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79화 (279/634)

279.

테이커의 손이 번쩍 들렸다.

[Yeeeeeeeeeeeeeeaaaaahhhh!!]

아슬아슬한 순간에 커버를 벗어난 그를 향해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걸로 내 두 번째 피니시 무브인 슈퍼 킥 앤 러닝 니 콤보가 깨졌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이전까지의 상대들 중에서 이 콤보를 벗어난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테이커는 벗어났다.

내가 성명절기인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에서 벗어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곧바로 테이커의 무릎을 발로 찍으며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달리 확실하게 셀링을 하면서 표정을 찌푸리는 테이커.

드디어 그 무적 기믹이 깨졌다.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그런 우리들의 싸움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20만 명의 관객들 모두가 이 광경에 압도되어 한마디도 못했다.

오디오에 잡히는 건 나와 테이커가 기술을 주고받는 소리와 기합, 그리고 고통에 찬 비명뿐이었다.

따라서 이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논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와 테이커는 그런 상황에서 서로의 눈치만 보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경기를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정말로 묘한 감각이었다.

무릎을 짓밟히던 테이커가 내 다리 뒤쪽을 힘차게 후려쳤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나는 곧바로 테이커에게 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 헉……!”

“신……!”

그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었다.

정신을 번쩍 차린 나는 반대로 테이커의 목을 움켜쥐었다.

꽈악.

거기에 눈썹을 찡그린 테이커가 이어 내게 다가오며 복부를 걷어찼다.

“컥!”

몸이 반쯤 허공에 들렸다.

하지만 난 씨익 웃었다.

그로서 테이커가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정석대로라면 내가 테이커의 분노와 진심을 끌어내도 결국 한 끝 차이로 그가 승리하는 결말이겠지.

하지만 이건 그런 땀내 나는 하이틴 청춘 스포츠물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세계를 부수는 이야기지.

“크아아앗-!”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테이커를 추격하면서 나는 공격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유효타가 되지는 못했고, 테이커의 힘에 번쩍 들려 몇 번이고 메쳐지며 계속 당하기만 했다.

그래도 일어났다.

“Come On!”

[Waaaaaaaaaaaaaagggghhh!!]

환호가 쏟아졌고.

테이커가 당황해 돌아보았다.

그 틈을 타 달려든 나는 바닥을 미끄러지며 테이커의 무릎을 찼다.

“큭?!”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테이커.

그 다리를 붙잡고 일어선 나는 곧바로 세 번째 기술을 준비했다.

하트 패밀리의 영혼.

샤프 슈터.

캐나다에서 그들이 환호를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겨울 산장 오두막.

외롭게 서있던 그렉 하트.

그와 화해를 한 존 마이클스.

두 사람이 내 등을 받쳐주었다.

하지만, 테이커는 더 거대했다.

“……!!”

순간 허리를 들어 올린 테이커가 내 머리를 붙잡고 힘차게 당겼다.

테이커의 다리가 삼각형을 그렸고 내 목울대가 거기에 닿아 조여졌다.

“크, 헉……!”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고플라타.

혹은 트라이앵글 초크.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정강이뼈에 상대방의 목을 대고 조르는 기술.

테이커는 그 기술에 ‘헬즈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용했다.

[Waaaaaaaaaaaaagggghhh……!]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는 팬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나는 이내 주먹을 들어 테이커의 무릎을 내리쳤다.

“크하악?!”

비명을 내지르는 테이커.

그동안 축적된 대미지가 터졌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는 걸 느끼며 계속해서 테이커의 무릎을 쳤다.

내가 먼저 기절하느냐.

그가 먼저 기술을 푸느냐.

맹렬하게 돌아가던 룰렛이 이어서 후자를 가리켰다.

“후우……!”

참았던 숨을 토해낸 나는 곧바로 다시 테이커의 다리를 붙잡았다.

기술은 순식간에 들어갔다.

테이커의 몸이 뒤로 돌아갔고, 나는 단단하게 엮어 붙잡은 그의 다리를 당기면서 기술을 걸었다.

샤프 슈터.

테이커가 몸부림치며 저항했고 팬들의 환호와 야유가 뒤따랐다.

탭이냐. 아니냐.

모두가 몰입해 경기를 지켜보았다.

* * *

뭔가가 이상하다.

가장 먼저 그런 이질감을 느낀 것은 바로 버닝콩의 링 프로듀서였다.

경기가 흘러가는 게 그랬다.

신이 결국 패배하는 경기 구성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샤프 슈터가 계속 이어졌다.

경기의 후반부로 이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타이밍이었다.

[크아아아아악-!!]

[신이 테이커를 꽉 잡았습니다! 지정사수(Sharp Shooter)가 전설의 머리를 조준하고! 무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설마요! 테이커는 탭 아웃 하지 않을 겁니다! 죽음의 계곡에서 돌아온 장의사를 너무 얕보시는군요!]

[하지만 신 또한 만만찮은 상대입니다! 저 선수는 지금까지 여러분 모두에게 자신을 증명해왔습니다!!]

[제기랄! 전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결국, 링 위에 서있을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군요!]

[테이커냐! 신이냐!!]

바로 그때, 팬들의 환호가 터졌다.

[Waaaaaaaaaaaaaggggghhh!!]

샤프 슈터에 걸린 채로 바닥을 아득바득 기어간 테이커가 기어코 로프를 붙잡아 서브미션을 풀어냈다.

“좋아!”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바트.

그 모습을 보자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다 싶어졌다.

그런 미친 일이 일어날 리도 없을 테고.

* * *

샤프 슈터가 로브 브레이크로 풀린 뒤, 나는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폐가 터질 것 같았다.

복부에 감각이 아예 사라졌다.

테이커도 쉽사리 일어서지 못했고, 심판이 텐 카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들이 나의 이름을 외쳐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Taker!]

테이커의 이름도 함께 외쳤다.

과거의 한 경기가 생각났다.

락콜드 스티비 스틴 vs 그렉 하트.

서브미션 매치.

1997년의 레슬 임페리움.

당시 악역이었던 락콜드는 야유를 받았지만, 필사적인 경기 내용으로 종국에는 압도적인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락콜드의 상대로서 그렉 하트가 점점 야유를 받는 역할을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경기에서 두 선수의 선악이 뒤바뀌는 역사적인 더블 턴 매치였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테이커는 1997년의 그렉처럼 날 밀어주는 대신 이 경기가 압도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

그렇기에 감사를 느꼈다.

지금 내가 이 위치에 올라선 것이 순전히 내 실력 때문이라고, 어디 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로프를 붙잡고 일어섰다.

반대편의 테이커도 그러했다.

드라마틱한, 경기의 최후반부.

나와 테이커는 각자의 위치에서 천천히 걸어와 링 중앙에서 만났다.

“몸은 좀 어떠냐.”

“환상적입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했다.

테이커는 대답하는 대신 내 얼굴에 주먹을 한 방 힘차게 후려갈겼다.

쩌억-!

그것을 버텨내고 반격했다.

[Yeah!]

[Yeah!]

[Yeah!]

[Yeah!]

환호만이 잇달았다.

이 경기장의 모두가, 아니, 전 세계의 모두가 우리에게 응원을 보냈다.

테이커가 내게 이기기를.

내가 테이커를 이기기를.

모순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다시 말해, 지금 경기를 보고 있는 팬들은 어떤 결말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이야기였다.

설령 약간의 논란과 구설수는 나올지언정.

우리의 경기는 그러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은 전통적인 피니시 무브 공방전이었다.

서로가 한 방이면 확실하게 쓰리 카운트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태.

테이커가 나를 들어서 한쪽 어깨에 짊어지자 팬들이 놀라 일어섰다.

[Uoooooooooooooooohhhhh!!]

물론 나는 곧바로 테이커의 등을 밀어내며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어지는 슈퍼 킥.

쩌억-!

날카로운 타격에 코너까지 밀려난 테이커를 추격한 내가 미들 로프에 발을 걸치고 그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어, 테이커는 나를 양어깨 위에 태우며 앞으로 움직였다.

“큭?!”

파워 밤 포지션에서 라스트 라이드가 나오려는 찰나, 나는 몸을 비틀어내며 겨우 그 위에서 빠져나왔다.

팬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공방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직 나에게는 하나가 남았다.

프로레슬링 업계의 정점에 선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만든 기술.

안티 크라이스트.

그런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테이커를 던져 로프 반동을 하게 만들자 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링 중앙에 선 나는 테이커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자세를 잡았고.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린 테이커가 빅 붓으로 내 턱을 차면서 벗어났다.

순간 긴장이 풀렸던 팬들은 이어 테이커가 날 다시 어깨 위로 들어 올리자 마지막으로 크게 목소리를 냈다.

다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순간에 아주 조금의 힘을 쥐어 짜내서 빠져나왔다.

쿵!

테이커의 뒤쪽으로 착지한 나는 온 힘을 다해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긴 경기 시간에 우리를 계속 지켜보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심판.

수십만의 관객들.

전 세계 수천만의 시청자들.

고릴라 포지션의 동료들.

나를 도와주었던 선배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나의 최종 목표, 시나.

나의 숙적, 바트 맥센.

My Love, 티파니 맥센.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난 지금 살아있다고.

로프에 몸을 크게 걸친 테이커가 이어서 힘차게 나를 향해 달려왔다.

복근의 통증은 없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나는 이어 힘차게 테이커의 몸을 붙잡고 들었다.

그가 달려드는 힘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회전한 뒤, 온몸의 코어 근육을 사용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수직으로 서는 테이커의 몸.

역십자의 형태로 떨어졌다.

투-콰앙-!

링 바닥이 박살 날 듯한 소리.

테이커의 몸이 바닥에 수직으로 선 상태에서 이어 천천히 쓰러졌다.

그걸 안전하게 받아낸 나는 곧바로 테이커의 몸을 누르고 커버했다.

동시에 이야기했다.

“감사합니다. 테이커.”

“잘 써라.”

그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GGHH!!]

귀가 찢겨져 나갈 듯했다.

쓰리 카운트를 세고 벌떡 일어나 나의 승리를 선언한 심판이 순간적으로 의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승자의 테마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상황이었다.

이건 예정된 시나리오가 아니니까.

승자의 테마로 준비되어 있었던 건 테이커의 음악이었고, 나의 승리는 각본을 벗어난 슛(Shoot)이었다.

거기에서, 원래대로라면 나는 살짝 당황하는 연기를 해서 이어질 바트의 분노로부터 벗어날 예정이었다.

이 슛에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 테이커의 실수가 있었고 그걸 모르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승리를 챙겨가게 되었다.

……그게 우리의 계획이었지만.

나는 거기에 다시 한 번 내 개인적으로 슛을 먹이기로 결정했다.

왜냐면, 일은 같이 저질렀는데 책임을 저쪽만 지는 건 열받으니까.

그리고 또한.

레슬 임페리움의 엔딩이니까.

그것도 역사상 최고의 엔딩.

테마는 나오고 있다.

[WAAAAAAAAAAAAAGGGHHH!!]

나의 혁명을 용인해준 팬들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일어난 나를 테이커가 약간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신?”

“악수라도 하죠.”

“뭐?”

“역사적인 순간 아닙니까.”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테이커가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나 역시도 한계였다.

로프를 붙잡고 겨우 일어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다시 다가섰다.

음악은 계속 나왔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나와 테이커는 악수를 나누었다.

[YEEEEEEEEEEEEEAAHHHHH!!]

그리고 거기에 맞춰.

회사에서는 이 환상적인 엔딩을 따라와 겨우 내 테마를 틀어주었다.

[UH-OH-! OH-OH-OH-OH-!!]

팬들이 노래를 따라서 불렀다.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테이커를 바라보고 있자니 질문이 들어왔다.

“이제 어쩔 셈이냐?”

“뭐가요?”

“너도 공범이라는 사실을 시인했는데. 바트가 앞뒤 재지 않고 해고라도 한다면 어쩔 셈이냐?”

“…….”

“내 뒤를 이어 새 시대를 열겠다는 말이, 설마 거짓은 아니었겠지.”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사실.

이게 오히려 바라던 상황이었다.

“전 새 시대를 열 겁니다.”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야 전환점을 거쳤단 느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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