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77화 (277/634)

277.

[Bo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짙게 깔린 연기를 헤치며 링으로 내가 나타나자, 모든 팬들이 순간적으로 경악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20만이 넘는, 지금 내 앞에 최소 2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반응과 표정, 기분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길 걸 두려워하는 이.

내가 이길 걸 기대하는 이.

갖가지 반응이 뒤섞였다.

아주 약간이지만 환호도 있었다.

나는 도끼를 번쩍 치켜들었다.

콰지익-!

가로로 휘두른 도끼에 관이 부서졌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든 재질이었다. 동시에 잘 잘리도록 흠집을 넣기도 했다.

몇 번이고 도끼를 휘두르며 관을 완전히 난자한 나는 마지막으로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 도끼를 겨냥했다.

테이커.

링 위의 그는 까마득하게 멀어서, 얼굴 표정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간다.

지금 간다.

너를 박살 내기 위해.

그렇게 되뇌며 완전히 작살이 나버린 관에 도끼를 힘차게 꽂았다.

그와 함께 치솟는 불길.

내가 서있는 주변으로부터 힘껏 치솟은 화염이 링 바로 앞까지 길게 이어졌다.

바리게이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전 요원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열기 속.

후드 안이 땀으로 범벅이다.

하지만 씨익 웃었다.

Man On Fire.

위기의 사나이.

이처럼 수많은 팬들의 시선 속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온 존재.

그런 내가 앞으로 나아갔다.

테마의 메탈 파트가 나오며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순간 들려오는 팬들의 야유.

[Booooooooooooooooooo……!!]

그 힘이 옅어진 것을 느꼈다.

나와 테이커를 가로막던 팬들의 반응이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테이커가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넌 결국 관객들을 설득해냈다. 네가 날 이겨서 새 시대가 열려야만 한다고. 다들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지.]

정말로 그럴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목표가 잡혔다.

나는 이 경기가 끝나는 순간, 확실하게 그들의 반응을 끌어오고 말 것이다.

날 인정하지 못하고는 못 배기도록.

그렇게 링 위로 올라갔다.

[Booooooooooooo……!]

[Waaaaaaaaaaaaaaggggghhhhh!!]

거센 야유와 환호의 파도 속.

나와 테이커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팬들의 반응을 끌지도 않았다.

이미 이 남자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내가 넘어서야만 하는 남자.

후드를 벗자, 링 주변에 설치된 파이로 장치에서 힘차게 불꽃이 피어올랐다.

테이커는 이미 코트를 벗은 상태.

나 역시도 재킷과 후드 집업을 벗고는 곧바로 경기를 치를 준비를 했다.

땀으로 범벅인 얼굴을 대충 닦고. 코너 로프에 팔을 기댄 상태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반대편 코너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테이커가 보였다.

일단 가장 큰 건 스펙 차이였다.

나는 188cm에 체중을 좀 늘려서 95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반대로 테이커는 205cm에 120kg.

일단 보기에는 내가 좀 더 보기 좋은 근육질의 체형이었지만, 어쨌든 간에 체급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질적인 체중이고.

여기에서 각본이 개입하면 테이커와 나의 차이는 조금 줄어들기는 했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링 아나운서가 우리를 소개했다.

프로레슬링 특유의 뻥튀기를 가미해서.

[레프트 코너! 195센티미터에 110킬로그램! 시이이이이인!!]

[Boooooooooooooooo……!]

[라이트 코너! 210센티미터에 145킬로그램!! 디 캐스켓-테이커어어어어!!]

[Waaaaaaaaaaaaaagggggghhh!!]

그야말로 죽여주는 환호였다.

그래도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만들어온 각본의 설득력이었다.

땡땡땡!

링 벨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테이커를 향해 힘차게 돌진했다.

분명 뜻밖의 행동일 터다.

2미터 10센티미터로 소개된 남자와 맞상대를 하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다.

그렇기에 이건 기만책이었다.

팔을 뻗어오는 테이커의 공격을 피한 나는 그대로 뒤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경기의 초반부는 내가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것처럼 기세를 잡게 되어있다.

쩌억-!

테이커의 무릎을 뒤쪽에서 걷어찼다.

나는 경기 초반에는 일명 ‘다리 지옥’이라고 불리는 올드 스쿨 스타일과 비슷한 식으로 운영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이게 전하고자 하는 심리는 간단했다.

스스로 이길 자격이 있다고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사실 꽤나 필사적이며 평소와 달리 초조해진 상태다.

쓰러진 테이커의 왼쪽 다리를 붙잡고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체중을 실은 팔꿈치로 눌러 꺾으며 서브미션을 걸었다.

“크윽……!”

초장부터 이어지는 관절기.

테이커는 금방 빠져나왔고, 이어서 내 제안으로 그라운드 레슬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지루한 기본기로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 경기의 초반 페이스를 내가 쥐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Booooooooooooooooooooo-!]

둘 다 누운 상태에서 나는 테이커의 머리에 다리를 걸고 강하게 조였다.

그와 동시에 한껏 거만해져 웃으며 소리쳤다.

“좋아, 좋아!!”

물론, 테이커도 바보는 아니었다.

몸을 비틀어 빠져나온 그가 곧바로 오픈 핑거 글러브를 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완전히 내가 이성을 잃도록 만들었다.

테이커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Waaaaaaaaaaaaaagggggghhhh!!]

순간 쏟아지는 환호.

눈썹을 찡그린 나는 그대로 테이커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쫘악-!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

거리를 벌리며 빠져나온 나는 그대로 주먹을 쥐고 바닥을 쿵쿵 때렸다.

“이 새끼가 또……!!”

남자에게 있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가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건 인생 최대의 굴욕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테이커는 장의사가 된 순간에도 그것을 잊지 않고 나와의 차이를 드러냈고.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다시 한 번 달려든 나는 막 일어서려는 테이커를 향해 힘차게 무릎을 들었다.

쩌억-!

[Uoooooooooooooooooohhhhh!!]

초장부터 터진 스팅거.

팬들이 순간적으로 놀라 일어났다.

확실한 내 피니시 무브였고, 나는 곧바로 테이커를 뒤집고 커버에 들어갔다.

[1……!]

누군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2……!!]

하지만 테이커는 곧바로 빠져나왔다.

예상한 바였다.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테이커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아쉬워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공격에 들어갔다.

쓰러진 테이커의 머리통을 움켜쥔 상태에서 주먹을 후려갈기며 일어났다.

[B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나는 테이커의 머리 부분을 짓밟으며 마구 분노를 토해냈다.

“신, 그만해! 반칙이야!”

그때, 다가온 심판이 나의 행동을 말렸다. 나는 그 팔을 떨쳐내고 곧바로 테이커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 거구를 힘차게 들어올렸다.

콰앙-!

스냅 수플렉스에 수직으로 한 바퀴 회전한 테이커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대로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온갖 기술의 향연이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테이커를 로프 반대편으로 내던진 나는 그대로 힘차게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드롭킥을 날렸다.

퍼억-!

날카로운 타격감과 함께 쓰러지는 테이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커의 무릎을 짓밟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테이커.

그렇게 기세를 계속 잡아나간 나는 다시 한 번 테이커를 들어서 메쳤다.

콰앙-!

충격과 함께 바닥에 뻗은 테이커.

그가 무력하게 숨을 몰아쉬는 광경을 팬들은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Taker……! Taker……!]

응원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 기세를 타고 힘차게 탑 턴버클로 올라갔다.

[Booo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팬들은 내가 더 이상 테이커를 밀어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분명히 테이커를 이길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지금까지 증명해 보였다.

그걸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기세 좋게 탑 턴버클 위에서 뛰어오르려던 순간.

놀라운 광경이 이어졌다.

스팅거.

머리를 짓밟는 반칙.

그리고 스냅 수플렉스까지.

온갖 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테이커는 후욱,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당해 움직이지 못했다.

반면, 팬들은 테이커의 그런 행동에 그야말로 엄청난 환호를 보내주었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싯 업.

테이커의 상징적인 무브.

반격은 그로서 시작되었다.

멍하니 탑 턴 버클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자리에서 일어선 테이커가 성큼성큼 다가와 힘차게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정말로 세게 쥐어,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걸 느끼며 일어섰다.

그리고 내던져졌다.

탑 턴 버클.

1.6미터 이상 높이에 있던 몸이 테이커의 힘에 끌려 그대로 날아갔다.

순간 시야가 크게 도는 것을 느끼자니, 곧바로 충격이 몸을 덮쳤다.

투콰앙-!

낙법을 쳐낸 나는 그대로 바닥을 좌우로 구르며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온 테이커가 내 머리를 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로프 쪽으로 내던져져 반동을 타고 돌아오자 눈앞에는 부츠 밑창이 있었다.

빅 붓.

내 머리 높이까지 올라온 테이커의 발에 부딪힌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피니시 무브로 사용하는 테이커는 이렇게 상대방의 머리를 공격하는 기술을 주로 썼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사내가 날 바닥에 짓눌렀다.

[1……!]

지금 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2……!]

겨우 커버에서 빠져나온 나는 충격에 빠진 머리를 뒤흔들며 일어섰다.

물론 주도권은 계속 넘어간 상태였다.

나는 머리와 등을 붙잡힌 채 내던져져 그대로 링 아래로 나가떨어졌다.

쩌억-!

링 바깥의 바닥은 충격을 흡수하는 소재를 썼음에도 링 위보다 훨씬 아팠다.

등줄기를 내달리는 통증을 견뎌내며 일어서자 테이커가 다시 나타났다.

괴물 같은 인간.

[Waaaaaaaaaaaaaagggggghhhh!!]

이렇게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데도 환호밖에 나오지 않았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역시 적으로 만났을 때 가장 성가신 남자다. 무엇을 하더라도 결국 모든 반응을 이 남자가 가지고 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몇 번이고 이어진 공격.

그것을 버텨내며 주변을 살피던 나는 한 남자가 들고 있는 피켓을 발견했다.

흰색의 거대한 피켓.

그 한쪽에는 15-0이.

나머지 한쪽에는 14-1이 적혀있다.

그래, 여기에서 지극히 소수였지만.

이중 누군가는 지금 내가 승리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증거였다.

피식 웃은 나는 바리게이트에 매달린 채 다가오는 테이커를 바라보았다.

“어때? 저거.”

물어보지만 대답은 없었다.

머리를 붙잡힌 나는 그대로 그 힘을 따라가 링 위로 데굴데굴 굴러 들어갔다.

링 위에 드러누워 있자니 내 뒤를 따라서 링 위로 올라온 테이커가 힘 있게 로프 반동을 하며 달려들었다.

거체가 힘차게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양 다리를 들어 올린 그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무릎 안쪽으로 내 머리를 찍었다.

길로틴 레그 드롭.

꽈앙-!

해머로 얻어맞는 감각이었다.

강한 구토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큰 충격에 빠진 채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Yeeeeeeeeeeeeeeeaaaaaahhhh!!]

환호하는 팬들.

내 머리 위에 다리를 올린 채 숨을 몰아쉬던 테이커가 그대로 스윽 일어났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그를 믿고 환호하는 팬들.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던 테이커가 내 목을 붙잡고 힘차게 들어 올렸다.

누운 상태에서 2미터 위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리를 박차고 위로 끌어올려진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투콰앙-!

초크 슬램.

등줄기가 타오르는 듯한 통증.

나는 셀링조차 하지 못했다.

바닥에 축 늘어서서는 내 앞에 서있는 테이커의 모습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산을 만난 것 같았다.

싯 업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역전시킨 테이커는 팬들의 반응을 끌어 모으며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하고 있었다.

잠시 서있던 그가 이어서 코너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숨을 고르려는 듯 그 앞에 걸터 서서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게 이질감이었다.

평소의 테이커였다면 여기에서 분명히 나를 계속해서 박살 내면서 경기를 이끌어나가야만 했다. 그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는 대신, 코너 쪽으로 가 숨을 고르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주 약간.

다리를 절었다.

그 이질감을 팬들이 알았을까?

적어도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는 관객들은 해설자들이 설명해주고 있겠지.

지금 테이커가 냉정한 척을 해도, 내 공격에 그 역시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고.

그리고 동시에 나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가도 쉽게 끝낼 수 없는 상대라고.

물론, 나는 그런 테이커의 행동에서 아주 약간의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그 거대한 기세에 잡아먹히려던 나는 곧바로 전의를 바로잡았다.

이어진 행동은 지극히 간단했다.

테이커와 똑같았다.

하늘을 보고 누워있던 상태에서 허리와 등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났다.

“후웁-!”

싯 업.

물론, 내가 테이커처럼 완벽한 싯 업을 구사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숨을 몰아쉬면서 반대편에 선 테이커를 죽일 것처럼 노려볼 뿐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깜짝 놀랐다.

터져 나오는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목소리.

또한 반대편의 테이커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앉아있던 나는 그대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커에게 다가갔다.

코너에 기대어 있던 그가 복싱 스탠스를 취하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왠지 최강이라 불리는 사내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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