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69화 (269/634)

269.

WWF 역사상 한 선수가 두 개의 챔피언 벨트를 동시에 차지한 경우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형평성 문제가 가장 컸다.

WWF에서는 버닝콩과 랙다운, 각각의 브랜드에서 태그 팀 챔피언, 2선 챔피언, 그리고 메인 챔피언까지, 총 세 가지 종류의 챔피언을 두고 운영했는데.

여기에서 오직 버닝콩에만 존재하는 위민스 챔피언을 제외한다고 치면, 서른 명 가까운 로스터에서 오직 네 명만이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챔피언이란 무엇인가.

최고라는 증거였다.

벨트를 들고 있는 선수는 쇼의 중심에서 대립을 진행하기 마련이었으며, 다른 선수들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위상 또한 크게 오르기 마련이었고, 보통은 머천다이즈 판매량도 늘었다.

그러한 가치가 있는 타이틀을 한 선수가 독차지한다는 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신이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었을 때 불만을 가지는 놈은 없었지.”

테이커는 그런 의견을 내놨다.

케인이 곧바로 받아쳤다.

“있었다면 당신이 죽였을 테니까요.”

테이커는 쓰게 웃었다.

분명 그랬을지도 몰랐다.

신은 그 정도로 잘해줬으니까.

경기장 사무실.

파이널 아마겟돈을 1주 앞둔 상태에서 향후의 계획을 위해 몇몇 주요 선수들과 각 팀장들이 모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랙다운의 총괄 프로듀서로서 케인은 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고.

다들 그것이 퍽이나 흥미롭다고 느끼면서도 뜬금없다는 생각은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신이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딱히 표현은 하지 못했고 주류 의견까지도 아니었지만, 극소수의 선수들이 신이 받는 더블 타이틀 홀딩 푸시에 대해 불만을 갖기는 했었다.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신이 락커룸 내에서 인정을 받는 것과 별개로, 목표가 될 밥그릇을 빼앗기면 좋아할 인간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신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프로레슬러란 대립과 경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이들이다.

더블 타이틀 홀더는 결국, 한 선수에게 브랜드 전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기 위한 공격적인 전략이었고.

신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각본을 통해 선언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더블 타이틀 홀더에게는 평소보다 더 많은 기대와 주목이 쏟아졌다.

“스케줄도 고되고.”

“그게 결정적이었죠.”

그렇게 말한 것은 크리스 젠코였다.

“솔직히 말하죠. 아무리 그래도 5개월 동안 더블 타이틀 홀더로서 집권기를 갖는다니 개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서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그만큼 기회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식이 경기 뛰고 스케줄 뛰는 거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말했듯, 더블 타이틀 홀더에게 갖는 관객들의 기대 또한 무척이나 컸고, 그걸 계속 만족시킨다는 건 사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신은 줄곧 그걸 성공시켰다.

타이틀 두 개를 양어깨에 메고, 자신의 심포닉 메탈 음악과 함께 입장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에 확실히 부응했다.

“녀석은 지금 버닝콩의 시나 같은 롤을 수행하고 있죠. 시청률과 티켓 판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골든 보이요.”

그러니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신은 그렇게 더블 타이틀 홀더로 군림하며 브랜드를 키워내고 있었으니까.

다들 그에 동의했다.

그처럼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한 젠코는 이어 케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보스. 하고 싶은 말이?”

“확실히 젠코,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신은 현재 랙다운의 골든 보이로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죠. 근거도 있고요.”

고개를 끄덕인 케인은 이어서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했다.

빔 프로젝터가 벽에 영상을 쏘았다.

WWF에 소속된 선수들의 3/4분기 머천다이즈 판매수익의 순위가 표시되었다.

1위, 숀 시나.

2위, 캐스켓-테이커.

3위, 레이 미스테리우스.

4위, RVD.

5위, 트리플H.

6위, 잭 하디.

7위, 신.

각본팀장이 눈썹을 치켜떴다.

“RVD의 약진이 눈에 띄는데요.”

그리고 각자 의견이 이어졌다.

“ECW 원데이 스탠드의 영향이겠죠.”

“그나저나, 신이 버닝콩의 잭 하디보다 낮다는 건 의외의 결과인데요.”

“여기에서 통계의 맹점이 있죠.”

케인이 손에 쥐고 있던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새로운 글자가 표시되었다.

인터넷과 오프라인 매장으로 판매되고 있는 머천다이즈의 총 개수였다.

1위, 숀 시나 - 47개.

2위, 캐스켓-테이커 - 35개.

3위, 레이 미스테리우스 - 24개.

4위, RVD - 27개.

5위, 트리플H - 52개.

6위, 잭 하디 - 31개.

7위, 신 - 13개.

그것을 표시하자 지금 3/4분기 통계 속의 더 많은 의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나는 회사에서 밀어주는 스타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밀어주는 비중도 크죠. 입간판도 설치하고, 티셔츠도 팬들이 원하는 색에 맞춰서 살 수 있도록 발매하고.”

거기다 시나는 어린이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어서 런치 박스나 장난감 피규어 같은 것도 꽤 잘 팔렸다.

“테이커는 말할 것도 없이 회사의 수호신으로서 확고한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죠.”

그 아래의 레이.

“멕시코 팬층이 두텁습니다.”

“RVD는 원데이 스탠드에서 시나를 이기고 챔피언에 오르면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죠.”

“트리플H는 상품 개수도 개수거니와, 꾸준히 TV에 메인 이벤터로 얼굴을 비추는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겠군요.”

“그리고 잭 하디는 퇴폐적인 매력으로 언제나 큰 인기를 끌어온 선수였고요.”

다들 그렇게 분석을 내놓았다.

그것을 알았기에 회사로서도 그들의 상품을 많이 발매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바트의 입김으로 상품 개수가 적은 신이 7위라는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러셀도 20개가 넘었고, 오튼은 무려 30개가 넘었는데도 신보다 훨씬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 다 주인공인 선역에 비해 상품 판매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 악역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번 하반기에 Man On Fire 티셔츠를 두 종류 발매하면서…… 꽤나 괄목할 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케인이 빙긋 웃어보였다.

Man On Fire.

신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

수많은 팬들의 기대와 시험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티셔츠.

불길 속에 서있는 신의 캐릭터가 애니메이션풍으로 들어간 버전과, ‘Man On Fire’라는 문구와 신의 역십자 문양이 들어간 버전.

“물론, 아직까지 4/4분기의 최종 결과가 나온 건 아닙니다. 파이널 아마겟돈 이후 판매량도 생각을 해야죠.”

하지만 케인 맥센이 사업팀의 지인에게 부탁해 알아낸 지금까지의 4/4분기 머천다이즈 판매수익의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위, 숀 시나 - 52개.

2위, 캐스켓-테이커 - 36개.

3위, 신 - 16개.

“신이 올라오며 나머지는 한 단계씩 밀려났죠.”

“잠깐만, 케인.”

각본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셔츠를 두 장 발매했다면서 왜 개수는 13에서 16으로 올라간 거지?”

“아, 그 두 장에 더해서 신-테이커의 태그 팀 티셔츠가 하나 발매되었습니다. 순위에는 따로 반영되도록 해놨고요.”

“……정말 놀라운 결과로군.”

테이커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신은 다른 선수들보다 상품 개수가 훨씬 적은데다가, 그 대부분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티셔츠 종류였다.

시나의 머천다이즈로 나온 보블헤드 피규어나 액션 피규어, 챔피언 벨트의 네임 플레이트, 런치 박스 등은 값이 훨씬 비쌌다.

2위인 테이커의 상품도 그랬다.

현재 바이커 기믹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쪽으로 연관을 지어 액세서리나 두건, 재킷 등을 발매하는 게 쉬웠다.

그렇기에 나오는 결론은 간단했다.

신의 티셔츠는 수백만 장이 팔렸으며, 두 개의 벨트를 안겨준 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듯이, 이번 레슬 임페리움까지의 랙다운은 신과 테이커의 대립을 중심에 두고 진행할 예정입니다.”

드디어 여기까지 올라왔다.

신과 테이커의 대립은 워낙에 큰 만큼 대부분의 선수들도 그 전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자식이 테이커하고…….”

부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여기에서 버틸 수나 있을까 싶었던 동양인 꼬마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성장했으니 말이다.

각본팀장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테이커와 재대결을 펼친 이후에 신을 탑 페이스로 밀면 될 것 같네요.”

그의 머릿속에 레슬 임페리움의 마지막 순간과 이후가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신의 재도전이 끝난 뒤,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이후 각자의 위치에서 싱글 레슬러로서 활약하는 결말.

분명히 멋질 거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2007년의 신은 싱글 레슬러로서 확실히 더 회사의 중심에 서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케인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웃고만 있었다.

“……?”

“응?”

“케인?”

“어, 저기 그게요.”

“내가 설명하지.”

한숨을 내쉬는 테이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돌아본 사람들은 이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건 신이 직접 제안한 거다.”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테이커는 그것을 그대로 전했다.

“이번 레슬 임페리움 대립에서 날 배신하면서 턴 힐을 하고 싶다더군.”

“…….”

“…….”

그 말에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 * *

2006년 12월 17일.

오후 5시가 되자 현장팀 막내가 락커룸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외쳤다.

“티켓 확인 시작했습니다!!”

파이널 아마겟돈.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 팬들이 들어온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오후 6시까지 입장 통제가 끝난 이후 곧바로 페이퍼뷰가 개최될 예정.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오프닝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 한창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두 개.

오튼과의 U.S. 챔피언십, 그리고 코디&체드와의 태그 팀 챔피언십이었다.

오프닝 매치와 세미 메인이벤트.

세미 메인이벤트에서는 경기의 무게감을 위해서 오튼이 코디&체드의 사이드에 매니저로 참가할 예정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나는 다리를 무용수처럼 좌우로 쫙 뻗고 몸을 크게 풀어주었다.

저릿저릿.

허벅지 안쪽에 느껴지는 근육통.

“……끄응.”

“많이 아프냐.”

눈썹을 살짝 찡그리자 반대편 의자에 앉아 있던 테이커가 말을 걸어왔다.

“죽을 것 같네요. ……뭐,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얼마 안 남았지만요.”

“1월까지?”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확신이 섰군.”

“그야 물론이죠.”

“딱히 이유가 있나?”

테이커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나는 이내 물끄러미 시선을 보냈다.

바이커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수염도 멋들어지고.

그렇기에 테이커에게 붙은 별명 중 하나가 ‘American Badass’였을 정도지.

“팬들이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프로레슬링 팬들은 테이커가 레슬 임페리움에서 패배해 연승 기록이 깨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걸 무시하고 회사에서 날 선역으로 부킹한다면 역반응이 나올 게 뻔했다.

결국 내가 선역으로 계속 있고자 한다면 테이커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물론.

그건 내가 싫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이전 경기에서도 그랬듯이 저는 당신에게 도전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

“싸워서 이기고 싶은 거죠.”

나는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도전에 의의를 두지 않는다. 싸워서 박살을 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테이커라는 전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심이었다.

남자는 언제나, 자신보다 더 위대한 남자를 뛰어넘기 위해 살아가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말했다.

“앞으로는 제 시대가 올 겁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걸 팬들에게 이해해달라고 하지는 않겠다는 말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가슴으로는 당신의 패배를 절대로 인정하지 못할 테니까요.”

나는 강하다.

그렇게 부킹되었다.

두 개의 타이틀을 지키며 그만한 기술력과 경기력, 마이크워크를 보여주면서 꾸준히 팬들에게 실력을 어필했다.

2006년 하반기는 결국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시기였다.

팬들은 즐거워하겠지만, 내 커리어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때는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레슬 임페리움에서 테이커를 이겨야만 이전까지 해왔던 커리어가 모조리 의미가 있었다.

더블 타이틀 홀더로서의 시간이.

“세상 모두가 널 미워해도, 너는 끝까지 날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겠군.”

“남에게 이해받고자 사는 인생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게 나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팬들이 그걸 이해하면 선역이고, 이해받지 못하면 악역이 되는 것이었다.

전생의 일이었다.

테이커는 레슬 임페리움 2013까지 총 21연승을 기록하면서 팬들의 염원대로 커리어 최대의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2014년, 연승은 무척 좋지 못한 형태로 막을 내리며 테이커의 커리어에 거대한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테이커의 레슬 임페리움 연승을 깨고 그 위상을 이어받은 것은 파트타이머로 회사에 돌아온 브룩 레스너였다.

그는 이 업계에 헌신하는 선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젊은 선수 또한 아니었다.

테이커가 게임의 최종 보스라고 한다면, 브룩도 똑같이 최종 보스였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포지션의 선수에게 그 위대한 연승 기록이 저지당하는 것은 정말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기고 싶었다.

아마 이때가 아니면 테이커와 다시금 맞붙는 날은 그 이후가 될 테니까.

다시금 최악의 상황으로 테이커의 연승이 깨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테이커는 침묵을 지켰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건지 줄곧 입을 다물고 있어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혼자 놔둘까.’

길어질 것 같으니 말이다.

U.S. 챔피언 벨트.

그리고 태그 팀 챔피언 벨트.

각각의 상징물을 어깨에 메고 일어선 나는 그대로 락커룸을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신.”

갑작스레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본 나는 어느새 재킷 앞섶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목소리가 조금 잠겼다.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저를요?”

“그래. 너 같은 사내를.”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홀로 무적으로 군림했던 사나이는 이제 와서야 자신의 유지를 이어나가줄 선수를 찾게 된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한마디를 남기고 락커룸을 빠져나왔다.

“이기고 올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