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55화 (255/634)

255.

2006년 5월 7일.

레슬 임페리움으로부터 한 달.

현재 랙다운의 상황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레이 미스테리우스라는 새로운 챔피언도 나오고 한창 치고 올라갈 시점인데, 예상했던 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난 이런 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나 봐.”

케인 맥센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캡틴 로건도 회사를 나갔고.”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선수도 아닌 양반을 오래 붙잡아두면 현역들만 혼란스러워질 뿐이니까.”

거기에 반대편 의자에 앉아있던 거구의 사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캐스켓-테이커.

장의사. 관을 이끄는 자.

랙다운의 실질적인 리더.

하이퍼 베테랑.

레전드 오브 레전드.

The Phenom.

The American BadAss.

Big Evil.

온갖 수식어로 형용되는, 현대 프로레슬링의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

그는 현재 랙다운에 처한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신은 독이 든 성배였단 거지.”

“……뭐요?”

“우리는 마시는 걸 택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뿐이다. 케인.”

“맞는 말이군요.”

케인도 인정을 했다.

청문회를 전후로 해서 신은 위클리 쇼에 전혀 출연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문제가 그뿐만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방송이 전체이용가로 바뀌면서 이전과는 전혀 달라졌기에.

원하던 만큼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이라는 카드가 필요했다.

“그 개자식이 이 브랜드를 완전히 집어삼켜 버리고 말았어요.”

케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청문회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순간적으로 엄청났으니까.”

“와, 그때 정말.”

“……BadAss했지.”

테이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속 시원한 한 방이었다.

프로레슬링의 폭력성 문제에 대해, 바트와는 전혀 달리 선수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해주면서.

동시에 어디까지나 안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전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니, 제기랄. 그래놓고 영화 촬영? 뭔 로맨스 영화라고 하던데.”

“하지만 신기한 일이지?”

“예?”

“지금 팬들은 신을 정말 그리워하고 있잖아. 보통 이렇게 되나?”

“……그렇진, 않았죠.”

케인이 턱을 매만졌다.

일반적인 선수가 영화 촬영 등으로 위클리 쇼 출연을 멈추게 되면 보통 안 좋은 여론이 일기 마련이었다.

더 팍 같은 스타도 영화를 찍으러 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지막 경기에서 큰 야유를 받았을 정도였지.

하지만 신은 그 기간을 아주 절묘하게 잡으면서 공백기에 팬들이 자신의 복귀를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거기다 그 기대에 근거가 실리는 이유는, 신이 항상 복귀할 때마다 반드시 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없는데도 녀석의 드라마는 계속해서 성숙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선수는 전혀 본 적이 없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케인.”

“같은 생각입니까?”

“너도?”

“예, 저도.”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1년짜리 대립을 진행해보죠.”

“……흠.”

“신을 한계까지 밀어줍시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월드 챔피언 같은 건 ‘따위’로 만들 정도로 말이죠.”

케인이 상쾌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이전에 한 번 아버지에게 넌지시 신을 월드 챔피언에 올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 개자식은 절대 월드 챔피언에 못 올려!!]

그처럼 위기감으로 흥분해 소리치는 아버지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캡틴 로건이 스테로이드 파동 당시 증언을 할 때, 그리고 락콜드가 잡을 거부하고 회사를 탈단했을 때.

그 외에는 없었다.

‘그 정도라는 건가.’

그럴 만도 했다.

신의 그 한마디로 인해 회사 측은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까.

선수들에게는 속 시원하게 높으신 분들에게 되갚아준 것이었지만.

반대로 높으신 분들과 연이 닿아있는 바트에게 있어 그 상황은 공포 그 자체였다.

뭐, 이후로 어떻게든 로비로 틀어막고 있어서 별일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바트는 그나마도 없던 신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완전히 잃고 말았고.

그런데도 상황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버지, 바트 맥센이 그런 선택을 해줘서 신의 드라마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그러자니 테이커가 입을 열었다.

“더블 타이틀 홀더면 될까?”

U.S. 챔피언과 태그 팀 챔피언을 동시에 석권.

월드 챔피언을 제외한다면, 분명 랙다운 내에서 가장 크게 밀어줄 수 있는 푸시였다.

하지만 케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거기에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뭐?”

“이게 1년 대립이라는 거죠.”

“흐음…….”

“그러므로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겁니다.”

“나와 신이 태그 팀을 한다고?”

그렇게 레슬 임페리움 2007까지.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테이커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왜냐면 신은.

테이커 자신이 정말로 기다리고 있던 종류의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 * *

베테랑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나 주연에, 내가 위험한 비밀을 가진 재벌 역할을 맡게 된 영화, 스코프.

한 달간의 막바지 작업 끝에 영화의 촬영이 최종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촬영팀이 다 같이 모여 근처 호텔에서 빌린 루프 탑에서 무사히 촬영이 끝난 것을 자축하고 있었다.

“촬영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특히나 영화의 투 탑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과 주연 배우가 분위기를 잘 잡아줘서 멋진 작품이 나올 듯했다.

무디 앨런은 채찍, 반대로 스칼렛 요한나는 당근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 두 사람이 적절히 티키타카를 맞춰주어서, 나 역시 그 도움으로 한결 쉽게 연기를 해냈다는 느낌이다.

무디 앨런의 생각은 달랐지만.

촬영장에서는 호랑이 같던 영감이 술에 취하자 날 칭찬하기 시작했다.

“고생 많았다! 신!”

“가, 감사합니다.”

스케줄 문제로 인해, 술 대신 논 알코올 칵테일을 마시고 있던 나는 그런 상황에서 어색함을 느꼈다.

영화 촬영을 하며 갑자기 친해진 사람들이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다들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참.

기묘하다고 해야 하나.

개중에서 나만 술을 안 마셔서 원래 템포로 남아있으니 더 그랬다.

차라리 나도 함께 취했으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놀 수 있었을 텐데.

어쨌거나.

무디 앨런은 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또 주연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지만…… 될까 모르겠군.”

“어우, 저야 영광이죠.”

“내가 못 맞춰줄걸?”

“예?”

“요새 좀 핫하죠.”

바로 그때, 칵테일을 손에 든 스칼렛 요한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청문회 때 정장 입은 모습이 젠틀해 보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우리 영화도 그 덕 좀 볼 수 있으려나?”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

“제가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좋았네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일 있으면 자주 연락하면서 지내요. 우리.”

“즐거운 촬영이었습니다.”

가볍게 잔이 부딪혔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창 뒤풀이를 즐기던 나는 이내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꼈다.

케인 맥센으로부터의 전화.

자리를 빠져나와서 받았다.

“여보세요?”

[아, 신. 지금 전화 돼?]

“예, 무슨 일이에요?”

나는 다들 모여서 깔깔 웃고 있는 루프탑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취한 스칼렛이 캔 맥주 두 개를 동시에 까서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테이커와 대립하는 게 어때.]

“재미있겠네요.”

[1년 동안 하는 거지.]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생각에 순간 의아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이어진 케인의 설명에 무언가 번쩍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1년짜리 대립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캐스켓-테이커와의 대립은 이 업계에 들어온 프로레슬러에게 있어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전설 중의 전설.

프로레슬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게 될 남자.

현재 시점에서 WWF 로스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테이커다.

버닝콩에서 현재 메인 이벤터이자 탑 페이스로 군림하고 있는 시나도 그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정도.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시나가 트리플H를 정정당당하게 꺾었는데도, 대부분의 팬들은 그래도 테이커가 좀 더 우위에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런 우리의 대립이 1년이라는 시간에 걸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나는 케인 맥센이 전화로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이내 쓰게 웃었다.

2006년 5월부터 시작해 2007년 4월, 레슬 임페리움에서 끝을 낸다.

말인즉슨 서로가 관계를 맺어나갈 시간은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서 좀 소름이 돋았다.

내가 테이커와 1년 동안?

물론, 환상적인 기회였지만 그와 동시에 좀 우려가 되기도 했다.

‘테이커와 내가 태그를 맺으면 그 상대를 대체 누가 할 수 있지?’

그래서 나는, 일단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누가 우리를 상대하게 될까?

그런 내 질문을 들은 테이커와 케인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을, 쎄다.”

“그게 중요한가?”

“물론 중요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압도적인 강자의 입장에 있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깁니다.”

테이커와 내가 본격적으로 대립을 해나간다면 내년 1월이 될 터였다.

그때까지는 팀을 해야겠지.

하지만 그동안 압도적으로 상대를 짓밟기만 한다면 분명 지루해지리라.

“기대감이 없으니까요. 당연히 ‘신&테이커’ 팀이 이긴다고 생각하면 경기를 볼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건 그렇군.”

“그렇다고 저희와 비슷한 위상을 가진 선수들을 데려와 팀으로 구성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죠.”

그럼 그동안 월드 챔피언을 두고 하는 대립은 누가 진행한단 말인가?

“저는 이 1년 대립이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눠질 수 있다고 봅니다.”

테이커와 내가 협력해 태그 팀 챔피언에 오르는 과정.

그리고 태그 팀 챔피언으로서 군림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분열하는 과정까지.

“어떻게 하면 좋겠나?”

“뭐 당연히, 삐걱거려야죠.”

이건 일본 쪽의 이야기다만.

그곳은 태그 팀과 싱글 선수 간의 위상을 철저하게 구분을 해둔다.

싱글 메인 이벤터 두 명이 팀을 맺어도 전문 태그 팀을 이기지 못하는 형태로 위상 관리를 했다.

그것과 비슷하게.

“테이커와 제가 처음 팀을 맺었을 때는 위상이 굉장히 낮은 태그 팀한테도 패배를 하는 게 어떨까요?”

그로써 전문 태그 팀의 위상이 관리되는 동시에, 랙다운의 태그 팀 전선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겠지.

“어떤 팀이 있을까?”

“MNM이요.”

“…….”

“……걔들?”

두 사람은 살면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이 되었다.

MNM.

GCW 출신의 쟈니 에이스와 조 머큐리, 그리고 말리나라는 이름의 여성 선수가 매니저로 있는 태그 팀.

할리우드 스타 기믹의 악역 팀으로, 태그 팀 벨트를 몇 번인가 만져본 적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미드와 로우를 오가는 위상의 약팀이었다.

MNM vs 신&테이커 팀.

당연히 대부분의 WWF 팬들은 신&테이커 팀의 승리를 점칠 테지만.

그와 반대로 우리는 첫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드라마를 전개하는 거다.

“물론 저희가 완전히 발리는 것도 이상하니까 MNM에서 롤 업으로 기습 승리를 챙겼다는 식으로 가죠.”

“흐음…….”

“이후로는?”

“저희 신 테이커가 팀으로서 완성되어가는 드라마를 보여줘야겠죠.”

“그럼 기본 콘셉트는 그렇게 가는 걸로 하고……. 이제 두 가지 문제가 남았군.”

테이커가 손가락을 들었다.

“하나는 네 U.S. 챔피언 등극이다.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쪽 각본도 필요하지.”

현재 U.S. 챔피언은 바비 애슐리.

그렇다.

GCW 시절 락커룸 리더였던 그가 콜 업 되면서 멋진 근육질 몸매를 근거로 푸시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선수의 앞길을 막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태그 팀 이후로 미루죠.”

“그렇다면 두 번째. 너와 내가 무슨 이유로 태그 팀을 맺는 거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어떨까요?”

마침 이번 5월의 페이퍼뷰에서 ‘킹 오브 더 킹즈’의 우승자가 정해졌다.

바로 부커-리였다.

직후 그는 자신이 레슬링의 왕이라면서 ‘킹-부커’로 기믹 변경을 했다.

“그것처럼 모든 선수들이 참가하는 태그 팀 리그전을 여는 겁니다.”

“호오.”

“그거 재미있겠는데.”

“각 선수들이 팀원을 찾고 옛 팀원과 협력하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우승자한테 뭘 주는 걸로 하지?”

킹 오브 더 킹즈의 우승자는 그 한 해 레슬링의 왕으로 대우를 받으면서 일종의 큰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럼 이 리그전에서는 무엇을 주어야 할까?

“물론 태그 팀 챔피언 벨트죠.”

현재 랙다운의 태그 팀 챔피언은 ‘메가 훌리건즈’라는 이름의 듀오였다.

폴 러너와 브라이언 젠드릭.

딱히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은 아니었다. 그만큼 현재 랙다운의 태그 팀 전선은 영 애매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각본은 태그 팀 전선의 위상 자체를 끌어올리는 효과 또한 톡톡히 볼 수 있을 터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