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나는 링 위로 난입한 나머지 두 레갈리아 멤버들로 인해 핀치에 빠졌다.
쩌억-!
코디의 유로피언 어퍼컷.
팔꿈치 안쪽으로 턱을 후려갈기는 공격에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이어서 체드가 등 뒤에서 체어샷을 날렸다. 차갑고 찌릿한 통증과 함께 나는 날아드는 오튼을 바라보았다.
R.K.O.
뒤로 돈 채 내 머리통을 어깨에 걸어서 붙잡은 오튼이 힘차게 뛰어올랐다.
나 역시도 동시에 뛰었다.
몸을 쭉 펴고 전방으로 낙하.
오튼은 반대로 후방으로 낙하.
일직선으로 나란히 누워 추락한 우리 둘의 몸이 바닥과 힘차게 충돌했다.
투콰앙-!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
낙법을 치며 동시에 반동으로 뛰어오른 나는 반대로 크게 나가떨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oo-!]
관객들의 야유가 쏟아지는 가운데, 세 사람은 멈추지 않고 날 계속 공격했다.
특히나 오튼은 악에 뻗쳐서 엘보 패드까지 벗고 내게 주먹을 날려댔는데.
그러다가 또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대고 욕설을 쏟아내는 액션을 취했지만.
실제로 하는 말은 전혀 달랐다.
“야, 야. 괜찮냐?”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긍정의 신호.
안심한 오튼이 마지막 일격을 갈기려는 듯 철제 의자를 벌리고 그 사이로 내 머리를 억지로 쑤셔 넣었다.
폭력의 절정.
[Booooooooooooooooooooo-!!]
폭발하는 야유.
그 소란을 뚫고 들려오는 한마디.
[Dead Man Walking.]
강렬한 메탈 음악이 경기장을 채우며 팬들이 전율을 느끼고 벌떡 일어섰다.
[Yeeeeeeeeeeeeeaaaaaahhhh!!]
깜짝 놀라 돌아보는 레갈리아 멤버들.
테이커가 나를 구하기 위해 나왔다.
* * *
백스테이지 세그먼트가 이어졌다.
테이커의 도움을 받아 레갈리아 멤버들로부터 빠져나온 이후, 나는 락커룸에서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
화면 밖에서 다가오는 테이커.
[Wa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환호가 락커룸까지 들려왔다.
[신, 몸은 좀 어떠냐.]
[몸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죠.]
[그래?]
[제가 어디 당하고 그냥 넘어갈 사람입니까? 박살을 내줘야겠다 이겁니다.]
[협력하지.]
테이커가 주먹을 내밀었다.
가볍게 브로-피스트.
8월의 섬머 수플렉스에서 태그 팀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로 테이커와 나는 줄곧 이렇게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혈기왕성한 내가 대적자들을 박살 낼 것을 제안하고, 테이커가 그에 응하는 형식.
우리는 마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 같았고, 서로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도와주며 벨트를 계속 지켜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과 달리 U.S. 타이틀을 걸고 하는 대립과 태그 팀 타이틀을 두고 하는 싸움이 동시에 진행되었지만 말이다.
화면 속의 내가 씨익 웃었다.
흠, 잘생겼군.
[길게 볼 것도 없죠.]
[그러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나는 오늘 경기를 확정 짓는 마지막 대사를 날렸다.
[Tonight! In Texas Houston!!]
[Yeeeeeeeeeeeeeeeaaaaaahhhh!!]
짤막한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받으며 끝이 났다.
자연스럽게 화면이 전환되었고 미리 준비된 메인이벤트의 매치 카드가 나오며 해설자들이 코멘트를 덧붙였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신-테이커 대 레갈리아의 핸디캡 매치입니다!]
[크하하! 신이 참 화끈하다니까요! 바로 되갚아줄 속셈인 것 같습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반응이 아주 좋군.”
현실의 테이커가 미소를 지었다.
락커룸 안.
오늘 핸디캡 매치를 치르게 된 우리 다섯 명은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서 모니터링TV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광고가 나가는 동안, 테이커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신인들을 독려해주었다.
“오늘 경기도 잘 해보자고.”
“옙!”
“알겠습니다!”
군대냐.
나는 잔뜩 기합이 들어가 대답하는 코디와 체드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해는 간다.
데뷔한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은 녀석들이 테이커 같은 고참과 경기뿐만 아니라 대립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긴장이 되겠지.
테이커와의 대립은 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사실상 가장 거대한 푸시였으니까.
거기다 스테이블까지.
회사 내에서 나름대로 금수저 두 사람에게 기대를 품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립의 주체가 두 사람에게 맞춰져 있는 건 아니었다.
대립의 주체는 나와 오튼이었다.
U.S. 챔피언을 걸고 하는 대결.
거기에 지원군으로 각각 테이커와 코디, 체드가 따라붙어서 태그 팀 타이틀을 둔 대립까지 같이 열리는 상황.
즉, 두 개의 타이틀이 걸린 이 거대한 대립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나였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챔피언이 된 이후로 나는 매 대립마다 상대가 되는 선수들을 리드해왔다.
그게 챔피언의 덕목이었다.
만약 대립의 반응이라도 줄어들거나, 행여나 예상했던 것과 반대의 반응이 나오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오면서 지금까지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일을 완수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얘들아.”
“예, 선배님!”
“너무 겁먹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커버해줄 테니까 다치지만 말자.”
“예!”
“명심하겠습니다!”
“……또 자기만 착한 척하네.”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오튼. 거기에 피식 웃은 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잘 부탁한다.”
“제기랄.”
내가 오늘 저지를 짓을 미리 알고 있는 오튼이 가볍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녀석의 기준에 의하면 미친 짓이었지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별거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멋질걸?
“화려하게 가야지. 화려하게.”
더블 타이틀 홀더.
맨 온 파이어.
그 두 가지 닉네임에 어울리도록.
* * *
계기는 바로 테이커의 조언이었다.
‘너는 화려한 기술을 쓸 수 있는 운동 능력이 있으니 활용해보는 게 어떠냐.’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회귀 후, 내가 브롤러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는 최대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스타일로 경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 말인즉슨, 화려하진 않았다.
브롤러 스타일은 호쾌하고 강렬했지만, 더블 타이틀 홀더로서 나는 그것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조금 더 화려하게.
‘Man On Fi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면서 나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마치 위험한 공중 곡예를 펼치는 남자처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날리게 되었다.
[Waaaaaaaaaaaaaaaggggghhhh!!]
핸디캡 매치의 중반부.
링 위에 서서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오튼과 내게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주먹을 서로 한 방씩.
쩌억-!
퍼억-!
해머링을 버티고 서있던 나는 이어 힘차게 뛰어오르며 드롭킥을 날렸다.
오튼이 옆으로 회피했다.
쿵!
중심을 잃고 떨어져 바닥에 낙법을 치자 오튼이 내게 곧바로 달려들었다.
나는 곧장 허리를 튕기며 발을 들었다. 그리고 반쯤 몸을 숙이고 있던 오튼의 어깨에 양다리를 걸고 당겼다.
“윽?!”
헤드 시저스 휩.
중심을 잃고 끌려온 오튼이 크게 몸을 날리며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졌다.
콰앙-!
[Yeeeeeeeeeeeeaaaaaahhhhh!!]
팬들의 환호와 함께 일어서던 나는 복부에 알싸한 통증이 이는 걸 느꼈다.
아주 잠깐, 몸이 굳어졌다.
경기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고된 스케줄이 겹치면서 계속 날 괴롭히고 있는 빌어먹을 근육통이었다.
‘좋아.’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오튼에게 붙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나는 오튼을 잡고 백 드롭으로 넘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복부의 근육통을 견뎌내느라 미묘하게 늦은 걸 오튼이 눈치챘고, 경기는 예정 외의 락 업으로 이어졌다.
서로 팔을 엮고 이마를 맞댄 상태에서 오튼이 나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야, 뭐냐.”
“뭐가.”
“좀 쉴래?”
“……언제부터 그러셨다고.”
배려심이 넘치는 발언에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오튼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데뷔한 뒤, 꽤 시간이 지났고 워낙 버스에서 따로 연습을 많이 했던 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척 잘 알았다.
나는 곧바로 락 업을 풀어버리고 오튼을 향해 다시금 드롭킥을 날렸다.
쩌억-!
거기에 맞은 오튼이 쓰러졌고.
“크아아앗!”
이어 나는 포효하며 쓰러진 그를 허리의 힘만으로 지면에서 뽑아 들었다.
콰앙-!
바닥에 떨어진 오튼을 놔두고 벌떡 일어선 나는 그대로 우리 쪽 코너로 돌아가 테이커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좀 비켜주시죠.”
“흠.”
이 또한 링 사이콜로지였다.
두 개의 타이틀을 따내고 또한 멋지게 지켜온 나는, 태그 팀 경기에서도 테이커 못지않게 활약하고 있었다.
U.S. 타이틀 경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변명거리로 삼지 않고, 나는 테이커와 동등하게 경기를 펼쳐왔다.
그걸 의식하고 보여주는 퍼포먼스.
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오튼과 미리 협의해둔 큰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 올라서자 경기장 전체가 보이는 게, 아주 죽여주는 기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기립.
동시에 뒤로 돌아선 나는 관객석의 팬들을 바라본 상태에서 힘껏 도약했다.
몸이 가로로 휙 돌면서 그 상황에서 이미 나는 오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허리를 말아 힘차게 돌았다.
비틀어 회전하는 코크스크류.
동시에 앞으로 한 바퀴 회전한 내 몸이 그대로 복부부터 해서 정면으로 바닥에 누워있던 오튼과 충돌했다.
콰앙-!
불에 타는 듯한 통증.
그래, 이게 맨 온 파이어다.
나는 고통 속에서 웃었다.
[Waaaaaaaaaaaaaaaaaggggghhh!!]
피닉스 스플래시.
한 시대에 사용할 줄 아는 선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슈퍼 고난이도의 기술을 본 팬들이 벌떡 일어났다.
물론, 근육통 부위부터 정면으로 충돌한 나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고 곧바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오튼을 짓눌렀다.
등을 땅에 대게 하자 위쪽으로 다가와 엎드린 심판이 카운트를 셌다.
[1……!]
팬들이 소리쳤다.
[2……!]
내가 왜 더블 타이틀 홀더인가.
왜 테이커를 세워두고도 주도권을 가진 채 경기를 하고 있는가. 그런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무브.
하지만 카운트는 3에 닿지 못했다.
바닥이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오튼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 나온 코디와 체드가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커버가 끊어졌다.
“큭……!”
[B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와 함께 우리 쪽 코너에서도 테이커가 달려 나왔다. 그러자 야유는 금방 다시 환호로 뒤바뀌었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코디와 체드를 몰아붙이는 테이커.
나는 그 멋진 활약을 우리 쪽 코너 앞에 쓰러져서 멍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확실히 좀 힘들긴 하군.’
알고는 있다.
지금 나는, 예전 유럽 투어 때와 비슷한 활동을 5개월째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래야 두 개의 타이틀을 5개월간 독점하고 있는 당위성이 생겼다.
그로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테이커를 배신하고, 다시금 그에게 싸움을 신청할 근거가 말이다.
[Yeeeeeeeeeeaaaaaahhhhhh!!]
테이커가 코디와 체드를 링 밖으로 넘겨 제거하자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뒤로 돌아서는 테이커.
몸을 웅크리고 있던 독사가 도약했다.
오튼의 팔이 테이커의 목을 단단히 휘감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콰앙-!
[Uooooooooooooooohhhhhh!!]
충격에 휩싸인 관객들.
하지만, 아직 내가 남아있었다.
거만하게 팔을 펼치며 테이커를 조롱한 오튼이 예정대로 뒤로 돌아섰다.
코너에 쪼그려 앉아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먹잇감을 향해 날아드는 호랑이처럼 달려들어 무릎을 힘차게 들었다.
쩌억-!
스팅거.
[Yeeeeeeeeeeeeeeeaaaaaahhh!!]
속이 시원한 순간에 팬들이 환호했고, 나는 오튼과 누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커버.
팬들과 심판의 카운트가 이어졌다.
[1……! 2……! 3……!]
땡땡땡-!
우리의 승리가 확정되며 메인이벤트는 그렇게 기분 좋은 결말을 맞이했다.
[Waaaaaaaaaaaaaaaaaggggg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에 귀가 먹먹했다.
피닉스 스플래시로 순간 시선을 확 사로잡고 마지막에 이어진 짧은 난전 스팟은 확실하게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코디와 체드가 잘 희생해주고, 테이커, 오튼, 나 순으로 이어져 끝난 경기.
“허억, 헉…….”
하지만 지쳤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가로 팬들 역시도 나에게 좋은 반응을 보내주었고.
그러자니 또 이어지는 볼멘소리.
“……얀마. 무거워. 비켜.”
“미안, 근육통 때문에.”
“끝나고 얼음찜질 좀 해라.”
“그래야겠어.”
각본상으로는 핸디캡 매치에서 패배했지만, 녀석은 팬들이 알지 못하게 경기 내적으로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중요한 순간에 근육이 살짝 놀라자 그걸 커버해주었고 경기는 어색하지 않게 잘 풀려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어, 링 아래에서 세 개의 벨트를 가져온 테이커가 내게 다가왔다.
그때쯤 해서 로프를 붙잡고 일어선 나는 그중 두 개의 벨트를 건네받았다.
U.S. 타이틀과 태그 팀 타이틀.
내가 지금 랙다운이라는 브랜드에서 가장 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
월드 타이틀은 그사이 레이에서 부커를 거쳐 바티스타에 이르렀지만, 이 두 개의 벨트는 아직까지도 나의 소유였다.
[Uh-Oh-Oh-Oh-Oh-Oh-Oh-!]
팬들이 내 테마곡을 떼창하는 가운데, 나는 힘차게 벨트를 위로 들어올렸다.
양손에 들린 두 개의 벨트.
옆에는 파트너인 테이커가 서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팬들은 나와 테이커를 한데 묶어 챈트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SIN With Taker!!]
짝! 짝! 짝짝짝!
[SIN With Taker!!]
짝! 짝! 짝짝짝!
[SIN With Taker!!]
짝! 짝! 짝짝짝!
그야말로 압도적인 환호였다.
하지만 이제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테이커를 배신하면서 야유로 뒤바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