뭐. 이해는 간다.

내가 이번 청문회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이었으니까 가장 마지막에 불린 거겠지.

“신 선수, 들어오세요!”

“후우.”

재촉에 한숨을 내쉬며 일어선 나는 그대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내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아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남녀, 한 명을 빼고 다 백인.

그런 와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거구를 자랑하는 금발의 남자였다.

가발을 쓴 것 같은 단정한 머리.

그 특유의 웃는 듯한 인상.

향후 무려 미국 대통령까지 되는 우리 로널드 트럼프 선생께서 자리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나는 일단 그들 앞에 있는 철제 의자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거의 6시간을 대기해서 나는 기분이 몹시도 좋지 못한 상태였다.

스마트폰도 아직 나오지 않은 이 시대에는 정말로 불합리한 처사.

그런 와중, 나는 몇 번이고 오늘 할 일을 곱씹으면서 처음 계획과는 달리 계획을 수정한 상태였다.

원래는 좀 간을 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냥 치고 나갈 생각이었다.

트럼프 옆에 정장을 입은 사내가 서류와 나를 비교해 바라보았다.

아마 저자가 감사원이겠지.

“신 선수?”

“예, 그렇습니다.”

“몸은 좀 괜찮은가요?”

“아뇨, 이렇게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친구네.”

“정말 재미있는 건 따로 있죠.”

나는 트럼프를 바라보았다.

“이거 다 당신 짓이죠?”

지금 나는 링 아래에서 하고 다니는 김준호의 모습이 아니었다.

링 위의 신으로서.

온갖 도발과 야바위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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