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53화 (253/634)

253.

“이게 다 내 짓이라고?”

그렇게 말한 사내, 트럼프는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척 보고서 알았죠.”

나는 주변을 힐끔 돌아보았다.

“이거 당신 지금 방송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랑 방 구조가 똑같은데요.”

그런 식으로 살짝 넘겼다.

상대방을 순간 뜨끔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뼈가 담긴 듯한 이야기로 생각을 하는데 복잡하게 만든다.

일단 첫 스텝은 밟았다.

지금쯤 트럼프는 내가 건넨 의미심장한 말이 과연 자신의 행동을 저격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겠지.

표정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잠깐 뜸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다 견적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폭소하는 트럼프.

“푸하하! 정말 재미있는 친군데!”

“과찬이십니다.”

“아냐, 아냐. 이거 웃기는군. 영어도 어색하지 않게 잘하고 말이야!”

“……미국인 맞습니다.”

“어디 출신인가?”

“로스 엔젤레스요.”

“아니, 아니. 그거 말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이거지 내 말은.”

저게 인종 차별인 줄도 모르겠지.

……아니.

일부러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자 트럼프가 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군.

어쨌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갑자기 인종 차별적인 말을 듣자 내 기분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말이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걸 느낀 감사관이 트럼프의 말을 가로챘다.

“어, 음. 신 선수, 일단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좀 해줄 수 있을까?”

“예, 말씀해주시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헬 인 어 셀…… 맞나?”

“정확히는 레슬 임페리움 2006에서의 헬 인 어 셀 매치였습니다.”

“그 큰 철창 안에서 싸우는 걸 헬 인 어 셀 매치라고 하는 건가?”

“그렇죠.”

“그 경기를 몇 가지 봤는데.”

“오, 어떤 경기를 보셨죠?”

“응? 아, 존 마이클스와 캐스켓-테이커의 경기하고 믹 졸리와 캐스켓-테이커의 경기 두 가지였네.”

“두 경기 다 명경기였죠.”

“명경기라고?”

트럼프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봤을 때는 둘 다 죽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던데.”

“확실히 말씀드리는데, 저희는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케인 맥센의 신장이 파열되고 뇌진탕이 왔고 그랬구먼.”

“뇌진탕은 몰랐는데요.”

“그뿐인가? 믹 졸리는 매치 이후로 이빨이 두 개 부러졌고 입술에는 혀가 통과할 정도로 구멍이 났지.”

누군가 헛구역질을 했다.

“의도된 건 아닙니다.”

“거기다 이거.”

트럼프가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리모컨을 들고 조작했다. 그러자 오른쪽 벽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으아아아아악!]

왜 죄다 비명으로 시작하냐.

[저걸 보십시오! 끔찍합니다!]

등에 압정이 박힌 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오튼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순간이 있기는 했었지.

“이건 고문 포르노 아닌가?”

“그럴 리가요.”

그런 쪽에서 소비가 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우리 의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돈이 된다면 그런 쪽에 쓰여도 상관없다는 입장이고.

“이봐, 신. 일단 알아두게나.”

트럼프가 날 구슬렸다.

“우리는 선수들에게 나쁜 일을 하기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니야. 그러니까 만약 회사로부터 그런 행동을 강요받는 일이 있다면…….”

“이 회사가 공중분해 된다면 저희도 갈 곳이 없어지는 건 사실이죠.”

“다른 단체도 있지 않나?”

“이 회사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업계에 없죠.”

‘지금까지는’ 말이다.

“뭐, 만약 회사가 이 일로 공중분해가 된다면 트럼프 레스토랑에서 접시라도 닦게 취직 좀 시켜주시죠.”

“……갑자기?”

“이번에 사업 확장 하시면서 사람 많이 뽑고 계실 것 아닙니까?”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물론 스테로이드 파동 때처럼 불법적인 일을 회사에서 강요한 것도 아니라 회사가 망할 일은 없겠지만.

그로써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한 장 더 보여줬고 트럼프도 슬슬 내 패를 읽어내고 있었다.

로얄 스트레이트 플래시냐.

아니면 단순한 블러핑이냐.

거기에서 무게의 추가 조금 더 로얄 스트레이트 플래시로 기운 상황.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제가 접시는 기가 막히게 닦습니다. 증거도 안 남기고 말이죠.”

“자, 잠깐, 잠깐만. 신.”

감사원으로 나온 하원 의원 양반이 우리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이야기가 좀 엇나간 것 같군. 본론으로 돌아가서……. 회사에서 헬 인 어 셀 매치 때 위험한 범프에 대한 강요를 받은 일이 있었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뭐?”

“일단 추이를 좀 지켜보죠.”

“푸하하하하하!!”

트럼프가 웃음을 터뜨렸다.

추이를 지켜보겠다.

그 말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청문회까지는 말을 아끼면서 향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내가 회사에 불리한 증언을 할 이유도, 그에 대한 물증도 사실상 전혀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바트가 원하는 대로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말을 해두면 분명 이 사실은 바트에게 전해질 테고, 뭔가 흥미로운 제안을 해올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크게 한바탕 웃어젖힌 트럼프는 이내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 프로레슬러를 하고 있지?”

“반대로 회장님이야말로, 왜 하필 레스토랑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뭐?”

“아쉽다는 이야깁니다. 피자 딜리버리면 여러모로 저희와 협업하기 편할 것 같아서 말이죠.”

“하하하! 이제는 사업에 관해서 나에게 논하려고 드는군!”

“하지만 생각해보십쇼. 제가 트럼프 피자 광고에 나오고 쇼에서도 선수들이 피자를 먹는다면 말이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 윈윈하는 그림이 만들어질 터였다.

WWF의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그 시간대에 트럼프 피자를 시켜 가족들과 먹게 될 테니까.

그런 내 말에 트럼프는 생각치도 못하게 한 방 먹었다는 얼굴이었다.

* * *

그렇게 랙다운과 버닝콩의 감사가 끝나고 연방 의회에서는 본격적으로 청문회에 대한 일정을 잡아나갔다.

빠른 일처리였다.

그런 연방 의회의 빠른 행동은 명백히 어떤 의도가 느껴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 폭력성 문제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WWF에게만 있는가도 역시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회사 측에서는 시청 등급에 맞췄을 뿐이고, 문제가 된다면 방송사 측도 함께 책임지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다음 방송권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WWF는 일단 총대를 짊어졌다.

“그게 맞는 선택이지.”

트럼프는 이야기했다.

늦은 밤, 근처의 호텔에서 바트와 만난 그는 가볍게 위스키 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방 의회 측의 의도도 뻔해. 이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도 높으니까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제격이거든.”

“그게 무슨 말인가?”

바트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불만? 아니면 관심?”

“둘 다.”

“뭐, 불만이야 그거지.”

정치는 잘해야 본전이었다.

그렇기에 불만은 쌓이기 마련이었으며, 따라서 뭔가를 보여주면서 적절히 해소해주는 게 중요했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거. 나쁜 놈 하나를 만들어서 패야지. 지금은 그 타깃이 프로레슬링이라는 거고.”

트럼프는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바트도 그에 동의했다.

딱 좋은 소재였다.

현재 프로레슬링은 과도기를 지나 다시금 부흥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폭력성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 역시도 존재했다.

“어쨌든, 눈치껏 판결을 받아들인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걸세.”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에도 바트는 어쩐지 전과 달리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바로 신 때문이었다.

트럼프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는 강압적인 범프가 있었냐는 물음에 그 답을 미뤘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며칠 전에 그 새끼는 우리 새끼라고 했던 발언이 어쩐지 무색해질 정도로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었다.

그런 바트의 표정을 읽어낸 트럼프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말이야. 바트.”

“뭔가?”

“내가 피자 사업을 시작한다면 혹시라도 도와줄 용의가 있나?”

“피자……?”

“재미있는 친구를 두었더군.”

그렇게 트럼프는 바트의 앞에서 오늘 신이 꺼낸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우리는 ‘절친한 친구’고 하니 비즈니스 파트너로서도 함께 일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 싶어서.”

“하지만 트럼프 브랜드는 어디까지나 상류층을 노리고 있지 않나.”

“그래서 문제지. 확실히 WWF가 다시 위대해질수록 피자 광고를 중간에 넣으면 동부 서부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먹어치워 댈 것 같은데.”

“흐음…….”

“피자 훗이나 살까.”

“피자 훗……?”

“아아, 물론 농담이네. 아무리 그래도 거기 구조가 탄탄해서 쉽게 건들기가 힘들 거야.”

가볍게 웃는 트럼프.

하지만 전혀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 * *

그로부터 다시 며칠 뒤.

미국 연방 의회의 특별위원회에서 조사하고 주관한 ‘WWF 방송의 폭력성 문제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우리 측에서 참석한 인물은 나와 바트, 사업팀 대표인 존 로이타스, 그리고 버닝콩의 링 프로듀서와 랙다운의 총괄 프로듀서 케인 맥센까지.

이렇게 총 다섯 명이었다.

청문회를 위해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한 나는 아무래도 영 부담이 되는 걸 느끼며 시작을 기다렸다.

대기실에서 바트 맥센은 우리 모두를 모아놓고 한마디씩을 건넸는데.

우리 회장님은 과거 스테로이드 파동 때의 추억(?) 때문인지 무척 긴장이 되는 듯한 얼굴이었다.

“행여나 허튼소리 하지 말고 ”

“보스, 긴장 풀어요.”

“……내, 내가 긴장 같은 걸 할 거 같냐? 생방송이라면 도가 텄어!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다!”

“아, 이거 방송도 나가요?”

“제기랄 CBSN에서 따갔다. 프라임 타임에 미국 전체에 동시 송출되는 아주 최악의 순간이지.”

그렇게 말한 바트가 날 돌아보았다.

“……신, 너는 괜히 헛소리하지 말고 네 할 일만 확실하게 해라.”

“그렇게 합죠.”

“너 또한 싫겠지만 지금 우리는 공공의 적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그러니 현명하게 굴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바트는 지금껏 자신을 향해 짓던 개가 침입자들에게도 똑같이 엄니를 드러낼 거라고 믿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럴 생각이기는 했다.

바트가 원하는 대로 엄니를 드러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얼마 후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위원장의 개시 선언과 함께 가벼운 인사말로 취지 설명이 이어졌다.

“프로레슬링이 가진 폭력성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위원장은 그렇게 청문회를 이끌기 시작했다.

CBSN의 방송 카메라가 우리를 찍는 가운데, 나는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청문회.

뭐, 복잡해 보이지만 어떠한 의제에 대해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듣는 거다.

사안은 크게 세 개.

프로레슬링은 폭력적인가?

WWF는 그걸 강요하는가?

그게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가?

회사에서는 1번은 인정하지만 2, 3번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일단, 연방 의회에서 파견한 감사관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첫 번째 증인으로 불려나간 바트는 프로레슬링이 폭력적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했다.

“일부 그럴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그걸 강요했습니까?”

“아닙니다. 저희는 절대 선수들에게 그런 행위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스테로이드 청문회 때도 그런 식으로 답변을 하셨는데요.”

“……지금은, 아닙니다.”

“팬들이 프로레슬링을 따라하다가 사고를 입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걸 막기 위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방송 내에서도 Don’t Try This를 붙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at home이었죠?”

“…….”

“그래서 학교에서 하다가 다친 아이들도 많았고. 프로레슬링은 결국 저급한 문화가 아닙니까?”

거기에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열이 받았다.

나는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듣게 되었다.

로이타스.

“저희 사업팀에서는 언제나 선수들의 복지와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버닝콩 프로듀서.

“회사 내에서 실제로 그런 강압이 이루어진 적은 없습니다. 저희는 최대한 안전을 생각합니다.”

케인 맥센.

“신과의 경기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 스스로 결정한 선택입니다.”

마지막으로 나까지.

“현재 랙다운 측의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준호 킴 씨의 증언을 요청합니다.”

“허가합니다.”

감사관의 요구와 위원장의 허가에 나는 재킷을 여미며 앞으로 나섰다.

재판장과 같은 풍경.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를 하고난 뒤 감사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미스터 킴, 회사에서는 ‘신’이라는 링네임으로 활동 중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상의 인물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예, 맞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신 거죠?”

“…….”

거기에서 잠깐 침묵.

“미스터 킴?”

“…….”

“미스터 킴, 질문에는 성실히 대답해주십시오. 대체 왜 그런 위험한 범프를 수행하신 겁니까?”

나는 대답을 잠시 미뤘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바트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믿는다!

그런 얼굴이다.

내가 평소 발휘하는 말빨과 정치력이라면 뭔가 멋진 반박을 준비해 왔으리라고 믿고 있는 거겠지.

그래, 그처럼 나는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내 주장을 할 생각이었다.

“간단한 이유입니다.”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케인을 이기고 싶었으니까요.”

“…………?”

그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케이페이브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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