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71화 (271/634)

271.

[2……!!]

절체절명의 순간.

숨을 몰아쉬던 오튼이 겨우 어깨를 들어 올리며 커버로부터 빠져나갔다.

[Uoooooooooooooooooohhhhh!!]

탄식을 내뱉는 팬들.

피닉스 스플래시라는 강력한 기술을 썼음에도 쓰리 카운트를 빼앗지 못했다.

충분히 열 받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화를 억누르며 나는 곧바로 코너 쪽으로 가서 마지막 기술을 쓰기 위한 준비를 했다.

스팅거.

니 리프트.

혹은 러닝 니.

하이 니.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무브는 상체를 세운 상태에서 달려들어 상대의 안면을 무릎으로 걷어차는 기술이다.

선수 생활 초창기부터 사용해온, 그야말로 가장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강대한 적들로부터 언제나 쓰리 카운트를 빼앗아온 최고의 피니시 무브.

그걸 위해 앞으로 내달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오튼이 뒤로 돌아서는 광경을 보며 힘껏 뛰어올랐다.

“?!”

목을 붙잡혔다.

프로레슬링 역사상 임팩트가 강한 기술을 따졌을 때 항상 거론되는 기술.

오튼이 내 목을 붙잡은 채 앞으로 누웠고, 나는 거기에 저항하지 못했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낙법을 준비했다.

R.K.O.

투콰앙-!!

기습 R.K.O.에 의해 그대로 머리부터 땅에 처박힌 나는 오튼에 의해 돌아 눕혀져 그대로 커버를 당하고 말았다.

1……!

2……!

나 역시도 겨우 빠져나왔다.

[Yeeeeeeeeeeeaaaah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더럽게 아프네.’

목과 어깨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마치 뱀이 먹잇감을 물듯이 이어지는 R.K.O.가 멋지게 나왔으므로 뭐가 어찌됐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튼의 손에 붙들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슬슬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딱 거기에 맞춰서 경기를 짜냈다.

나에게는 스팅거나 슈퍼 킥 콤보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경기를 끝낼 정도로 강한 기술이 하나 더 있었다.

공방이 계속 이어지며 틈을 찾았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다.

코너로 몰린 나를 노리고 반대편 코너에 서있던 오튼이 힘차게 달려왔다.

그걸 순간 옆으로 회피.

쿵-!

오튼이 코너에 부딪히며 자폭하자 순간 관객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롤 업을 시도했다.

오튼의 뒤쪽에 가로로 드러누우며 동시에 다리 사이로 손을 넣고 당겼다. 오튼은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큭?!”

오튼의 양쪽 등이 땅에 닿자 심판이 위쪽으로 달려와 카운트를 진행했다.

1……!!

하지만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오튼의 다리를 붙잡고 일어선 나는 팬들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조립’을 해나갔다.

누워 있는 녀석의 양다리를 잡고.

한쪽 발을 녀석의 다리 사이로 넣어 옆구리 쪽에 세우고. 그걸 기점으로 오튼의 다리를 엮은 뒤.

그대로 힘차게 돌아섰다.

샤프 슈터.

“크아아아아아악-!”

내 다리에 담쟁이덩굴처럼 다리가 엮여 엎드린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스쿼트 자세를 취한 채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오튼을 중앙으로 질질 끌고 가서 그대로 버텼다.

단단하게 엮인 팔과 다리.

[W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그것은 오튼이 버티지 못하고 요란하게 탭을 치자 한층 더 강해졌다.

[Yeeeeeeeeeeeeeeaaaaahhhh!!]

U.S. 챔피언십을 걸고 한 경기는 그렇게 나의 서브미션 승으로 끝났다.

* * *

땡땡땡-!

[오튼이 버티지 못하고 탭을 칩니다!! 신이 다시 챔피언을 지켜냅니다!]

[Tap Out! Tap Out!]

해설자들의 말과 함께 경기에 몰입하며 지켜보던 조나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포효했다.

“좋았어!!”

경기를 끝낸 선수보다도 더 기뻐했다. 그리고 그건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다른 소년소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오튼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소년까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통쾌한 승리였다.

신은 그 벨트를 손에 쥘 자격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했고, 팬들의 앞에서 환상적인 세리모니를 펼쳤다.

사실 이 시점에서 그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경기는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기왕 보는 김에.

또한 세미 메인이벤트로 신-테이커의 태그 팀 매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어지는 경기들도 재밌게 보았다.

“와, 저거 진짜 아프겠는데?”

“기술 이름이 뭐라고?”

[스타쉽 페인! 스타쉽 페인!!]

“해설자가 말해주네.”

“와, 몸이 어떻게 저렇게 되지?”

“저 근육 좀 봐!!”

일종의 낙수 효과였다.

라이트 팬들이 깊게 이입할 만한, 그러면서도 마니아들의 인정 또한 놓치지 않는 것이 현재 신의 위상이었다.

신을 보고 유입된 팬들이 다른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면서 회사 전체가 결과적으로 큰 이득을 보는 것.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이어진 경기들이 하나둘씩 멋진 결말로 끝났고, 파이널 아마겟돈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 이어졌다.

피자는 다 먹었고, 소년들은 가정부를 시켜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조나단의 아버지인 조나단 시니어가 고된 회사 일을 끝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광고가 나가고 있는 와중, 다섯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 그래. 잘들 놀고 가라.”

“헤헤, 감사합니다!”

“다들 뭐 보고 있었니?”

“프로레슬링이요!”

“프로레슬링?”

시니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레슬링.

아들과 친구들이 이런 걸 좋아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였다.

“주니어, 누굴 좋아하냐?”

“어, 신이요.”

“신? 아빠도 이름 아는 선순데.”

“요새 대세니까요! 이번에 로맨스 영화 찍었는데 그런 거 관심 없어 하던 조나단이 보러 가자고 했다니까요!”

“여기 피자도 신이 광고 찍은 거예요!”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흥분해 소리쳤고, 시니어는 광고가 끝나고 경기장으로 화면이 전환되는 걸 보았다.

사실 그도 프로레슬링의 팬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 캡틴 로건과 파이널 워리어가 맞붙을 때였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는 거의 프로레슬링을 보지 않았는데.

하지만 뒤이어.

[Dead Man Walking.]

테마곡과 함께 등장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고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테이커……!”

“오, 아세요?”

“알다마다. 무적의 선수였지. 어떤 기술을 맞아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꽂았으니까.”

그 테이커가 바이크를 몰고 나오다니. 세상 참 변했구나 싶었다.

이 소년들이 알까.

지금 이렇게 멋진 테이커가 예전에는 장의사 복장을 입고 등장했는데.

“요새 WWF에서 테이커에게 대적할 선수가 과연 있을까 모르겠구나.”

“신이 있죠!”

주니어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말에 방송을 확인한 시니어는 테이커의 바이크 뒤에 올라타 있는 신의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물론, 신 역시도 훌륭한 수준의 선수라고 듣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테이커는 무적이야. 주니어.”

저 남자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세상이 뒤집힐 정도의 큰일이 되겠지.

* * *

2006년의 마지막 페이퍼뷰, 파이널 아마겟돈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신-테이커는 레갈리아에 맞서서 멋지게 타이틀을 지켜냈고, 신은 더블 타이틀 홀더로서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최고임을 증명하고 얻은 위상으로 그는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테이커와 대결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9일.

주주로 있는 어느 한 회사의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티파니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제품 발표를 듣고 있었다.

“오늘 액플은 전화기를 재정의합니다.”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액플의 CEO, 스티브 자비스.

오늘 그가 세상에 공개한 물건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다.

개중에서도 몇몇은 의심하기도 했다. 시제품이 아닌 실제 제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티파니는 알아보았다.

“제가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고 치죠. 동시에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잡으면서 영화 티켓의 수량을 확인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사업가의 재능. 동시에 몇 년 동안 신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안목이 더해져.

그 제품이 가진 힘을 알아보았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지금 처하게 된 상황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했다.

[에이폰입니다.]

발표는 충격 속에서 끝났다.

패러다임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걸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고, 의심을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티파니의 생각은 달랐다.

터치스크린 MP3.

전화기.

인터넷 통신기기.

그 세 개가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

거기다 손가락만으로 완벽히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순간 말이 되나 싶었지만, 직접 물건을 보자 머릿속에 확신이 섰다.

이건 대박이다.

그의 말대로 기존의 핸드폰이 재정의되었다.

이로써 일상이 바뀌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스티브 자비스의 발표가 끝난 뒤, 함께 온 비서에게 정리를 부탁하고 곧바로 주차장으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추운 날씨에 입김이 나오는 가운데, 담배에 불을 붙인 티파니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신이었다.

[응, 티파니.]

“미안, 지금 바빠요?”

[아, 봤구나.]

“예? 그게 무슨…….”

[오늘 액플 발표회 아니었어?]

“지금 와있어요.”

[뭔가 나왔을 것 같은데.]

“미친 게 나왔어요. 드디어 우리도 스타 트랙에 나오는 것처럼 하게 됐네.”

[뭐야. 설마 터치스크린을 손으로 조작하는 전방향 슈퍼 통신기기라도 나온 건 아니겠지?]

“알고 있었어요?”

[아니, 그냥 감이었어. 스티브 자비스라면 분명 뭔가 할 거라고 느꼈지.]

귀신같은 판단이었다.

물론, 티파니도 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비스를 만나봤을 때 뭔가 굉장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이 정도라니.

“핸드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확신해?]

“예, 주변의 다른 기업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이 기기가 오픈된 내용대로 나와주기만 한다면 분명 지금까지 저희가 알던 핸드폰은 없어질 거예요.”

그게 올바른 판단이었다.

현재 핸드폰 시장은 기술의 혁신이 일어나기 직전의 과도기에 있었다.

PDA는 많은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대중 친화적이지 않았고, 일반 핸드폰은 아이디어를 담아낼 기획력이 이상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멀쩡한 핸드폰 화면이 가로로 돌아가는 것 따위를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나왔죠. 애들 장난감도 아니고.”

[어라,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

“무, 무슨 소리에요?”

[전에 피규어 가지고 놀던 솜씨가 아주 장난이 아니던데 말이야.]

“……신, 닥쳐줄래요?”

티파니의 뺨이 붉어졌다.

“어쨌든 그래요. 지금까지 핸드폰 회사들은 그것도 지겨워지니까 디자인을 예쁘게 내고 유명 연예인에게 제공하면서 스타일 아이템으로 둔갑시켰죠.”

대중과 기술이 분리되었다.

PDA는 PDA대로 각종 기능을 늘려가며 계속해서 조작체계가 복잡해져만 갔고, 그건 일반 핸드폰과 비교해서 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오늘 발표된 에이폰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대중에 있어서 정말 큰 진일보죠. 아마 일상의 풍경이 바뀌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그런가?]

“물론이죠. 일단 스타일러스 펜이 아니라 간단히 손가락 하나만으로 모든 걸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들 금세 흥미를 갖고 적응할 거예요.”

물론, 액플이 정말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빠뜨린 혁신을 가져온 건 아니었다.

터치스크린의 경우에는 2005년부터 꾸준히 발표가 나왔었다.

에이폰에 쓰인 대부분의 요소들이 그랬다.

하지만 기존의 재료들을 적절하게 배합해 완벽한 반죽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아, 진짜 지금 너무 놀라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지금 액플 주식 보유하고 있는 게 대충 얼마 정도였지?]

“전체 주식의 14.7퍼센트 정도에요.”

[그렇게까지? 대박이군.]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가능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IT버블이 꺼지면서 추락한 액플은 더 이상 최첨단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회사가 아니었다.

신의 제안에 따라 그때를 틈타 구매한 대량의 주식은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제 냄새를 맡은 투자자들이 몰려들어오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지분율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배당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당신을 믿기를 잘했어요.”

[아냐, 당신이 잘해준 거지. 그 정도까지 해줄 줄은 몰랐어.]

신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아무리 과거의 지식이 있다고 한들 그걸 활용하고 현실화시키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특히 1년에 300일 가까이 링 위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프로레슬러 입장에서는 관여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티파니 맥센이라는, 향후 사업가로서 유능함을 뽐내줄 파트너가 필요했고, 모두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회사 쪽은 요새 어때?]

그 말에 한숨을 내쉬는 티파니.

“어,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한 것도 없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뭐?]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생각해서 프로듀싱에 큰 심혈을 기울이기보다 각자 개성을 존중해주는 식으로 했는데, 당신이 추천한 가수들이 하나같이 시장에서 엄청나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거든요.”

물론 그들이 만든 음악이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각종 홍보와 계약 체결 등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회사 내에 있는 프로듀서들도 모든 아티스트가 제각기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도 크게 관여할 부분이 거의 없단다.

신 스스로가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 다른 쪽의 재능도 알아볼 수 있는 건가 싶어졌다.

덕분에 작년에 설립한 회사인데 벌써부터 상장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될 정도였다.

물론 아직은 설레발이지만.

“덕분에 확실히 투자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쪽에 관심을 갖는 사교계 명사들이 꽤나 많거든요.”

티파니가 빙긋 웃었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바트 맥센에게 대항할 힘을 기른다.

아직 먼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뻤다.

그러자니 신이 입을 열었다.

[아직 놀라기는 일러.]

“예?”

[이번 레슬 임페리움을 기점으로 해서 큰일이 하나 더 터질 예정이거든.]

“……설마 테이커를 이긴다던가?”

[궁금해?]

“아, 아아. 말하지 말아요. 그런 건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면서 즐기고 싶으니까.”

테이커가 나이를 꽤 먹은 걸 감안하자면 위험하지 않은 경기가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웃은 티파니는 몸에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신의 커리어에도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미래를 훨씬 더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