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A블록의 네 팀이 링에 올랐다.
카메라가 자연스레 각 코너에 자리 잡은 네 팀을 순서대로 비췄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두 선수의 위상 차이와 선악에 의해 제각기 다른 게 무척 재미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랬다.
A블록 1팀.
레이 미스테리우스와 랜스 오튼.
환호와 야유가 반반 뒤섞였다.
A블록 2팀.
하드코어 말리와 JBL의 태그.
하드코어 말리가 악역 로우 카더에 JBL이 악역 하이 미드 카더라서.
야유가 나왔다.
A블록 3팀.
킹-부커와 바비 애슐리의 조합.
‘킹-부커가 악역이지만 코믹한 경향이 있고 바비 애슐리 역시 나름대로 선역 미드 카더 정도니까.’
[Waaaaaaaaaaaaaaggghhhh!!]
역시 환호가 나왔다.
영국 국왕 같은 화려한 망토와 왕관을 쓴 킹-부커가 우아하게 한 바퀴 돌자 그 환호가 더 커졌다.
그리고 이어서 투 쿨(Two Cool).
미스터 섹세이와 스캇 2 하트로 구성된 댄스 팀 기믹의 선역 태그 팀.
위상 자체는 별것 아니었지만 팬들이 보내는 환호는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A블록에 소속된 태그 팀의 얼굴이 한 차례씩 화면에 나왔고.
이어서 링 아나운서가 올라와 몇몇 선수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JBL, 이번 리그 참가에 대한 각오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모든 미국인들을 대표해서, 이번 태그 리그에서 우승을 약속하지. 안 그래도 허리가 허전하던 참이라.]
바비를 돌아보는 JBL.
그런 상황에서 나선 바비가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될 것을 선언하고.
레이와 오튼은 벌써부터 내분을 일으키고. 투 쿨은 그 와중에도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완전 개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제각기 팀이 뒤엉키며 각자 개성을 발휘하고 있는 장면은 꽤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문제는 저 A블록보다 우리 B블록이 훨씬 더 강렬하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고 있자니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테이커였다.
“신, 제안할 게 있다.”
“예, 뭐죠?”
“입장 씬에서 좀 특별한 연출을 하나 가미해보면 어떨까 싶은데.”
그리고 이어진 제안은.
분명히 다른 모든 선수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을 만큼 강렬했다.
* * *
A블록의 팀들이 한 차례씩 경기를 가진 뒤, 현 태그 팀 챔피언인 메가 훌리건즈의 인터뷰가 나왔다.
[폴, 이번 태그 리그에서 경기를 해보고 싶은 상대가 있나요?]
[물론 레이와 오튼의 팀이지! 둘을 이기는 건 어렵지만 분열된 지금 상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메가 훌리건즈.
유명한 태그 팀은 아니다.
왜소한 체격의 두 사람은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선수로서 그다지 큰 두각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나보다 1, 2년 정도 위의 선배였지만, 위상은 완전히 천지차이였다.
그럼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하이 플라잉 스타일로 반응을 꽤 끌었다.
그런 그들의 인터뷰가 끝나고 뒤를 이어 B블록에 소속된 태그 팀이 하나둘씩 선발되기 시작했다.
룰렛이 다시 돌아가고 처음으로 나온 것은 악역 팀인 MNM이었다.
[Boooooooooooo-!]
큰 야유가 쏟아졌고.
그 뒤를 이어 나온 크리스 젠코와 윌리엄 리걸의 태그 팀에도 마찬가지로 팬들은 야유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끼긱-! 끼기긱! 끽!
끄웳!
기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트로가 등장하자 팬들 모두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Waaaaaaaaaaaaaagggghhhh!!]
느릿한 둠 메탈 형태의 음악.
링 위로 올라간 두 팀의 낯빛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진 게 보일 정도.
어두운 조명 속.
작은 랜턴을 들고 팀원들과 함께 등장한 것은 브로큰 와이엇이었다.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그 복귀를 환영해주는 팬들.
특유의 지저분한 수염과 중절모, 하와이안 셔츠 차림의 와이엇은 두 사람의 부하를 대동한 채 히죽이죽 웃었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해졌다.
MNM과 젠코&리걸의 태그 팀을 순간 관심의 저편으로 밀어낼 정도로 압도적인 관심을 받는 팀.
와이엇 패밀리.
그들로 인해 B블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는 순간 아득히 치솟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란 거다.
대형 스크린에서 다시 한 번 룰렛이 돌아가며 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사내의 모습이 나왔다.
디 캐스켓-테이커.
대앵-!
종이 울리는 소리.
누군가의 발걸음.
그와 함께 이어지는 한마디.
[Dead Man Walking.]
[Waaaaaaaaaaaagggggghhh!!!]
그 순간 관객석 전체가 들썩 거릴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졌다.
바이커 버전의 캐스켓-테이커.
파격적인 기믹 변환이었지만 그야말로 ‘존나’ 멋졌기에 받아들여졌다.
American BadAss.
테이커는 특유의 바이크를 몬 채 입장로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와이엇 패밀리의 복귀는 그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모두 잊혀졌다.
WWF 유니버스를 통틀어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캐스켓-테이커의 리그 참전.
정말 어메이징한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조차 끝이 아니란 거다.
입장로 위에서 바이크를 세운 테이커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그 시점이었다.
“신!!”
“갑시다!”
타이밍은 완벽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와이엇이 분위기를 한 번 띄워주었고, 거기에서 테이커가 나서서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마지막으로 나였다.
팬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팀 업.
그 정도로 허황된 조합.
지금 이 리그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태그 팀이 탄생했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빠밤-빠밤-빠밤-빠밤-!
[Uooooooooooooohhhhhhh!!]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테이커도 순간 놀라 선글라스를 들고 맨눈으로 날 볼 정도였다.
그런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한 나는, 이어서 팬들을 향해 내가 돌아온 것을 알리듯 손을 번쩍 들었다.
[Uh-! Oh-Oh-Oh-Oh-Oh-!]
그들이 내 테마를 따라서 불렀다.
‘생각했던 대로군.’
떠나기 직전 청문회에서 했던 말이 팬들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다.
나는 이곳에 모여 있는 팬들과 감정적으로 연결되어있음을 느꼈다.
뒤를 이어, 나는 바이크에 앉은 테이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시선을 한 번 교환하고.
테이커가 입을 열었다.
“어디 한번 까불어봐라.”
그 말에 싱긋 웃은 나는 곧장 팬들이 경악할 만한 짓을 또 저질렀다.
건방진 애송이인 내가 테이커의 어깨를 붙잡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좌석 뒤쪽의 금속 파이프에 발을 대고 그대로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순간 당황하는 관객들.
하지만 힐끔 날 돌아본 테이커는 그대로 바이크를 몰기 시작했다.
울려 퍼지는 내 테마 속에서.
테이커의 바이크가 링을 크게 한 바퀴 도는 동안 링 위의 선수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링 인.
다른 세 팀이 자기 코너로 물러선 상태에서 나는 가장 안쪽 코너 로프를 밟고 올라가 환호를 유도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러자니 밑에서 바이크를 세우고 올라온 테이커가 내 옆에 자리했다.
그야말로 지금 랙다운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핫한 태그 팀 조합.
일명, 신-테이커 팀.
[Waaaaaaaaaaaaaggggghhh!!]
링 위의 선수들 모두가 경계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테이커의 옆에서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마지막 순간에 그야말로 생태교란종과도 같은 팀이 나온 셈이었다.
* * *
이어진 태그 팀 경기에서도 우리는 간단하게 승리를 쟁취해냈다.
하지만 거기에서 향후 스토리와 이어질 때 어색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부킹을 조정했다.
일단, 상대가 크리스 젠코와 빌리엄 리걸이라는 급조된 태그 팀이었다.
똑같은 상황인 만큼 보다 위상이 높은 우리가 이기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시작된 경기는 테이커가 압도적으로 링을 장악하면서 우리의 힘을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Waaaaaaaaaaaggggghhhhh!!]
테이커는 자신의 상대인 빌리엄 리걸을 숨도 못 쉬게 몰아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로프를 붙잡고 서있던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바로 테이커를 받쳐주는 빌리엄 리걸의 멋진 테크닉이었다.
빌리엄 리걸이 누구인가.
영국 출신으로, 현 WWF에서 실전 싸움으로는 분명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엄청난 강자였다.
왜냐면 열다섯 살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서 내기 싸움을 했기 때문인데, 그와 별개로 WWF에서는 찌질한 악역 미드 카더 정도였다.
하지만 그라운드 관절기 위주로 풀어나가는 유럽식 레슬링의 고수로서, 테이커의 공격을 멋지게 받아주고 있었다.
“워우!”
로프를 붙잡고 서있던 나는 테이커의 아찔한 보디 슬램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경악했다.
이런 디테일이 경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법이었다.
하지만 공격을 당한 리걸 선생의 연기력 역시도 일품이었다.
팬들도 좋아했다.
그리고 그걸 통해, 나는 두 번째로 놀랐던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바로 현재 테이커에게 쏟아지고 있는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였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이건 진짜 미쳤는데?’
순간적으로 황당할 정도였다.
테이커는 그저 자신의 스타일대로 평범하게 레슬링을 하고 있을 뿐.
하지만 팬들은 테이커가 리걸을 공격할 때마다 무슨 미라클 잭슨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 환호를 보냈다.
이게 테이커가 받는 기대감인가.
새삼 깨달았다.
WWF의 수호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에게 팬들은 정말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주었다.
존경의 의미도 담아서.
그럴 법했다. 테이커는 무려 황금시대의 최후반부인 1990년도에 딱 데뷔해서 지금까지 활동해왔으니까.
자연히 그 상대인 리걸과 젠코에게는 증오 수준의 야유가 쏟아졌다.
[Boooooooooooooooooo-!!]
젠코가 링으로 난입해 리얼을 핀하던 테이커를 공격하자 팬들은 정말 그 정도 레벨의 야유를 보냈다.
거기에서 더 즐거움을 느꼈는지 젠코는 심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테이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곧바로 3단 로프 위로 올라간 나는 예정했던 대로 젠코에게 미사일 드롭 킥을 날리면서 링에 난입했다.
퍼억!
[Yeeeeeeeeeeeeaaaaaaahhhh!!]
테이커의 버프가 더해져 그 동작만으로도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가슴팍에 미사일 드롭 킥을 맞고 나가떨어진 젠코가 그대로 굴러서 링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다음 동작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며 움직였다.
좀 위험한 동작이다.
하지만 받아주는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나는 그를 믿고서 이 동작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테이커와 나의 차이점, 거기에 더해 나에게는 이런 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 젠코가 누구인가.
베테랑 오브 베테랑.
캐나다 출신으로 180에 약간 못 미치는 키. 선수로서는 왜소한 체격에 속했지만 테크닉이 빼어났다.
거기다 프로 의식도 뛰어나고 성격도 좋아서 내가 이걸 하겠다고 하자 자길 믿으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젠코가 떨어진 위치의 반대편 로프로 달려가 몸을 파묻었다.
그 반동으로 튕겨져 달려가며 젠코가 일어서는 걸 확인했다.
비틀거리는 모습은 분명히 셀링일 뿐, 완벽히 나를 받아줄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나는 힘차게 바닥을 밟고 뛰었다.
스페인어로 플란챠.
영어로는 수어사이드 다이브.
멕시코에서는 토페 수이시다.
말 그대로 로프를 넘어가 링 밖에 있는 상대를 덮치는 자폭기였다.
대단한 위상을 지녔지만 링 바깥에서 잘못 받아주거나 하면 한순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기술.
그런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3단 로프 위로 힘차게 뛰어오른 내 몸이 그대로 젠코를 덮쳤다.
테이커 역시도 사용하는 기술.
오버 더 탑 로프 볼팅 플란챠.
팔을 벌린 젠코가 몸으로 날 받아내면서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Waaaaaaaaaaaaagggggghhhh!]
위험천만한 내 무브를 본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내주었다.
젠코를 놔두고 벌떡 일어선 나는 크게 포효하며 더 반응을 끌어냈다.
그리고 상황은 자연스럽게 링 위의 마지막 스팟으로 이어졌다.
빌리엄 리걸이 반칙용으로 몰래 사용하는 시그니처 웨폰, 브레스 너클을 막 손가락에 낀 참이었다.
심판이 우리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와중, 번쩍거리며 빛나는 브레스 너클이 화면에 잠시 비춰졌다.
[Booooooooooo……!]
거기에 야유를 보내는 팬들.
하지만 테이커가 멋지게 리걸의 브레스 너클 펀치를 피해내자 그것은 순식간에 환호로 뒤바뀌었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리걸의 배를 걷어찬 테이커가 바이커 기믹일 때의 피니시 무브인 ‘라스트 라이드’를 사용했다.
파워 밤 자세로 힘껏 들어 올려진 리걸이 그대로 등부터 떨어졌다.
투콰앙-!
호쾌한 무브에 팬들은 그야말로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날뛰었다.
이어진 커버.
1, 2, 3!!
땡땡땡-!
테이커가 리걸을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경기는 그대로 종료가 되었고.
그 모습을 링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한 가지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걸 느꼈다.
이거 좀 열 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