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경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해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레슬 임페리움다운 엄청난 반응이 나왔다.
바트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이 테이커 특유의 싯 업 무브를 사용했을 때는 좀 보기에 껄끄러웠지만.
테이커는 전혀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 뒤로도 신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팬들의 반응 역시 강렬했다.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거대한 돔에 챈트가 계속 이어졌다.
수십만 팬들이 테이커의 이름을 외쳤고, 고릴라 포지션의 분위기도 좋았다.
한 선수가 저렇게 압도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건, 그 창조에 개입한 그들에게 있어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 업계에 투신하고 경력을 쌓아온 이들 중에서는 과거, 한 번이라도 프로레슬러를 꿈꾸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에 치이고 좌절하면서 그 꿈을 포기했던 그들은 현재 테이커라는 존재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었다.
테이커는 그러한 선수였다.
모두가 선망하는 꿈의 대상.
거대한 덩치, 카리스마 있는 외양, 각본 소화력, 경기력까지.
그 모든 걸 가진, 그들 모두가 한때는 꿈꿨던 궁극의 프로레슬러.
그게 테이커였다.
바트가 호쾌하게 웃었다.
“좋아! 좋아!”
“와, 오늘 경기 완전 쩌는데요!”
“오디오 컨트롤 쉬지 말고 해!”
“카메라! 3번으로 돌리고!”
각 부서의 팀장들이 그 경기를 완벽한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나가는 가운데, 경기는 슬슬 중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테이커가 신을 링 아래로 내던졌다.
[Waaaaaaaaaaaggggghhhh!!]
그것만으로도 팬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테이커는 신을 아나운서 테이블 쪽으로 밀어붙이며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연속 펀치에 정신을 못 차리는 신.
그 안면을 힘껏 후려갈긴 테이커는 그대로 신을 아나운서 테이블에 눕혔다.
완전히 박살을 낼 기세였다.
[3……!]
링 위의 심판이 텐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지만 테이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나운서 테이블 위로 올라온 그가 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허리를 붙잡아 들려고 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버텨냈다.
팬들이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릴라 포지션에서 경기를 몰입하며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타이밍, 자신을 들려고 하던 테이커의 힘을 버텨낸 신이 고개를 힘껏 내저으며 온 힘을 다해 기합을 넣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쳤다.
“Take That Sh-t!! SIN!! GO!!”
경력 3년차의 각본팀 대리.
테이커가 위대하다는 건 안다.
직접 그것을 느끼기도 했다. 테이커는 분명히 그럴 만한 클래스의 선수였다.
이대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강의 존재로 남고 은퇴를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테이커를 쓰러뜨려 새 시대를 열겠다는 신의 주장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걸 원하지 않는 팬들도 있다.
그 역시도 그랬었다.
하지만 신은 전혀 개의치 않고 테이커를 쓰러뜨리기 위해 지금껏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적으로 돌아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기에 어느 샌가 신이 테이커를 쓰러뜨리는 광경이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그만이 아니었다.
물이 끓기 전 일렁거리는 수증기처럼, 경기장 가득 들어찬 20만의 관객 중.
극히 소수였지만. 신의 반격이 시작되려는 순간 숨을 삼킨 이들이 열화와 같은 환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지극히 소수였지만.
그 기세는 대단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와 같은 성원에 보답하듯 테이커의 팔을 꺾고 빠져나온 신이 찹을 갈겼다.
[Wooooooooooooo!]
휘청거리는 테이커의 몸.
바트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결과는 모두 알고 있다.
이 경기는 테이커의 승리로 끝난다.
그 결과가 마음에 들어 스스로 여기저기 퍼뜨린 탓에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몰입하게 되는 경기였다.
무려 30분이나 되는 경기 시간.
그렇기에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중반부는 비교적 느릿한 연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만큼 치열했다.
모두가 거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펀치를 갈긴 반동으로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난 신은 금방이라도 자리에 쓰러질 것처럼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쩌억-!
그는 테이커에게 슈퍼 킥을 갈겼다.
다리가 옆으로 쭉 뻗으며 테이커의 가슴팍을 힘차게 걷어찼다.
쥐어짜내는 듯한 연출.
[Uooooooooooooooohhhhh!!]
그렇기에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테이커가 무너지지 않았기에.
이어, 힘차게 뛰어오른 그가 테이커의 머리에 팔을 걸고 그대로 낙하했다.
DDT.
쿵-!
테이커의 머리가 아나운서 테이블에 처박히며 순간적으로 큰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테이블.
하지만 200kg이 훨씬 넘는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그것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뼈대가 휘어지고 있었다.
먼저 일어선 것은 신이다.
[Booooooooooooo……!]
거대한 야유가 뒤따랐다.
그 뒤를 이어, 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아나운서 테이블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야유가 뚝 멎었다.
뭐지?
바트 맥센은 이질감을 느꼈다.
일반적인 프로레슬링의 감정 변화가 아니었다. 팬들이 지금 순간적으로 신을 크게 걱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저 행동이 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로써 팬들의 감정을 끌어냈다.
숨을 몰아쉬며 일어선 신은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모두가 따라서 심호흡을 했다.
바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잘 만든 영화의 액션씬이 끝나고 사람들이 따라서 숨을 돌리는 것처럼.
말인즉슨.
모두가 지금 이 순간, 신이라는 선수를 주인공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바트 맥센 역시 거기에서 빠지지 않았고.
그리고 그건 모두 의도된 상황이다.
이어서 신은 테이블 위에 누워 있는 테이커를 돌아보고 링으로 올라갔다.
[9……!]
심판이 세던 카운트가 멎었고, 그는 곧바로 아나운서 테이블과 가장 가까운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테이커.
[U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다시금 탄성을 내뱉었다.
해설자들도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완전히 미쳤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심지어는 심판마저도 미친 짓 좀 하지 말라며 옆에서 뜯어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신은 개의치 않았다.
[안 됩니다! 신! 너무 위험해요!!]
[이 남자는 말릴 수 없습니다! 테이커를 끝장내기 위해 이 레슬 임페리움의 가장 위험한 순간에 서있습니다!!]
[그야말로 Man On Fire-!!]
그렇게 말한 순간.
불사조가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상하좌우로 회전한 신의 몸이 그대로 완벽하게 테이커를 덮쳤다.
콰앙-!
아나운서 테이블이 붕괴했다.
그리고.
캐스켓-테이커라는 최강의 선수에 대한 팬들의 염원도 동시에 붕괴했다.
[Oh My God!! Oh My God!!!]
해설자가 경악에 빠져 외치는 소리가 전파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 * *
사람의 인생에는, 분명 원하지 않아도 쌍욕이 나오는 순간이 몇 개인가 있다.
누군가 설사약을 탄 쿠바 샌드위치를 먹고 회사의 입단 테스트를 보다가 남들이 다 보는데 설사를 지렸을 때.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부모님이 연약해지고,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을 때.
내 꿈이 결국 무너졌던 순간에.
그리고 지금.
‘Co-k Su-king Juggernaut Bi-ch!!’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런 욕설을 속으로 삼키며 통증을 참는 것뿐이었다.
예상과 다른 게 하나 나왔다.
존나 아플 거라고 각오는 해뒀는데.
연습 때와 다르게 체력이 빠져서 아주 미묘하게 점프의 비거리가 짧아졌고.
결국 내 근육질의 복부는 원래대로 테이커의 위가 아니라 아나운서 테이블의 모퉁이에 힘차게 충돌해버리고 말았다.
식은땀이 질질 흘렀다.
실수로 혀를 씹어서 피가 흘러내렸다.
“■-! ■■■!! ■-!”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흐려진 시야로 고개를 든 나는 줄무늬 셔츠의 사내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판이다.
‘피아노인가 했네.’
개 같은 농담을 떠올려도 딱히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내장 어딘가가 박살 났을지도 모르겠는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존나 기분이 좋았다.
왜냐면 잘 들어갔으니까.
전 세계의 사람들이 보았으니까!
무너진 아나운서 테이블.
쓰러진 테이커가 보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나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그 소리는 전보다도 훨씬 커졌다.
[Booooooooooooooooooo-!!]
야유 역시도 따라왔지만.
“신, 움직이지 말아요. 일단 좀 상태를 보고 경기를 진행하는 걸로 하죠.”
“……불을 끈다고?”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저기, 지금 배가 새까맣거든요.”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근육이 파열됐는지 좀 보기 흉했다.
과연 이런 몸으로 안티 크라이스트를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한다.
반드시 해내고 만다.
“소방수는 나중에 오라고 해.”
이 경기장이 모두 불탄 다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이커 역시도 일어섰다.
힘차게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역시 그는 아직도 건재했다.
그리고 봐줄 마음은 없어 보였다.
숨을 몰아쉬며 서있자니 가까이 다가온 그가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던졌다.
반대편 바리게이트까지.
콰앙-!
힘차게 처박힌 나는 그대로 다시금 테이커에게 주도권을 내준 채 휘둘렸다.
그런 내게 응원의 목소리가 닿았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에게였다.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서로가 압도적인 반응을 얻어내며 동시에 강렬한 경기를 선보이고 있을 때에나 나오는 최고의 챈트.
영원히 싸워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영원히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테이커는 그런 나를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시금 링 위.
쩌억-!
테이커의 훅에 얻어맞은 나는 무슨 차에 치인 것처럼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입술을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일어서자 나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테이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한 번 힘차게 킥을 날렸다.
하지만 테이커가 그 킥을 붙잡고 이어 나를 한쪽 어깨로 힘차게 들어올렸다.
[Waaaaaaaaaaaaaaaggggghhhh!!]
환호하는 팬들.
그 기술이 나오려고 했다.
묘비를 꽂는 테이커의 피니시 무브.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내 몸이 그대로 거꾸로 내려와 테이커의 팔에 단단히 붙들렸고.
무릎을 들어 올린 테이커가 그대로 힘차게 나라는 이름의 묘비를 꽂았다.
투콰앙-!
지릿지릿한 통증.
거꾸로 선 상태에서 겨우 정신을 붙잡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테이커는 좌우로 흩어진 내 양손을 모아 가슴 위에 대고는 그대로 그것을 붙잡아 커버에 들어갔다.
마치 관에 들어간 듯한 모습으로.
[1……!!]
관객들과 심판이 카운트를 셌다.
거기에 분명 눈을 까뒤집고 위협적으로 혀를 내미는 특유의 무브까지 추가해 경기가 끝났음을 상기시키겠지.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상대의 정수리를 바닥에 꽂는 그 기술은 위험하고 그만큼 위상이 높았고.
WWF 역사상 킥아웃해서 커버를 벗어난 선수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2……!]
하지만 난 그걸 벗어났다.
몸을 있는 힘껏 비틀어내며 그대로 옆으로 돌아누워서 커버를 벗어났다.
내 그런 행동에 중심을 잃고 바닥 옆에 손을 짚은 테이커.
그 눈동자가 보였다.
“…….”
“허억, 헉…….”
검은색 아이라인을 그린 그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팬들 역시도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분명 이 시점에서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경기가 계속해서 이어졌으니까.
그리고 분노한 테이커가 나를 다시 한 번 자리에서 힘차게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 다시 어깨 위로.
[Uooooooooooooooohhhhhh!!]
두 번째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하지만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진 않는다. 그랬다간 분명히 지고 말 테니까.
테이커의 어깨에 들린 채로 있던 나는 그의 등을 타고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윽-!”
복부를 타고 내달리는 맹렬한 통증.
눈물을 찔끔 삼킨 나는 그대로 테이커의 등을 타고 내려와 로프 반동을 했다.
테이커가 뒤로 돌아섰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슈퍼 킥.
쫘악-!
테이커가 무릎을 꿇었다.
쓰러진 거목의 앞에서.
한 번 숨을 몰아쉰 나는.
[Waaaaaaaaaaaaagggggggghhh!!!]
엄청난 환호를 꿰뚫고.
테이커의 안면에 무릎을 차넣었다.
쩌억-!
그 몸이 쓰러졌다.
하지만 나 역시도 만신창이였다.
정신은 아찔했고. 무릎을 드느라 접혀진 복근이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끄윽…….”
나는 테이커를 향해 기어갔다.
심판이 상황을 살피는 동안 관객들이 우리 두 사람을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테이커는 일어나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바닥을 질질 기어간 나는 그의 가슴 위에 억지로 손을 올려놓았다.
심판의 카운트가 이어졌다.
팬들 역시도 함께였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