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ECW 원데이 스탠드의 다음 날.
7월 초에 있을 단독 페이퍼뷰인 리벤지에 대한 논의를 위해 랙다운 크루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현재의 상황을 이용해보자고 운을 뗀 상태였다.
현재의 상황.
다시 말해, 숀 시나가 최악의 밤을 보내며 마니아 팬들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커진 지금의 상황을 말이다.
케인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지?”
“지금 팬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일단 하나하나 좀 이야기해볼까요.”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니아 팬들이 현재 버닝콩과 숀 시나에 대해서 반발하고 있는 그 이유.
간단했다.
멋진 경기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선수에 대한 리스펙트.
마지막으로 신선한 결과.
시나가 받은 메가 푸시에 대한 팬들의 불만은 그런 식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시나를 탑 가이로 미는 선택 자체는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라이트 팬들은 선수 하나에 몰입하면서 레슬링을 즐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특히나 어린아이들.
그들은 말하자면 시나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프로레슬링을 보는 이들이다.
“시나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멋진 선수죠. 사생활도 흠잡을 곳 없고, 팬 서비스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고, 부상도 안 입고 꾸준하게 활동해주니까.”
의외로 마지막이 중요했다.
프로레슬링은 삐끗해서 생긴 실수 하나가 큰 부상으로 연결되어 1년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는 스포츠다.
그렇게 되면 선수의 모멘텀은 당연히 줄어들기 마련이다. 즉, 몸 자체의 튼튼함 또한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시나는 강철 같은 체력과 단단한 몸으로 대부분 풀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괴물 그 자체였다.
따라서 회사의 선택은 옳았다.
한 선수를 탑 가이로 내세운 상태에서 다른 선수들의 매력을 보여주면서 점차 더 큰 팬으로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기본적으로 시대가 열리고 회사가 성장하는 방식이었다.
시나를 보다가 ‘어? 이 선수도 멋진데?’ 하면서 빠져드는 식으로 팬들을 조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이 ‘탑 가이’의 캐릭터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일단 그 탑 가이가 누구냐에 따라 유입되는 팬들 역시 정해지니까요.”
그리고 그런 팬들은 대부분 탑 가이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더 주목하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탑 가이를 상대하는 선수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상 탑 가이 한 명으로 브랜드 전체가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전체이용가 시대에 숀 시나가 탑 가이로 선택된 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나는 다른 일반적인 회사의 탑 가이들보다 훨씬 더 큰 상품성과 카리스마를 지닌 선수였고.
바트의 방해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흥행을 이끌며 결국 아이콘에 등극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나는 아직 부족했다.
그 재능은 분명히 출중하지만, 아직 노련함을 갈고 닦지 못한 상태였다.
“장단점이 극명한 선수죠. 그러니까 압도적인 환호와 반대로 압도적인 야유도 받는 상황이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초 탑 가이로 내정되어 있었던 스타, 브룩 레스너의 탈단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급하게 대체재를 찾아야만 했고 실력은 부족할지언정 인기 하나는 확실했던 시나가 선택되었다.
급하게 탑 가이가 된 시나는 그래도 멋진 기믹 소화력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메가 푸시를 받아먹었지만.
바트 맥센이 끼어들어 시나의 악동 캐릭터를 망치면서 점점 망가졌다.
충직한 ‘군인’ 캐릭터로 기믹 전환을 하면서 기존의 악동적인 면모는 사라지고. 그로써 재미는 없어지고.
솔직히 경기는 썩 잘한다고는 할 수 없고.
그런데도 탑 가이로서 온갖 레전드 선수들을 모조리 꺾어버리는 불합리.
“역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죠.”
“……그걸 분석한 거냐?”
테이커가 황당한 듯 물었다.
사실 분석한 게 아니라 ‘기억하고 있었다’는 쪽에 가까웠지만, 귀찮아지기 싫었으므로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예, 뭐.”
“그러니 네 말은 시나를 중심으로 한 버닝콩과는 정반대되는 성향의 각본 전개를 보여주면서 마니아 팬층을 끌어들이자는 거지?”
“거기다 요즘 WWF의 전체이용가 정책에 질려서 프로레슬링 시청을 관둔 팬을 끌어들이자는 거죠. ……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거?”
“그건 못하지 않나. 지금 윗선 방침이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범프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거잖아.”
선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
“확실히 해두죠. 지금 버닝콩에 문제가 생긴 이유는 전체이용가로 시청 등급이 변경되어서가 아닙니다.”
“흠……?”
지금 시나가 역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개연성 없는 각본과 장점을 부각하지 못하고 약점만 드러내는 멍청한 부킹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적당히 타협을 봤으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 되었겠지.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내가 아는 바트답다 싶은 결정이었지만.
어쨌거나.
“저는 옛날처럼 자극적인 부분이 없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7월에 보여주자는 거군.”
“그렇죠.”
케인의 대답에 내가 싱긋 웃었다.
아이디어라면 몇 가지 있다.
일단 개중 하나가 시나 하나만을 밀고 있는 버닝콩과는 정반대로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띄운다는 거였다.
나는 거의 모두 알고 있으니까.
각자 단점을 지우고 장점을 부각시키며 모든 선수들을 스타로 만든다.
“그쪽이 시나가 주인공이라면,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그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럴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킹을 회사에 요구한 것이었다.
“일단, 7월 페이퍼뷰에서 당장 사용할 아이디어는 크게 세 개입니다.”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오튼한테 일 좀 시키죠.”
하나를 접었다.
“와이엇을 더 밀어줍시다.”
하나를 더 접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제가 테이커와 경기를 가지겠습니다.”
“……뭐?”
모두가 얼이 빠졌다.
말하자면 여기는 포커 테이블 위.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내민 카드는 확실히 예상하지 못한 족보일 터.
하지만 나름 근거가 있었다.
“굳이 레슬 임페리움까지 갈 필요 없잖아요? 거기다…… 아마 지금 리벤지 티켓 판매가 부진할 테고.”
“어? 으, 으음. 그렇지.”
당황하며 대답하는 케인.
당연한 결과였다.
“아직 대진이 제대로 안 나왔잖아요. 거기다 지금 흐름으로 보자면 태그 리그에 올라가게 되는 건…….”
A블록의 투 쿨과.
B블록의 와이엇 패밀리.
리벤지에서 격렬한 경기 끝에 와이엇 패밀리가 승리해서 태그 팀 챔피언에 오르고, 테이커와 내가 8월에 가져온다는 게 지금의 계획이었다.
“근데 현재 시점에서 테이커와 저는 경기가 잡히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태그 리그에서 최하위니까.
그리고 현재 딱히 다른 대립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팬들은 표를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터였다.
“현재 리벤지의 티켓 판매량이 느릿느릿한 이유는 결국, 현재 잡혀 있는 경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건가.”
“예, 램프 밑이 어두웠죠.”
물론 여기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나나 테이커가 경기를 뛰어야 티켓이 팔린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겠지.
그럼에도 ‘아직’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상기시킨 셈이었다.
“그러므로 당장 위클리 쇼에서 경기를 잡아야죠. 그것도 팬들이 현재 가장 납득할 수 있는 경기를.”
그게 바로 신 vs 테이커.
One On One.
The Breaker vs The Phenom.
“어, 아니, 잠깐만.”
케인이 끼어들었다.
“그건 너무 큰 카드잖아. 신과 테이커의 대결은 내년 레슬 임페리움에서 쓴다는 게 우리 계획 아니었어?”
“한 번만 싸울 필요는 없죠.”
“싸울 이유도 없지 않나?”
“이미 충분히 만들어뒀습니다.”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거기에 순간 의아해하는 사람들.
하긴 그럴 거다.
나는 지금까지 테이커와 계속해서 태그 팀으로 ‘협력’해왔으니 말이다.
대화나 행동에서 한 번도 그와 반목한다는 뉘앙스는 풍기지 않아왔다.
“하지만 경기에서 보여줬죠.”
“뭐?”
“어떻게?”
“테이커와 태그 팀을 맺은 이후로, 저는 경기마다 꾸준히 화려한 스타일의 무브를 섞어서 써왔습니다.”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타격기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브롤러 스타일과는 맞지 않게 말이다.
하이 플라잉 무브라던가.
문설트까지도 사용했었지.
“그게 뭐, 테이커의 스타일과 의도적으로 차이를 내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동시에 나는 그런 화려한 무브들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전하려고 했다.
내가 옆에 있는 테이커보다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진 않죠.”
지금 당장은 그랬다.
테이커가 누구인가.
현존하는 WWF 최고의 스타.
데뷔한 그 당시부터 업계 최강자.
팬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경기력, 멋진 캐릭터로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는 완벽한 커리어의 선수.
그게 바로 캐스켓-테이커였다.
팬들의 반응도 항상 엄청났고 테이커는 어느 순간부터 선악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압도적인 환호를 받았다.
“저는 그런 테이커의 반응을 한번 이겨보겠다고 지금껏 경기에서 계속 몸을 날리면서 까불었다는 말이죠.”
잘 되진 않았지만.
실제로 테이커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나보다 더 환호를 뽑아냈다.
그래서 화가 났다는 거다.
“…….”
“…….”
“…….”
그렇게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을 말하자 사무실 안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연기하는 놈이 대체 어디 있냐는 얼굴들이었지만.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이 정도까지 해줘야 그 까다로운 마니아 팬들까지도 열광하는 것이다.
* * *
리벤지를 2주 앞둔 랙다운.
나는 오랜만에 혼자 링에 올랐다.
웅장한 심포닉 메탈 스타일 테마곡이 한창 연주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장 전체에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멋진 반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반응은 테이커가 나와서 양분되면 아주 미묘하지만 밀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내 계산에 의하면.
우리 팀에 대한 반응이 50퍼센트.
그리고 테이커 개인에게 보내는 반응이 50퍼센트 내가 40퍼센트 정도.
합계 140퍼센트.
개쩌는 반응이긴 했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테이커에게 반응이 밀리는 이 상황이 영 좋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일단 차치해두고 나는 테이커와 협력해 싸워왔다.
태그 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해.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는 협력하지 못했고 집중도 하지 못해 상대 팀에게 계속 패배했다.
그래도 지난주에는 한 번 패배했던 MNM에게서 똑같은 방식으로 승리하면서 설욕을 해내기는 했지만.
팬들이 처음에 바라던 우리 둘의 모습에 영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링 위에 당당히 올랐던 것과는 달리 다소 침울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집중하지 못했어.”
내가 그런 식으로 입을 열자 팬들은 또 금방 환호를 멈추고 집중했다.
집중하지 못했다.
무엇에?
자연스럽게 팬들의 마음에 물음표 모양의 찌를 던지고 낚싯대를 당겼다.
그러자 팬들의 관심이 끌려오며 링 위에 있는 나에게 단숨에 집중되었다.
기초적인 테크닉이다.
“그래서 먼저 사과를 할게.”
다시 찌를 던졌다.
“나와 테이커의 조합은 너희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어.”
그리고 그게 버닝콩과는 전혀 다른 랙다운만의 개성이 되는 것이었다.
버닝콩의 시나는 반드시 이긴다.
하지만 랙다운의 신-테이커는 패배할 수 있다. 팀워크가 맞지 않아서.
그렇게 흥미로운 화두거리를 던지고 개연성에 맞춰 전개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온 신-테이커 팀의 이야기.
그 일차적인 결말을 낼 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 내 탓이야.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거든. 몇 번 지다 보니 정신을 차리게 됐지만.”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우리는 B블록의 최하위로 떨어졌고 7월에 있을 리벤지에는 나가지 못하게 됐어.”
[Uoooooooohhh……!]
탄성을 내지르는 관객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일대일로 도전을 해서라도 꼭 페이퍼뷰에 참가를 해야겠어. 왜냐면 리벤지는 개쩌는 페이퍼뷰일 테고 거기에 오는 관객들도 존나 멋있을 테니까!”
[Yeeeeeeeeeeeeeaaaaaahhhhh!!]
“아직 환호하기에는 일러! 애너하임! 나는 아직 내가 도전할 남자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Yeeeeeeeeeeeaaaaaahhhh!!]
애너하임.
자기 도시의 이름이 나오자 팬들은 한층 더 크게 환호했다.
거기에서 기분이 풀려, 나는 피식 웃으며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껏 태그 리그에서 나는 원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어. 말했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테이커-!
객석에 있던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가 심어둔 직원이었다.
그가 던진 공을 곧바로 캐치한 나는 그것을 멋진 대사로 연결해나갔다.
“고마워, 친구! 그래! 맞아! 나는 테이커가 파트너이기 때문에 태그 리그에서 집중하지 못했던 거야!”
나는 링을 크게 돌았다.
“이 비즈니스에서 테이커의 이름은 가장 드높은 곳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지! 같이 싸워보니 확실히 느껴지더군! 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런 놈들을 꺾는 일에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단 말이야!!”
나는 진심을 이야기했다.
캐스켓-테이커.
지금 시점에서 확실하게 나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러므로 난 싸우고 싶었다.
나 자신이 그걸 뛰어넘어 위로 올라갈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러니까 나와! 테이커! 내가 도전장을 던질 상대는 바로 당신이니까!!”
나는 입장로 쪽으로 다가가 로프를 붙잡고 크게 흥분해서 소리쳤다.
[Uo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경악해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티켓 판매량이 급상승하고 있다.
“You And Me!!”
[One On One!!]
“In Revenge!!”
그런 내 호기로운 외침에 이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거대한 남자의 테마가 답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