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83화 (283/634)

283.

아버지가 사오라고 말씀하셨던 게 무슨 머신이었더라.

그런 생각을 하며 공항에서 내린 나를 반긴 건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거기다 어쩐지 그들이 보내는 환호성이 미국 사람들과는 달라서.

South Korea.

부모님의 고향이자 나의 근원.

처음 밟아보는 머나먼 조국, 나는 어색한 기류를 느끼고 있었다.

일단 졸렸다.

내 내한은 JBS라는 한국 대형 방송국의 주관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난기류를 뚫고 날아오느라 잠을 못잔 상황에서 조금 피곤했지만.

나는 프로 중의 프로.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새된 비명.

기자들이 마구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나는, 거의 한 레슬 임페리움 급의 인파가 모인 상황에서 경호원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잠깐만요! 지나갈게요!”

“길 좀 터주세요!!”

“신! 신!!”

“사랑해요!!”

“여기 좀 봐줘요!!”

“사인해주세요!!”

이러다 끼여서 죽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 속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공항 바깥으로 겨우 빠져나갔다.

날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타 겨우 숨을 돌리고 있던 나는 사인을 못해준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날 보고 싶어서 이렇게 모인 사람들인데, 대응을 해줄 수가 없다니.

그럼에도 내가 여기서 잘못 행동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이 김포공항이 만들어진 이후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하니까.

거기다 어제 저녁부터 모인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공항 자체의 혼잡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그 자리에 오래 있으면 오히려 더 민폐인 상황이다.

‘나중에 팬 미팅이 있으니까.’

그러나 거기에서조차 다 사인을 해줄 수도 없었다.

여러모로 슬픈 상황이었다.

전생에는 제대로 된 팬 하나 없던 나였던 만큼 이런 상황을 겪게 되자 약간 죄책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자니 내 옆에 따라서 앉아 있던 사내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신 선수, 인기가 대단하신데요.”

“한국말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 하실 줄 아세요?”

“예, 부모님께서 한국말을 쓰셔서 어려서부터 같이 배웠거든요.”

그렇게 대답한 나는 차 지붕에 열리는 공간이 있는 걸 알아차렸다.

출발한 차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공항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거, 열리나요?”

“아, 열어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씨익 웃은 나는 지붕이 천천히 열리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런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나는 그대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 * *

듣자하니, 나의 내한은 전국가적인 이벤트로 여겨진다는 모양이었다.

6일간의 체류.

스케줄이 가득 차있는 상황에서 나의 동선 하나하나가 감시를 당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함께 온 S&T의 팀원들에게 브리핑을 받으며 나는 계속해서 행사를 진행했다.

일단 호텔에 도착해서 좀 쉬고 저녁부터 이어진 것은 기자회견이다.

거기에서 좀 재미있는 질문을 여러 가지 받을 수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았다.

[김치 좋아하시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자주 먹어왔고, WWF 선수들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에 기뻐하는 사람들.

사실 회사 친구들은 김치만큼은 영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오튼은 전에 데려갔더니 김치를 빵에 발라서 먹을 정도로 마니아가 되었으니 거짓은 아니지.

[연인이 있으십니까?]

“그녀는 이제 아내에 가깝죠.”

[평소 뭘 하고 지내시나요?]

“일과 일, 그리고 일이죠.”

[몸매 관리의 비결은?]

“맥주 먹고 늦게 자면 됩니다.”

그렇게 유쾌한 대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나라는 개인을 국가적 영웅으로 생각하면서 흥미를 가지는 분위기.

그게 솔직히 좋기도 했고.

이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한 기자가 건넨 질문은 꽤나 흥미로웠다.

[WWF 한국 방송의 해설자를 맡고 있는 설민수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테이커의 연승을 끊으셨던데. 이후 행보에 대해서 혹시 조금이라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좀 전문적인 질문이다.

확실히 현재 미국 내를 비롯해 전 세계의 프로레슬링 팬들이 느끼는 가장 큰 궁금증은 그것일 터였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다른 질문을 해주시죠.”

[아, 실례했습니다.]

“아뇨, 오히려 지금까지 질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듭니다.”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기자 역시도 미소를 지었다.

[부상 부위는 괜찮으신가요?]

“회복에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그건 물론 거짓말이었다.

내 배는 멀쩡해졌고 내장 쪽에 다친 것도 없이 완벽한 상태였다.

하지만 일단 회사 측과 방출 통보를 언제 내릴지 조율 중이라서.

확실히 전문가다운 질문이었다.

기자 회견이 끝난 이후에는 또 예정된 행사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팬 미팅과 뉴스 데스크 인터뷰.

인디부터 시작해 내 커리어를 담아낸 특별 편성 프로그램 출연까지.

또 호텔에 돌아와서는 운동을 하는 모습과 자는 모습까지 일일이 촬영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충실히 알려주었다.

모두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하지만 즐거웠다.

내가 해온 일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 나라에서도 이렇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구나 싶어져서 말이다.

물론 나의 뿌리가 한국인 만큼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는 거겠지.

하지만 개중에서도 내가 인상 깊었던 건 사인회 때 자신도 프로레슬러가 될 거라며 말했던 소년이었다.

이름이 조정호였던가.

눈빛이 살아있는 게 이후로 멋진 선수가 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됐다.

그렇게 4일째.

목요일.

오늘은 또 한국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하는 무슨 예능 프로그램에 하나 출연하기로 되었는데.

그 데이터를 받아본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안도전?”

Shame Challege의 옆에 적힌 한국어를 알아본 내가 대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재미있는 이름이구나 싶어서.”

무엇이든지 도전하는데 하다가 무안해지고 마는 여섯 남자의 계속되는 도전을 담아낸다!

오늘 그들이 맞이하는 건 한국인들의 영웅!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가고 있는 남자! 미국에서 가장 섹시한 무비 스타이기도 한 그!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장차 그렇게 될 거지만 말이다.

피식 웃은 나는 꽤나 재미있는 촬영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거대한 실내 체육관.

범프 링도 그렇고, 시설 자체는 낡았지만 그 위에 서있는 여섯 명의 남자를 보자니 즐거울 것 같았다.

나에게 레슬링을 한 번 배우고 도전해보자는 게 오늘 방송 내용인데.

사실 상 개그 프로그램 같았다.

여섯 명 다 우스꽝스러운 프로레슬러 분장을 한 게 재미있었다.

“자! 오늘 저희가 신을 만나게 될 건데요! 저희 무안도전이 과연 프로레슬링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야야야! 프로레슬링 그거 뭐 별거 있다고 우~씨!”

“시청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메리칸 드림! 미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 신이 등장합니다!!”

“와아아아아!!”

“신~~~!!!”

제일 작은 남자가 특히나 요란하게 춤을 추면서 나를 환영해주었다.

링 위로 올라간 나는 온갖 오두방정을 떨며 환호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촬영 전에는 다들 따로 모여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들 역시 프로로군.

그렇게 생각하며 링으로 올라가자 가장 작은 남자가 악수를 청해왔다.

“신!!”

“야야야! 비켜!!”

그리고 그 뒤쪽에 서있던 날카로운 눈의 남자가 다가왔다.

“신! 신! 아임 락콜드.”

자기 머리를 가리키는 남자.

안타깝게도 탈모가 진행 중이다.

그러자니 그 옆의 어색한 남자가 다가와서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헤이! 헤이! 신! 암 유얼 빅 팬!”

“아~ 이 뚱보, 뭘 해도 어색하네!”

옆에 서있던 머리 큰 남자가 어색한 남자를 밀치며 다가왔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다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한국말로 하셔도 돼요.”

“와~ 한국말 할 줄 아세요?”

“잘합니다.”

무리의 중심에 선 나는 안경 남자의 진행에 따라 인사를 나눴다.

“그래도 저희 이름 기억하기 힘드실 테니 별명으로 불러주세요!”

그리고 설명이 이어졌다.

어색한 남자는 뚱보.

머리 큰 남자는 헬멧.

안경 남자는 메뚜기.

키 작은 남자는 꼬마.

노란 머리의 남자는 외국인.

그렇게 소개가 이어지자니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거성.”

“거성?”

그건 무슨 말이지?

“빅 스타.”

“아아, 나와 같네요.”

“에이~~! 어떻게 저 형이 신이랑 같아요! 거성은 무슨, 흉성이지!”

“질투하지 마!”

호통을 내지르는 거성.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었다.

좀 웃긴 상황이 많이 나왔다.

갑자기 날 두고 콩그레추레이션~ 하면서 춤을 추거나 하지를 않나.

진행자로 보이는 메뚜기가 그걸 또 수습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외국인이 물었다.

“시나! 시나랑 친해요?!”

“시나가 제 제자죠.”

“와아아!! 시나랑 친하대!!”

“에이, 당연히 친하지!”

“테이커! 테이커는 알아요?!”

“얼마 전에 같이 경기했잖아!!”

“마지막 기술이 완전 멋졌는데!”

“그거 뭐죠? 그거?”

“아, 안티 크라이스트요?”

“한번 나한테 써봐! 컴 온!”

거성이 다가왔다.

하지만 난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 프로레슬링이 위험하죠!”

메뚜기가 수습하고.

다시 주변의 바보 캐릭터들이 상황을 티키타카로 쳐나가기 시작했다.

개중에서도 뚱보는 조용했지만.

“저희도 프로레슬링을 해서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까 했었는데!”

“누가 제일 잘할 거 같아요?!”

“글쎄요. 이 분?”

나는 뚱보를 가리켰다.

소외된 플레이어를 돋보이게 해주는 건 프로로서 당연한 소양이다.

그러자 거만한 표정을 짓는 뚱보.

“왜요? 왜요?”

“왜 저 형이야~!”

“몸이 단단해 보여서요.”

“에이, 다 살인데!”

모두가 반발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좋은 코미디 쇼가 이어졌다.

“그래도 역시 훈련은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해보는 편이 좋겠죠.”

“그럼 만약 나중에 무안도전에서 레슬링을 한다면 혹시 코치로 와주실 생각이 있으신지 살짝…….”

“아, 물론 와야죠.”

“와아아아아아아!!”

“돌아! 돌아!!”

그런 대답을 듣자니 다들 기뻐하며 링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따라서 돌았다.

* * *

그렇게 한국에서의 일정을 끝마친 뒤, 나는 무척이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다행히 원하던 건 다 이뤘다.

돈도 받을 만큼 받았고, 한국에서의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로레슬링이 대중화되어있는 일본에서도 내 인기는 여전히 좋았다.

비록 공식적으로 방문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팬들이 나와서 나를 반겨주었다.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출연 요청을 받았고, 실제로 만나보고 싶은 선수들도 물론 엄청나게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면 프로레슬링 시장이 형성되어있는 일본이라면 내가 딱히 한국처럼 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분명 중계권을 사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슬슬 질척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은 묘하게 유황 냄새가 나는 지역이 많았고.

그렇게 일본에서 이틀 정도 편하게 휴식을 취한 나는 미국을 떠나 여기 정착했다는 남자를 찾아갔다.

얼마 전 아내를 잃은 뒤, 선수로서의 커리어도 끝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이곳에 정착한 남자.

WWF에서도 활동을 했지만 일단은 일본 단체 쪽에서 더 많은 활동을 했던 레전드급의 프로레슬러.

그는 현재, 다 스러져가는 작은 아파트에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앞에 도착한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초인종을 눌렀다.

찌르르르르.

새가 날아가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문 위의 먼지가 우스스 떨어졌고.

문이 열리고 뒤에서 나온 건.

거대한 덩치의 백인 남자였다.

나와 비슷한 키였지만, 앞뒤로 거의 네 배 가까이 넓은 덩치.

사나운 시선.

“なんだ。”

“영어로 하시죠.”

나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너는…….”

날 알아보는 남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테이커의 연승을 끊어낸 남자가 이 오지까지 나를 찾아올 줄이야.”

다행히 배척을 받지는 않았다.

내가 나름대로 그에게 프로레슬러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뜻일까.

빅 밴 베이다.

주로 일본 쪽에서 활동하며 최강의 외국인 악역 레슬러로서 그 위용을 과시했던 거친 사나이.

황제 전사.

코끼리와 비슷한 마스토돈 가면을 쓰고 나와서 어깨에서 연기를 분출하며 위용을 과시하는 그 모습은 확실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물론,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은 상당히 빈약해서 WWF에서는 그다지 중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히 내가 만들 단체에 힘을 실어줄 인물이 분명했다.

아, 선수로서는 아니었다.

“무슨 일로 왔지?”

“저희 팀의 링 프로듀서를 해주셨으면 해서 찾아왔습니다.”

“……흥미 없다.”

“몸, 안 좋으시잖아요?”

내 말에 움찔 떠는 베이다.

현재 꽤나 나이를 먹은 이 영감은 몸을 사리지 않는 레슬링과 약물 투여로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돈은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고.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설에 대한 예우.

그리고 그 능력을 후세로 이어나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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