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76화 (276/634)

276.

WWF에서 수직낙하기는 봉인기였다.

부상의 위험이 너무나도 크거니와, 그렇게 되면 운이 좋아야 전신 불구고 최대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 수직낙하기를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선수가 바로 캐스켓-테이커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바로 테이커가 그 기술을 사용할 때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트 맥센의 믿음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테이커의 다리가 길어 기술을 쓸 때 상대방의 머리가 바닥에 닿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무지막지하게 아프기는 했다.

수직으로 내리꽂힐 때의 통증이, 어우.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었다.

설득력의 문제였다.

그 정도로 강한 기술이 아니면 상대로부터 쓰리 카운트를 빼앗을 수 없다는, 이 업계가 이어져 오며 굳어진 불문율.

프로레슬러는 강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테이커가 말끝을 흐리며 날 보았다.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합을 맞추는 거죠.”

“이번 경기,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

레슬 임페리움이 열리기 이틀 전.

테이커의 부름을 받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경기장에 도착한 나는 4층에서 한창 진행 중인 마무리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대한 사이즈의 천막이 링 높은 곳에 설치되었고, 저 멀리 조명이 번쩍거렸다.

엄청나게 거대한 세트장이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생에서는 밟아본 적조차 없었던 영광스러운 레슬 임페리움의 스테이지.

이틀 뒤면, 나는 레슬 임페리움에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메인이벤트를 맡을 예정이었다.

그래.

테이커와 나의 대결은 러셀과 시나의 대립을 넘어서서 확실히 팬들이 더 크게 주목하고 있는 경기가 된 것이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까부터 긴장이 되서 가져온 물만 연신 들이켰다.

이제 이걸 또 평온한 상태까지 만드는 것이 이틀 동안 내가 할 일이었다.

침묵이 이어지던 와중, 내가 물었다.

“그나저나, 괜찮은 겁니까?”

“뭐가 말이냐.”

“내일 경기에서 각본을 깨면서까지 저에게 져주실 거냐는 말입니다. 바트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걸 이제 와서 묻는 거냐.”

“확인을 해두는 거죠.”

“뭐, 잘리지는 않겠지.”

테이커가 쓰게 웃었다.

“오히려 후폭풍은 네가 감당해야 할 텐데. 신. 바트가 너를 죽이려고 들 거다.”

“아, 그건 생각해둔 게 있어서.”

“그리고 과연 소화할 수 있겠나? 테이커의 연승을 저지했다는 초대형 푸시를.”

“그건, 모르겠네요.”

나 역시도 쓰게 웃었다.

오늘 있었던 마지막 세그먼트에서도 팬들은 내가 하는 말에 계속 휘둘렸고 결국 우리에게 아무 호응도 하지 못했다.

“나쁜 의미는 아니었죠.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경기를 넘어선 반응이었지.”

아예 말문이 막혀버린 거다.

원하던 부분까지 오기는 했다.

내가 확실히 테이커의 연승을 저지할 만한 위상과 기세를 가진 선수라고.

팬들이 드디어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이게 팬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그래도 미래를 위해서는…….”

“아니, 그렇지 않다.”

테이커가 고개를 내저었다.

“넌 결국 관객들을 설득해냈다. 네가 날 이겨서 새 시대가 열려야만 한다고. 다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지.”

“글쎄요.”

너무 나간 거 아닌가.

물론, 내가 이번 각본에서 팬들을 충분히 설득하기는 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테이커는 단호했다.

“분명 그렇게 될 거다. 적어도 경기가 끝나는 순간에는 큰 환호가 나올 거야.”

선글라스 아래의 눈동자가 레슬 임페리움 세트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말하지 않았군.”

“뭐 말입니까?”

“내가 왜 레슬링을 하는지 아나?”

“어, 돈?”

“맞다.”

“……정말요?”

“거기에 더해 세 가지가 더 있지.”

테이커가 손가락을 세 개 폈다.

헌신과 명예, 그리고 즐거움까지.

테이커는 대부분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는 이 업계에 대한 열정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테이커가 설명했다.

시나는 업계에 헌신한다.

오튼은 돈을 원한다.

러셀은 명예를 추구한다.

“그리고 넌 이 일을 즐기고 있지.”

“글쎄요. 저도 굳이 말하자면 러셀처럼 명예를 좇는 쪽에 가까울 텐데.”

“즐겁지 않고서야 이 일에 그처럼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지.”

스스로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레슬링을 위해 링에 오르기 때문에 나는 정상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다.

테이커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래서 네가 나타났을 때, 놀랐다.”

“어떤 의미에서요?”

“젊은 시절의 바트와 닮았거든.”

“……여기서 우리 영감님이?”

“그래, 그래서 현재는 부정하고 있는 상태지만, 회장님 역시도 네 각본에 항상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 거다.”

“그런 뉴욕 꼰대 영감이 저 같은 사람에게 몰입할 수 있을까 싶은데요.”

“실제로 팬들은 몰입하잖나.”

테이커가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 영감도 다르지 않아. 단지 자신의 시대가 지나고 이해받지 못해 외로운 사람일 뿐. 그래서 떠나지 못하는 거고.”

“미련이군요.”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남자라면 누구나 가진 욕망.

“사실, 이 업계에 대해 정말 아무 감정이 없었으면 자기가 원하는 선수를 밀고자 하는 노력 또한 하지 않았겠지.”

왜냐면 단순히 시장 논리에 따라서 밀어줄 선수를 정한다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바트에게는 애정이 있다.

그렇기에 나쁜 선택을 할 때도 있다.

“그건, 그러네요.”

나는 납득하고 웃었다.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중요한 경기 중 하나가 바로 바트 맥센과 로널드 트럼프의 ‘머리카락’을 건 대결이었다.

각자 자신의 대리 선수를 내세워 이어지는 경기는, 트럼프가 이기고 바트가 삭발을 당하면서 끝날 예정이었다.

그렇듯, 사실 프로레슬링에 애정이 없는 사람이 자기 머리가 빡빡 밀리는 굴욕적인 각본을 수행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기가 정점인 회사에서.

하지만 그렇기에.

서로 프로레슬링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지향하는 바가 명백히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대립하고 있는 게 아닐까.

뭐, 어쨌든.

이번 레슬 임페리움이 끝난 후에는 지금까지 소강 상태였던 바트와 나의 대립 또한 확실히 수면 밖으로 나오겠지.

* * *

그로부터 이틀 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엄청난 양의 폭죽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을 물들이며 드디어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Waaaaaaaaaaaaaaaggggghhhh!!]

거대한 돔 내에 울려 퍼지는 팬들의 환호성은 다른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려 21만의 관객.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정도로 거대한 이벤트는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

바로 이것이 레슬 임페리움.

이 하룻밤을 위해서 수천 명의 인원이 투입되었으며, 일주일간 일어나는 총 수익만 해도 수십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물론 선수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채 전 세계에서 모인 그들이, 거대한 드라마의 결말을 펼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테이커와 합을 짠 나는 분명 오늘 밤 가장 거대한 순간의 주인공일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기다렸다.

오프닝 매치부터 순차적으로.

각 선수들이 세계 최고라는 이름에 절대 부족하지 않도록 활약을 선보였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경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쇼의 정확히 중반부에 열린 ‘맥센 vs 트럼프’의 대리자를 내세운 헤어 매치.

지는 쪽은 빡빡이가 된다.

원래 전생에는 락콜드가 특별 심판으로 등장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변했다.

그래도 멋진 그림이었다.

[으허헝헝!! 안 돼!! 가아아악!!]

바트는 특유의 과장된 연기 톤으로 연기를 수행하며 바리깡에 머리가 밀렸다.

바리깡으로 다 민 뒤에는 아예 머리에 면도 크림을 바르고 완전히 깎아냈는데.

그때 바트가 보인 멍청한 표정을 본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확실히 테이커의 말이 맞았다.

프로레슬링에 대하여 어지간한 애정이 없는 이상 저렇게 할 수는 없을 터였다.

덕분에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세미 메인이벤트에서 무너졌지만.

시나는 계속 역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러셀에게 환호가 나왔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래도 나는 믿었다.

킹 오브 하트.

러셀은 이제 베테랑이었다.

[Waaaaaaaaaaaaaaagggggghhhh!!]

환호를 받으며 나온 러셀은 오히려 거만한 포즈를 취하면서 그런 팬들의 반응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이어서 슈퍼카를 타고 입장하는 스페셜 입장을 선보이는 시나.

[Boooooooooooooooooo-!]

야유가 나오자 회사에서는 팬들의 오디오를 줄이는 최악의 선택을 해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기는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입장하는 시나.

두 사람이 선보인 경기 역시 멋졌다.

언더독 시나가 탑독 악역 운영을 선보이는 러셀을 결국 쓰러뜨리는 이야기.

물론, 거기서도 야유가 나왔지만.

카메라는 시나의 승리를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소년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최대한 시나를 보호해주었다.

저거면 된다.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하지만 결국 시나는 회사에 돈을 안겨주고, 수많은 팬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자였다.

물론 전생과는 달리, 거기에 나라는 변수가 끼어들며 많은 게 바뀌었지만.

그리고 이어진 광고 타임.

“후우.”

마음의 준비를 끝낸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고릴라 포지션으로 향했다.

“힘내라, 신.”

“기죽지 말고!”

나를 응원해주는 선수들.

부커가 등을 철썩 때리고, 젠코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거기다 레이가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품었다.

테이커의 말대로라면 그와 나의 경기에서도 물론 ‘역반응’이 나올 터였다.

내게 환호가 돌아오는.

하지만 그건 시나와는 달랐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결국 팬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염원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과연 그럴까 싶지만.

그러고 싶은 기분은 있다.

어쨌거나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고릴라 포지션 앞에서 기다리던 소품팀 막내가 건네주는 물건을 하나 건네받았다.

때마침 테이커도 도착했다.

그를 노려보고 돌아서자 시나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오는 러셀이 보였다.

시나는 축 처진 상태였고, 러셀은 쓰게 웃고는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테이커는 분명 나보다 위상이 높은 선수였지만, 입장 씬의 특별한 연출을 위해 그가 먼저 입장하기로 되어있었다.

“테이커! 마무리 짓고 오게!”

총괄석의 바트가 외치자 테이커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갔다’.

바로 관이었다.

세로로 세워진 관은 오늘을 위해 특별 주문을 한 물건으로, 테이커의 스페셜 입장 씬에서 사용될 예정이었다.

전생에선 쓰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뭐, 이렇게 되었다.

왜냐면 저 관이 내가 오늘 할 특별 입장 씬에서 재사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테이커보다 더 뒤에 입장하게 된 거고.

생각해보면 용케 바트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구나 싶은 멋진 연출이었는데.

그건 이제부터 시작된다.

모니터링TV를 확인했다.

성가가 시작되었다.

[예에-에에에-아아-아이아아아-.]

경기장이 어두워지고, 검은 로브를 입은 테이커의 추종자들 수십 명이 로브를 들고 입장로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역시 비슷하다 싶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테이커는 스페셜 입장 씬에서 이처럼 성가와 추종자들을 자주 부르고는 했다.

[Waaaaaaaaaaaggghhh!]

성가가 이어지는 동안 터져 나오는 팬들의 환호.

그리고 그 절정은 성가가 끝나고 나오는 소리 하나에서 이루어졌다.

[대-앵──.]

[Waaaaaaaaaaaaaggggggghhhhh!]

입장로 위로 불길이 번뜩였다.

입장로 위가 스모그로 물들고 테이커를 실은 관이 천천히 링으로 나아갔다.

모니터링TV로 재차 확인.

만종 소리와 함께 장송곡이 이어지고.

음울한 고딕 메탈 같은 테마와 함께 관에 있던 테이커가 나타났다.

팬들은 완전히 미쳐 날뛰었다.

어두운 조명이었음에도 그들이 테이커를 원하는 분위기가 완벽하게 느껴졌다.

관에서 나와 천천히 입장로 위로 나아가는 테이커.

그는 그야말로 죽음을 고하기 위해 온 대천사였다.

검은 코트와 중절모.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치.

링으로 올라간 테이커가 천천히 중절모를 벗어 내렸고. 특유의 연출이 나왔다.

그가 눈동자를 까뒤집고 험악한 표정을 짓는 순간 나오는 라이트닝 사운드.

조명이 번뜩이며 그의 모습은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아즈라일 그 자체였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

“좀 긴장이 되나?”

뒤에서 이어지는 목소리.

돌아보자 날 돌아보면서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바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미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캐스켓-테이커를 뽑았다.

그렇기에 그가 나를 레슬 임페리움에서 박살 낼 지금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기대되어서 참을 수가 없는 거겠지.

……물론 그렇게 되진 않지만.

테이커와 나, 그리고 케인까지.

우리 세 사람은 지금 어쩌면 그야말로 최악의 배신을 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하고 싶었다.

테이커가 팬들의 마음을 이끄는 선지자라면, 나는 그에 대항하는 존재니까.

일명, 안티 크라이스트.

“신 선수!”

후드를 눌러쓴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감촉을 확인하며 앞으로 나섰다.

“조심하세요! 경기하시기도 전에 다치면 진짜 아무 소용없는 짓이니까요!”

연출 쪽 팀장 하나가 다가와서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아무래도 좀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하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난 빙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진짜 죽어라고 배운 일이니까요.”

“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괜찮다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오른손에 쥔 그것을 어깨에 툭툭 두드렸다.

그립감도 좋고.

문제될 건 없었다.

“절대 다치지 마세요!!”

내가 아까 고릴라 포지션 앞에서 받아서 들고 있다 입장 씬에서 사용할 물건.

“Hell Yeah.”

그것은 바로 날이 선 도끼였다.

동시에.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안티 크라이스트의 재림을 알리는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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