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인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현재 GCW의 지분은 모조리 다 바트 맥센의 ‘팀’이 보유하고 있었다.
바트와 그 아래의 부하들.
존 로이타스처럼 회사에 소속되어서 바트에게 목줄이 쥐여진 자들.
그렇기에 바트의 명령을 듣고는 우리의 인수에 별말 없이 자신들이 가진 지분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것저것 복잡한 계산이 있었지만, 그건 우리 티파니 누나가 해결했고.
TV방영권, 단체경영권, 브랜드 저작권을 포함해 GCW를 경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권리를 넘겨받았다.
여기에서 임직원들의 처우는 따로 협의를 했고.
GCW에 소속된 직원들은 모두 우리를 따라오기로 했다.
반대로 WWF와의 미래를 바라는 선수들은 80퍼센트 이상 오하이오 주의 다른 산하 단체인 OVW로 넘어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위의 여러 권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브랜드 저작권’이었다.
이 브랜드가 가진 그동안의 역사와 권리를 모두 넘겨받는다는 것.
그로 인해 우리는 가장 가지고 싶었던 ‘GCW의 역사’를 확보한 채 터너와의 거래에 나서게 되었다.
GCW가 무엇인가.
남부의 심장과도 같았다.
산하 단체가 된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많은 사람들이 잊었지만.
“분명히 큰 도움이 되겠죠.”
거래를 성사시킨 뒤.
GCW 사무실.
티파니와 바쿠, 할리, 헤이건이 모인 가운데 나는 그렇게 차근차근 계획에 대해서 설명을 해나갔다.
2007년 6월.
2개월 새 많은 게 바뀌었다.
“그게 왜……?”
“체드 터너는 대체 누구냐?”
“TBS의 사장이요.”
“그 사람 이야기가 왜 나와?”
“GCW를 팔아야 하니까요?”
“그건 또 무슨…….”
“자, 일단 그전에.”
나는 손뼉을 쳤다.
파트너인 티파니를 제외하고.
“저는 여기 모여 계신 세 분이 절대 외부로 이 일을 유출하지 않는다는 걸 믿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역시, 날 믿는구나.”
“어?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여기 망하면 다 갈 곳이 없잖아요?”
“…….”
“…….”
바쿠가 시무룩해졌다.
오랜만에 같이 일을 하게 되어서 꽤나 들뜬 모습이었지만, 이런 문제는 확실히 해둬야만 한다.
나는 불완전 요소를 믿지 않는다.
인간의 신뢰는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에 퇴로를 차단한 상태에서 그들을 묶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새 단체가 출범할 겁니다.”
“뭐……?”
“신뢰할 수 있는 소스냐?”
“예, 그걸 증명하기 위해 저는 지금 사온 가격의 세 배에 GCW의 저작권을 팔아넘기려고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상징성이 필요하니까요.”
반 WWF 정서.
현재 시나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전체이용가 시대에 대한 반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상징성이었다.
“물론, 제가 랙다운에서 잘 커버를 치면서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상승 중이죠.”
그렇기에.
“제가 WWF를 나온다면 그쪽에서는 반드시 출범을 시킬 겁니다.”
왜냐면 기존의 팬들을 계속 붙들어놓고 있던 내가 사라졌으니까.
기존의 스타들을 모아서.
동시에 과거의 프로레슬링을 재현하면서 WWF를 추격하게 된다.
“그게 ACW입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군.”
“그럼 올 때 증거를 가져오죠.”
나는 싱긋 웃으며 일어났다.
“무슨 증거?”
“저희가 이번에 GCW를 구매하면서 든 총액이…… 얼마 정도지?”
“2,500만 달러에요.”
“그 세 배.”
7,500만 달러.
“황금 수표를 가져와보죠.”
물론 터너는 응할 터였다.
ACW의 출범이라는 빅 이슈를 전혀 모르고 있는 바트 맥센에게는 그저 작은 산하 단체에 불과했지만.
체드 터너와 우리에게는 달랐다.
* * *
거래는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싱긋 웃은 티파니가 애써 웃고 있는 체드 터너와 악수를 나누었다.
거래는 그녀가 주도했고, 7,500만을 넘겨 8,200만에 권리를 넘겼다.
이걸로 자그마한 단체를 세우는데 필요한 자금을 보강할 수 있으리라.
GCW라는 단체의 상징성.
그건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반 WWF 정서를 끌어 모으고 자신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탄다는 확실한 프로파간다일 테니까.
문제는 전생과 달리 체드 터너가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는 거였다.
바로 나였다.
물론 거절했다.
“신, 후회하지 말게나.”
이대로 굴욕만 맛보고 물러갈 수는 없다는 듯 터너가 이야기했다.
그들이 제안한 연봉은 엄청났다.
2,000만 달러.
거기에 1년에 150일 출장.
각본 통제권 부여.
그 외 여러 가지.
환상적인 제안이었지만, 나는 딱히 거기에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나는 말했듯 돈을 벌기 위해서 프로레슬링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그 임팩트가 컸는지.
돌아가는 리무진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상태에서 티파니와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역대급의 제안인데요.”
“그렇지.”
만약 이 거래가 성사되었다면 나는 프로레슬링 업계의 연봉 테이블 자체를 크게 키워버렸을 터였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 정도로 붙잡고 싶었던 거다.
“체드 터너는 나를 반 WWF 정서의 중심에 세우고 싶었던 거지.”
“테이커의 연승을 끊기도 했고. 만약 여기서 계약을 진행했다면 아버지는 뒷목 잡고 쓰러지시겠죠.”
“그래,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지.”
“자기 힘으로 싸우고 싶어서?”
“그것도 있고.”
나는 잠시 뺨을 긁적였다.
“나는 부탁을 받았으니까.”
“……테이커에게?”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껏 나를 믿어준 선수들에게.
순간적으로 그 경기가 떠올랐다.
레슬 임페리움.
메인이벤트.
연승이 깨진 바로 그 경기.
왠지 그때 느꼈었다.
나는 프로레슬링을 사랑하지만.
역시 그래도 그 안에는 WWF라는 단체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 있다고.
부커-리.
닉 플레어.
게이브 바티스타.
랜스 오튼.
트리플H.
그렉 하트.
존 마이클스.
러셀 하트.
에디 비테레로.
케인 맥센.
캐스켓-테이커.
내게 도움을 주었던.
내가 도움을 주었던.
시대를 새겨왔던.
시대를 새겨나갈.
모든 선수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
“……약속했으니까.”
그들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난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
그리고 돌아간다.
바로 그때였다.
“그래요.”
차 옆자리에 앉아 있던 티파니가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다.
“우리 꼭 돌아가요.”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지금껏 함께해온 동료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나를.
그렇게 한동안 눈을 감고 있자니 티파니가 뭔가를 떠올린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응?”
“WWF와 협의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그냥 방출 통보로 끝나나?”
“아니, 쇼에 출연하기로 했어.”
“그럼 어떻게 되죠?”
“뭐, 그냥 보내지는 않겠지.”
이 업계가 원래 그랬다.
회사를 나가는 선수는 반드시 잡을 해주고 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딱히 경기에서 지는 게 아니더라도 세그먼트에서 흠씬 두들겨 맞은 뒤 굴욕적으로 퇴장을 한다던가.
나 역시도 그럴 테지만.
그전에 일단.
지금쯤 또 혼란을 겪고 있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지 싶었다.
* * *
그렇게 나는 방출 이벤트(?)를 위해 랙다운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행히 케인이 배려를 해줘서 누군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는데.
그 인물이 참 걸작이었다.
공항 앞.
팬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지긋지긋한 얼굴을 발견했다.
“……너냐?”
“야, 신수가 훤한데?”
랜스 오튼.
“뭐냐. 2개월이나 쉬고.”
모르는 건가.
시치미를 떼는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싶어서 피식 웃은 나는 스포츠백을 뒷좌석에 던지고 녀석이 운전하는 세단에 몸을 실었다.
차량이 야자수가 펼쳐진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천천히 나아갔다.
“나간다면서.”
“어, 그렇게 됐다.”
“뭐하려고? 영화배우?”
“아니, 새 단체 만들 거야.”
“캠핑 버스는 어쩌고.”
“글쎄, 너 쓸래?”
“너는?”
“우리 단체는 딱히 자주 이동할 예정은 아니라서. 아마 캠핑 버스는 네가 가지고 있어도 될 거 같은데.”
“그걸로 돈이 되겠냐?”
“방법은 있어.”
“재미있겠는데.”
“뭐야, 오고 싶냐?”
“그래도 되고.”
“……진심이냐.”
“연봉만 좀 챙겨주면.”
녀석이 날 돌아보았다.
“너랑 또 레슬링…….”
“야, 이 등신아! 할아버지!!”
내가 그 고개를 다시 돌리게 했다.
끼이이익!!
하마터면 할아버지를 칠 뻔했다.
하지만 크게 회전하며 할아버지의 옆을 빠져나온 오튼은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운전을 해나갔다.
“아, 운전 중이지.”
“무, 무슨 생각이야!!”
“아니, 좀 생각을 해봤는데.”
“멀티태스킹 안 되냐!!”
“아, 그 고생하며 돈 버느니 너랑 단체 경영하면서 소소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
“나 단체 경영하면 모든 경기에 압정 박히는 범프 넣을 생각인데.”
“그냥 여기 있을게.”
오튼이 말을 바꿨다.
거기에 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인마. 시나 좀 잘 돌봐줘.”
“내가?”
“나랑 다니면서 경험치 좀 쌓았잖냐. 악역으로서 시나가 아이콘이 될 수 있게 도와주란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 오튼을 후보로 생각하기는 했다. 분명 녀석은 내가 옆에서 케어를 해주면 전생보다 훨씬 더 높은 레벨이 될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해뒀다.
녀석은 여기에서 시나의 라이벌로 러셀과 함께 활약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인마. 캠핑 버스는 깨끗하게 좀 써. 앞으로 네가 마음에 드는 놈들 태우고 다녀야 하잖아.”
“혼자 타고 다닐 생각인데?”
“괜찮겠어? 유지비랑 나한테 매달 주는 돈만 해도 장난 아닐걸?”
“……뭐야?! 주는 거 아니었어?”
“내가 자선사업가냐?”
나는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그 말에 툴툴거리는 오튼.
그렇게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우리의 마지막 로드 트립이 이어졌다.
……신 앤 오튼의 엑설런트 어드벤쳐도 아니고, 존나 감수성 넘치네.
나 이런 거 싫어하는데.
* * *
정정한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경기장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선배들에게 불려가 큰 호통을 들었다.
특히 화가 난 건, 내가 메인 쇼로 콜 업 된 이후로 줄곧 함께 일을 해오며 날 챙겨주었던 부커-리였다.
“왜 말을 안 한 거냐.”
“나가면 어떻게 할 건데.”
“돌아올 수는 있겠냐?”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들 날 좋아한다는 증거니까.
“저기, 다들 진정하시고.”
그렇게 어색한 웃음과 함께 상황을 천천히 수습해보려던 찰나였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의 최후를 알리는 만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
락커룸 안으로 반쯤 몸을 내민 테이커는 다른 선수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를 바깥으로 불러냈다.
그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최종 보스가 나타났다.
나에게 미래를 맡긴다면서 잡까지 해줬는데 회사를 나간다니.
테이커는 분명 화가…….
“설명해봐라.”
내가 잘못 판단했군.
음료수까지 하나 가져와서 건네는 모습이 일단 지금 내 말을 침착하게 들어보려는 것 같았다.
거기에 슬쩍 뒤쪽에 있던 케인 맥센까지 합류해, 나는 두 사람 앞에서 지금까지의 일을 털어놓았다.
“모두 제 의도입니다.”
“회사를 나가는 게?”
“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조만간 업계 자체에 거대한 변혁이 일어날 예정입니다.”
“넌 나에게 분명히 새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나는 널 밀어준 거고.”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어떻게 된 거냐.”
“분명히 지킬 생각입니다. 테이커. 저를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어떻게?”
“새 단체를 만들어, 이 업계 자체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생각입니다.”
“새 단체……?”
“설마 쟈니 에이스가 그렇게 된 게?”
케인이 놀라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들이 만들 신생 단체에 영입할 예정입니다.”
“너와, 티파니로군.”
“그렇습니다. 케인.”
싱긋 웃은 나는 그대로 테이커를 돌아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10월까지만 저를 믿어주십시오. 테이커. 이후로는 반드시 행동으로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말겠습니다.”
나는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거기에 잠시 눈이 마주쳤다.
거구의 사내.
이 시대의 전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이어 긴 한숨과 함께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는 내 예상보다 훨씬 얼토당토않은 놈이었군. 신.”
“칭찬인가요?”
“그래. 하지만 문제가 있다.”
“뭐, 죠?”
뭔가 불안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돌아보자 케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네 마지막 출연. 아버지께서 직접 각본을 쓰셨어.”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트 맥센의 각본이라고?!
난 죽을 거다!
“초안이 네가 링 위에서 바지에 똥과 오줌을 지리면서 구토를 하는 거였는데. 어떻게든 뜯어말렸지.”
“링은 누가 청소하고요.”
“네가 직접.”
아니, 거기까지 썼어?
“어쨌든 그래.”
각본은 이렇게 되었단다.
일단 내가 어그로를 끈다.
복귀한 뒤로 최대한 거만하게 팬들을 조롱하고 테이커를 모욕하면서.
그 후로 레갈리아가 등장해 날 습격하고 이후로 테이커가 나타나서는 모두를 제압하는 것으로 마무리.
“아니, 우리 분명 레슬 임페리움 엔딩에서 악수하면서 서로 인정한 게 아니었던가요?”
“아버지는 그걸 지우고 싶어 해.”
케인이 쓰게 웃었다.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뭐.
다 듣고 보자니.
별다른 걱정은 안 들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한마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으니까.